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면 봄이 찾아오듯
그것은 당연한 순리이지만
*[겨울신화]의 2차 창작물로, 공식과 무관합니다.
겨울 신. 당신은 그대의 최후를 알고 계셨는지요?
저는, 당신을 수천 년간 지켜봐 왔던 저는. 당신의 운명이 이토록 무정할 줄은 몰랐습니다. '겨울'이라는 이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정하던 당신이 인간에게 그리 잔인한 일을 벌일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으며, 당신의 그러한 행동 또한 인간을 너무도 믿었기에 생긴 일이라는 것 역시 알지 못했습니다.
그대는 겨울이면서도 인간을 믿었었지요. 그 자만에 가득 찬 생명들의 무엇이 좋은지, 솔직히 말해 긴 시간 동안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신의 권능을 빼앗기고 인간이나 다름없는 볼품없는 모습으로 도망갔을 때. 그대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되더군요. 봄,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 속에서 부족함을 모르던 인간들은 서로를 경계했었지요. 서로의 풍요로움을 넘보던 그 이기적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반면 땅에 생명이 자라나지 못하는 겨울날에는 서로를 돕는 모습을 보였어요.
당신은 차가운 계절 속에서 타인을 도우며 살아가는 이들을 아름답게 보아왔던 것 같네요. 그것마저 당신답습니다, 겨울. 당신은 '겨울'이었기에, 인간을 사랑했군요.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시련이 금방 끝날 것이라 믿었던 인간들은 서로를 도왔지만, 몇 년이 흐른 뒤 그들은 약탈을 시작했습니다. 몰래 음식을 훔쳐 오고, 핑계를 대며 약재들을 가져오던 인간들은 제가 긴 시간 보아오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요. 그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만큼 무자비해졌을 뿐이었습니다.
점점 하얗게 뒤덮여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그대가 원하던 세상이었을까요. 그 성이 당신이 자주 찾아가던 나라임을 알았을 때는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함을 믿던 당신에게 어떤 일이 닥쳤던 것인지 알 길이 없었거든요.
아직도 그대가 하였던 신의 맹세가 머릿속에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숭고하고 고결한 자를 찾아온다면 기나긴 겨울을 끝내겠다던 맹세. 그리고 숭고하고 고결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이가 말했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마지막까지 인간들을 믿고 싶어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 말을 듣자 머리가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차가운 설원 위에서 푸른 초원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죠.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노인과 그의 손주, 그들의 가진 것 없지만 다정한 벗. 그리고 밤이 되면 찾아오는 호랑이처럼 그들에게 다가온 재앙까지.
순수한 눈처럼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인간들에게 정을 붙였던 당신은, 자신의 벗이 짓밟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나 봅니다. 아마 자책도 많이 했겠지요.
하지만 그대의 행동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신들은 인간 세상에 영향을 끼칠 권리가 없습니다. 제 말이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인간들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지든 저희는 간섭해선 안 됩니다. 그대는 이 중요한 원칙 수어 개를 깨뜨렸지요.
봄이 물러나면 여름이 자리를 채우고, 여름이 자리를 비우면 가을이 다가오고. 겨울이 가을을 대신하고, 다시 봄이 찾아오는 것. 우리는 이것을 하기 위해 신의 자리를 맡았습니다. 우리는 생명들을 감히 마음대로 꺾어내기 위해 신이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존재하기 위해 신이 된 것이지요.
마음이 저울 위에 올라온 듯 위아래를 오가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을 동정하고 행동이 나오게 된 계기를 알 것만 같으면서도 그래선 안 된다며 다그치고 있네요. 그래도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주고 싶습니다.
마지막 순간, 스스로를 바꾸겠노라 말하던 희망을 마주한 그대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무거운 짐이 덜어졌을까요. 긴 시간 당신과 연을 유지했던 신으로서, 당신에게 조금 더 신경을 쓸 걸 그랬습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찾아오듯, 결국 그대의 시간은 봄에 의해 끝을 마주했군요. 동짓날 시작된 차가운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4년이 지나 입춘에 무너졌습니다.
고운 눈가루가 되어 사라진 그대는 제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만약 할 수 있다면, 그저, 인간들의 얼어붙은 마음이 천천히 녹아가는 과정을 바라봐 주었으면 합니다. 부디 이 세상이 지워진 눈보다 찬란해지는 과정을 바라봐 주기를.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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