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생활자
창작 소설
“밤에 좀 조용히 해 주시죠. 뭘 하든 상관없지만 웬만하면 낮에 해 주세요.”
남자는 한참 동안이나 서서 옆집의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남자가 사는 아파트는 복도를 따라 현관문이 늘어서 있는 빌라 식의 구조였는데, 현관문 앞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오늘만큼은 옆집 놈의 얼굴을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애초 끊으려고 작정했던 것을 이렇게 피워대고 있는 게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또다른 스트레스로 신경 쇠약에 걸렸을 것 같았다. 몇 주 전 비어 있던 옆집에 새로 이사온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부터가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 사람이 온 뒤로 남자는 꼭 새벽 5시가 되면 잠에서 깨 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항상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였다. 왁자지껄 웃음소리, 화내는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TV를 한껏 볼륨 높여 틀어놓은 소리까지. 모든 게 다 거슬렸다. 문을 열고 나서던 이웃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유연한 웃음을 지었다. 저 개새끼, 웃는 꼬라지 하고는....
“아, 실례했습니다. 많이 시끄러우셨나요?”
“웬만하면 이웃이고, 오며가며 얼굴 봐야 할 사이니까 참아보려고 했는데. 장난합니까? 새벽 5시에 청소기니 TV니. 잠을 통 못 자겠잖습니까.”
“죄송합니다. 주의할게요. 앞으로 또 불편한 게 있으면 바로 말씀하러 와 주세요.”
시종일관 기분 좋아 보이는 이웃집이 거슬리긴 하였지만, 남자는 이거로 됐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은 몇 가지를 함의했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건 생각이 과거에 머물렀다는 뜻이다. 과거에 머물렀다는 건, 이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줄 알았던 이웃집 진상이 또다시 뭔가를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계속해서 벽을 긁어대고 있는 듯했다. 갉작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방 한구석에서 조그맣게 들리다가 점점 커졌다. 갉작갉작, 갉작갉작, 갉작갉작갉작. 그것이 몇 번째 반복되었는지 세기를 포기했을 때. 그러니까 몇 번이나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자각하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을 세 번쯤 반복했을 때. 남자는 벌떡 일어났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신발장에 널부러져 있는 슬리퍼를 대충 꿰어 찬 채로 미친 이웃집의 문을 두드려댔다. 새벽에 뭐 합니까? 지금 장난해! 남자는 이상하게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한 1분쯤 뒤에야 겨우 문이 열렸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웃은 매우 기묘하게 웃고 있었다. 무언가 아주 만족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분노한 남자의 눈에 바로 들어올 리는 없었으므로 남자는 이웃에게 성큼 다가갔다.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려는 요량으로. 하지만 남자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웃고 있는 이웃의 뒤로, 커다란 옷장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 남자의 키만한 지네가 축 늘어져 있는 것도 보았다. 지네는 옷장에서 흘러내려 방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는데, 움직임은 없었다. 남자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웃의 손이 뻗어지더니 그의 뒷목을 붙잡았다. 가해지는 힘에 의해 그대로 현관으로 몸이 기울어졌고 문이 닫혔다. 잠시간의 소란이 있었던 새벽 5시에, 아파트의 복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했다. 다만 다음날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 한 사람이 있었다. 침대의 이부자리는 흐트러져서, 마치 자던 사람이 홀로 증발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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