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오

2화 <방문>

철컥. 소리와 함께 조세핀은 눈앞의 권충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제 딸을 데리고 간 여자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미오를 상처 입히지 않는 선에서 당신이 처리해 버려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그 여자. 가족도 없으니까.”

 

‘어머니의 얼굴로 잘도 무서운 소릴 한단 말이지….’

 

조세핀은 총을 내려두고 책상에 놓인 사진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선명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우울한 긴 머리 여자의 사진. 나머지 하나는 가족사진에서 찢어오기라도 한 듯한 어두운색의 머리를 하나로 내려 묶은 여자의 사진이었다.

 

‘납치범 줄리아 빅토리. 5년 전 돌림병으로 가족을 여읜 여자. 나도 고양이를 찾으면서 몇 번인가 인사를 나눠봐서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어. 고동색 머리를 단정하게 리본매듭으로 내려 묶은 여자…. 늘 웃고 있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목소리에 힘이 있는 밝은 사람이었어. 도저히 남의 집 자식을 납치할 것 같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조세핀은 자리에 앉아 사진을 가만 보았다. 스키조 부인이 가져온 찢어진 가족사진. 이 사진의 원본에는 어떤 가족 구성원이 있었는가. 우선은 거기부터다. 조세핀은 자리에서 일어나 늘 입는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그런 다음 사진 두 장을 주머니에 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스키조 부인에게서 받은 권총을 집어 허리춤에 찬 채로 조세핀은 빅토리 가로 향했다. 주소는 얼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쉬쉬하는 유명한 애스터 가의 바로 이웃이었으니까.

애스터 가로 향하는 것임이 아님에도 어찌 되었건 그 방향인지라 주변의 시선은 피할 수 없었다. “탐정님 어디 가세요?” 따위의 말도 걸어오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보안관이 와서 경고할 정도니 그 로브의 정체는 처음부터 다들 알고 있었으리라.

빅토리 가로 계속해서 걷던 중, 조세핀은 보안관 셰리와 눈이 마주쳤다. 셰리는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조세핀은 굳은 의지를 보이듯 고개를 돌리고 빅토리 가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빅토리 가와 애스터 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평범해 보였다. 두 집 다 평범한 2층 단독주택인데, 홀로 줄리아가 살던 빅토리 가보다는 모녀가 살던 애스터 가가 좀 더 번듯해 보였다. 2층 창문이 깨져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설마 저기로? 이것 참. 용케 잘도 도망쳤다고 해야 하나….”

 

조세핀은 애스터 가의 2층을 잠시 바라보곤, 빅토리 가로 걸음을 옮겼다. 끼이이. 목제 울타리의 이음매에서 낡은 쇳소리가 나며 관리가 되지 않은 빅토리 가의 앞마당이 조세핀을 맞이했다. 조세핀은 쇳소리에 괜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애스터 가의 옆집인 이 집은 문제가 없을 터인데도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치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작은 앞마당을 지나 조세핀은 빅토리 가의 문을 두 번 노크하고 문을 열었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 집이라 한들, 이곳은 사유지이니. 방문객으로서의 최소한의 예는 표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계신가요?”

 

따위의 소리를 겉치레로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열린 문에 먼지가 날리며 옅은 먼지 냄새가 났다. 스키조 부인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미오를 납치하고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집안 꼴이 이렇다는 건 어딘가 이상했다. 이래서야 마치 한동안 전혀 집을 관리하지 않은 것 같지 않은가. 도저히 그 밝은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삭막한 풍경이었다.

 

‘어차피 그 여자, 가족도 없으니까.’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기 자식은 그리 아끼면서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나? 동정심조차 들지 않는 건가? 뭐. 팔은 안으로 굽는다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을 보면,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강렬한 인상의 발자국이 새로 찍혀있었다. 아마 줄리아의 사진을 가져오기 위해 이 집에 침입했을 때 찍힌 스키조 부인의 발자국이리라. 조세핀은 품속에서 상반신만 찢어진 줄리아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 사진이 원래 있었을 사진을 찾아 애스터 부인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나무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좌우로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한쪽 방문은 열려있었고 나머지 한쪽에는 ‘로잘린’이라는 이름의 팻말이 걸린 닫힌 방이 있었다.

