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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뜰-1인칭-호러소설
F.I :
INT. WHITE ROOM - UNKNOWN
카메라 뒤에 서보신 적 있으세요 ? 가운을 입지 않은 의사 앞에서 슬기는 물었다.
없습니다. 의사는 짧게 말하고 길게 덧붙였다. 어떤 기분이 드는지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겠어요 ?
슬기는 망설이다가 입을 연다.
그 세상은 죽은 적이 없어요.
처음 잡았던 카메라의 촉감을 슬기는 기억한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손 안에 꼭 들어오는 크기. 매끈한 표면과 여러개의 버튼.
디스플레이가 붙은 본체를 꺾어 돌리면 직각으로 세울 수 있었는데,
그 모양이 당시 유행했던 캠코더를 닮아 디카폰, 캠코더폰이라고도 불리던 모델이었다.
그게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지금은 말해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를 시작하기 직전의 어느 주말. 날은 맑았고 슬기는 차멀미를 잘 안했다.
괜히 창문을 열어 좌석으로 바람이 던져 들어오게 둔다.
잘 빗었던 머리는 금방 헝클어져 엉망이 되고,
조금 닫아. 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슬기는 정말 아주 조금만 닫는다.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보온병에 든 시원한 보리차를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께서 몸을 돌려 건네주신다.
슬기는 그걸 마시면서 들었다.
슬기 입학선물로 사주는 거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잘 써야돼.
운전석에서 들려오던 어머니 말씀.
입학한지 한참이 지났는데 왜 입학선물이라는 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휴대폰을 갖는다는 사실만으로 들떠 슬기는 그 말에 별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적어도 슬기가 아는 한 같은 학교 2학년 중에서 자기 휴대폰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그날은 특별한 하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께서
걱정을 덜고자 사주신 것이었겠구나 싶지만,
그 당시에는 오늘 사기로 한 휴대폰 광고 영상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 뿐이었다.
광고 속 남자모델은 휴대폰을 권총처럼 들고 뛰었다.
그래, 촬영은 사냥이었다.
다른 또래들이 뻔질나게 알*을 소모할 때에도 슬기는 휴대폰의 저장공간을 더 많이 썼다.
* 통화나 문자 데이터 이용 시 사용되던 청소년 전용 요금제의 단위.
얼마나 많이 썼냐면 주말마다 어머니께서 휴대폰을 컴퓨터에 연결해 앨범을 비워주실 정도였다.
빼낸 사진이나 영상은 거실에 있던 컴퓨터 폴더에 차곡 차곡 담겨 긴 목록이 되었다.
희진은 그 목록을 처음으로 목격한 외부인이었고,
동경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희진은 그 동경이 슬기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슬기가 박제해둔 생명력을 향한 것인지 아마 잘 몰랐다.
희진은 막연히 슬기를 아름답게 봤고,
그때 이미 슬기는 멍해지고 있었다.
멍하다는 표현은 알아듣기 좋은 대체어다.
실제로 슬기가 묘사하고 싶었던 건 경험해본 적도 없는 유체이탈. 혹은 가위눌림과도 같은 감각이었다.
어느것도 아닌 이유는 손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건 한없이 이 세계에 붙어있는 감각임에도 불구하고,
뷰파인더에 눈을 댄 시점부터 슬기는 아득히 멀어져갔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이인증 아니야? 커서는 그런 질문을 받았다.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모든 게 그쳤더라면.
너 괜찮아 ?
옆에서 장난을 치던 희진이 손으로 툭 어깨를 건드렸다.
뷰파인더에서 눈이 밀려나고 슬기는 카메라를 든 손을 내린다.
정신이 몽롱하고, 불편하게 짧은 교복 소매의 감촉이 그제야 어깨를 죄는 듯 했다.
어느새 손에 들린 카메라는 크기를 키워 네모난 디지털 카메라로 바뀌어 있었다.
어어 괜찮아. 괜찮아.
슬기는 비몽사몽한 정신을 붙잡고 흘리듯 대답했다.
놀랬잖아 ~ 야 나는 네가 뭐에 홀린 줄 알았다. 하며 희진이 오렌지색 마이쮸를 건넨다.
포장이 벗겨져 있어 무심결에 입에 넣었는데 달콤하고 새콤한 오렌지 맛이 혀를 아리게 퍼져나갔다.
