俠客

뮤지컬 <결투> 기반 자작 드림 캐릭터 서사

說話 by 傳達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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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은 다정한 사형이었다. 제 사제라면 껌벅 죽었고, 사제를 부를 때의 목소리는 다른 때보다 상냥했으며, 맛있는 건 전부 사제에게 양보하고, 사제가 잘 때 늘 자지 않고 곁을 지켰다. 천성이 밝은 탓도 있을 터지만 유독 사제를 살갑게 챙기려 드는 것은, 저들이 함께한 세월과 그 속의 약속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도리는 제 얼굴을, 그리고 그에 난 흉터를 더듬어 보았다. 한 자가 될까 말까 한, 오른쪽 턱부터 뺨을 향해 사선으로 뻗은 흔적. 사제를 끔찍이도 아끼는, 그 천천이 제게 남긴 상흔이었다. 검 끝이 핏물을 머금고 포물선을 그리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에 자신은 웃고 말았다. 노여워서? 아니다. 볼이 따갑고 화끈거리던 그 감각을, 뜨거운 액체가 진득히 배어나오는 그 감각을 제 사형들이 아닌 다른 이에게서 느끼게 된다는 것이 조금쯤 억울했다.

하지만 결국 이 자도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사형이었지. 도리는 바보같은 웃음을 떠올렸다. 비무대에 올라 고저없이 “일심문 제자, 천천이오.”하고 포권하던 사내와, 사제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헤헤, 거리며 머리를 긁적이기나 하는 바보가 그래, 같은 사람이로구나. 첫 패배의 충격에 휩싸여 비무대를 내려가던 순간, 제 사제를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에 도리는 다시 한 번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사랑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분노와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미숙한 마음 탓에. 방어 기제의 일종이었겠지. 충격을 사랑으로 섣불리 치환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패배한 이유는, 이 사람에게 첫눈에 반한 탓이라고. 그가 사제에게 다정한 만큼, 비무대에서는 냉정한 탓이라고. 그 얼마나 어리고 어리석은 감정인가! 도리는 웃음을 삼켰다. 아니, 웃을 힘도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는 감각도 무뎌져 버린 손에 다시 비도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손끝은 아직 기민하게 한 곳을 정조준한다. 하체는 바쁘게 풀과 흙이 뒤엉킨 바닥을 딛어간다. 찰나 숨을 삼키고, 그대로 비도를 쏘아보낸다.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비도, 이내 천이 찢기며 살점에 칼날이 먹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잇새로 새는 듯한 신음 소리가 약하게 들려온다. 이런 허술한 수에 맞아주다니, 상대도 많이 지쳤다.

이 생사결이 끝나면, 그때는 나를 어리석지 않은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천천 소협을, 비룡 소협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을까. 아, 그때에는 대협이라고 불러야 맞을까. 대마두와 맞붙어 협을 세우는 그들을 소협이라 한다면, 천하에 대협이라 부를 이가 어디 있겠어. 하지만 대협, 대협이라니. 그리 부르기에 어색할 정도로 아직 젊은 이들이 아닌가… 생각이 독침처럼 몰려왔다. 잠깐, 독침…

벼락같은 독침이 쏟아졌다. 이름처럼 온 하늘(滿天)을 화우(花雨)로 뒤덮는 사천당문의 비기. 가주만 익힐 수 있다는 최후의 암기술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직 젊은 소가주에게 급히 암기술을 전수한 것을 보면, 그 사천당문마저 날로 커지는 마교의 세가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역시 제대로 익힌 것은 아닌지, 고르게 모든 것에 내리꽂히는 비라기보다는 투박하게 쏟아지는 우박같은 비였다. 전자는 저항할 수도 없을 것 같았지만, 후자라면 우박만 쳐내면 될 것이 아닌가.

도리는 향천비(向天匕)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그 이름처럼 하늘로 높이 치켜들었다. 쏟아내리는 우박에 맞서겠다는듯이.

