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팁_습작

[뜰팁_부잣집시리즈] 유일한 가정교사

또한, 유일한 친구

* 선동과 날조 / 부잣집 시리즈 스포 주의

* 글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 겨울의 한 날이었다.

“당신, 평범한 사람 아니지?”

어느 작은 가문의 가정교사로 들어간 첫날, 수업을 마치자마자 여섯 살배기 꼬마 도련님이 제게 던진 말이었다. 능청스레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청년인 것처럼 눈웃음을 지으며 무마해보려 했지만, 어린 도련님은 날 놓아주지 않았다.

“내 주위를 계속 맴도는 빛무리 말이야, 우리 부모님이나 다른 가솔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 근데, 그쪽은 있네? 그것도 엄청 많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도련님의 두 눈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남들에겐 없는 것,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 이것이 저주인지 축복인지 알 수 없었던 작은 아이에겐, 이 순간이 꿈만 같을 테지. 자신의 비밀을 나눌 사람. 자신과 같은 시야를 가지고 있을 사람. 그런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제 눈앞에, 그것도 자신의 가정교사로 나타났으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나는 타고난 사람인 것 같고, 당신은 나보다 더한 것 같은데. 어때, 내 말이 틀려요?”

어쩌면, 이때. 내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존재라는 걸 이미 느꼈을지도 모른다.

“정말, 이래서 천재들은 못 이기겠네요.”

또, 내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맞아요, 각별 도련님. 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에요. 저는 마법적 재능이 탁월한 인간을 찾아온-.”

“헐, 인간도 아녔어? 쩌네? 그건 몰랐는데.”

“어? 아니 그게.”

“말해줘서 감사요. 새로운 정보 알아갑니다.”

“도련님, 도련님?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도련님? 대답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도련님? 각별 도련님...!”

눈꽃이 잔뜩 피어난 그 겨울, 우리의 비밀 수업이 시작되었다.

*

인간의 사회에도 마법을 전하고 싶었던 나는 각별의 천부적 재능을 놓치지 않았고, 각별 또한 자신의 재능을 피워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각별과 함께하는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뒤지게 말을 안 들어먹고 허구한 날 사고 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각별을 바라보고 있자면 괜스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정도 철이 든 후의 도련님은 마치 학자와 같았다. 의문이 생기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탐구하고, 파고들었다. 원하는 자료를 찾을 때까지 수소문하거나 직접 발로 뛰기도 했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지니, 인간으로선 이룰 수 없는 업적들을 이루어내었다. 오래된 자들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방향의 이론, 인간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 특히, 마법에 미숙한 자들이 쉽게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스크롤은 정말이지 획기적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지새우며, 나의 작은 도련님은 성인이 되었고 어엿한 한 가문의 주인이 되었다. 훌륭한 마법사에게 가문의 몸집을 불리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범인들의 한계를 아주 조금 능가하면 되니까. 장성한 가문을 이어 나갈 훌륭한 후계를 길러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각별의 피를 받은 만큼 재능은 보장되어 있었으니. 다만, 가르치는 것이 서툴러 후계의 교육도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래서 천재들이란.

언제부터인지, 각별은 자신이 없는 세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마법사는 천명을 거스르려 들지 않았다. 본인의 능력으로도, 나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남은 것들은 다음 세대들에게. 이것이 그의 가치관이었다.

고작 몇십 년. 한 명의 인간이 자아내는 삶의 길이가 제겐 찰나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하니 애잔했다. 아직 어린 핏덩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빛이 금방 꺼질 것이라 생각하면 침울해지기도 했다. 나는 작은 상념들에 서서히 젖어 들었고, 결국엔 각별, 한순간을 살아가는 인간이 피워내는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내게 서린 한 줌의 눈꽃은 한 방울의 별이 되어있었다.

*

그의 마지막은 꽃이 잔뜩 피어난, 어느 봄의 한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 각별에게 허락된 마지막 날이 되었다. 현자라 불리는 그도, 흐름을 보는 나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조용히, 서로를 마주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땐 이 천방지축 장난꾸러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말씨도 예스러워지고, 생각도 깊어졌다.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품격 또한 감히 인간을 능가했다 일컬을 수 있을 정도이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도련님?”

“후회는 무슨. 상속 관련된 건 효력 있는 공문서로 남겼으니 싸움 날 일은 없을 것이고, 내 마법적 지식은 전부 문서로 남겨놓았고. 이동 포탈 정비 매뉴얼도 남겨놓았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벙커 점검도 끝났고……. 다 된 것 같다만. 거참, 구질구질하게 많이도 남겨놨구먼. 원래 갈 때는 깔끔하게 가는 게 좋다 하였는데.”