말캉한 소프트캔디의 질감이 이를 끈덕하게 떨어져나갔다가 곧 짓뭉개져 들러붙는다.
아, 생각났다.
슬기는 오렌지맛도, 너무 달달한 마이쮸도 별로 안좋아했다.
그날부터 슬기의 촬영실력은 비약적으로 늘어갔다.
희진이 본 건 평소보다 훨씬 흔들림이 적은 영상이었다.
희진은 슬기를 인식한 그 순간부터 슬기를 마음에 들어했다.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첫째는 당연히 손목에 걸린 디지털 카메라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집에 한 대 있을까 말까 했던 물건이었고, 그것도 부모님께서 관리하시는 게 보통이었다.
떨어뜨리면 안돼. 누가 가져갈 수도 있으니까 꼭 잘 챙기고 잃어버리지 말고.
부모님께서도 스트랩을 달아주시며 신신당부를 하시긴 했지만,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그 겉모습은 슬기를 향한, 필요없는 시선을 늘렸다.
튀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초등학교 6학년을 지나오면서 모두가 이미 같은 생존 법칙을 익혀왔는데,
그럼에도 슬기는 카메라는 놓지 않았고 희진은 슬기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선배들한테 이상한 시비가 걸리고, 시내만 나가면 괜히 삥 뜯기는 일이 잦아도.
심지어는 담임선생님께 학교에 너무 값비싼 물건은 가져오지 않는 게 좋다고 한 소리를 들은 다음에도.
희진은 슬기의 손목에서 빠지지 않는 카메라 스트랩을 멋지게 느꼈고,
슬기가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흥미롭게 봤다.
아무리 어설퍼도. 아무리 미숙해도. 추억이라는 보정에 우정을 좀 입히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그만큼이나 슬기의 변화를 명확히 느꼈다.
어느날 찍은 슬기의 영상엔 흔들림이 적었다.
미동도 없이 카메라를 든 슬기가 이상해보여 툭 건드린 그 날이었다.
불러놓고 용건이 없어 괜히 마이쮸 하나를 건넸는데,
뒤돌아선 다음에야 슬기는 오렌지맛도. 마이쮸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돌아봤을 땐 슬기가 오렌지맛 마이쮸를 느리게 씹고 있었다.
너 그거 안좋아하잖아. 묻진 못했지만 희진은 분명 이상을 느꼈다.
화면의 구도나 구성에 안정감이 붙는 만큼. 희진은 어딘가 슬기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다른 사람이 붙었거나.
그 감정은 희진이 어느 오후,
슬기의 디지털 카메라를 길게 내려다보게 한다.
슬기는 체육복을 빌려온다고 막 교실을 나간 참이었고,
청소년기의 복잡한 충동이 희진을 긁고 있었다.
뷰파인더는 창문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도트사이트*였거나.
* 총기에 장착할 수 있는 조준기
때문에 훔치거나 그냥 던져버리고 싶었다.
희진은 그게 모든 걸 마법처럼 해결해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실제로는 어떤 단서로도, 슬기는 디지털카메라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테고
희진만 괜한 범죄의 주범이 되어 온갖 징계에 시달릴 사건이었지만.
희진은 흠집이 난 나무 책상 위, 가지런히 놓인 디지털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러나 동시에 손도 떼지 못했다.
어휴 체육복을 다 안갖고 다녀.
등 뒤에 선 슬기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까지.
결국 희진은 카메라를 훔치거나 던지거나 그 엇비슷한 행동도 하지 못하고
3년째의 중학교 생활을 마친 후, 슬기와는 이름이 다른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적어냈다.
희진이 무엇을 했대도 아마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그때쯤 슬기의 손엔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비어버린 희진의 자리를 채운 건 승연이었다.
입학. 익숙하고 생경한 현장에서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한 손에 쥐고 있던.
입학식이 시작하기 전 눈 앞을 번뜩 스친 플래쉬 불빛 때문에 슬기는 그를 인식했다.
난데없는 행동에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지만,
손에 들린 필름카메라는 얼마전까지 손목에 걸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를 연상시켰고,
때문에 지루하던 연설 사이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색하게 대화가 시작됐다.
슬기는 그때 처음으로 카메라를 쥐었을 때 느끼는 감각을 타인에게 묻는다.
승연은 슬기가 느끼는 모든 것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세상과 멀어진다거나 자신과 떨어져나가는 것 같다거나,
솔직히 슬기는 이제 이게 재능인지 증상인지 헷갈린다.
