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본편 연성글

6. 돌아갈 곳

프랑켄슈타인(원작) 드림 | 괴물 드림

701호 by R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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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말하는 괴물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비밀은 단 한 명에게라도 털어놓는 순간 온세상 모두가 알게 되니까.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영원히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딱 한 명에게만 말하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상대가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말은 그 누구도 믿지 않으니까. 어머니는 ‘미친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절대로 신뢰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한때 미쳤었고 너무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 나에게도, 가문 전체에게도. 그런 어머니가 이상한 괴물 이야기를 지껄여봤자 그 누가 진지하게 듣겠는가?

나는 어머니가 더 의미없는 말을 하기 전에 방을 나섰다. 방문은 안에 있는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쾅 소리를 뒤로 한 경쾌한 발걸음은 자그마한 내 방으로 향했다.

내 방은 생활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삭막한 방이었지만 나는 이 방을 좋아했다. 여긴 머피 저택의 내 공간이었다. 여긴 내가 돌아올 곳이었다. 비록 이 방에 머무르는 날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지만, 그래도.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저택에 이 정도쯤 머물렀으면 지금 떠날 채비를 하는 게 맞았다. 어머니를 이용해 어린 나의 삶을 망가뜨린 사람들은 내가 조용히 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한때는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다녔으나, 이제는 단념했다. 내가 평온하려면 피해 다니는 게 아니라 복수해야 했다. 그들이 죽어야 내가 살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내 가족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머피 저택에 올 때마다 아주 잠깐만 머물렀다. 가족들이 날 노리는 사람들에게 애꿎은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가족이라고 해봤자 지금 남은 가족은 형, 어머니, 여동생이 전부였다. 여동생은 잉글랜드의 귀족에게 시집간 이후로 거의 소식을 알기 어려웠으니 지금 나에게 가까운 가족은 거의 형과 어머니뿐이라고 해도 좋았다. 둘 다 내가 제법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머니조차도 아직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 복수하는 대신 겁이나 좀 주고 마는 게 아니겠는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권총이 하나 나왔다. 여분의 권총을 이번에도 가져왔었나? 총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그것이 괴물과 마지막으로 마주쳤을 때 사용했던 물건임을 기억해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머니에게 말할 때는 괴물과의 만남이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었다. 절반은 진실이기도 했다. 괴물은 이성과 합리로 대화할 수 있는 아기였다. 그 어떤 인류도 그럴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괴물이 어떻게 ‘자라날지’를 상상하는 것은 제법 재밌는 일이었다. 그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붙잡아둘지 고민하는 것도 즐거웠다. 판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유리했다. 나 같은 사람조차도 ‘돌아갈 곳’이 있지만, 괴물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나는 안다. 어린아이가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막상 내 방, 나의 ‘돌아갈 곳’을 마주하니 괴물에게 조금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냥 괴물이 나를 찾아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 것이다.

‘나약한 소리나 하고 있군.’

그렇지만 가족과 집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법이다. 마음이 약해지자, 괴물이 그냥 날 찾아오지 않고 나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이 무슨 선택을 하든 불쌍한 삶을 살겠지만, 나로 인해 불쌍해진 삶은 제법 괴로울 테니까.

‘하지만 그는 올 거다…….’

내가 보기에 괴물은 자신의 창조주를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괴물의 말에 따르면 창조주는 인간 남성이라고 했다. 괴물이 창조주에게 가서 인사나 하고 올 리는 없고, 괴물은 자신의 창조주에게 책임을 요구할 것이다. 한 생명을 탄생시킨 책임, 모든 부모들이 어쨌든 지고 태어나는 그런 책임을. 그리고 탄생을 책임진다는 건 단순히 식량과 위생을 챙겨주는 것 이상이다. 진정한 책임은 사랑이다. 괴물이 창조주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것이라면, 괴물이 궁극적으로 요구할 내용은 사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가 괴물을 사랑하겠는가?

사랑을 요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냥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혐오와 구역질이 창조주의 최선일 것이고, 창조주가 괴물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제법 운이 좋은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은 나 이외의 인간에게서 다시는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생각하고 사랑을 원하는 존재는 그렇게 단절된 채로는 살아갈 수 없다. 괴물이 나에게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우연히 아주 망가져 버린 인간만이, 인간 형체도 안 남게 산산조각 난 인간만이 겨우 괴물과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불쑥 찾아와도 맞이할 만한 준비는 해둬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권총을 품 안에 잘 갈무리했을 즈음이었다.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였다. 들어오라고 하자 이안 머피, 즉 내 형이 문을 열었다. 이안은 내가 떠날 채비를 다 한 것을 보고 약간 놀란 듯했다.