우박이 나를 우롱한다 하여도 나는 끝까지 하늘을 향해 가겠다.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향해 걷겠다. 해가 지고 암흑이 찾아와도 하늘을 보리라. 온 하늘에 먹구름과 빗방울이 가득하다 하더라도…, 그게 나의 도리이자 협이다.

챙, 하니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 퍼졌다.


“천천 소협, 대진표는 보셨습니까? 내일이면 두 분 다 준결승이던데요.”

긴 머리칼이 호선을 그리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약간의 긴장감, 그리고 반가움, 자신감, 초조함 등등… 도리는 기어이 그중에서 반가움을 잡아내곤 마주 웃었다.

“어째 결승까지 여기 남아있을 기세네.”

옆에서 조금은 시큰둥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든다. 답답한 듯 멱리를 내린 눈빛에는 약간의 귀찮음, 그리고 기대, 호승심, 살기… 도리는 그래도 마주 웃는다. 아마도 살기의 대상은 내가 아닐 테니까. 오래도록 품어온 기운이 무의식에 새어나온 것일 터다.

“당연하죠, 두 분의 활약상을 제 눈으로 지켜보고 싶습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얼씨구,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겠지.”

“에이, 아룡. 너무 그러지 마. 우릴 응원해 준다잖아.”

“그러니까 얘는 내가 아니고 사형을 보려고 남는 거라니까.”

“비룡 소협, 말을 서운하게 하십니다! 전 언제나 두 분 모두를 진심전력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됐잖아.”

뚱한 표정으로 딴지를 거는 것은 반쯤 진심이 아닌 습관. 제 사람이 아닌 이에게 벽을 치고 경계를 하는 것은 오래도록 굳어져 온 방어적인 태도다. 며칠 동안 관찰한 후 알아낸 정보이기에 상처받지 않는다. 물론, 처음엔 조금 상처받았다. 아주 조금!

하지만! 그런 것에 상처를 받는 것은 삼류 중의 삼류! 일류 무인이 되려면,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쟁취하려면 이 정도쯤이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도리는 비장하게 천천과 비룡을 번갈아 보았다. 오늘로 5일째다. 이 둘을 졸졸 따라다니게 된 것이.

물론 목표로 하는 이는 천천이다. 하지만, 5일 간 지켜본 바 천천은 비룡을 끔찍이도 아낀다. 비룡에 대해서라면 무조건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아야만 그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만일 그가 먼저 서운하다는 감정을 토로하더라도, 절대 비룡에 대해 나쁜 말을 꺼내지 말 것! 이것이 제1수칙이다.

반면 비룡에게 무조건적인 아첨은 금지다. 험담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솔직하게 다가가야만 마음을 열어준다. 워낙 타인에 대한 불신이 깊어서, 조금만 다가가도 금방 벽을 치고 튕겨내기 일쑤다. 조심조심 천천히, 마치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와 친해지듯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스스럼 없이 말을 걸고, 또 반갑게 인사하고, 시원찮은 우스갯소리도 던질 수 있는 사이! 도리는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분명 인이문(引而門)의 사형들이 아시면, 좋은 친우를 사귀게 됐다고 기뻐하시겠지. 막내가 드디어 또래의 친우가 생겼구나! 혼자 하산시켜도 걱정 없겠다!

후후, 하지만 사형들, 기대하시라. 그냥 친우도 아니고 평생의 반려를 얻어올 줄은 모르셨겠지. 도리는 천천을 올려다 보았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참하다. 호리호리해 보이는 체격에는 사실 무시할 수 없는 굳은살이 숨어있다. 눈빛은 검을 뽑는 순간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소년영웅대회라는 이름 아래 단연 우승을 차지할 인재인 것이다!

“만약 결승에서 두 분이 맞붙게 되신다면 누가 이길까요?”

“그런 건 일단 준결승부터 치르고 말을 해야지. …어차피 질 생각은 없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아룡, 꼭 결승에서 만나자.”

“안 봐준다.”

“으앗, 벌써 제 심장이 다 뛰는데요?!”

