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본편 연성글

7. 가족 놀이

프랑켄슈타인(원작) 드림 | 괴물 드림

701호 by R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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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말도 안 되는 요청에 반문해보았지만 슬프게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래. 네가 말한 대로다.”

형은 진심으로 동생에게 방해꾼 아무나 하나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부탁일까? 내가 거절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안 하고 툭 내뱉은 것이?

나는 살인자다. 많이도 죽였고 그 중에는 꼭 죽어 마땅한 사람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그냥 희생되어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나에겐 명분이 있지만 딱히 명분만을 엄격히 지키며 살아온 것도 아니다. 그 점이 딱히 유감은 없다.

진짜 슬픈 점은, 나라는 도구는 오직 나만이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형이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것에 배신당했던 소년은 그 누구의 도구도 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것은 나를 쥐려는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

미안하다든가, 양해해달라든가, 네가 나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가, 하는 사족 따위는 붙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가족 놀이를 더 지속해봐야 나중의 상처만 진해질 뿐이니까. 그리고 지금 이안의 표정을 보면, 그런 감상적인 기분에 젖을 사치조차 부릴 수가 없다.

“뭐라고?”

당연함을 침해받은 표정, 순종할 아랫것이 ‘대드는’ 것을 본 귀족의 표정. 이안의 얼굴이 딱 그랬다. 한 번 실망하니 다음 실망은 그리 견디기 어렵지 않았다. 격정적인 마음이 냉담함의 도움을 받아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

“형, 그건 가족으로서 해줄 수 없어.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야. 흥분한 것 같으니, 진정하고 다음에 다시 보자.”

“네가 내 말을 거역할 줄은 몰랐다.”

“동생은 원래 그래. 내가 아직 형의 하인이었다면 그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우린 이제 가족이잖아?”

사실 하인이었던 기간이 동생이었던 기간보다 더 길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친자였지만, 제법 오래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는 수상한 컬트에 빠져 있었고, 자신의 소중한 아이가 컬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서 ‘퍼시벌’은 고아 소년으로서, 머피 저택의 하인으로서, 그리고 어떤 사이비 종교의 일원으로서 자라났다.

‘퍼시’는 유난히 일머리가 좋고 똑똑한 하인으로, 당시 하인이 자주 갈아치워졌던 이안 머피의 총애를 획득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안이 명령하면 나는 이루어주었고, 이안이 권태로워하면 나는 즐겁게 해주었다. 이안이 하인을 교묘히 괴롭히는 것들에 나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안이 나를 인정해서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그 뒤부터 이안은 진심으로 나를 아꼈다.

하지만 이안의 총애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게 ‘마님’의 애정이었다. 어린 시절엔 마님이 내 어머니이길 간절히 바랄 정도로, 마님은 나에게 정말 자상했다. 내가 너무나 간절했던 탓일까, 그 소원은 이루어져 버렸지만.

하인으로서 지낸 시절은 제법 좋은 시절이었다. 모든 진실이 드러난 뒤부터가 오히려 수라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드러난 진실을 어쩌겠는가. ‘퍼시’는 이제 하인이 아니라 머피 가의 차남이었다. 이안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 사실에 잘 적응한 것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전혀 아니었나 보다. 지금 날 노려보는 표정을 봐도 그렇다.

“난 그럼 이만. 가 볼게. 잘 있어, 이안.”

짐은 이제 전부 다 싸 놓았다. 가방을 들고 여길 떠나기만 하면 된다. 나는 가방을 들려고 허리를 조금 숙였고, 그 순간 철컥 소리를 들었다.

“이제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을 마음이 드나?”

이안이 나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구의 뻥 뚫린 검은 부분이 지금 타들어가는 내 마음 같았다. 형은 정말로, 진심을 다해, 내가 거역할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연민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또다시 정말로, 진심을 다해, 총이라도 겨누어서 위치를 확인시켜주면 내가 벌벌 떨며 고분고분 말을 들어줄 것처럼 생각했나보다. 나는 그때 그시절 하인이 아닌데 말이다.

나는 형의 기대에 부응해주는 대신, 바로 달려들어 총을 빼앗고 그의 턱을 갈겼다. 이안은 정신도 못 차리고 바로 주저앉았다.

“권력이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것 같아, 이안.”

“네놈……! 어디서 감히……!”

나는 형을 세 대만 더 패고 말을 이었다.

