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법소녀는 필요 없어

이런 마법소녀는 필요 없어 - 프롤로그

이길 수 없는 마법소녀는 필요 없어

리리샤 by 리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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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이길 수 없는 마법소녀는 필요 없어


마법소녀는 악을 물리친다. 세상은 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며 평화를 되찾는다.

가끔은 유치해 보여도 어떻게든, 당연하다는 듯 정의의 편에서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 그 이야기에 구원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싸워서 승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법소녀의 존재 가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적 드문 버려진 공사장. 누군진 모르겠으나, 마법소녀 교신을 통해 이 곳에 악당 몇이 숨어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그렇게 공사장 옥상에 발을 딛자마자, 괴물들이 말 그대로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숨어있다는 정보를 토대로 기습에는 대비하였으나, 상상 이상으로 많은 괴물들이 밀려오면서 일단 바로 전투에 들어갔다.

작전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이 괴물 무리를 어떻게든 해치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사장 주변에 전투에 휘말릴만한 민간인의 기척은 없었다는 점이다.

한참을 싸웠다. 세 시간 정도 지난 것 같다. 마법소녀 교신을 통해 지원 요청은 보냈으나 아무 응답이 없다.

애초에 교신이라고 해 봐야, 근방의 모든 마법소녀에게 일방적으로 수신하는 구조라서, 이 주변에 마법소녀가 아예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은, 공사장 바로 옆 길의 민간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

괴물들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모두 그들을 향했고, 괴물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식별된 민간인은 둘, 변신하기 전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휠체어를 탄 여성, 그리고 그 휠체어를 밀어주는 체격이 큰 중년 남성.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한 후퇴를 하기 위한 기동력을 보장할 순 없다. 민간인의 후퇴 경로를 지원할만한 다른 마법소녀도 없다.

여기서는 그들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모든 괴물들을 요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이미 오랜 시간 싸우면서 마력도 거의 다 소모했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마법소녀는 악에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을 구해야 한다.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하자, 남은 괴물은 이제 많지는 않다. 마력을 집중하면 공격 한번으로도 충분할 양이다.

마침 모든 괴물이 민간인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 사이를 가로막고, 공격을 가하면 될 것이다.

최대 출력으로 도약해 괴물과 그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휘말리지 않도록 거대한 방패를 만들고, 방패 밖을 향하도록 마력을 사출했다.

남은 마력을 계산할 여유는 없었다.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 정도 화력이면 누군가는 확인하기 위해 올 것이기도 하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공사장이 전부 무너지긴 했지만, 그것까지 지킬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나서는 마법소녀답게, 마법소녀가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 힘든 기색을 숨겼다.

"괜찮으신가요? 이곳은 위험합니다. 괴물들은 모두 물리쳤지만, 우선 이 곳에서 대피해주세요."

"...대단하네."

휠체어를 탄 여성의 목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차가웠다. 그리고 그 순간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살기, 그 외에 이 께름칙한 감각을 설명할만한 말은 없었다. 휠체어 뒤에 있던 남성은, 어느새인가 반대편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무엇인가 뒤에서부터 내 몸을 찔렀다.

그 무기의 끝이 내 시야에 들어오고, 평소 마법소녀의 신체로는 느낄 수 없었던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일반적인 범주의 공격은 마법소녀의 신체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총이나 대포 정도가 되어도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한다.

그렇다는 것은 이들은 당연하게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마법소녀를 적대하고 있다.

"계획대로 되었네, 당신 마력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소모되었는지 알아? 블랙 다이아몬드."

숨 쉬기가 괴롭다. 마력이 남아있었다면 회복이라도 시도했을 것이나, 그가 말한 대로 마력은 이미 거의 없다.

하지만 이대로 패배할 순 없다. 나는 마법소녀니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기를 뒤쪽 방향으로 강하게 사출시켜,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남성을 제압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내 몸을 관통했던 무기로부터 벗어났다. 온 몸을 남성에게 부딪혀내자, 그 남성은 그대로 날아가선 쓰러졌다.

출혈이 더 심해진 것이 느껴진다. 정확히는 피는 아니고, 마법소녀의 육체를 이루기 위한 신체 구성 마력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법소녀 교신으로 지원 요청은 계속 보내고 있으나 아직 아무 응답이 없다.

그렇다면 이대로 쓰러질 순 없어, 무기를 재정비하고 싸울 여유가 있는 듯 자세를 취했다.

"블랙 다이아몬드, 당신에게는 승산이 없어."

"하지만 마법소녀는... 지지 않아요."