“그건 네가 사형을 봐서 그런 거라고 몇 번을…”

“아닙니다! 저는 정말 두 분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알겠으니까 둘 다 그만해~”

도리는 다시금 5일 전의 비무를 복기해 보았다. 아무리 제가 하산하여 처음 치르는 비무에 들떠 있었다고 하더라도, 천천과의 승부가 나기까지는 단 일검이면 충분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수련이 부족했나? 똑같이 검으로 승부를 내지 않아서? 체격이 작아 불리해서? 하지만, 검에 베였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어딘가 이상했는데.

사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술에 홀딱 취해서는, 점소이를 붙잡고 하소연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 내가 천천 소협을… 사랑하는구나! 아마 비무대를 올라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무언가를 느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렇게 천천 소협을 생각하면 머리에 피가 몰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심장이 쿵쿵 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래, 그것이 도리가 지금껏 흉터를 치료하지 않은 이유이며, 동시에 이 일심문도들을 열심히 쫓아다니는 이유다.

“그건 그렇고, 바로 들어가 쉬시렵니까?”

“아니, 듣자하니 오늘 객잔에서 당가가 술을 돌린대.”

“당문에서요? 웬일이랍니까? 그 콧대 높은 곳에서.”

“아무래도 내일 출전하니까, 우승을 기원하는 의미인가 보지. 술을 실컷 마셔볼 기회야!”

“그렇게 남 얘기처럼 말할 때야? 사형 상대잖아. 뭐, 술은 마시러 갈 거지만.”

“술이라면 저도 좋습니다! 사실 사문에 있을 때, 사형들이 술을 못 마시게 했거든요.”

“우리도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들어선 객잔에는 점소이들이 바쁘게 술을 나르는 풍경이 펼쳐졌다. 패자들은 죽거나 다쳐 요양 중인데다 남은 비무가 몇 안 되는 탓에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전부 구경꾼들이나 호사가들 뿐이었다. 왁자지껄하게 소년영웅대회의 승패를 논하는 가운데, 화제의 중심이 된 일심문 문도들이 등장하자 잠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 새로 등장한 신예들이잖아! 소속이 어디랬더라, 일심문?”

“왜 있잖소, 유명한 강호일도! 그 맹도가 일심문 소속이오.”

“그럼 저 둘은 맹도 대협의 제자들인가?”

“하지만 맹도 대협은 몇 년 전에 황실 호위대로 들어갔다고 했소만.”

“만약 그렇다면 십여 년 전 소년영웅대회 우승자가 키워낸 제자가 이번에 우승을 노리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이거 흥미진진하구만!”

“저 뒤에 조그마한 여자애도 일심문인가?”

여러 웅성거림과 환호에 덤덤하게 포권으로 응한 둘이 앞장서 빈 자리로 향했다. 환호성에도 잃지 않는 평정심! …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뜻하지 않은 관중의 관심으로 인해 의식하지 않고 있던 준결승의 부담감이 올라올 터였다. 도리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며 부러 사람들에게 외쳤다.

“저는 일심문이 아니라 인이문입니다! 일심문도 자랑스럽지만… 인이문도 기억해주십시오, 인이문!”

“인이문은 또 어디야? 이건 정말 처음 들어보네.”

“정말 듣도보도 못한 곳이군. 가만, 이제 보니 저 아이는 예선에서 천천에게 패한 자가 아닌가?”

삽시간에 얼굴이 붉어진 도리가 종종걸음으로 의자에 앉았다. 내가 그렇게 패하지만 않았다면, 인이문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더욱 드높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사형들을 볼 낯이 더욱 설 텐데. 하지만 패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천천 소협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쥐고 있던 도리는 비룡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살아남았다는 거지.”

살아있다면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까…. 이어 중얼거리는 말들은 객잔의 시끌벅적한 소음에 금세 묻혀 사라져 버렸다. 도리는 비룡을 올려다 보았다. 왠지 오늘의 비룡은, 술에 빨리 취할 것만 같았다. 도리는 마음속으로 답했다. 살아남을게요, 그리고 꼭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성장해서 말입니다!

셋이 말없이 앉아있자, 이제는 익숙한 얼굴의 점소이가 눈썹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아이고, 내일 비무의 주인공들 아니십니까? 식사는 뭘로 드릴까요?”