“아뇨, 각별 도련님 개인으로서.”

“아, 그건 있네. 우리 가문 이름 못 바꾼 거. 개구려. 촌티나.”

“도련님, 말씨를 곱게 바꾸어주세요. 이왕이면 유종의 미를 지킵시다.”

“개구린 걸 개구리다고 하지 뭐라 말해?”

“도련님.”

“아 진짜, 위대한 마법 가문의 이름이 이렇게 개 구려도 되는 겐가 심히 고민이야.”

“아 좀, 각별아! 다른 인간들은 이쯤 되면 점잖아지는데!”

언성이 높아지자 각별이 작게 웃음을 흘린다. 그래, 이 분위기가 편해. 하는 말과 함께. 꼭 나와 둘이 남으면 이렇게 흐트러진다. 편하게,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가정교사였던 사람으로서 아쉬워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날 이름으로 불러주는 건 그대가 유일하네. 다들 위대한 마법사라느니, 현자라느니, 어쭙잖은 별명으로 부르고 난리던데. 오글거려서 못 들어주겠어. 게다가 정작 위대한 건 내가 아닌데 말이야. 다들 아무것도 몰라.”

조잘조잘, 말을 늘어놓는 각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생명이 흐드러지게 피어 가는, 완연한 봄의 색채가 펼쳐졌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각별의 얼굴에는 아직 못다 한 말이 맺혀있었다. 각별 자신도 알아볼 수 없는 오직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것.

“여전히 아름답죠?”

“뭐, 봄이니까.”

“아뇨, 마법이요.”

“…….”

“도련님은, 마법을 역사의 한켠에 묻어두고 싶지 않은 거죠? 그렇다고 인간들이 헛된 일에 일을 쓰는 것도 별로고요. 마법이 더럽혀지는 것이 싫으실 테니까.”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걱정하지 마세요. 이 가문은 각별, 당신의 의지로 세워진 가문이니만큼 그 의지를 잊지 않을 겁니다. 수십, 수백 년이 흐르더라도 이 내가, 위대한 마법 가문의 영원한 감시자이자, 상담역으로 살아갈테니까요.”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참 마법 같은 일이죠. 저는 어디 얽매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인데. 도련님은 그걸 해내시네요.”

“나는, 네가……. 자신의 삶을 살았으면 하네.”

“오만입니다, 도련님. 이 가문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이어진다 한들, 제겐 하루와도 같을 테니까요. 또, 도련님의 원념을 가호의 형태로 남겨두신 걸 모를 줄 알았습니까? 결과물이 어찌 나올지, 나중에 어떻게 변형될지도 알지 못하는데.”

“…….”

“도련님, 도련님은 제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알아.”

“제가 최초의 인간 마법사를 그냥 둘리도 없죠.”

“그것도 알아.”

“하다가 빡치면 때려치우고 쉬다 오겠습니다. 도련님 사춘기 때랑 갱년기 때처럼.”

도련님이 내게서 등을 돌린다. 기분이 썩 좋지 않거나, 내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모습이 될 때면 늘 저랬었다. 어쩌다 한 인간의 신념을 위해 살아갈 것을 맹세하고 있는 건지. 내가 바라보던 세계는 이렇게 편협하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나의 세상은 좁아지고 좁아져, 밤하늘 따위가 되었다.

“유일한 친우로서 드리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어깨가 작게 들썩인다.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물론이죠.”

“미안.”

“뭐가요?”

“실수로 열 번쯤 죽일 뻔 했던 것 같아서.”

“열 번이요? 수십번일 텐데.”

“나보다 지랄맞은 후손이 있을까?”

“어휴, 말도 마세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있어도 잘 해줘. 엇나가면 적당히 처신하고.”

“제 전문이죠.”

“왜 그렇게 열심이야?”

“뭘 새삼스럽게. 아시잖아요.”

현재, 가장 위대한 가문. 그 가문의 가장 위대한 가주에게 허락된 최후의 시간, 다시 어린 꼬마로 돌아간 도련님이 제게 던진 마지막 질문이었다. 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환한 표정을 보여주었고, 어린 도련님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작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언젠가 보자.”

“네. 부디, 편히 쉬시길.”

가장 위대한 마법사, 쩡 가문의 가장 위대한 가주. 각별과 그 가정교사의 마지막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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