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엣 가문에 생긴 놀라운 이야기

마르엣 가문에 생긴 놀라운 이야기 1

2월의 어느 멋진 날에.

마르엣 가문의 영주 카이사르 c. 마르엣은 집안에 일어난 이변을 눈치챘다. 조금씩 물방울이 떨어지는 천장이라던지, 찬장의 식기가 어질러져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사용인들, 며칠을 말려도 마르지 않는 빨랫감때문에 저가 입을 옷을 급히 사오는 비서까지.. 집안이 이상했다.

“마법사를 부르도록 하십시오.”

“예.. 예..?”

“요즘 성 안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법사 협회에 한 번 관리를 맡길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가장 마지막으로 부른 것이 제 기억이 맞다면 분명.. 4~5년 전 입니다. 슬슬 재정비를 할 때가 되었죠.”

“네. 그럼.. 오늘 안으로 요청을 넣어두겠습니다.”

“예, 그리고 오후에 있는 회의 말입니다..”

“예..”


-잉게르

“맥스! 공용어!”

-.... “어... 잉게르..”

“네~!”

“...그.. 소시지... 더 있어..?”

“네! 갖다줄게요~”

-아, 내가 할게..

“맥스~”

“..... 내.. 내가 할게...”

“그렇지~... 공용어도 입에 좀 붙여봐요~”

“....안..튀어나가..”

“급할 때 짖지나 않는 게 다행인가..?”

“야... 그래도 짖지는 않아. 애도 아니고..”

자잘한 대화와 눈빛 맞춤은 조금씩 주제에서 벗어나고..

“그리고 글씨도 좀 연습해요~ 전에 편지 보낸 거 읽는데 완전 괴발개발이었다니까요?”

“참 내.. 예쁜 글씨 써서 뭐해.. 읽고 쓸 줄만 알면 됐지”

“글씨는 나만 읽으면 다가 아니예요~ 남들도 쉽게 읽어야죠!”

“뭐... 남 보여줄 일이 있나..?”

“아, 맥스! 우리 편지 주고받을래요?”

“한 집에 사는데 무슨..”

“아잇! 당신 글 쓰는 것 도 연습할 겸 좋잖아요~ 제가 쓴 거 읽으면서, 책으로 정제된 단어들 말고 일상적인 단어로 써진 글도 익숙하게 읽을 줄 알아야죠~”

“전에 보니까 완전 아가씨 글 이더만..”

“아가씨 글이 뭔데요!?”

“그 왜~... 엄청... 막... 정중하고.. 막...” -난 놈이나 쓸 법한 삐까뻔쩍한 말들이 많아서 씨부리는데 한참 걸렸다니까? 그거 읽으려고 사전도 구하러 다니고 아주 꼴이 그만한 병신 꼴이 없었다고. 애비는 또 딸년이 갑자기 글쪼가리 읽겠다고 여기저기 사전 찾아 다니는 거 보고 또 지 멋대로 상상의 나래나 펼치면서...

“풉...!”

“뭐.. 뭘 웃어...!”

“아니... 공용어는 어휘가 부족했어요? 갑자기 청산유수야~”

“아, 아니진짜...”

“방금 했던 말, 공용어로 다시 해볼 수 있겠어요?”

“뭐.... ...자... 잠깐만... .... 네..편지에... 귀족..들이 쓸만한 ...모르는...말들이... 있어서... 어려웠다고... 아버지가... 그거 보고... 웃었다고...”

맥스가 공용어로 옮긴 단어들은 그이가 원래 하려던 말에서 많은 것이 잘려나가고 생략되거나 뜻이 미묘하게 바뀌어있었다. 두 언어의 뉘앙스 차이를 이해한 잉게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하아... 한참 웃었네..”

-잉게르..

“왜요~?”

-그러지 말고.. 좀 편하게 말하자.

-그럴래요?

-응.

짐짓 서글픈 얼굴을 하며 나름대로 불쌍한 얼굴을 짓던 맥스는 마지막 소시지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소시지 맛이 어떤지 말해줄래요~?”

-아 진짜!