“됐고, 술이나 왕창 주시오. 술을 돌린다 해서 왔으니까.”

“예, 시원한 두강주 나갑니다!”

이어 두강주를 들고 오는 낯은, 아까의 그 점소이가 아닌 처음 보는 이였다. 객잔이 많이 바쁘니 점소이도 여럿이겠지. 그래도 그렇지, 며칠 전에는 못 봤던 사람인데… 천천과 도리는 무의식에 눈을 마주쳤다. 기우겠지? 기우일 겁니다. 그렇게 넘겨버린 후에도 둘은 좀처럼 술에 입을 대지 못했다. 어딘가 조용해진 비룡만이 연거푸 잔을 비워냈을 뿐이다. 연속으로 두 잔을 비운 비룡이 푸념처럼 입을 열었다.

“사부님이 계셨으면…”

“입에도 못 대게 하셨겠지.”

“당신이 드시려고.”

두 사형과 사제의 대화를 들으며 도리는 생각했다. 묘하게 처지는 분위기를 보건대 둘의 사부되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고. 그렇다면 나는 끼어들지 말고 자리만 지켜야겠다고. 아무래도 오늘은 마냥 들떠 떠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듯했다. 비룡은 이제 아예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마치 취하고 싶은 사람처럼. 아니,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보다 못한 천천이 걱정스러운 듯 비룡을 말렸다.

“그만 마셔, 내일이 결전인데.”

“아이, 이 정도는 괜찮아.”

더 마시기 위해 술병을 들어올린 비룡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도리는 비룡의 안색이 새하얘지는 것을 보았다. 설마… 곧이어 빨간 선혈이 비룡의 입에서 터져나왔고, 균형을 잃은 비룡의 몸이 의자 아래로 비틀리듯 추락했다. 천천은 번개처럼 일어나 쓰러지는 비룡의 몸을 부축했다.

“아룡, 왜 그래?”

“사형, 술에… 독이…”

천천과 도리는 다시 시선을 마주쳤다. 아까 그 낯선 점소이가… 내일 천천의 상대인 사천당가의 이공자, 당중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비룡이 중독된 독은… 둘은 다시 비룡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창백한 납빛의 피부와 대조적인 푸른 입가가 붉은 피와 어우러져 엉망진창이었다. 천천이 그렇게 자랑하던 미인 사제는,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숨을 내쉬었다.

“비룡 소협, 정신을 차리십시오! 내공으로 독기를 몰아내는 겁니다! 운기조식을…!”

“아룡, 집중해.”

천천이 비룡의 기혈을 짚고 내공을 흘려보냈다. 한순간 파리해지던 낯에 생기가 도나 싶더니, 다시 눈썹이 찌푸려졌다.

“소협,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숙소로 비룡 소협을 옮겨야 합니다. 소음이 많은 곳에서 운기하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천천은 황망히 손을 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 조금만 힘내. 도리는 그 목소리에서 두려움을 들었다.


“비룡 소협! 깨어나셨군요!”

“…시끄러워, 사형은?”

“제게 비룡 소협을 부탁하고 준결승을 치르러 가셨습니다. 아, 소협의 비무는… 아무래도 취소될 것 같습니다. 상대는 부전승으로 결승에 올라가고요.”

“…비무가 아니라 생사결을 하러 갔겠네.”

사형이 안 그래보여도 은원이 확실해서… 말을 잇다 말고 토해내는 핏덩어리들이 입가에서 뭉그러졌다. 도리는 황급히 그것을 닦아내었다. 닦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닦아도 닦아도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천천 소협도 당가에게 당해 이렇게 피를 흘리며 돌아오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휘몰아쳤다. 원래라면 천천을 걱정하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밤새 내공 흘려보내준 거, 사형이지? …미련하기는, 당장 오늘이 비무인데 내공을 들이부어서 누구를 살린다고…”

“소협, 말을 그만하십시오! 천천 소협 덕분에 고비는 넘겼지만 체내에 독기가 퍼지고 있어 위험합니다, 무엇보다…!”

