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너의 하늘을 위해

DIE ALMOND 3차 창작

누눙님 AU <DIE ALMOND > 3차 창작

https://nunungflo.postype.com/series/637897/die-almond

사람을 속이는 건 쉽다. 

진심이라는 것은 웃음이라는 가면만으로도 손쉽게 가려지는 얄팍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다. 속이는 상대가 어린 나이일수록 더욱 쉽다. 별거 아닌 조잡한 가면을 쓰더라도 상대는 고맙다며 내게 마주 웃어 보인다. 

그랬기에 네가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들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일이 손쉬울 거로 생각했다. 어린아이라는 것이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내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작은 죄책감은 쉽게 눌렸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너는 속이기 쉬웠다. 착하고, 멍청하고, 그저 한없이 다정한 너는 나를 쉽게 믿었다. 유약한 아이네,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물도 많고 쉽게 정에 휩쓸리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이럴 거면 10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너를 너무 몰랐다.

너의 다정은 강했다. 너는 완벽하고자 했으나 그로 인해 다정을 버리지 않았다. 너는 완벽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다정을 놓지 않는 강함이 있었다. 정의롭지 못한 자를 가차 없이 떠나 보냈으나 그로 인해 혼자 숨죽여 울었고, 그 다음 날에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는 명목으로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다. 너는 다정했기에 강했고, 다정했기에 완벽했다. 

8년이란 시간은 길었다. 그 시간 동안 너의 다정은 나의 웃는 가면을 녹여 내 피부에 스며들게 했고, 더 이상 너를 거짓으로 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해서는 안됐다. 나는 너를 배신해야 했고, 너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며 떠나야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가면을 쓰고 무대 위로 올랐다. 너를 바라볼 때 너의 부모를 떠올리고, 그로 인해 내가 겪은 고초를 기억해내며 증오를 억지로 심어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너를 향한 증오로 조각하고 악인의 광기로 채색한 상당히 잘 만든 가면을 쓰고, 완벽한 범죄라는 무대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하지만 내 가면의 끈은 너의 목숨을 위협할 수 없다는 생각 하나로 끊어질 정도로 약했다. 누군가가 완벽한 가면이,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고 했던 것도 같다. 

"공룡아…."

너는 불안한 눈빛으로 내가 있는 경찰차로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그토록 고치라 하였던 오랜 버릇인 손톱을 초조하게 두드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너인데, 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 역시 너의 다정일까. 나는 너를 한동안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는 내 증오의 대상이고

나를 이 지옥에 끌어들인 자들의 아들이고

나의 나락이며

"모쪼록 잘 지내세요, 도련님."

나의 동경이다.

가능하면 매일 짓는 평범한 인사로 작별을 고하고 싶다. 한없이 다정하고 강인한 너를, 그 옛날 나를 유황불의 지옥에서 숨 쉴 수 있게 해준 너를 마주하는 순간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내 가장 가까운 곳의 가족이자 가장 멀리 있는 곳의 동경 대상이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매일 아침에 너를 학교에 데려다줄 때 짓는 웃음처럼, 곧 데리러 오겠다고 할 때 짓는 미소로 끝을 맺고 싶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 너의 동공은 크게 흔들렸고,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볼 자신이 없어 그저 눈을 감았다. 감기기 전의 시야에 너의 눈물이 보였던 것도 같지만, 어차피 다시 못 볼 모습이니 잊어버리려고 하였다. 경관 둘이 내 양옆에 탑승하고, 경찰차의 시동이 걸렸다. 8년간 머무르던 저택이 조금씩 멀어져갔다.

그때, 그 순간.

펑!!

"설마 또!!"

큰 소리가 났다. 차를 멈추라는 다급한 경관의 목소리에 자동차에 급제동이 걸렸다. 오른쪽에 앉은 경관이 내려 상황을 살피느라 오른쪽의 시야가 확 트이게 되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경찰차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저택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밤을 가득 채운다.

"선과 악의 과실은 우리, 괴도가 접수해가겠다!"

밝은 달빛, 그 아래 두 개의 그림자가 높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하얀 달빛에 파랗고 붉은 두 개의 붓이 춤을 추며 색을 덧칠한다. 색칠놀이라고 그들이 한때 말했던가.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두 가지 색만으로 아름다운 축제가 밤하늘에 그려진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오른다.

"아…."

나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껏 계획을 어긋나게만 하던 괴도들이, 실은 어긋나 비틀린 우리 두 사람의 구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인하고 다정했던 너. 가문의 억압 속에 날개를 접어버리고만 너. 나 역시 네 날개를 펴주겠다는 부드러운 말로 너를 속이며, 네 날개를 부러트릴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의 다정이 나의 가면을 끊어버리고, 너의 날개에 내가 손대지 못하게 하였다. 재주 많은 괴도들이 부리는 마술처럼 나의 가면은 손쉽게 벗겨져 버렸다. 달빛 아래 그들의 모습이 그들이 훔친 보석보다 더욱 빛이 난다. 빛나는 그들 아래로 8년간 머물렀던 저택의 모습이 보인다. 8년간 너와의 시간이 겹쳐 보인다. 

이제, 정말 이별이구나.

상황이 정리된 걸 확인한 경관은 허탕이라며 혀를 한 번 차고는 다시 경찰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 때문에 저택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뭐 상관없나. 더 바라보았다가는 지나치게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니. 8년의 추억과 8년의 인연과 8년의 다정을 저곳에 두고, 나는 이제 떠나려고 한다. 미련을 거두고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나는 옆의 경관에게 물었다.

"괴도들 이름이 DIE ALMOND였나요?"

"그렇습니다만, 갑자기 왜…."

언젠가, 우리 도련님도. 당신들처럼 높이 날아오르는 날이 있겠지요. 

어른이라는 그늘과 가문이라는 새장에서 벗어나, 당신들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르겠지요.

그때가 되면, 먼저 하늘을 날아본 당신들이 우리 도련님께 날개를 펴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어떤 보석보다 눈이 부시고 아름답게 웃는 모습으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도록요.

"후후, 아이들 같은 장난스러운 이름이네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경관의 표정을 뒤로하며 나는 작게 웃었다. 경찰차의 속도가 높아진다. 괴도들도, 다정한 너도, 그리고 8년의 기억이 담긴 저택도. 모두 점이 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악인은 이만 여기서 퇴장이다. 정의에 의해 물리쳐진 악이란 배역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다. 대본은 무대 뒤편 어두운 곳에 있으니 이것이 단지 배역이라는 것을 무대 위의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읽어보는 건 온전히 당신의 선택이에요, 도련님."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무대 위 배우에게 전달해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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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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