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왔냐?” 이래저래 소원 이뤄주기 위해선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기에 정보를 물어다줄 탐정, 그러니까 흥신소 친구를 찾아왔다. 참 여러모로 유능한 친구라,죽을때까지 친구하다가 마지막에 영혼을 꼭 얻고 싶다. 만약에 멀어진다 싶으면 그냥 내가 죽여서라도. “최근에 나 인간 하나 키우고 있는 거 알죠?” “어어, 알지. 안 그래도 묻겠다 싶어서 미리 조사해놨
벌써 먹을 게 다 떨어졌네. 보자~ 근처에 잡을 만한 건 다 잡았고. 좀 나갔다 와야 할 거 같은데. 이 인간을 믿고 내버려 둬도 되나… 괜히 사고치지는 않겠지? 얼추 손님 접대는 잘 하는 거 같은데 간혹 이상한데서 핀트가 나간단 말이야. 단골이라도 잃으면 안 되는데. “할 말 있어?” “제가 잠시 가게를 비워야 하는데… 가게 볼 수 있겠어요?” “왜? 사
“저기 있잖아.” “왜 그러세요?” “원래 이렇게 3일 연속으로 아무것도 안 팔려?” 갑작스런 정곡에 넘기던 차를 다시 뿜을 뻔 했다. 흠흠, 질문이 갑작스러워서 그렇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것도 그럴께 이 가게는 딱히 돈 벌려고 차린건 아니니까. 엄마가 공간만 차지하는 이 쓸데없는 것들을 좀 버리던지 팔라고 해서 골동품 가게를 차리기는 했지만 엄마의
간만에 눈이 일찍 떠진 것은 둘째치고 뭔가 굉장히 개운하고 상쾌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상쾌하다니 역시 살인현장을 목격하고 살인마를 우리집에 들였던 건 전부 꿈이었군.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기분좋은 아침을 맞이할리 없어. 기분 좋게 방에서 나와 우리집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 어제 꿈에 나온 살인마와 인사했다. “기껏 냉장고까지 사놓고 왜 인
내가 청림관에 머물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올해 8월 11일의 일이었다. 청림관—그 숙박업소의 존재에 대하여 알게 된 때는 그보다 훨씬 이전의 시점이다. 이 부근에 호화로운 숙박업소가 하나 생겼다더라 하는 소문이 무성하였던 것이 지지난해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소문을 물론 들었고, 기본 호텔의 골조에 나무 기둥을 덧붙이고 기와지붕을 덧씌운 외양이 무척
*이곳의 역사는 실제 역사와 무관함을 알립니다* 아으… 춥다. 추워. 세상에 별별 옷들이 다 나오는데 어떻게 따뜻한 옷 하나가 안 나올 수 있지? 옷이란 본디 실속을 챙겨야지. 하여튼 다들 예쁜 것만 찾아서는- 눈으로 보기도 전에 코끝을 스쳐가는 비릿한 쇠냄새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 인간의 목에 칼을 쑤셔넣었다. 동족상잔의 모습에 그만 도망갈
그런 일이 종종 있기는 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학교에 앉아있었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벚꽃,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낭만에 가득 찬 청춘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성적표나 시험이 삶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나마 낭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날 나올 점심 식단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이 삶이 특출나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대한민국에서
형의 말도 안 되는 요청에 반문해보았지만 슬프게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었다. “그래. 네가 말한 대로다.” 형은 진심으로 동생에게 방해꾼 아무나 하나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부탁일까? 내가 거절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안 하고 툭 내뱉은 것이? 나는 살인자다. 많이도 죽였고 그 중에는 꼭 죽어 마땅한 사람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처럼 말하는 괴물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비밀은 단 한 명에게라도 털어놓는 순간 온세상 모두가 알게 되니까.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영원히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딱 한 명에게만 말하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상대가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말은 그 누구도 믿지 않으니까. 어머니는 ‘미친 사람’이었고 모든 사
“저 퍼시에요.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아일랜드에 오자마자 바로 여기 왔어요. 어머니도 많이 야위셨군요. 형이 굶기는 건 아니죠? 정말? 형이 잘 대해주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당연히 어머닐 믿죠. 어머니가 저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셋 중 절 가장 사랑하시는 것, 다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국 땅을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었답니다. 하하, 사
퍼시가 사람을 무참하게 죽인 지금 괴물은 이 순간이 왜 이렇게 슬픈지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지만, 뱃속 깊은 곳에서 절규가 메아리치다가 간신히 혀 끝에서 멈췄다. 어쩌면 예상한 게 맞았기 때문일까? 퍼시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였다. 아마 지금 퍼시의 눈빛으로 보건데, 퍼시는 가책의 눈물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괴물의 짧은 삶은 계속 이어지다가 퍼시를 만난 순간까지 도달했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제 새로 시작될 이야기들만 남았네. 앞으로 뭘 할 생각이지?” “내 창조주를 찾아갈 것이다.” “부모와의 상봉이라, 대개는 나쁘지 않지.” “‘대개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란 자가 너를 반길지 모르겠단 뜻이지. 널
괴물이 바란 이야기는 좀 더 대화에 가까웠다. 보통 사람들이 삶을 지나치며 흘리고 가는 그런 대화들. 하지만 곧이어 괴물은 그것이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괴물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산 적 없었고, 그런 화젯거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괴물이 들려줄 수 있는 것들은 그날따라 유달리 낮은 음조로 읊조린 이름 모를 새들과, 인간들의 고함, 마음을 맴도는 증오
괴물이 구한 사내는 고급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청년이었다. 그 뻣뻣하고 일하기 힘든 고급 옷 때문에 그는 더 허우적댔을 것이다. 완전히 물에 젖은 붉은 머리칼은 해초처럼 구불거리며 양 뺨과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는 날카로운 인상의 눈이 괴물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의 눈빛이란 게 이토록 형형할 일이었던가? 여름 초목
복수하기 좋은 날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어쩌면 그날인지도 몰랐다. 창백한 햇살이 살갗을 간질이는 동안, 이름 없는 괴물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 남자를 눈에 담았다. 괴물이 인간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 뒤 처음으로 마주친 인간이었다. 괴물은 한 인간의 죽음을 냉엄하게 내려다보려는 대신, 인간을 구하고 싶어서 꿈틀거린 손가락을 먼저 느꼈다. 말도
아버지는 집 뒤에 있는 산으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다. 평소에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냥 그렇구나, 했다. 아버지는 똑똑하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지, 했다. 견심화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름의 냄새가 났다. 한들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 그늘이 일렁거렸다. 주위를 둘러 보면 온통 녹음이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얼마 전 바닥을 덧댄 신 아래로 새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