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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바다와, 사랑하는 그대 下

엑스트라 합작 | 혁명

레부 책갈피 by 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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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투알 국왕 공룡은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의 산실로 향했다. 신하에게서 이미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물들고 있었다. 그러니 이 떨림은 그저, 사랑하는 아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낳아줬다는 기쁨에 의한 것일 거다.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렷다. 공룡은 그렇게 믿으며 산실 앞에 섰다. 그를 알아본 문지기들이 인사를 올리며 문을 열었다.

공룡은, 생각보다 분위기를 잘 읽는 자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갖 모함과 술수가 가득한 궁궐에서 왕위 후계자의 신분으로 살아남았을 리 없었다.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학습한 본능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점이었다.

그는 그 날 처음으로, 그런 것들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울음소리 말고는 쥐죽은 듯 조용한 방. 

후계자의 탄생을 눈앞에서 봤는데도 기쁜 기색이 없는 하인들.

그리고 평온한 표정으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왕비.

차라리 백치처럼,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왕비, 내가 왔소."

공룡은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왕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불규칙한 숨소리가 들렸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방인데도 짙은 죽음의 향이 났다.

"…여봐라, 왕비 마마께서 불편하신 곳은 어디 없으시더냐?"

공룡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여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의례적인 질문인 마냥 의사에게 왕비의 건강상태에 대해 물었다. 아무 문제 없으십니다, 라는 답을 기대하며.

"저, 폐하… 그것이…."

그의 간절한 기대와 달리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왕비가 건강하다는 부류의 대답이 아니었다. 의사는 한참을 망설이다, 이내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말을 올렸다.

"…왕실의 모든 의사들이 모여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지만… 왕비께선…."

"그 입 다물지 못할까!"

말을 끝까지 듣고 싶지 않았다. 왕비에게 곧 닥쳐올 죽음을 확인받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 정도는 품고 싶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어찌 불경한 말을 입에 올리려 하는 게야! 왕비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당장 네놈의 목부터 칠 것이다!"

"폐하…."

힘없이 그를 부르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공룡은 단번에 고개를 침상 쪽으로 돌렸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검은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지 마세요, 폐하…. 저들은 절 살리려 노력했습니다."

"왕비."

"그리 서 있지 마시고, 저희 왕자를… 우리 아이를 가까이서 봐주세요."

공룡은 그제야 엘레나의 시선을 따라, 갓 태어난 자신의 어린 아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침상에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이, 왕비가 아이를 안을 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생각은 애써 누르며, 공룡은 왕비와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푸른 머리카락, 그보다 더 짙은 푸른색 눈동자. 왕자는 자신도 왕비도 그리 닮진 않았었다.

그보다는, 그래. 자신의 왕비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바다를 닮지 않았습니까."

공룡이 보여주겠다 약속했던, 푸른 바다를 닮았다.

그날 밤의 약속이 생각났다. 불안해하던 그녀를 안고, 그는 절대 그녀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약속해줬다. 얼마나 얄팍하고 힘없는 다짐이었는가. 결국 그는 사랑하는 그의 아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엘레나는 그런 자신을 질책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그날 밤 어쩔 수 없다며 죽음을 받아들이려 할 때 지은, 다시는 짓게 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폐하, 비록 저는 먼저 떠나지만… 부디 우리 왕자를 지켜주세요…."

"…그만."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하게,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만, 그만 말하시오. 그런 말은 다 나중에 들어줄 테니, 그렇게…."

왕비의 손을 잡은 공룡의 손이 떨렸다. 애정과 두려움이 가득 담긴 고동색 눈동자가 왕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디 갈 것처럼 말하지 말아줘, 엘레나."

엘레나는 그 말에도 그저 예의 그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부질없는 부탁이라는 것은 부탁하는 이도 부탁받는 이도 알고 있었다. 이미 망토를 덮어준 그 날 밤부터 알고 있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외침이라는 것을, 얼마나 슬픈 말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는 것을.

"바다를, 함께 보자고 했잖아, 엘레나. 그러니, 제발… 왕자와 나만 두고, 그렇게…."

"…폐하, 저는…."

엘레나의 숨소리가 고통스러웠다. 불규칙한 호흡 사이로 그녀가 겨우 말을 이어가려 하였다. 붙잡아도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공룡은 기적을 바라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죽음에 가까운 숨소리가 이어지길 한참, 그녀의 입술이 조용히 달싹였다.

"폐하를 만나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엘레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고통스러운 숨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밤하늘에 유성이 떨어지듯, 그녀의 마지막 시간이 조용히 공룡을 떠났다. 

"엘레나, 엘레나!!"

목이 터져라 불렀다. 받아들일 수 없어서, 다시 돌아오길 바라서. 들을 이도 대답할 이도 없이 허공으로만 흩어질 이름을 수십 번을 불렀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떠난 이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맞잡은 손의 온기가 완전히 식었을 때, 공룡은 그제야 자신이 엘레나에게 영영 바다를 보여줄 수 없으리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에투알 왕국 후계자의 탄생일이자,

망국의 마지막 왕비의 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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