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불멸자의 회고록 - 1부 5화
운명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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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신화 × 이방인 크로스오버
1부 5화
운명의 장난
하나. 인간들은 여러 번의 삶을 반복하는 모양이다.
둘. 정확히는, 선택된 극소수의 영혼만이.
셋. 만일 영생을 취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넷. …내가 그걸 알 수는 없겠지.
"태양선인을 뵙습니다."
정말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늙은 신관이 은퇴했다. 이제 몸이 마음만큼 받쳐주질 못한 것이겠지. 여기까진 좋다. 나도 늙은 몸을 이끌고 힘겹게 일하길 바라진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왜 다음 태음신관의 자리를 가을이 맡는가. 슬슬 개인적인 사정으로는 뒤끝이 전혀 없기로 유명한 운명에게 개인적으로 크게 잘못한 것이 있는지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이 기이한 만남은 순환의 수레바퀴의 방관자에겐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특히 예전에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더더욱.
나는 잘못의 크기가 남들보다 더 커서 이렇게 괴로운 걸까.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실없는 생각만 든다.
xXx
어느 날 성주가 내게 찾아와 말을 한 적이 있다. 회의에서 있던 작은 싸움-아마 비성편에 대한 이야기였으리라-을 알려주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에 대해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설명하기 힘든 사람이에요."
"어떤 의미에서 말입니까?"
"알려진 게 없어요."
정말, 단 하나도. 봄은, 성주는 작게 속삭였다. 젊은 왕은 제게 적대적인지도 알 수 없는 존재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태평한 시대에서 나고 자란 것 치고는 놀라운 감이었다.
"전대 성군의 아들이 맞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아요. 그 붉은 머리와 눈을 보고 있다 보면…."
별들의 주인이 침을 삼켰다.
"피로 물든 재앙을 보는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요."
왕좌에 앉은 자라면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인상이었다. 피로 물든 재앙. 역모가 떠오를 법한 구절 아닌가. 이 나라는 성주의 왕권이 강력해 반란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지만, 그걸 모른다면 왕좌를 빼앗길 걱정을 해도 유난은 아니다.
그나저나 붉은 머리라니.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내가 예전에 그런 인간을 본 적이 있던가?
.
.
.
"태양선인이시여, 천건성군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하십시오."
요즘 손님이 많다. 성군들이 내게 많이 찾아오면 꼭 뭔가 큰일이 벌어졌었으니, 이걸 일종의 징조로 여기고 있다. 이건 감이 아니라 놀랍도록 정확한 통계였다.
"반갑습니다, 선인."
일종의 의례나 다름없는 인사말과 다른 대사가 날아왔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붉은 눈과 마주쳤다. 딱히 살기를 담지 않은, 오히려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벌하고 어딘가 메마른 인상을 주는 눈빛이었다. 이래서 성주가 천건성군을 두려워한 모양이다. 그 눈엔 읽을 수 있는 감정은 남아있질 않았으니.
"…반갑습니다, 성군. 처음 만나는군요."
우선 가볍게 시작했다. 그간의 경험상 섣불리 본론을 꺼내려 행동하는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아, 그러실 만도 하지요. 전대 성군께서 절 워낙 애지중지하며 키우셨잖습니까."
묘하게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담긴 목소리였다.
"사악한 마음을 먹은 누군가가 몰래 자리를 빼앗아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말입니다."
소문을 향한 조롱인가, 전대 성군을 향한 조롱인가. 혹은 날 향한 것인가? 어찌 되든 저 자의 장단에 조금은 놀아나 줘야겠다.
"성군께서는 잡담을 싫어하시나 봅니다."
"역시 오래 살아서 그런지 눈치가 빠르십니다."
휘어진 붉은 눈매가 희미한 즐거움을 머금었다.
"그럼, 무슨 일로 이곳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선인께 제 비밀을 한 가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불길하다. 붉은 머리와 눈. 어딘가 익숙한 외모.
"제가 성군의 비밀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듣는 순간 그건 비밀이 아니게 될 텐데요."
