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탐문>
그로부터 조세핀은 삼 일간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이 의뢰를 포기하는 게 좋을까, 라며. 하지만 스키조 부인을 떠올리면 어쩐지 어머니에게 꾸중 받는 기분이 들어, 포기해선 안될 것만 같았다.
‘그날의 일은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알아낸 게 있어. 줄리아 빅토리. 이 여자… 아마 갇혀있던 미오에게 모성애를 느낀 걸지도 몰라. 그리고 분명 그게 납치한 이유겠지. 확실히 내 기억 속에서도 그녀는 아이들을 좋아했고, 나이차가 많은 어린 여동생이 있었으니까….’
가볍게 숨을 가다듬곤, 조세핀은 빅토리 가에서 가져온 찢어진 가족사진을 흘긋 보았다. 그날 본 건 잊어버리자. 그리 생각하며 조세핀은 줄리아의 찢긴 사진과 미오의 사진만을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
우선은 목격자 확보다. 야반도주를 마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면 당연히 도망치는 둘을 본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조세핀은 거리의 사람들. 가게 사람들에게 찾아가 둘의 사진을 내밀며 물었지만 다들 창백하게 질려선 모른다고 답했다. 반응을 보면 아마 정말 모르는 사람이 열에 일곱, 봤지만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나머지 셋 정도의 비율인 듯했다. 두려움의 대상인 미오는 둘째치고 줄리아에 대해서까지 이러는 걸 보면, 다들 이미 둘을 한패로 묶어 금기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 결과, 탐문수사는 늘 헛수고였다. 작정하고 은폐하려 드는 다수를 상대로 일개 개인이 뭘 어쩌겠는가. 이쯤 되니 조세핀은 솔직히 포기하고 싶었다. 혼자 맞설 수 있는 벽이 아니잖은가. 그러다가도 스키조 부인의 단호한 얼굴을 떠올리면,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다시 뭔가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어머니에게는 이길 자신이 없었다. 남의 어머니인데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어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이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인한 말싸움이었기 때문이리라. 결국 조세핀은 지나가던 외지인마저 붙잡고 사진을 보여주며 둘의 행방을 묻기까지 했다.
“음. 본 적 있어. 이쪽의 여자는 모르겠지만. 이쪽의 머리색이 짙은 쪽이라면 얼마 전에 봤지.”
“네? 어, 어디서…?”
뜻밖의 정보에 당황한 조세핀이 외지인을 올려다보았다. 보기 드문 맑은 하늘색 눈동자에 검은 머리를 하나로 땋아내리고, 입가와 목에 점이 있는 키가 큰 여자였다. 172인 조세핀보다도 머리 한 개, 어쩌면 한 개 반 정도는 훨씬 더 커 보였다. 여자는 조세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몸을 가까이하곤, 한 손으로 조세핀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을 뻗어 어느 한곳을 가리켰다.
“짙은 머리의 여자가 저기 있는 정육점에 들리는 걸 봤단다.”
“언제죠? 그, 그러니까… 몇 시 몇 분 몇 초?!”
“그렇게까지 자세히는 모르겠네. 난 이곳 주민이 아니니까 말이야.”
“허….”
“그래도… 그러네. 오후 두 시에서 세 시쯤일까? 낮이었으니까 말이야. 뭔가 이것저것 싸 들고는 저기 산으로 들어갔단다.”
“산….”
“그래. 어쩌면 들짐승에게 먹이를 주려는 걸지도 모르겠어. 겁 없는 아가씨인 것 같더구나.”
“들짐승은 아닐 거예요.”
미오는 인간이니까. 아무리 사육당하듯 갇혀 살아왔다지만 인간의 짐승 취급은 듣기 거북하다.
“그럴까? 하지만 이 마을. 요즘 들짐승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길 들어서 말이야. 떠돌이 고양이나 개가 없어졌다길래, 나는 키우는 사람이 따로 생긴 줄 알았지.”
“…그러고 보니.”
확실히 요즘 들어 동네가 조용했다. 문득 떠올려보면, 얼마 전에 고양이를 찾아달라고 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땠더라? 늘 고양이를 찾는 과정 외에는 제대로 아이들을 상대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아이들의 목소리만은 평소보다도 절박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이 짙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뭐? 어라? 잠깐. 지금 뭔가….
“후후. 힘내렴. 탐정 아가씨. 탐정 아가씨는 의지가 강해 보이니까 분명 진상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어깨에 얹혔던 여자의 손에 힘이 들어감과 동시에 숨소리마저 느껴질 거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란 조세핀이 돌아보았다. 조세핀에게 얼굴을 가까이한 외지인 여자는 그대로 조세핀의 어깨를 가볍게 주무르곤 미소와 함께 조세핀에게서 떨어졌다. 돌아서서 가던 길을 마저 가는 그 뒷모습이 마차에 가려지고서야 조세핀은 정신을 차렸다.