“알아, 내공이 점점 흩어지고 있는 거.”

젠장! 도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유서깊은 당가에는 대대로 귀령설수라는 독이 전해지고 있다. 강호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산공독의 일종으로, 무색무취인데다가 다섯 시진 안에 해독약을 먹지 않으면 영영 내공이 흩어지고 폐인이 되어 버린다. 언젠가 비도술로 당가를 넘어서겠다고 다짐한 도리는, 말로만 듣던 당가의 위력을 실감하고 절벽에 내쳐진 기분이었다.

…아니, 위력을 실감하긴 개뿔. 사천당가라는 가문에 치가 떨렸다. 정정당당하게 무공 실력으로 비무를 하기는커녕 몰래 독을 타서 내공을 흩뜨리는 수를 쓰다니. 오대세가의 한축이라는 자들이 뻔뻔하게 그런 술수를…! 아무리 당가와는 척을 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파라면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강호의 도리라는 것이 있는데, 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데, 협이 있던가. 작금의 세태에.

“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집중하셔야 합니다. 계속 운기를 하면 어느정도 시간을 늦출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호법을 서겠습니다. 아니면, 제 내공이라도…!”

“나보다 다섯 살 어린 애 내공을 빨아먹어서 뭐하게? 흡성대법에는 관심이 없어.”

“지금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잖습니까!”

“가려야지.”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단호함이었다. 도리는 살짝 놀라 물러섰다.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가릴 걸 가려야지. 애는 건드리는 게 아니야, 지켜주는 거지. …우리 사형들이 그러셨어.”

한숨처럼 흘러나온 말들이 허공을 부유했다. 비룡은 어느새 과거를 거닐고 있었다. 바람과 구름이 자신을 돌보고 지켜주던 그때, 절벽 아래와 구름 위를 영원히 누빌 수 있을 줄 알았던 그때…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물러가고 남은 것은 광활한 하늘 뿐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던 묵묵히 바라봐주는 하늘.

그러니 아이는 지켜야 한다. 그것이… 사형들의 협이니까. 비룡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자신을 걱정하는 도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앳된 얼굴이다. 꼭 사형들을 잃고 방황하던 자신처럼. 이 아이에게도 사형들과 사부님이 있겠지. 그와 떨어져 혼자 비무를 치르러 와서도, 자신들을 따라다니는 행색이 꼭… 외로워 못 견디는 것 같지 않은가.

“도리야.”

“예, 뭔가 필요하십니까?”

“…너는, 사부님 말씀 잘 들어. 불평하지 말고, 꼼수 쓰지 말고, …나처럼.”

“…예?”

영문을 몰라 하는 도리의 얼굴을 보곤 슬쩍 웃은 비룡이 창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이 계셨을 때 말이야. 시험을 봤거든. 온갖 암기가 쏟아지는 동굴로 들어가야 하는 시험이었어. 사형은 미련하게 백독불침과 호신강기를 익히겠다고 폭포 아래서 몇날며칠을 새는데, 난 언제 대성할지도 모를 시간을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동굴을 막 들어가려고 하다가, 입구 하나를 더 찾은 거야. 거기엔 암기가 없었거든. 사부님은 어떤 독에도 버틸 수 있는 백독불침과 호신강기를 익히라고 하셨지만… …그때는 시험을 통과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

사부님 말을 좀 잘 들을 걸. 자책 섞인 어조였다. 사부님이 계셨다면 뚱한 얼굴로 피웠을 어리광이기도 했다. 계속 마음에 걸리고 불편했었다. 피를 토하시면서도, 뒷구멍으로 비급을 꺼내왔냐며 호통치던 사부님 모습이 지워지질 않았다. 내 잘못이다. 나 때문에 마지막까지 사부님은 불안해 하셨을 테다. 사부님 가시는 길에, 걱정 같은 거 남겨놓지 말 걸. 좀 더 잘할 걸…

도리는 잠자코 이어지는 말들을 들었다. 이럴 때는 뭐라고 말해야 좋지. 비도술이나 궁술은 익혀 봤어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배우지 못했는데. 한참이고 비룡의 눈을 바라만 보던 도리는 쥐어짜내듯이, 하지만 진심을 담아 한 마디를 전했다. 확실한 것은, 비룡이 협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왔다는 것이니까.

