단편

고향으로

아쿠아 어드벤쳐

밤상어로 인해 동료들이 공격 받았던 그 날 밤, 달이 높이 뜬 바다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한 척의 배가 떠 있었다. 가벼운 탐사를 위해 가보았던 배에는, 사람이 아닌 초록색 괴물들만 가득했었다. 재빨리 배에서 내린 잠뜰은 낮에 탐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태양이 머리 위에 뜬 지금 다시 그 배에 왔다.

잠뜰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배 위에 올라탔다. 어젯밤 갑판을 가득 채웠던 괴물들은 온데간데없었다. 한낮의 강한 햇살만이 내리쬐고 있었을 뿐이었다.

"겁도 없이 우리 배에 올라온 자가 누군가 했더니, 인어였군?"

인기척에 시선을 돌려보니 검은 옷에 검은 안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라 뼈만 남은 해골이었다.

"간밤엔 왜 그렇게 빨리 가버렸나? 우리 선원들이 격하게 반겨주던 것 같던데!"

"어제 보았던 그 괴물들이...선원들이라고?"

"왜 그리 놀라는가? 지금 눈앞에 있는 나도 괴물의 모습에 가깝잖은가."

그자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을 흔들어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가 맞닿아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소름 끼쳤다.

"그럼 어제의 그 괴... 선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지?"

"다들 지하실에 있다네. 햇빛 아래에선 못 움직이거든. 뭐, 수천 년 전엔 아니었지만."

"수천 년? 어쩌다 그렇게까지..."

그자는 자신의 말이 재밌다는 듯 혼자 키득거리다가, 잠뜰의 말에 웃음을 멈췄다.

"그러게 말이야.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우린 그저 해적질 조금 하던 뱃사람들이었는데. 망할 바다의 왕이 저주를 내렸어. 모든 바다의 생물들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라고. 바다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린 죽어도 죽지 않는 몸일 거라고. 그 결과는, 눈에 잘 보이다시피 이 몸이라네."

선원은 몸을 잘 보라는 듯 양 팔을 들어보았다. 그의 마지막 말엔 서글픔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어. 우리는 그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쉬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지.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해골로만 남았지만, 다른 선원들은 햇빛 아래에선 걸어 다닐 수도 없게 되어버렸어. 끔찍한 건 태양 아래 있다고 온전히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거야. 달이 뜨면 어김없이 되살아나지. 자네가 말한, 그 끔찍한 괴물의 몸으로 말이야."

잠뜰은 조용히 선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항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왠지 그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다.

"우린 점점 지쳐갔어. 우린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고, 우릴 공격하는 생물들에게 대항할 수도 없었어. 결국 선장님께서 나서셨지. 자신이 우리를 원래의 몸으로, 하다못해 편히 죽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렇게 약속하곤, 혼자 바다의 왕을 찾아 떠나셨어.
우린 하루하루 선장님을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수천 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소문에 의하면 바다의 왕을 쫓아냈지만, 그 자리에 갇히셨다고 하더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과거를 되짚던 그자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잠뜰을 바라보았다. 짐짓 크게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인어여, 그대가 보기엔 우린 어떡해야 할 것 같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밤을 지내왔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치는 선원들은 이제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해. 우린 언제까지 이토록 고통받아야 하는 거지? 우리 선장님은 돌아오실까? 우리는, 우리는...."

분명 눈물 같은 걸 흘릴 수 없을 텐데, 그가 울고 있다고 생각한 건 왜일까.

"...편하게, 죽을 수 있을까? 낡고 닳아버린 이 육신이라도,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들리는 건 배를 스치는 파도 소리뿐. 그자도, 잠뜰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파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잠뜰은 자신의 어항이 거의 다 깨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둘러 물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잠뜰은 난간 쪽으로 향했다. 검은 옷의 선원은 잠뜰을 막지 않았다.

난간을 붙잡고 물속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던 잠뜰은, 잠시동안 무언가 생각하는 듯 물만 바라았다. 이내 결심했는지, 잠뜰은 몸을 돌려 선원을 향해 외쳤다.

"곧 내 동료들이 올 거야. 그러면 너희 선장이 어딨는지 찾아내서, 이 저주에서 풀려나게 해줄게."

"....뭐?"

"고마우면 나중에 보물 상자라도 내주던가."

답할 새도 없이 잠뜰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물소리와 하얀 물거품만 남기고 잠뜰은 선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검은 옷의 선원은 한동안 잠뜰이 떠난 자리만 바라보았다.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어떻게? 수 천 년 동안 우리 선장님도 풀지 못한 저주를, 너 같은 어린 인어가 무슨 수로? 우리 선장님도 같은 말을 하며 우리에게 기다리라 했는데, 결국 돌아온 건 절망뿐이었는데. 이젠 믿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지쳤는데, 그런데....

"선장님, 이제 저희...편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겁니까?"

희망을 가져 보고 싶었다. 믿고 싶었다. 망설임 없이 저주를 풀어주겠다고 이야기해주던 회색빛 눈에, 거침없는 파도와 같은 그 당찬 자세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다. 검은 옷의 선원은, 자신이 없는 동안 다른 이들을 지켜주라며 선장이 씌워준 모자를 움켜쥐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며 미소 짓던 선장과, 그보다 먼 과거에 선원들과 웃고 떠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선장님, 선원들이여.

저주가 풀리면, 이 끔찍하고도 길었던 저주가 풀린다면

우리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배를 타고, 자유로운 물살을 가르며 바다를 누벼봅시다. 

습기 찬 바닷바람이 우리의 돛을 펴고,

술통 하나로 웃음이 끊이지 않던 그 순간들을 다시 느껴봅시다. 

술통이 바닥을 보이면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우리의 가족들이 묻혔을 그 땅에 누웁시다. 

고향으로,

그래 고향으로 돌아가,

영원의 시간 동안 바다를 떠돌던 우리가 돌아왔다고, 그리 노래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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