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오

4화 <결의>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조세핀은 권총과 사진 두 장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사무소 문을 닫기 전, 어둑한 실내 풍경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다시는 이 사무소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수 없게….’

 

쾅! 불길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일부러 세게 문을 닫고, 조세핀은 문제의 산으로 향했다. 산 입구에 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보안관 셰리가 있었고, 어깨에는 살벌한 엽총이 두 개 걸려있었다.

 

“보안관님이잖아… 뭐야?”

“아니. 그냥… 역시 생각해 보니 이대로 혼자 보내긴 위험할 것 같으니까. 내 체면도 말이 아니고. 상대는 두 명이야. 가녀린 탐정 혼자론 안 될걸.”

“허. 그것참… 고맙네.”

 

셰리는 엽총 하나를 조세핀에게 건넸다. 조세핀은 이미 가져온 권총이 있다고 말하려다, 보험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 생각하며 엽총을 넘겨받았다. 곰 주의 표지판을 지나, 총을 멘 둘의 모습은 풀숲 너머로 사라졌다.

 


“발자국이 있어. 짐승 발자국은 아니고… 이걸 따라가면 되겠어.”

“조세핀. 기억해. 만약 안될 것 같으면 그냥 도망치는 거야. 곰이 나타나도 마찬가지고. 해가 져도 가는 거야.”

“알았다고. 거 시끄럽네. 댁 때문에 해 떨어지고 곰 나오겠어.”

 

신중하게 발자국을 쫓아가던 중, 조세핀은 이상한 검은 액체를 발견했다. 손으로 만져보면 기분 나쁜 끈적임이 손에 달라붙었다. 동물의 변…은 아닌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달팽이 같은 게 지나가면서 남긴 점액에 가까웠다. 하지만 점액이라기엔, 건드리면 마치 살아있는 세포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뭐지…?”

“뭔가 있어?”

“아니……아무것도.”

 

어쩌면 이건 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그녀가 패닉이라도 일으키면 2:2가 아니라 1:1:2가 될지도 모른다. 조세핀은 발로 액체를 꾹꾹 눌러 모래로 덮었다. 점액이 꿈틀거릴 리 없다고, 제가 만지면서 꿀렁거린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가자. 이쪽이야.”

“미스트워커.”

“?”

 

미스트워커. 셰리가 저를 성으로 부를 때는 늘 뭔가 중요한 얘기가 있을 때였다. 돌아보면 셰리가 어깨에 맨 엽총의 끈을 세게 쥔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뭔데? 이제 와서 돌아가자는 얘기라면 사절이야.”

“너. 우리 마을에 종교단체가 있는 건 알지?”

“? 알지. 막 이사 왔을 때 그쪽에서 환영한다며 말 걸었던가. 뭐. 난 무교라서 관심 없다고 했지만.”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 종교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엮이지 마.”

“또 뭔데?”

“그 종교에서 스키조 부인에게 접근했다는 소문이 있었어. 마차 사고가 일어나고, 그녀가 미치기 전까지의 짧은 공백에 말이지.”

 

조세핀은 발걸음을 멈추고 셰리를 가만히 보았다. 문득 스키조 부인이 자신에게 의뢰를 하러 찾아왔을 때의 로브를 쓴, 어딘가의 사교도 같던 모습이 떠올랐다. 셰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의 나무 덤불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혀튼 좀 이상한 단체거든. 정상적인 걸 숭배하는 곳은 아니야.”

“아 그래. 그래서?”

“…….”

“그래. 뭐. 정보 고맙다. 흑마술 같은 거에 빠져서 마차 사고에서 구해준 신인지 뭔지에게 자기 딸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던가 그런 얘기겠지.”

“하하. 차라리 그게 나았을 지도 모르겠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조세핀이 돌아보려던 순간, 어느 순간 등 뒤까지 온 셰리가 조세핀의 등을 떠밀었다. 얘기는 여기까지라고 하는 듯, 셰리는 더 이상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둘은 숲속을 한참을 걸었다. 발자국은 여전히 한 곳을 향해있었고, 검은 점액도 여전했다. 오히려 갈수록 많아지는 것이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우앗!?”

“뭐, 뭐야!”

“개, 개가 죽어있어….”

“하……. 진짜 놀랐네.”

