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만남>
“Twinkle, twinkle, little star~”
“…….”
“How I wonder what you are~”
처음 들어보는 노랫소리였다. 스키조 부인이 밤마다 불러주던 자장가와는 전혀 다른 노래였다.
미오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곤, 한 걸음, 한 걸음. 스키조 부인에게 들킬까 발소리조차 나지 않게 조심스레 창가에 다가갔다.
닫힌 창문의 유리 너머로 옆집이 보였다. 옆집의 창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한 인간이 어린 인간을 무릎에 앉혀놓고 사이좋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 걸까, 아니면 제가 엄마의 인형이 되고 방이 조용해졌기 때문에 이제야 들을 수 있게 된 걸까. 그리 생각하며 미오가 멍하게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창문 너머의 인간이 미오를 발견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엄마 외의 인간과 제대로 만난 적이 없는 미오는 그 행위의 의미를 몰랐기에, 당황해서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여자는 머쓱한 듯 웃곤 제 무릎에 앉은 어린 인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미오는 어쩐지 가슴 한 군데가 욱신거렸다. 엄마는 제게 저렇게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저렇게 해주길 바라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기분은 대체 무엇일까. 왜 저 사이좋아 보이는 두 인간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괴롭고, 슬프고, 슬퍼서….
“미오.”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들린 소리에 미오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뻔했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어찌나 따가운지, 마치 등에 가시가 촘촘히 박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룻바닥을 통해 뒤에서 사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뒤이어 뒤에서 뻗어 나온 손이 미오에게 닿았다. 미오는 제 갈비뼈를 쓸고 아랫배를 어루만지듯 감싸안은 손에 끌어당겨져, 제 뒤에 있는 이, 엄마의 품에 안겼다. 스키조 부인은 제 품에 안긴 사랑스러운 딸의 머리에 제 얼굴을 기댔다.
“미오. 뭘 하고 있었니?”
“…아무것도요. 어, 엄마.”
말끝이 떨렸다. 뒤에 있는 이에겐 제 표정 따위 보이지 않을 텐데도 미오는 애써 웃었다. 늘 엄마의 앞에서 그랬듯이. 엄마에게 보이지 않아도, 엄마와 마주 보는 것처럼. 하지만 미오의 시선만은 여전히 창문 너머의 따스한 풍경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에는 신기루를 보는 듯한 아련함이 담겨 있었다.
“그냥…. 창밖이 궁금했어요.”
“미오. 창밖 같은 건 궁금해할 필요가 없단다. 미오에겐 엄마뿐이고, 엄마에게도 미오뿐이니까….”
“…….”
“그날의 일, 기억하지? 모두 우릴 반기지 않았던 일 말이야. 그러니 바깥 같은 건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 미오가 관심을 가져봤자 상처만 받을 뿐이니까.”
“…네. 알고 있어요.”
이만하면 완벽한 딸이 되었으니 바깥에 관심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문득 미오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그 말은 해선 안될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런 의문 같은 거 가질 필요 없이 전부 엄마 말이 맞다. 바깥을 궁금해할 필요 없다. 다들 나를 두려워했으니까. 자신은 바깥에 섞일 수 없다. 건너편 인간들의 웃음. 화목함. 그것들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미오는 한번 본 그 풍경을 몇 날 밤을 보내도 잊지 못했다. 엄마의 다정함과는 전혀 다른 다정함. 엄마와의 좋은 사이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좋은 사이…. 봐선 안 되는 것을 본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봐버린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미오의 마음속에는 그 광경을 향한 선망이 너무나도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증오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미오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미오가 그들을 질투하기 시작하고 얼마 뒤, 마을에 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돌림병이 꽤 심한 모양이네. 옆집 장례식에 다녀올 테니 집에 얌전히 있으렴.”
“네. 그런데 장례식이 뭔가요?”
“사람이 죽어서 기리는 행위란다. 옆집과는…아니. 아니다. 어쨌든 이웃이니 다녀와야겠지.”
“네에….”
스키조 부인은 심란한 표정으로 나갈 준비를 했고,
“미오. 엄마에겐 미오뿐이고, 미오에게도 엄마뿐이란다. 기억하렴. 사랑한단다, 우리 딸. 언제나 함께하자꾸나.”
라는 말을 덧붙였다.
미오는 그 얘길 들으며, 불경하게도, 내심 엄마가 장례식이나 밖에 다녀오는 길에 그 병에 걸리기를 바랐다. 물론, 스키조 부인이 병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미오에겐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정말로 죽지는 말아 달라는 모순적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죽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엄마를 잃으면 여태까지의 제 세계가 무너질 것만 같아서. 제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아서, 미오는 엄마가 죽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위험한 병이 마을을 도는 와중에 엄마가 죽지 않은 건, 분명 자신 때문이리라.