잉게르는 깔깔거리며 아침식사를 마무리했고, 맥스는 화를 내려다가도 잉게르가 실컷 웃는 모습에 차마 화를 낼 수 없어 씹고있던 소시지와 함께 잘 씹어 삼켜서 제 것으로 만들었다. 분노가 감질나게 섞인 아침 식사는 아주 맛있었다.

“맥스~ 어쨌든 간에요~”

-응

“음... 오늘 저랑 좀 멀리 가 주실래요? 아직 우리.. 계약은 그대로 있잖아요.”

-계... 계약?

“네! 기억해봐요~ 우리 처음 만났을때.. 당신 일 찾고있었잖아요 그래서~”

-아~ 그래, 그랬던 거 같다 어... 맞아, 나 아직 네 조수지..

“헤.. 어디까지나 당신이 어디가서 직업도 없다고 말하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공용어는 고운말로 비수를 꽂더라?

“앗.. 헤헤.. 아, 아무튼지간에요~! 제 조수로 같이 어디 좀 가 주셔야 해요!”

-아, 알았어...

“공용어로 한번만 대답 해 주실래요? 계약서랑 같은 언어로 답해야 약속이 되는거라..”

-..어?.. 아, "알겠어...”

또 마법사들이 자주 하는 그런건가? 쉬지않고 계약이니 마법이나 만들어대는..

-...그냥 가자고 해도 갈 건데, 굳이 계약으로 가자고 하는거야?

“어어..”

-굳이 계약으로 부르지 않아도 따라갈테니까 그냥 불러~

“어..어어... ..아, 아니에요... 그냥..”

‘이 바보는 무슨 소리지.. 돈이 최고인 이 세상에서 네 몫좀 잘 챙겨 주겠다는건데..’

잉게르는 아직 맥스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어보이는 그이의 볼 살을 한번 주욱 잡아 볼 뿐이었다.

-그래서.. 어딜 갈건데?

-음.. 좀 먼 곳이라서 마차로는 못가고.. 교차통로를 써야해요

-와.. 나 그거 한 번도 써 본적 없어.

-진짜요? 한번도요?

-응..

-유물탐사같은것도 몇번 간 적 있다면서요~ 학자들은 보통 교차통로로 갈텐데?

-그거야 그 학자들이랑 걔네가 따로 고용한 특급경비원 몇명만 쓰는거고.. 우리같은 끄트머리들은 그냥 며칠전에 미리 출발해있는거지..

-그렇구나... ...

잉게르는 잠시 맥스의 눈치를 살폈다. 맥스는 잉게르를 안심시켜주려 입을 여는 찰나...

-맥스! 그럼 이번기회에 교차통로 최상등급 한번 써봐요~! 저 회원권 있어요!

-어? ..어, 어... 나야 좋지..

-헤헤, 그럼 얼른 나갈준비해요~! 산 아래로 갈거니까 봄 옷도 챙겨가고.. 가방 너무 무겁게 챙기진 말고, 부족한건 주변에서 살 수 있으니까요..

-자.. 잠깐만, 얼마나 멀리 가는건데? 어.. 며칠정도 가길래 그래?

-오래 안 걸려요~ 한 삼일 정도?

-삼일 씩이나?

-그것도 간만에 멀리 가는거니까 주변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노는것도 포함이에요~

-그래..? 네 볼일은 얼마 안 걸리겠네?

-그렇죠~

어차피 잉게르 없이는 아무런 계획도 없는 맥스였다. 삼 일 정도라면.. 이것저것 따질만한 사정도 없어서 잠자코 따라가기로 했다.

-...그, 무슨일인지도 알려줘..

-아, 마법중앙회에 갈거라서요~ 슬슬 정기발표가 있는날이라...

-...마법중앙회?

-네! 마법중앙회!

아무리 배운것 없이 눈과 귀를 막고 사는 시골출신 까막눈 용병이라고 해도, 모를 수 없는 중앙회가 몇 개 있다. 종족중앙회, 금고중앙회, 마법중앙회. 누군가는 더 많이 알 테지만, 이 세 중앙회는 시민들의 삶에 매우 밀접했기때문에 모르기란 어려웠다.

-마법중앙회에 소속된 마법사들은 일정 기간마다 새로운 연구나 마법을 연구해서 보고해야해요~ 결과가 좋을수록 연구비도 많이 지원받고요.