 

‘외동은 아니었군.’

 

그리 생각하며 조세핀은 우선, 열려있는 줄리아의 방으로 향했다. 먼지가 쌓이고 관리되지 않은 1층과는 달리, 줄리아의 방은 생활감이 느껴지는 정돈된 방이었다. 마치 방문을 경계로 세계가 나뉜 것만 같았다. 조세핀은 조심스럽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문에서 바로 보이는 정면 정중앙에는 창문이 열려있어 바깥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의 오른편에는 작은 서랍장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작은 스탠드와 액자가 놓여있었고, 서랍장과 벽 사이에는 덮는 이불이 없는 침대가 놓여있었다. 이불이 없는 이유는 아마 그 이불을 로프로 써서 미오를 2층에서 빼돌리는데 썼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침대의 맞은편, 창문의 왼편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는데, 책상 위에는 유명한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놓여 있었다. 그 밖에는 책상 옆에 책장과 조세핀이 들어온 문 근처에 옷장이 있는 정도다.

조세핀은 그 풍경을 눈에 담곤 침대 옆의 작은 서랍장으로 향했다. 두 칸뿐인 서랍장을 열어보면 의외로 잠겨있지는 않았다. 버리는 집이라 전부 열어두고 간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일 아래 칸은 편지 다발이 가득했다.

 

‘수신인은… 가족?’

 

성이 전부 빅토리로 되어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본인의 가족에게로 쓰는 편지였다.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서. 조세핀은 편지를 보지 않기로 했다. 다음으로 그 위 칸을 열어보면 종이 다발이 나왔다.

 

“이것도 편지인가?”

 

그리 생각하며 종이를 하나씩 조심스레 펼쳐보면 거기에는 ‘이렇게 얘기하면 소리 내지 않아도 되겠지?’, ‘어떻게 딸에게 그럴 수 있어!’, ‘정말이야?’ 따위의 말이 적혀있었다. 정황상 미오와의 필담을 나눈 듯한 글 뭉치였다. 하지만 내용을 보고 있으면 줄리아는 미오에게 ‘자신을 납치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같이 느껴졌다.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스키조 부인은 여러 의미로 미쳐있으니까…. 설마, 정말 딸을 상대로 그런 짓도 한 건 아니겠지?’

 

불경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조세핀은 글 뭉치를 보다 말고 다시 서랍 안에 쑤셔 넣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맡은 의뢰는 윤리적으로 옳은 것일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마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단호해 보여도 그녀에게서는 깊은 수심이 느껴졌다. 딸을 향한 사랑은 분명 진심이리라. 그렇다면 둘의 관계가 나아질 수 있도록 돕고, 올바른 방법으로 자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적어도 자신처럼 도망치듯 어머니에게서,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것보다는 화해하는 것이 맞으리라.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 밖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조세핀은 그리 되뇌며 서랍을 닫았다.

다음으로 서랍장 위에 엎어져 있는 액자를 들어보면 유리가 다 깨진 액자 속, 한 사람이 찢겨나간 가족사진이 있었다. 흑백 사진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과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조세핀이 그 사진을 조심스레 꺼내서 찢어진 줄리아의 사진과 맞춰보자, 갑자기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해진 조세핀이 뒤돌아보면 열린 문 너머로 건너편의 닫힌 문이 보였다.

조세핀은 허리춤의 총에 손을 대며 조심스레 먼지투성이의 복도로 나갔다. ‘로잘린’이라 적힌 팻말을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문을 연 뒤, 조세핀은 빅토리 가를 뛰쳐나갔다.


“콜록! 콜록! 욱… 흐아……!”

 

조세핀은 제 사무소로 도망치고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상한 냄새가 아직도 제 몸에 밴 것 같아 몇 번이고 코트를 털고 웃옷 단추를 열어 부채질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조세핀은 도망쳤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 어두운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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