“비룡 소협은, 잘 하고 계십니다. 잘 해오셨고요. 앞으로도 잘 하실 겁니다. 천천 소협도요.”

비룡은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렇게 누워있는데 그게 뭔 헛소리야. 사형은 내공도 바닥이니 가서 맞고 오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앞으로도’라는 미래를 말하는 도리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비룡은 입을 닫아버렸다. 그 대신 정말 잘 해낼 수 있도록, 다시 눈을 감고 운기에 집중했다.


천천이 해독환을 가지고 돌아왔다. 비룡은 다행히 그것을 먹고 회복되었으나, 이번에는 천천이 중독되었다. 천천은 당가의 이공자 당중에게 당했으나 하나뿐인 해독환을 먹지 않고 사제를 지키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탁, 도리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도무지 말이 되는 일인가? 소년영웅대회라는 것이 정말 온갖 수법을 써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정파의 소년 무인들이 참가하여 제일 영웅을 가리는 대회에서, 가문을 내세워 차지한 그런 우승이 과연 정당한 우승이며 영웅이란 말인가? 해독환이 없는 이상, 천천은 폐인이 되어 우승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도리에게 있어 진정한 영웅이자 협객은 천천과 비룡었다.

과연 누가 평생 쌓아온 내공을 남을 위해 포기하겠는가. 사제라면 껌벅 죽는 천천이지만, 독기에 잠식되어 가면서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사제를 지키겠다는 약속,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의지, 의지를 관철하는 신념, 신념을 이루는 것은…

결국에는 협이다. 그들이 바로 협객이다. 약한 자를 지켜주고 강자의 횡포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협이다. 지금의 강호는 그러한 협을 잃어버렸다. 매일같이 사람들이 마교의 칼에 죽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들은 이를 외면하며 알력 다툼을 벌인다. 분연히 일어선 협객이라는 자들은 허망하게 죽어간다…

…허망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자들이 있다는 것. 도리는 비룡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있다면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도리는 술잔을 다시 비워냈다. 비워냈던 술잔에 또다시 술을 채운다. 비운다. 채운다. 비운다. 채운다… 비어있다면 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술잔과 술만 남아있다면…

“어이, 점소이!”

“예, 갑니다! 무얼 드릴까요?”

“말 좀 물읍시다. 사천으로 가려면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가야 합니까?”

“사천이요? 서쪽으로 천 리는 가야 됩니다. 사천 여행이라도 가시려고요?”

“당가타로 갈 겁니다.”

“아~ 당가타… 예? 당문엘 가신다고요?”

말을 듣자마자 점소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이내 부채까지 휘둘러 가며 만류하기 시작했다. 도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부채를 바라보았다. 일개 점소이의 부채라기엔 묘하게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선물받은 걸까…

“아유, 안 됩니다. 적어도 지금은 안 돼요!”

“왜 안 됩니까?”

“지금 이공자고 삼공자고 다 어린 무명검객에게 죽었으니 완전 초상집 분위기일 걸요. …말하자면 완전 터지기 직전의 화약이죠. 누가 건들기라도 하면 바로 펑!”

“하지만 그건 비무였잖습니까! 게다가 이공자는 비겁한 술수를 써서…!”

“저도 압니다. 당가 그놈들 비겁한 걸 누가 모릅니까? 정당한 비무라곤 했어도 당가 입장에선 같은 인물에게 두 공자가 죽었으니 원수는 원수죠. 그러니까 내가 당문에 찍혔으니 도망가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당신도 천천 소협과 비룡 소협을 알아요?”

“왜 모르겠습니까, 삼공자가 저희 용마주루 앞에서 죽었는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 파리만 날리는 거 아니겠냐고요. 아이고, 이공자까지 죽였으니 이제 둘이 큰일났네요. …아니 그럼, 지금 그 둘 대신 복수하러 간다 그겁니까?”