"어차피 영원히 갈 비밀을 무엇하러 선인께 감춥니까. 그냥 흥미롭게 들으십시오."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그건 분명 미소가 아니었다. 저 경련하듯 올라간 뺨의 근육은 마치-,
"난 죽지 못합니다."
"…뭐라고요?"
아. 두 눈으로 처음 본 순간부터 줄곧 의심하고 있었으나 이제야 확신했다.
그 빨간 머리를 가진 어린아이는 어느새 한 성의 주인이 되어 찾아온 것이다. 누군가가 얻어야 할 자리를 빼앗으면서까지. 그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천건성군의 관을 쓴 자는 변함이 없으리라. 영원히.
"왜 시치미를 떼시는지요. 선인께서도 저와 비슷한 처지 아니십니까? 여러모로 바다와 추억이 많은 사람들이잖습니까. 그 너머의 저주에까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 순진한 척은 그만두십시오. 당신이나 나나,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아니냐 이 말입니다."
발뺌하기엔 늦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저 자를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잃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래요, 나도 저 바다 너머에서 왔습니다. 이왕 같은 처지인 사람끼리 벗으로 남는 것이 좋겠군요. 우리는 서로의 비밀을 아는 관계니까요."
천건성군은 말 없이 한참을 웃었다. 행복 따위는 보이지 않는 마른 웃음이 잦아들 무렵 그는 조용히 일어났다. 한 쌍의 붉은 혜성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선인께서 아끼시는 그 비성편도, 당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정체를 모르지요. 제 아버지도 비슷한 상황이셨습니다. 결국, 갑자기 찾아온 낯선 이에게 아들을 빼앗기고 마셨지요."
부디 전대 천건성의 주인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태양선인이시여. 성군은 그대로 등을 돌려 태양의 공간에서 떠났다.
천건성, 천왕성이라. 태양에서 먼 별의 주인다웠다.
해태성이라 불리는 해왕성의 주인은 태양과 아주 멀다. 이건 지구를 제외하고는 실제 거리순대로 성에 이름을 붙인 딱딱한 양반들 때문이다. 그렇기에 역대 해태성군들은 대체로 중앙에서 벌어지는 일, 예를 들어 정치적 싸움 등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종의 방관자인 셈이다.
이 말인즉슨, 태양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태양 빛과 온기를 받기엔 너무도 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의 기이함을 알 정도의 거리는 되는 별이 바로 천건성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별의 주인은 태양의 내핵, 선인을 만들어낸 것과 비성편의 정체를 알고 있지 않은가.
붉은 혜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혜성이 중심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팔성국(八星國)은 태양 선인을 중심으로 지곤성의 성주와 일곱 성군들이 공전한다. 어쩌면 곧 여섯 성군이 될지도 모르겠다.
각 성들의 이름은 행성들의 이름을 따왔다. 수성부터 천왕성까지. 건국 과정에서 현대의 지식이 들어간 탓에 소행성으로 떨어져 버린 명왕성은 제외되어 구(九)성국이 아니라 팔(八)성국이 되었다. 어감의 문제도 있고.
아무튼, 태양계의 중심은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실제 태양도 우리은하의 흐름을 열심히 따라가며 안드로메다은하와의 충돌로 달려가고 있듯이, 태양선인 또한 나름의 업무가 있다.
가령, 간혹 찾아오는 -이번 성주는 자주 찾아오는 편이긴 하지만- 성주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비성편에 대해 떠보려는 치들을 품위 있게 쫓아낸다거나, 태음신관과 몇몇 유능한 천문관들에 대해 대화를 한다거나.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양이다.
그리고 그날은, 유독 구름이 없는 밤이었다.
당연하게도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깨끗한 밤은 곧 천문학자들의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별들이 잘 보이는 밤에는 미래가 가장 선명한 법이니까. 일부 야망 가득한 천문학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으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방아쇠가 되고는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 가장 용감하고 조금은 어리석은 -세간에서는 무모한 미친놈이라고 불리는- 몇 명은, 태양선인의 공간에 들어올 궁리를 한다. 물론 몇 세기에 한 번 꼴이긴 하지만.