“주제파악이 안 되면 도와줄까?”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린 이안이 고개를 미친듯이 저으며 주저앉은 채로 뒤로 주춤 물러나려는 걸, 발목을 콱 밟아서 저지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진실이 드러나고 우리가 가족이 된 날 내가 그랬지. 가족으로 대해주면 훌륭한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먼저 약속을 깬 쪽은 너지? 그럼 난 감히 나에게 총을 겨눈 놈에게 뭘 돌려줘야 할까?”

어쩐지 나는 이 순간이 슬펐다. 그런데, 이상하게, 너무 슬펐던 나머지 너무 웃겼다. 그래서 어느샌가 내 얼굴에는 어떤 광적인 미소가, 실소가, 웃음이 터지기 직전의 무언가가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이안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렸다.

“역시 총알 한 개 돌려주는 게 낫겠지?”

“퍼시야, 제발, 그러지 말고…….”

“아냐, 생각해보니 더 괘씸해. 형이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거야 멍청해서 그럴 수 있다 쳐. 그런데 나한테 총까지 들이대?”

“잘못했다, 미안…….”

“아! 좋은 거 생각났어. 형, 작위 박탈이라고 알아?”

그 말을 듣자 두서없는 이안의 애원이 뚝 그쳤다. 경악과 공포가 얼굴에 한땀한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너무 슬펐다. 그 말은 결국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는 뜻이다.

“내가 그리 힘있는 편은 아닌데, 노력하면 형의 조그만 작위를 없애달라고 부탁해볼 처지는 돼. 마침 형도 구린 거 많지?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퍼시…….”

내 인생의 방해꾼들은 내가 복수할 사이비종교로도 충분했다. 굳이 이안의 작위를 정성들여 없애줄 마음도 없었지만, 이렇게 틀어진 이상 밟아줘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내 가족을 짓밟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도…….

“평민으로 살아볼래? 그거 나도 살아봤는데 별 거 아니더라. 형이라면 잘 할 걸.”

이 뒤로 시끄러운 애원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어째선지 이안은 조용했다. 발끝으로 툭 쳐보니 뒤로 넘어가는 게, 눈 뜬 채로 기절한 모양이었다.

이번엔 진짜로 웃겼다. 어째서인지, 이 순간 나의 얼굴은 슬픈 사람처럼 일그러졌다.

나는 기절한 이안에 대고 말했다.

“어머니를 잘 부탁해, 형.”

그게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는 거였다면, 좀 더 다정할 걸 그랬다는 잠깐의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원래 인생이란 게 그렇다. 준비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는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머피 저택을 영영 떠나는 그 날은 점점 비가 내리고 길도 진창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차 안은 그래도 제법 아늑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이비 컬트에 자식을 바쳤다는 사실이 탄로나자 머피 저택의 창살 달린 방에 유폐되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으나, 자꾸 컬트와 접촉하려 했기 때문에 가문은 별별 수단으로 다 막다가 나중에는 결국 감금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한순간에 하인 나부랭이에서 귀족가 차남이 되었다. 나에게 명령하던 사람들이 이제 명령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나까지 합쳐서 조용히 묻어버리자던 의견도 없던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래도 내 피가 이어진 자식이다! 평생 귀족을 봐 온 아이다. 귀족다움은 가르치면 돼!”

피가 이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셈이었다. 아마 살아계셨다면 제법 괜찮은 아버지였겠지만, 아버지는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아눕다 세 달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래. 어차피 나에겐 가족이 없던 때가 더 길었어…….’

잠깐이나마 가족 놀이라도 해서 행복한 게 어딘가. 가족 놀이 덕에 나는 그 컬트에게 지금도 복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놈들인데…….

‘잠시만. 만약 그들이, 나보다 먼저 괴물을 찾아낸다면…….’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 사이비들은 무조건 괴물을 탐낼 것이다. 물론 괴물을 만들어 낸 창조주와는 구도도 지향점도 달랐지만, 흥미를 가지지 않을 리가 없다. 그들은 미쳐 있으니 괴물에게서 공포와 역겨움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신을 만들어내자고 주장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한 인간이 ‘창조주’가 되어 만든 피조물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 리가 없다.

‘절대 안 되지. 절대로!’

방금 가족을 잃고, 대신 방금 목표가 하나 생겼다. 괴물을 빨리 찾아내서 빨리 만나야 한다.

‘절대로 빼앗길 수 없어!’

그들이 먼저 손에 넣어 버리면, 그때는 그냥 죽여 버릴 거야……. 그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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