그렇다는 대답을 하자 휘둥그레진 눈이 도리를 바라본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도리는 값을 치르고 일어났다. 천 리라고? 갈 길이 멀겠네. 서둘러 주루를 나가는 도리를 점소이가 황급히 붙잡았다.

“아니, 아니아니! 잠깐만! 아무리 그 둘과 친해도 그렇지 대신 복수해주는 것은 좀! 그 사천당문 아닙니까!”

“상관없습니다! 복수할 겁니다!”

“거 냉정하게 생각을 좀 해 보십쇼! 이렇게 화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 둘한테 말은 해보셨어요?”

“아니오! 소협들과는 소년영웅대회가 끝나고 헤어졌습니다. 이건 저의 싸움입니다! 언젠가 비도술로 당가를 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건 그 관문입니다!”

“답답하기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둘이 가족도 아닌데 왜 사천당문과 척을 지려고 합니까! 옷을 보아하니 사문이 있는 모양인데, 문파가 통째로 당문의 적이 될 수도 있다고요!”

도리는 점소이의 손을 떼어놓고 그를 돌아보았다. 오늘 처음 본 점소이지만, 이 점소이의 눈에서 걱정이 일렁였다. 그러니까, 어린 이를 보호하려는 마음, 생판 처음 본 사람이 사지로 걸어들어가도 뜯어말려주는 상냥함… 협이 일렁였다. 일개 주루의 점소이마저 이런 협을 가지고 있는데, 나 또한 마땅히 협을 행해야 할 것이다. 도리는 한자 한자, 힘주어 말했다.

“문파가 당문의 적이 된다고 해도, 제 사형들 또한 기꺼이 그들과 맞서줄 것입니다. 강호의 도리는 함께 지키는 것이고, 협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니까요. 지금 당신이 저를 말려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 협입니다!”

점소이는 더이상 도리를 붙잡지 못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도리(道理)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겠는가. 도리는 점소이의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소산.”

불타오르리라. 이 또한 협객과도 같은 이름이구나. 도리는 제 이름을 일러주곤 발걸음을 돌렸다.


“멈춰서라!”

“웬 놈이냐.”

도리는 그 묵직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이를 갈았다. 복수를 다짐한 후로 약 2년, 사천에서 대공자의 흔적을 쫓아왔다. 현 대공자는 소가주이기도 하니, 가주를 제외하면 당문을 대표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대표로 꺾어 협을 세우고 복수를 마치리라. 그리 결심하고 찾아간 사천에는 대공자가 부재했다. 이미 가문의 명을 받고 이공자와 삼공자의 복수를 하기 위해 천천과 비룡을 찾아 떠난 것이다. 도리는 대공자의 흔적을 뒤져 마침내 그를 따라잡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공자를 상대하기에, 자신은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복수를 위해 무작정 대상을 찾아왔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 소년영웅대회에서 일검에 패배한 어린 여자애 그대로였다. 이대로라면 인이문의 이름에 먹칠만 하게 될 터였다. 그리하여 대공자의 행적을 쫓으면서 틈틈히 수련에 매진했다. 비도술은 물론이고 암기술, 은신술까지… 어차피 당문의 마차는 요란했으므로, 쫓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천천과 비룡은 맹도를 찾아 황마천궁으로 떠났으며 천마에게 사로잡혀 무저갱에 갇혀버렸다. 대공자는 이 소식을 접하고 나흘 정도 움직임이 없었다. 소문이 사실인지, 본가로 돌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무슨 소식을 접했는지, 곧바로 용마주루로 향했다. 도리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어쩌면, 그 둘은 탈출해서 용마주루에 도망쳐 왔을지도 몰라. 대공자가 움직이는 것이 곧 그들의 생사고, 대공자가 가는 곳이 곧 그들의 위치였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천천과 비룡은 지친 기색이었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다시 도전한다. 그들은 그러기로 한 것이다. 대마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공자는 물러났지만, 그들은 용마주루에 남아 대마두에게 맞설 결심을 다졌다. 게다가 점소이까지 싸움에 합류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도 이미 도리 안에서는 하나의 협객이었으므로.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저 지붕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인사는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 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싸움이다. 저들은 저들의 싸움을 할 테니, 나는 지금…

“웬 놈이냐고 물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귀찮다.”

