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십 사 분의 기다림

초능력 세계 여행

레부 책갈피 by 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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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우산에 투둑 떨어진다. 

각별은 검은 우산을 펴고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작은 골목에 있는 곳이라 비가림막도 없었다. 전광판에 적혀있는 버스 예상 도착 시간은 십 사 분. 걸어서 십 오 분 거리인 곳이긴 하다만, 비가 많이 오니 각별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십 사 분 동안 각별은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랑비는 아니나 세찬 비 또한 아니었기에 적당히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비 때문에 차가워진 공기의 온도와, 머리가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까지. 십 사 분이라는 애매한 시간 동안 각별은 그곳에서의 분위기에 자신을 녹아내었다. 

우산이 다 못 막은 빗물이 각별의 옷자락에 튀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올 때 진 곳을 밟았기에 신발 앞코가 다 젖었다. 축축한 느낌이 드는 것이 집에 돌아가면 안에 신문지를 넣어서 말려야 할 것이다. 

이윽고 버스가 왔다. 각별은 물기 묻은 신발로 버스 계단을 밟고, 몸을 돌려 두 손으로 우산을 접었다. 버스 단말기에 카드를 찍고, 뒤쪽 의자로 걸어가 앉는다. 손님이 거의 없는 빈 버스 안에서 각별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창문에 빗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우산에 묻은 물기가 저들끼리 모여 바닥으로 흐른다. 

몇 번의 덜컹거림이 이어지고, 이내 버스가 각별이 내려야 할 정류장에 멈춘다. 다시 우산을 두 손으로 피고, 각별은 빗속으로 걸어갔다. 우산은 다시 빗방울을 튕겨내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지하철역에 다다랐다. 여기서 다시 두 번 갈아타야 도착할 것이다.

원했다면 각별은 그의 초능력으로 빗방울이 자신의 몸에 한 방울도 닿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했다면 애초에 버스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별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옷과 신발과 우산이 빗물에 젖는 것을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IPS의 국장까지 하고 있는 각별의 능력을 생각하면 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비까지 내리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그 모든 번거로운 이유에도 불구하고, 각별은 굳이 평범한 사람처럼 비에 젖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기다렸다.

비효율적인 평범함이야말로, 그가 수십 년 동안 바라 온 것이었으니까.

"...다 젖었네요." 

흙탕물에 흠뻑 젖은 저의 신발 앞코를 보며 각별은 피식 웃는다. 먼지 한 톨도 묻어있지 않은 그 하얗던 방 안에 있었을 땐 꿈도 못 꾸었던 일이다. 초능력자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잠도 줄여가던 시절엔 상상도 못 했을 여유로움이다.

각별은 지하철역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우산의 물기를 가볍게 턴다. 전광판에는 열차가 도착하기까지 여섯 정거장이 남았다고 뜬다. 아이들을 만날 약속 시간까지 도착하기엔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이다.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간다. 각별은 자신의 삶에 녹아든 이 비효율적인 평범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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