왜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태양선인의 지혜라는 명목으로 열심히 대외적으로 나를 추켜세웠던 총리의 업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지식을 알고 있지만 오로지 비성편의 수호를 위해서 지혜를 사용하는 존재. 아마 다들 내게서 어떤 지식을 가져갈 심산인 것 같다. 성공한 자를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바깥에서 옷자락이 바닥에 끌리고 신발이 돌과 맞닿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오랜만에 광기 어린 탐구자들이 모여 모험을 시작한 모양이다.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는 일에 목숨을 내걸다니, 용맹하기도 하지!
촛불 두어 개에 불을 붙여 방 안을 밝혔다. 초와 창 사이에 서면 바깥에서는 창호지로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하게 보일 것이다. 적어도 이 궐 내에서는, 상시 삼엄한 경비를 유지하는 작은 공간이 태양선인의 초소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함께 죽자는 맹세를 하면서까지 이곳으로 와놓고 막상 그가 움직임을 보이면 물가의 송사리 떼처럼 흩어지는 것이 보통의 천문학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방문도 별일 없이 끝낼 수 있다.
초 하나를 더 밝혔다. 이제 방이 갑자기 밝아졌으니 절반 정도는 뛰쳐나갔을 것이다. 대부분이 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니 한창 자신감이 넘칠 때다. 치기 어린 마음을 이해해주는 일환으로 한 번씩 겁만 주는 것이니 저들에겐 나름 나쁘지 않은 교환 아닌가?
부채를 들고 뒷짐을 진 채로 창 앞을 서성거렸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수군거리는 목소리와 급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조금만 더 만용을 부려볼 것이지. 저렇게 다급하게 사라져버리고 동료들에게 또 어떤 말들을 늘어놓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천문학자들은 조금 더 용기 있고 보다 더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태양선인이십니까?"
차분하고 힘 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창틀 틈으로 새어 나왔다. 당연히 제 대화 상대가 선인이라고 확신하는 말투였다. 뒤에서 흐릿하게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건 미친 짓이야. 이봐, 얼른 돌아가자!
"이미 알고 있잖습니까."
"선인께서도 제가 그저 예의상 여쭙는 것 뿐이라는 것 또한 알고 계시잖습니까."
당돌하다.
"그래, 그대는 내게서 어떤 지식을 바라는 겁니까?"
"이런 상태로 대화해서는 얻지 못할 지식이죠."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알고 왔겠지만, 신관도 자고 있을 시간입니다. 문 앞으로 오시지요. 직접 열어드릴 테니."
"하, 참 영광이군요."
.
.
.
환하게 켜두었던 촛불들을 하나만 남겨두고 껐다. 내가 초대한 용맹한 손님이 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문을 열자 보이는 얼굴은-…,
오, 이런.
xXx
그래, 몇몇 인간들은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여러 번의 생을 반복하는 것이 틀림없다. 운명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어 했던 인간들은, 끝없는 죽음과 환생의 굴레를 사는 것이 확실하단 말이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눈앞의 인간을 바라보았다. 분명 내 시선을 느꼈을 텐데, 꿋꿋하게 방을 둘러보는 천연덕스러운 뒤통수가 내 속을 더 새까맣게 타들어 가도록 만들었다.
"천문관. 이름이 뭡니까?"
제발.
"잠뜰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내게서 무슨 지식을 받고 싶은 겁니까?"
아득해지는 시야를 유지하려 애쓰며 물었다.
"저는 그냥 동료들 따라왔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보통 '끌려왔다'라고들 표현하죠."
유지에 실패했다.
"그럼 중간에 빠지면 될 것을."
"뭐, 살면서 태양선인 얼굴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물론 저처럼 유능한 천문학자는 언젠간 가능이야 하겠지만. 전통적으로 뭣도 모르고 여기까지 찾아온 신참 천문학자들은 봐주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 핑계 대고 위대하신 분의 안면을 감상하러 왔습죠."