이후, 멀쩡히 살아있는 엄마와 단 둘뿐인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미오는 또다시 창가로 향했다. 미오가 창가를 조심스레 기웃대면, 건너편 창문 너머에 비통한 표정으로 있는 인간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소수의 사람이 그 인간에게 무어라 말하며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미오와 눈이 마주치면 다들 소리를 지르며 비통해하는 인간을 두고 그 집에서 도망쳤다. 미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자신은 완벽할 터인데 왜 여전히 인간들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던 미오는 불현듯 제 불완전함에 대한 죄를 선고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 딸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동시에, 제 죄 때문에 옆집 사람들이 죽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야… 내가 아니야! 그 모습을 부러워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죽어버리라고 생각한 적은……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 옆집 인간들이 죽은 거야?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아직도 내가 부족해? 아니야. 내가 죽이지 않았어…’
미오는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각하지 못한 무의식의 너머에서 부러우니까 죽어버리라고 생각했다면? 옆집의 평화로움을 뺏고 싶다고 바랐다면? 그래서 옆집의 인간들이 죽은 거라면?
“죄, 죄송, 해요…. 죄송해요.”
덜덜 떨며 바닥에 웅크린 채로, 미오가 할 수 있는 건 사죄밖에 없었다. 이런 작은 방에서 사과한다고 해서 옆집에 들리지도 않을 텐데, 미오는 웅크린 채로 계속해서, 검은 점액을 눈에서 흘리며 옆집의 인간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런 와중에 미오는 또다시 속으로 바랐다. 자신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마음 깊이 바라는 대로 이뤄져 버린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당신이 나를 여기서 데려가달라고. 나를 여기서 꺼내고, 당신의 상냥함을 죽어버린 가족 대신 제가 느끼게 해달라고. 불경하게도 그렇게 바랐다.
어느덧 마을을 돌던 병이 점점 잦아들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봐! 날도 좋은데~ 밖에서 만나지 않을래~?”
“……?”
창가에 멍하니 앉아있던 미오는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줄 몰라, 바보같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얘! 너 말이야, 너. 애스터 양.”
“…….”
미오는 ‘애스터 양’이라고 불린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멍하게 있었다. 그러면 옆집 인간이 멋쩍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켰다. 그제야 미오는 애스터 양이 자신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쩐지 조금 기뻐서, 미오는 창문을 열려고 했다.
끼기긱―
낡은 창문에서 소리가 나자, 미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미오? 무슨 일이니?”
미오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스키조 부인의 인형이 되고, 옆집 일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이후, 더더욱 완벽한 미오가 되기 위해서 불필요하게 자의로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방에서 소리가 난다면 이는 스키조 부인에게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내가 바깥을 모르길 바라는데 이 모습을 들키면 어떡하지? 저 인간이랑 조금 더 얘기해 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미오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곤,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쉿. 그리고 미오는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 그림책이 읽고 싶어서 일어난 것뿐이에요.”
처음으로 하는 거짓말은 의외로 술술 나왔다. 침착한 목소리와 반대로, 미오의 가슴은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과 첫 반항에 대한 흥분감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두근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미오는 눈을 굴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소리를 내면 엄마가 온다.’
그 뜻이 전해졌는지, 옆집 인간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조용히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잠시 창가에서 사라지더니, 종이를 가져와 무언가를 적어 보였다.
[이렇게 얘기하면 소리 내지 않아도 되겠지?]
미오는 그 글을 읽고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글로 답해줄 수 있니?]
애석하게도 미오는 글을 읽을 줄은 아나, 쓸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미오에겐 종이와 거기에 쓸만한 것이 없었다. 어차피 있다고 해도 대화한 흔적을 들키면 또다시 엄마에게 혼나리라. 주변을 둘러보면 있는 것이라곤 방 안에 놓인 그림책들뿐…. 그림책?
미오는 조용히 움직여, 그림책을 몇 권 집었다. 그리고 그림책을 빠르게 넘기다가 창문에 그림책을 최대한 들이밀곤 어느 페이지의 단어를 하나 짚었다.
[안녕]
그것이 미오가 옆집 인간, 줄리아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하지만 줄리아가 그 글자를 인식하기에는 거리가 있었는지, 그녀는 잠시 당황했다. 줄리아는 무언가 잠시 생각하더니 창문 밖으로 나와선, 두 집 사이의 나무 위로 올랐다.
몇 번인가 미끄러질 뻔하면서도 소리 한번 안 내곤, 줄리아는 미오의 방 앞 창문까지 다가왔다.
“…!”
놀란 미오가 그림책을 안은 채로 뒷걸음질하자, 줄리아는 손으로 미오가 들고 있는 책을 가리켰다. ‘다시 한번 보여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기에, 미오는 서둘러 다시 책을 들어 단어를 가리켰다.
[안녕]
줄리아는 그걸 보곤 소리죽여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 웃는 얼굴은 제법 예뻤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둥근 곡선을 만들며 휘는 눈이며, 속눈썹은 어쩜 저렇게 긴지. 그녀를 보고 있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영원할 것 같던 순간이 어느샌가 끝나고, 정신 차려보면 그녀는 종이뭉치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장은 미오를 순식간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애스터 양. 밖으로 나올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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