남은 마력의 양을 계산할 수 없다. 상처가 깊어, 시간을 더 끌어서는 안 된다.

이미 바닥난 마력을 넘어 신체가 무너지고 있다. 빠르게 이기고, 회복하면 된다. 밑바닥까지 남은 모든 마력을 모아서.

힘겹게 전투 자세를 취한 나를 보며 휠체어를 탄 여성은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그 손에 있는 것은 나의 마법소녀 변신 브로치였다.

그 짧은 순간에 브로치를 빼앗긴 것이다.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녀는 브로치를 들어서 지긋이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뗐다.

"...당신은. 정말로 마법소녀구나? 한소양 씨."

나의 본명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알 수 없다. 번거로운 일이 있겠지만 상대를 물리치면 해결될 것이다.

마지막 도약을 했다. 이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것을 끝낼 것이다. 마법소녀는 승리할 수 있어.

달려드는 나를 보며, 상대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기대 이상이야, 당신이라는 마법소녀는... 마음에 들었어."

손에 든 브로치를 내 쪽으로 향하자, 브로치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익숙한 빛이다.

변신이 해제될 때 느껴지는 빛, 그리고 그 느낌. 온 몸의 마력이 브로치로 빨려 들어가듯 흩어지는 느낌.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신체로 점점 변화하는 그 느낌이다.

원래 변신 브로치는 마법소녀 본인만 다룰 수 있으나, 저 존재는 다른 마법소녀의 브로치를 다룰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 본명을 알게 된 것도 그 이유인가?

하지만 이대로 변신이 해제될 순 없다. 변신이 해제되면 고통은 사라지겠지만 마력 또한 사라진다.

그리고 이길 방법은 사라진다. 마법소녀가 패배하고 만다. 그런 마법소녀는 필요 없어.

어떻게든 변신이 풀리기 전에, 변신이 풀리지 않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공격이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몸에서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고통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난 실패했을 것이다.

강렬한 빛에 휩싸이기 직전, 상대에 손에 들린 브로치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방금 싸웠던 곳과는 다른 곳이다. 폭발에 휘말렸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승리한 것이 아닐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상대는 마지막까지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그리고 웃고 있는 상대방이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거기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들리지 않았다.

마력이 바닥난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마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황급히 몸을 확인했다. 변신이 풀리지 않았다.

상대방은 내 변신을 해제하려고 했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는 않은 것일까?

정신을 잃은 사이에 변신이 풀리지는 않은 것인가?

마지막까지 있던 큰 상처는 어떻게 회복된 것인가?

힘에 부친 숨을 뱉는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 변신 브로치가 없는데, 변신은 해제되지 않았다.

변신을 해제하려고 해도 변신 브로치 없이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변신은 풀리지 않는다.

약간의 마력이 회복되는 것도 느껴진다. 긴 머리카락도, 마법소녀의 의상도 그대로다.

나는 악에 패배했기에, 마법소녀로서의 가치가 없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그렇지만 마법소녀의 신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마법소녀로밖에 살 수 없지만, 마법소녀의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그들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완벽하게 패배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 것이다.

이길 수 없는 마법소녀 같은 건,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패배감과 무력감만 느껴진다. 쓰러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있었다.


"블랙 다이아몬드의 반응이 아예 사라졌어."

그러던 정신을 깨운 것은, 누군지 모를 마법소녀의 교신 내용이였다.

"...아무래도 안좋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다들 이 곳으로 모여줘."

"뭐라도 발견하셨습니까?"

"블랙 다이아몬드의 브로치 파편."

"...네,"

그 뒤로 마법소녀의 교신은 긴 정적이 흘렀다.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저들을 만나면 더 피곤한 일이 생길 것이다.

그래, 차라리 블랙 다이아몬드는 이 곳에서 사라지는 거야. 처참히 패배해서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지는 거지.

모두가 블랙 다이아몬드에게 실망하겠지, 그리고 그런 마법소녀는 결국 잊어버릴 것이다.

마치 유명하지도 못한 채 은퇴한 마법소녀가 금방 잊히듯이.

그렇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그 사이 회복된 마력, 그리고 생각보다 멀쩡한 신체 상태. 내가 해야 할 것은 이 곳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자. 모두가 블랙 다이아몬드를 잊을 때까지.

그리고 모두가 한소양을 잊을 때 까지 말이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은 꽤 큰일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행이라고 할까, 나는 가족은 없으니까.

친구들이나 지인들이야 있지만, 그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그 인생으로는 돌아갈 수 없잖아.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을 내버려 둔 채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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