“뭐, 뭐야. 저 사람…? 아니 잠깐. 내 정신 좀 봐. 귀중한 목격자인데 감사 인사도 못 했네! 이봐요! 정보 고마워요!”
그리 소리쳤지만, 조세핀의 목소리는 마차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잠시 뒤, 마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세핀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외지인이 손으로 가리켰던 정육점으로 향했다.
“글쎄 모른다니까!”
“당신이 줄리아에게 고기를 판 걸 본 사람이 있어! 이래도 모른 척할 거야?”
정육점 주인은 목격자라는 말에 어깨를 움츠렸지만 이내 다시 당당하게 자세를 갖추고 언성을 높였다.
“판 걸 본 게 아니고 여기서 나가는 걸 본 거겠지!”
“오호라. 그건 인정하는구만? 하지만 구입한 게 아니라면 뭔갈 싸 들고 나갈 리 없지. 안 그래?”
“…윽!”
“그냥 알고 있는 것만 말해줘. 응? 절대,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탐정님은 그 명석한 머리를 갖고 있으면서,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나한테 해를 끼친다는 생각까지는 못 하시나? 난… 하아……. 그냥, 여기서 팔고 남은 자투리 고기를 줬어.”
“뭐? 그걸 어디에 쓰려고?”
“당연히 그것에게 주려고겠지!”
거기까지 말하고 제 말에 제가 놀란 정육점 주인은 양손으로 과장되게 제 입을 막았다. 부릅뜬 눈과 크게 벌어진 입으로 인해 얼굴 근육이 늘어나서 마치 그대로 심장마비라도 일으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것? 미오를 말하는 거야?”
이어지는 조세핀의 질문에 정육점 주인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조세핀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다.
“아, 아무튼 내가 아는 건 그것뿐이고 어디로 갔는지. 지금 뭘 하는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어. 됐지? 자. 가. 빨리 나가!”
조세핀이 떠밀리듯 쫓겨나자, 정육점 주인은 서둘러 문을 닫고 영업 종료 팻말을 내걸었다.
‘이렇게까지 두려워한다고…?’
그야 이 앞의 진상이 그날 본 빅토리 가와 같다면 분명 끔찍하리라. 하지만 그깟 악몽쯤은 이겨낼 수 있는 것이 또 인간의 정신 아니겠는가. 조세핀은 정육점의 닫힌 문을 한심함과 안타까움이 섞인 눈으로 보다가 외지인이 말한 산을 바라보았다. 어디인지는 몰라도 분명 산 어딘가에 둘의 거처가 있으리라. 옆 마을로 갔다면 굳이 여기까지 올 일은 없을 테니.
“…?”
그리 생각하니 무언가 이상했다. 스키조 부인 역시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 왜 굳이 전 재산까지 걸어가며 외부인을 고용해 찾으려는 거지? 본인이 직접 가지 않고?
“.....”
하지만 조세핀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조세핀은 산길로 발걸음을 향했다. 산 입구로 들어가려던 순간, 누군가 조세핀의 팔을 붙잡았다.
“이 시간에 산에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봐.”
“오! 우리 보안관님. 또 방해하러 오셨나요?”
“그래. 네가 그들에게 엮이는 건 더 뭐라 안 할게. 근데 밤의 산은 위험해. 들짐승이 나오거든. 여기 곰도 나온다고. 표지판 붙어있는데 못 봤니?”
셰리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그곳에는 곰 주의 표지판이 있었다.
“음. 지금 봤어.”
“잘 됐네. 그럼 오늘은 돌아가. 그들에게선 못 지켜도 짐승으로부터는 지킬 수 있게 해줘. 산은 내일 가도 늦지 않아.”
“…줄리아가 이 산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한 외지인이 있어.”
“…음. 그래. 그래서?”
“정말 곰이 있는 게 맞아?”
“…….”
셰리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셰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곰이 있는 건 사실이야. 저 표지판은 예전부터 있었으니까. …근데 만약.”
“…만약?”
“만약 그게 아직 줄리아와 함께 있다면. 곰은 둘을 해치지 못할 거야.”
“무슨 소린데?”
“…….”
셰리는 아랫입술을 몇 번인가 더 잘근거리더니
“곰 따위는 상대가 안 될걸.”
그 말을 남기며 셰리는 산을 바라보았다. 사아― 하고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자, 조세핀 역시 산 쪽을 바라보았다. 기분 탓인지 비릿한 냄새가 바람에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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