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워어억―!" 팍! 철퍽. “꺄악!” 점점 어둑해지는 산속에, 돌연 정체불명의 괴음과 무언가 터지는 소리, 그리고 여자의 높은 비명소리가 울렸다. 초조하게 걸음을 재촉하던 조세핀과 셰리는 그 소릴 듣자마자 경직되어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곧 둘은 빠른 손놀림으로 총을 쥐곤,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서로를 마주 보았다. “들었지?” “…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신이 나에 대해 좀 아는 것 같았지. 나도 꽤 오래 살았는데 그동안 내 동족을 한 번을 못 봤단 말이지. 아니 동족의 특성 상 어느 정도는 숨어살 수 밖에 없어서 그런가? 특별히 서로 알아볼만한 표식같은 것도 없으니. 그래도 한때 어르신이라 불렸다 하니 한 번 찾아가보자. 어제 내 인형을 쥐어줬으니 냄새가 아직… 남아있네. 냄새를 따라
“예, 제가 죄인입니다. 인정하죠. 하지만 그쪽이 먼저 수상하게 굴었잖습니까! 하다못해 본명이든 뭐든 작은거 하나라도 알려줬으면 믿어보려는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알려주기는 커녕… 애초에 저희 처음 만났을 때도 협박으로 만났지 않습니까!” 뭔가 억울했는지 제법 격정적이고 빠르게 글을 써내려갔다. ‘내가 밥해주고, 청소해주고, 빨래해주고 다 해줬더니 뭐? 믿
“저기… 일단 저희 이 식칼 좀 치우고 얘기하면 안될까요…?” “헉… 허억… 지켜달라, 해서… 지켜… 주었더니… 날, 죽이려, 한 놈이랑… 무슨…” 그렇기는 한데… 아니, 솔직히 본인이 생각해도 본인이 수상한 거 알 거 아니야. 심지어 언제든 나 죽일 수 있다고 공표하고 내 집에 들어왔잖아! 그렇게 들어왔으면 적어도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려는 노력이라도 했
“어째서라… 물론 지금이야 힘이 많이 약해져 이런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네 생각보다 내가 오래 살았단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내 한때는 어르신이라 불렸다.” 신에게 있어서 겉모습으로 보이는 나이란 곧 힘을 상징한다. 그러니 신들 사이에서 어르신의 호칭은 단순히 존중의 의미를 넘어선 존경과 경외심을 담은 호칭이다. 그런 신이 이런 어린 모습이라니..?
꿈 속인가… 아무리 꿈 속이라도 어느 정도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무언가라도 보여주는 법인데 정말 뭣도 없이 손님이 아마도 친구 분을 무표정으로 밀어버리고는 계단을 굴러 쓰러진 모습을 그저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장면 뿐이로군. 다른 곳을 찾아보려 해도 이곳 외에는 벽에 막혀 갈 수 없는 모양이고. 적당히 기다려보아도 신께서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실 생각이 없는
첫 만남 이후로 줄리아는 미오에게 밖으로 나올 수 없냐는 얘기를 더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늘 정해진 시간에 그녀는 창문을 넘고, 나무를 타고, 미오의 방 창문 앞까지 다가와선 종이로 대화를 나눠주었다. 미오는 그림책의 단어를 조합해야만 얘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지만, 줄리아는 천천히 미오가 단어를 고르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미오는 줄리아에게
“Twinkle, twinkle, little star~” “…….” “How I wonder what you are~” 처음 들어보는 노랫소리였다. 스키조 부인이 밤마다 불러주던 자장가와는 전혀 다른 노래였다. 미오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곤, 한 걸음, 한 걸음. 스키조 부인에게 들킬까 발소리조차 나지 않게 조심스레 창가에 다가갔다. 닫힌 창문의 유
“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꿈도 뭔가 좀 이상한게, 제가… 친구를 계단에서 밀어버리더라고요? 저 진짜 친구한테 악감정 같은 거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군. 보통 신벌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지,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는 법인데.’ 동감하는 바이다. 친구에게 악감정이 있다면 굳이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도 없을테니