“인이문 제자 도리다. 네 동생이 천천 소협과 비룡 소협을 중독시켰지.”

“하다하다 웬 듣도보도 못한 방파 놈이 꼬이는군. 비무 중에 일어난 일을 누굴 탓한다는 말이냐?”

“그러는 너는 비무 중에 죽은 두 동생의 일로 그 두 사람을 쫓았지 않나?”

“우리 자랑스러운 사천당가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기는 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내 동생들은 진 걸로도 모자라 독을 써놓고도 목숨을 잃었다. 이래서야 사람들이 사천당가를 무엇으로 보겠나? 내가 그 애송이들을 죽이고자 하는 것은 모두 우리 사천당가를 위해서다. 그깟 어린 놈들 둘 때문에…”

“말조심해라! 그들은 협객들이다!”

푸하하! 대공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협객, 협객이라고. 웃음소리가 길게 이어지다 뚝 끊겼다.

“오늘 보니 가관이더군! 귀령설수에 당해 내공을 모두 잃은 데다, 무저갱을 겨우 탈출해 거지꼴로 개처럼 헥헥대며 도망쳐 온 꼴이 무슨 협객이란 말이냐?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함부로 말하지 마! 살아남으면 언제고 일어설 수 있다. 협객은 멋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공이 고강한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무언지 알고 그것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온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웃긴 말을 하는군. 마교가 창궐하고 그딴 건 없어진 지 오래다. 지금 세상은 협객이 아니라 돈 많고 강한 자가 이기는 세상이지. 너나 그들같은 애송이들은 그냥 까딱하다간 죽을 운명이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대공자가 손을 뻗어 빠르게 날아오는 비도를 잡아냈다. 비도를 돌려가며 흥미로운 듯 관찰하던 대공자는 이내 웃음기를 지우고 예의 그 껄렁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지금 사천당가의 대공자에게 도전하는 거냐? 비도술로?”

“네가 원하는 생사결을 하자. 네가 이기면 너는 내 머리를 들고 가서 천천 소협과 비룡 소협에게 복수를 했다고 가문에 보고해라. 난 그들과 친하니, 똑같이 소중한 사람을 잃게 했다고 하면 되겠지. 내가 이기면, …나는 천천 소협과 비룡 소협의 원수를 갚는 것이다.”

“어차피 그 둘은 천마에게 죽을 텐데, 내가 굳이 왜 너와 생사결을 해야 하지?”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간다면 대공자의 면이 안 설 텐데.”

도리는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최대한 대공자를 도발해야 했다. 대공자의 말대로, 천천과 비룡이 살아남을 확률이 희박한 이상 대공자는 이대로 가문으로 돌아간다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반면 자신에겐 처절한 이유가 있었다. 반드시 대공자를 쓰러트려야 할 이유가.

대공자가 마차에서 내렸다. 이어 인적 드문 숲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당문을 상징하는 녹의가 녹음에 녹아들어 반쯤 은신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는 작자답게, 녹음이 짙은 곳에서 대공자가 걸음을 멈췄다.

“감히 사천당가에 비도술로 도전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애송이인 점을 감안해 선수를 양보하지.”

대공자가 말을 마치자마자 도리는 급하게 허리를 젖혀 날아오는 독침을 피해야 했다. 반사적으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선수를 양보하겠다면서 저 자가…! 대공자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곧이어 도리의 반경 안으로 빠르게 돌진해온 대공자가 뱀처럼 속삭였다.

“아, 선수는 아까 이미 양보했던가…”

하하하! 숲 가득히 울리는 대공자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도리는 이를 악물었다. 사파같은 놈. 하지만 그에 당할쏘냐! 사파의 방식에는 정파의 방식으로 대응해주마. 그래서 반드시, 반드시… 옳은 것이 승리함을…!

마침내 협이 승리함을, 보여주리라!

도리의 몸이 빛살처럼 쏘아져나갔다.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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