-와...

-오늘은 회의에 꼭 참여하라고 연락 온 거 있죠~ 제가 이러고 살아요 아주..

-...너 유명해?

-’잉게르’는 유명한 편 이죠..

-...맥시무스 마르엣은?

-묻지말아요.

-헤헤.

-칫... 걔 말고 제가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인지나 물어봐요~

-... ... ...잉게르

-네?

-너.. 제법 관심받는거 좋아하는구나..

-뭐?!

-아니... 마법의회에 들어갔다던지... 보고서 같은것도 정기적으로 쓰고... 내가 걱정했던 것 보다는 좀 더.. 사회활동 잘 하고있는거 같아서 말이야...

맥스는 잉게르의 시선을 피해가며 주뼛주뼛 말을 이었다. 언젠가 이런 대화를 하다가 얻어맞은듯한 기억이 있다.

-...

-잉게르, 난 그냥... 좋아서.. 한 말이야.. 네가 좋다고.


어느 코볼트는 사라지고싶었다.

그래서 사라졌다.

그리고 잉게르가 태어났다.

잉게르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코볼트였다.

더 많은 마법을 배우는것도, 전에 없던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것도,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것도...

잉게르는 잉게르로서 세상에 흔적을 하나 남겼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던 어떤 코볼트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가면을 쓰고 남긴 흔적. 마법중앙회에 가입하기 위해 제출한 마법보고서 몇 장으로 인해 그의 삶이 바뀔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아뇨 맥스 전... ... 전 그냥... 그게...

-아, 아냐 잉게르.. 내가 실수했어. 미안해.. 이런 질문 한거... 그냥 잊어버려..

-...그게... 저는...말이에요... 제가 마법을 할 수 있다는게 너무너무 신기하고... 제가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그랬는데...

-...응..

-근데... 이상하죠? 그렇게 나 혼자 있고싶었는데.. 제가 뭘 이뤄냈는지 자꾸만.. 자랑하고 싶은거.. 그런 기분이..들어서요... 그냥... 마법중앙회는.. 다른 중앙회랑 다르게... 익명으로도 가입이 가능하더라고요.. 아마 저같은 녀석들이 많아서 그런건가봐요.. 헤헤...

-그랬구나...

-그래서... 으응... 네... 헤헤... 그런..이야기에요.. 자세한 내막은 다 다르겠지만... 나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사실이... 꽤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일어나는 염탐전쟁도.. 논문마감도... 가끔은 즐겁더라고요.. 그 낙으로 살아왔나봐요.. ...여태까진..

잉게르는 맥스를 바라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결국은 웃으며 끝나는 이야기다. 아무한테도 한 적 없지만, 당신에게 열린 이야기. 여태껏 잠겨있는 줄도 모르고 내 안에 굳게 잠겨있던 내 이야기가 또 있을까? 당신이라는 열쇠로 속절없이 열리는 내 입이 부끄럼도 모르고 아침부터 물에 잠긴 소리를 낸다.

-응, 열심히 살았네.

-...열심히 살았나요?

-물론이지... 기억 마법은 이제부터 조금씩 줄이자.. 알았지?

-...내 보호자처럼 굴고 있어...

-내가 너 거둬준 거 거든?

-여기 제 집이거든요?

-정확히 네 집은 아니지..

-... 지는 사람 죽이는 게 직업이었으면서..

-그거 계약서도 없었으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직업도 아니었거든~?

-아~! 왜 이렇게 똑똑해요 증말~!

-누구랑 같이 산 덕인데~

-아! 진짜 얄미워~! 나갈 준비나 해요~!

-알겠어~

맥스는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마법이 담긴 목걸이를 목에 걸고 가벼운 재킷을 걸쳤다. 현관문 앞에 서서 외출 준비가 오래 걸리는 잉게르를 기다렸다. 잉게르는 자기에게 마법도 걸어야 하고, 가면도 써야 했고, 집 주변의 마법도 점검해야 했다. 꼭대기의 창문부터 지하의 환기구까지 꼼꼼히 살핀 잉게르는 드디어 가면을 쓰고 현관을 나섰다.