작은 방 하나가 제게 주어진 세상의 전부였다. 방문의 정면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으며, 양쪽 벽에는 애스터 모녀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었다. 방바닥 여기저기에는 애스터 모녀의 모습을 본딴 인형과 책이 굴러다녔고, 가끔씩 ‘엄마’는 제게 책을 읽어주곤 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내게는 ‘엄마’라고 불러야 하는 인간이 있지만, 이 인간은 모르는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조세핀은 권총과 사진 두 장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사무소 문을 닫기 전, 어둑한 실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다시는 이 사무소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수 없게….’ 쾅! 불길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일부러 세게 문을 닫고, 조세핀은 문제의 산으로 향했다. 산 입구에 가면 마치 기다렸다는
기차를 처음 타보기는 로톨로도 마찬가지였으나, 로톨로는 어제저녁까지 기차 내부 그림을 보며 좌석을 찾는 일을 미리 상상했었기에 헤매지 않고 제법 능숙하게 자리를 찾아냈다. 나타와 로톨로의 자리는 미닫이문이 달린 4인석이었다. 초록색 천을 덮은 푹신한 좌석 두 개가 마주 보고 앉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붙은 큼직한 창문의 커튼은 위로 올라
“감히 바랍니다. 꿈꾸고, 간청하옵나이다.” 멀지 않은 예배실에서 앳된 목소리들이 자아내는 아침 기도 서문이 넘어 들어왔다.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은 성 나타는 언제나처럼 천진한 눈길로 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나이가 지긋한 사제가 예의 바른 태도로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성녀시여. 이번 알현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봉헌하면 되겠습니까
그로부터 조세핀은 삼 일간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이 의뢰를 포기하는 게 좋을까, 라며. 하지만 스키조 부인을 떠올리면 어쩐지 어머니에게 꾸중 받는 기분이 들어, 포기해선 안될 것만 같았다. ‘그날의 일은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알아낸 게 있어. 줄리아 빅토리. 이 여자… 아마 갇혀있던 미오에게 모성애를 느낀 걸지도 몰라. 그리고 분명 그게 납치한
철컥. 소리와 함께 조세핀은 눈앞의 권충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제 딸을 데리고 간 여자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미오를 상처 입히지 않는 선에서 당신이 처리해 버려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그 여자. 가족도 없으니까.” ‘어머니의 얼굴로 잘도 무서운 소릴 한단 말이지….’ 조세핀은 총을 내려두고 책상에 놓인 사진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선명하게
서늘한 밤바람이 뺨을 스쳤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눈앞의 시야를 덮쳤고 울퉁불퉁한 산길에 발이 아팠다. 발을 감싸 신발의 흉내를 낸 천은 바닥의 돌과 부러진 나뭇가지로부터 완전히 발을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맞잡은 손의 따스함과 눈앞의 등이 이끌어주는 대로 달리면 되니까.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이따위 아픔도 상관없었다. 쉼 없이 달리느라 숨이
“어, 왔냐?” 이래저래 소원 이뤄주기 위해선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기에 정보를 물어다줄 탐정, 그러니까 흥신소 친구를 찾아왔다. 참 여러모로 유능한 친구라,죽을때까지 친구하다가 마지막에 영혼을 꼭 얻고 싶다. 만약에 멀어진다 싶으면 그냥 내가 죽여서라도. “최근에 나 인간 하나 키우고 있는 거 알죠?” “어어, 알지. 안 그래도 묻겠다 싶어서 미리 조사해놨
벌써 먹을 게 다 떨어졌네. 보자~ 근처에 잡을 만한 건 다 잡았고. 좀 나갔다 와야 할 거 같은데. 이 인간을 믿고 내버려 둬도 되나… 괜히 사고치지는 않겠지? 얼추 손님 접대는 잘 하는 거 같은데 간혹 이상한데서 핀트가 나간단 말이야. 단골이라도 잃으면 안 되는데. “할 말 있어?” “제가 잠시 가게를 비워야 하는데… 가게 볼 수 있겠어요?” “왜? 사
“저기 있잖아.” “왜 그러세요?” “원래 이렇게 3일 연속으로 아무것도 안 팔려?” 갑작스런 정곡에 넘기던 차를 다시 뿜을 뻔 했다. 흠흠, 질문이 갑작스러워서 그렇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것도 그럴께 이 가게는 딱히 돈 벌려고 차린건 아니니까. 엄마가 공간만 차지하는 이 쓸데없는 것들을 좀 버리던지 팔라고 해서 골동품 가게를 차리기는 했지만 엄마의
간만에 눈이 일찍 떠진 것은 둘째치고 뭔가 굉장히 개운하고 상쾌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상쾌하다니 역시 살인현장을 목격하고 살인마를 우리집에 들였던 건 전부 꿈이었군.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기분좋은 아침을 맞이할리 없어. 기분 좋게 방에서 나와 우리집 냉장고를 뒤지고 있는 어제 꿈에 나온 살인마와 인사했다. “기껏 냉장고까지 사놓고 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