이제 카메라 뒤에 서있으면, 마찬가지로 카메라 뒤에 선 것들이
슬기를 조용히 접촉하고. 슬기는 그것을 소리로, 때로 시야로 감지한다.
구분하기 좋게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들려올 일 없는, 거의 볼 일 없는 세상이며 소리다.
코트자락이 옷에 스치는 소리. 지지직거리는 무전음.
응급상자가 흔들리는 소리. 공구 부딪히는 소리.
때로 속삭이는듯한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와 들릴 듯 말듯한 이름.
(분명 지읒으로 시작한다)
찰칵. 승연은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이전에 들고 있던 것처럼 필름카메라는 아니고
그냥 휴대폰에 기본으로 들어간 카메라 어플이다.
승연이 방금 찍은 화면엔 슬기가 재생하고 있던 카메라 속 영상.
한 프레임과 슬기가 모두 담겨있고,
슬기는 그 소리에 잠에서 깬 듯 승연을 본다.
승연은 슬기에게 손을 흔들면서 그 프레임에 어떤 문장을 부연할지 생각했다.
슬기는 모르겠지만 승연의 일기장엔 그런 게 한참 있다.
그게 슬기가 찍은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게 슬기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승연이 포착한 그 순간의 그 한 컷은
붙들려 승연의 부연 안에 영속된다.
그런 사소함이 모르는 사이에 슬기에게 덧붙는다.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먼지처럼 쌓이고.
어쩐지 슬기가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때마다
승연의 휴대폰에선 찰칵. 소리가 잦아지는 것도 같다.
승연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 아마 모른다.
꿈 속에서 슬기는 총을 들고 있다.
그 어느날 머리를 맴돌았던 광고 속 남자 모델처럼.
그러나 휴대폰 대신 장총을 들고 조준경을 본다.
조준경 앞으로는 분명 무엇이 스쳐지나가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흐리고 그러나 슬기는 그들을 쫓는다.
있는 힘껏 달린 탓에 숨이 목끝까지 차오른다.
무언가가 분명 눈 앞을 스친다.
이를테면.
이를테면 남색의 코트자락.
무릎의 검은 보호대.
갈색 단발머리.
뛰어서.
뛰어서.
뛰어서.
뛰어서.
눈 앞의 총구를 본다.
그건 자신과 1cm도 채 떨어져있지 않지만.
그 뒤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공백이다.
슬기는 채 다 뱉지 못한 숨을 떨리게 쉬고.
카메라를 잡지 않는 학과를 자퇴했다.
슬기는 생각한다.
이 기척은 분명히 자신 안에 살아있다.
슬기는 생각한다.
그것은 나 이고, 아니다.
슬기는 생각한다.
촬영은 사냥이다.
사냥해서 박제하고
박제물은 언제나
살아있던 때와 같지 않다.
잠뜰 : 그게 제가 영화를 찍게 된 이유예요.
잠뜰 : 죽은 적이 없었거든요. 한번 만들어진 순간부터.
잠뜰 : 망령으로 떠돌면서. 살아숨쉬고 또 왜곡되고.
잠뜰 : (시선을 아래로. 잠시 침묵을 지킨다)
잠뜰 : 서술 트릭에 대해서 혹시 아세요?
잠뜰 : (‘의사’를 보고) 보통 추리소설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인데. 독자를 일부러 착각에 빠뜨리거나, 아니면 편견에 갇히게 해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도록 하는 걸 말한대요. 반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사용하곤 하는데. 잘 쓰이는 건 인물에 대한 정보를 감추는 거고 ….
(말끝을 흐린다. 시선은 그 어느곳도 아닌 허공을 보며)
“다들 카메라는 보통 시선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 카메라를 누가 들고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지읒으로 시작하는 이름이 대체 뭔지. 알아듣는 게 좀 힘들긴 했는데.”
“결국엔 저고, 또 아니기도 하고.”
“그러니까 어쨌든, 이렇게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남은 한 사람도.”
컷.
수고하셨습니다.
슬기가 가운을 입지 않은 배우를 향해 카메라를 숙인다 .
F.O
사진은 사냥이야.
살의 없는 사냥 본능이야.
(…)
죽이는 대신 영구화시켜.
크리스 마커, <내게 만일 네 마리의 낙타가 있다면>(Si j'avais quatre dromadaires,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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