“벌써 가나?”

“가야지, 아무래도. 내가 오래 머무르면 안 좋은 거, 형도 알잖아?”

날 죽이려는 사람들은 제법 많고 현재진행형이다. 가족과 오래 같이 지내는 건 곧 가족도 함께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말과 같았다. 이안도 그 사실을 알았다. 형은 그 사실을 그냥 납득한 것이 아니라, 몇 번 죽을 뻔하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렇기에 형이 내 말에 납득하는 게 다음 수순이겠지만, 이번엔 생각과는 달랐다.

“얼마 보지도 못했는데…….”

그 말에 고개를 들어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약간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내가 이렇게 휙 떠나는 것에 대한 불만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표정을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이건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언제나, 내가 일찍 떠난다 하면 은근히 안도하는 형의 모습밖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른이 되고 집을 떠나게 되면서, 옛날에는 형이 나를 붙잡기를 바랐다. 형이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했다. 가족끼리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다고. 물론 형은 그렇게 말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항상 마지막에는, 내가 여행가방을 꾸리고 저택을 떠나는 순간에는 그 묘한 안도감이 형의 얼굴을 스쳤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소망을 접었다. 이제 머피 가문의 주인이 된 형이 내 방을 아직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으니까. 나는 형이 내 방을 없애버린다 해도, 다시는 머피 저택에 들이지 않는다 해도 사랑할 것이었다. 그러니 내 방을 남겨두는 형에게는 내가 얼마나 너그러워지겠는가.

그렇게 완전히 단념한 뒤에야 소망이 이루어지려 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너무 기뻐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좀 더 있다 갈까?”

소망이 이루어지기 직전, 혹은 깨어지기 직전 내뱉는 말은 항상 떨림이 있다. 그러나 그 떨림은 형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금방 사라졌다.

“그러는 게 어떻겠나. 네 생일이기도 하고.”

그러한 종류의 말을 형에게서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생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늘이야?”

“잊어버리고 있었군. 스스로를 좀 돌보아라. 안그래도 넌 혼자 떠돌아다니고, 널 해치려는 자들은 득실거린다. 네가 자신을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나?”

“형이 이렇게?”

“허튼 소리 말고. 그래서 좀 더 있다 갈건가?”

제법 끌리는 제안이었다. 가족과의 시간. 내가 항상 바라는 것, 그리고 항상 부족했던 것. 당장이라도 받아들이고 싶은 달콤한 제안.

그렇지만 올바른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쉽네. 일정도 빡빡하고, 여기 너무 오래 머물렀어.”

날 죽이겠다고 설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저택으로 끌어들이기도 미안하다. 안전을 위해서는 이게 맞고, 이게 평소의 흐름이었다. 그 흐름에서 제법 기분 좋은 대화가 끼어든 것만으로도 난 족했다.

그러나 오늘 유달리 이안이 우물쭈물거렸다. 할 말이 있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것을 한참 지켜보다가 물었다.

“나한테 뭐 부탁할 거라도 있어?”

이안은 말이 없었다.

“편하게 말해 봐, 형.”

그제야 형은 본론을 털어놓았다.

“가족이니까 이렇게 부탁하는 건데…….”

그러나 이안이 말한 내용은 전혀 가족에게 부탁할 내용이 아니었다.

가족에게는 이런 것을 부탁하면 안 된다. 특히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는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상식적으로 나올 수가 없는 부탁이어서 듣는 순간 바로 아득해졌다.

‘그동안은 그럼, 가족 놀이였나?’

이런 생각마저 하게 될 정도로.

옛날에는 어찌되었든 지금은 나를 무엇으로 보고 있기에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인가. 가족이니까? 여동생 아일리스에게도 하지 않을 부탁을 나에게 한다. 물론 이런 부탁을 한다면 내가 적임자이다. 나는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왜 내가 전문가가 되어버렸는지, 왜 이따위로 살아가게 되었는지, 왜 이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게 되었는지를, 그걸 전부 알면서?

목소리는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차분했다.

“그러니까 형의 요점은……. 내가 살인 청부를 하나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거지?”

이름 없는 괴물아, 나는 이제 네가 나에게 오기를 바란다. 나는 이제 자신이 있다. 너를 환대할 자신이 있다.

방금 난, 돌아갈 곳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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