나불거리는 입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 인간도 이렇게 말을 잘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내가 지금 창문을 열고 무관을 부르면 그대는 당장 목이 떨어질 겁니다."
"오…,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경고라고 해둡시다."
회색 눈이 한 바퀴 도록 굴렀다.
"본론으로 돌아가 봅시다. 내게 원하는 지식이 없다, 이 말입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죠. 전 제 능력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서."
물론 내주신다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천문관이 허공을 보고 중얼거렸다.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대의 지식을 탐내도 되겠습니까?"
"예? 아니, 고작 20년 조금 넘게 산 쬐끄만 인간의 지식을 어디 써먹으시려고…"
"배움엔 끝이 없는 법입니다."
천문관이 눈썹을 한껏 추켜올리고 미심쩍어 미치겠다는 듯이 날 바라보았다. 째려보았다, 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대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이도록 하지요."
침묵은 동의가 아닌데요? 라는 눈빛으로 맞은편의 절대적 존재를 노시(怒視) 하는 시선을 무시했다. 어찌나 강렬하게 쳐다보는지, 얼굴이 따끔거렸다.
"만일 저 밤하늘의 별들 너머에, 우리와 같지만 다른 존재가 있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천문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오래 살았다더니 어딘가 고장 났나? 또 다시 허공을 보고 중얼거린다. 누구와 대화하는 거지?
"고장 나지 않으니 오래 사는 것이지요."
"아, 들리십니까? 생각보다 청력이… 좋으시네요."
혀를 누르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화를 돋워 머나먼 지방으로 잠시 긴 휴가를 떠나게 될 지도 모르겠으니.
"…당신은 천문학자니까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태양선인이시여. 팔성국에서 발견되는 모든 지식이 당신에게로 연결된다는 이 나라의 지극히 당연하고도 법도와 같은 상식을 잊으신 겝니까?"
"어디에나 거짓을 고하는 자들은 있기 마련이지요."
"아, 그러니까 제가 거짓말쟁이다?"
"대화의 흐름이 왜 그렇게 되는지 도통 모르겠군요. 혹시 찔리십니까?"
"그럴 리가요. 저만큼 정직하고 성실한 천문학자가 또 어디 있다고."
아닌 척하고는 있지만 이 대화를 번거로워하는 티가 나는 것도 그렇고, 악연이라 부를 만 했던 연을 가졌던 내게 웃으며 답하는 모습을 보니 적어도 기억은 없는 것이 확실하다.
"대면이 귀찮다면 내 앞에선 감출 필요 없습니다."
천문관이 입을 몇 번 벙긋거렸다.
"이만 보내드리도록 하지요. 이왕이면 그대의 후배들에겐 태양선인의 처소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말까지 전해주십시오."
"왜 하필 제가?"
"여기까지 온 건 그대가 처음이라."
천문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는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건덕지 안 줄 거였으면 그냥 보내주지."
희미한 혼잣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급한 발소리.
"세상에. 살아 돌아왔군! 내 자네를 말렸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그러게. 말리지 그러셨어."
"그래서, 선인께선 뭐라 하시던가? 지식은 얻었나?"
"아니. 유감스럽게도."
저 자도 참 용감하다. 아직도 남아있었다니.
"어허, 거짓말 마시게나."
"좀! 안 그래도 심란한데 왜 자꾸 말을 걸어! 나도 이게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전혀 웃을 만한 상황이 아님을 알고 있는데도 앳된 티가 나는 말투에 웃음이 나왔다. 진정 같은 영혼이라면 운명이 그의 운명을, 미래를 점지해두었으리라. 아끼는 영혼에겐 이야기를 아끼지 않는 것이 가장 순수하고 잔혹한 존재, 운명이니.
선하고도 이기적인 인간이여. 그대는 무엇을 바꾸어내기 위해 다시 이 세상에 온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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