 

조세핀은 개 사체를 엽총 끝으로 툭툭 건드려보았다. 목 아래부터 배까지 뜯어먹힌 듯한 흔적에 검은 점액이 한가득 묻어 있었고, 시체의 살이 물렁한 게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곰인가…?’

 

하지만 물어뜯은 자국의 크기가 곰의 입 치고는 좀 작은 감이 있었다. 이를테면…

 

“사람….”

 

저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고 조세핀은 제 입을 막았다. 사람. 사람이 개를 산 채로 뜯어먹는다니 말도 안 된다. 개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먹을 리는 없다. 이래서야 마치 짐승이나 다름없잖은가. 무엇보다도 사체에 묻어있는 이 점액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만일 어떤 미친 사람이 뜯어먹었다면 이 점액은 그 사람이 흘렸다는 말인가?

조세핀은 셰리를 향해 돌아보지 않고, 눈만 조심스레 굴렸다. 흑마술. 제물. 수상한 종교. 셰리가 주입한 쓸데없는 정보 탓에 불길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이전, 빅토리 가에서 발견한 필담이 적힌 종이 뭉치를 생각하면 줄리아가 미오를 제물로 무언가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어머니로부터 흑마술의 지식을 이어받은 미오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들개 사체 따위로 무언가 어떠한 의식을 치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래. 어쩌면 들짐승에게 먹이를 주려는 걸지도 모르겠어. 겁 없는 아가씨인 것 같더구나.”

 

“당연히 그것에게 주려고겠지!”

 

“만약 그게 아직 줄리아와 함께 있다면, 곰은 둘을 해치지 못할 거야.”

 

만약에. 아주 만약에. 지금 줄리아가 데려간 게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몇 퍼센트일까? 그렇다면 미오는 뭐지? 실존 인물이긴 했던 건가?

 

“보안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야, 탐정.”

“미오 D. 애스터라는 사람. 실존 인물은 맞아?”

“뭐?”

“애스터 가의 외동딸, 미오 D. 애스터가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 맞냐고.”

“…….”

 

셰리는 침묵했다. 무슨 헛소리냐고 탓하는 침묵은 아닌 것 같았다. 따진다면 오히려 그건 ‘올 게 왔구나’,라며 긍정에 가까운 침묵이었다.

 

“실존 인물은 맞다는 거지.”

“…그래. 하지만 지금 우리가 찾으러 가는 그 미오 D. 애스터와는 별개의 인물이야. 진짜 미오 D. 애스터는 10년 전 마차 사고로 애스터 부인의 남편과 함께 죽었어.”

“…이런 미친. 그럼 설마 지금 미오 D. 애스터는…?”

 

서늘한 침묵이 이어졌다. 둘은 시선만으로도 모든 사건의 진상을 주고받았다. 뒤이어, 확인사살하듯 셰리가 입을 열었다.

 

“…네 예상이 맞아. 지금 우리가 찾으려는 건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스키조 부인이 딸의 시체로 되살려낸 ‘무언가’야.”

 

딸을 제물로 딸을 되살려낸다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일어났고, 자신들은 죽었다 살아난 망자를 찾아야 한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에 조세핀은 몸을 떨었다.

10년 전 마크라 마을의 악몽…. 분명 막 되살아난 상태의 미오는 멀쩡한 모습이 아니었으리라. 그렇다면 그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 끔찍한 모습의 딸을 10년 동안이나 데리고 살았을까. 되살아난 시체를 안고 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방금까지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은 진상을 파고들수록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뒤덮였다. 그러면서 조세핀은 미오를 스키조 부인에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결의를 굳혔다.

 


“미안해, 줄리… 나 때문에 너까지 위험에 빠뜨리게 해서.”

“사과하지 않아도 돼, 미오. 난 너를 데리고 나온 걸 후회하지 않아.”

그리 말하는 줄리아의 손에는 묵직한 도끼가 한 자루 들려있었다. 도끼의 날은 그녀의 결의만큼이나 잘 벼려져 있었다. 미오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 도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 한 명의 힘으로는 믿음직스럽지 않았던 걸까. 줄리아가 미오를 피해 도끼를 휘둘러 보였다. 후욱. 하고 무겁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미오가 순간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미오. 괜찮아.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미오를 지킬 테니까.”

“으응…. 고마워, 줄리.”

분명 흔들림 없는 결의를 담은 줄리아의 말과 행동이었지만, 여전히 미오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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