-아, 맥스. 마법 의회장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말해드릴게요.

-뭔데?

-일단.. 이거 받아요.

잉게르는 맥스의 얼굴에 꼭 맞는 크기의 가면을 꺼내 건내줬다. 잉게르의 가면과 비슷했지만 군데군데 달랐다. 눈알이 단 하나만 달려있었고, 맥스의 길쭉한 주둥이에 맞게 길쭉했다.

맥스의 꼬리는 한 번도 살랑거려본 적 없는 듯이 빠르게 흔들렸고, 눈을 있는힘껏 크게 떠서 두 손으로 공손히 선물을 받았다.

-...내 가면이야?

-네! 중요한 거 니까 잘 들어요... 마법 의회장은 들어가는 순간부터가 전쟁이에요. 내 종족이 무엇이냐 부터 시작해서 어느 나라에서 오고, 어디 마을에서 오고, 어떤 가문에서 오고, 어떤 직업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전부 다 알아내려고 염탐마법이 여기저기 오가는 곳 이거든요..

-뭐... 배웠다는 녀석들이 다 그렇지 뭐..

-잘 아신다니 설명이 빨라지겠네요.

-대충 이해했어.. 이걸로 날 가리고, 나를 가림으로서 너를 보호한다. 그런 거지?

-아.. 맞아요~ 항상 제가 예상 못한 지점에서 잘 안 다니까요?

-마법사들 의뢰도 가끔 받거든.. 어찌나 신변 보호에 열심인지..

‘꼭 누구처럼 말이야~’라고 말하듯 게슴츠레 뜬 눈으로 잉게르를 바라봤다. 잉게르는 헛기침을 한번 내뱉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어쨌든요... 그 가면 쓰면 다 막을 수 있으니까.. 아, 그걸 쓰더라도요! 의회장 들어가선 저랑 절대로 말하면 안돼요. 코볼트어도 금지에요! 어떤 의사소통도 다 금지니까요...

-말 하면 안된다고?

-말 뿐만 아니에요. 생각도 조심하세요. 너무 슬픈생각, 너무 화나는생각, 너무 기쁜생각 다 안돼요. 아주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저만 따라다녀야 해요.

-오... 장난 아니네?

-장난 아니죠? 맥스가 살아온 삶에서 이런 치열한 전쟁은 본 적 없죠? 그쵸? 그쵸? 그런걸 아무렇지 않게 이겨내는 잉게르가 멋지죠? 그쵸?

-음...

그렇다고 말할 뻔 했지만, 유난히 신난 잉게르의 호돌갑에 나오려던 말까지 막혀버렸다.

-그래.. 어쨌든 말이야.. 그냥.. 얌전히 너만 따라다니면 되는거지?

-흥, 말 돌리긴... 맞아요~ 좋은생각, 안좋은생각 전부 하지말고.. 누가 말 걸어도 대답하지 마세요. 도움이 필요해보여도 절대 도우면 안돼요. 어린이도 노인도 모두 무시해요. 알았죠?

-많이 험악한가보네..

-칼만 안 들었지, 전쟁이라니까요~ 그리고 저는 그 전쟁의 지휘관이나 마찬가지고요!

-흐응..그래~

-아니 정말로~! 지휘관급 이라니까~!

-응~ 믿어 믿어~

-안믿는거같은데..

-믿는다니까~?

-진짜로 믿는다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질텐데에.. 뭐~... 거기 가서 보면 되는거죠~

-그럼그럼~ 존경스럽게 보고있잖아 이렇게~

-흥!

맥스는 건내받은 가면을 쓰고, 낯선 감각에 천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잉게르는 산 아래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교차통로를 찾아냈고, 아직 가면이 어색한 맥스의 손을 잡아 천천히 앞장섰다.

만년설산 2번 교차출구로 들어가, 관리국의 회원임을 확인하고는 커다란 문 앞으로 와 섰다. 잉게르는 익숙하게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주문석을 건들여 교차통로를 작동시키고 맥스를 바라봤다.

-...히히. 교차공간 난생 처~음~ 써본대요~

-뭐 어때서..

-당신의 처음을 같이 하니까 좋아서요~

-참 내..

맥스는 -비록 가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지라도- 짐짓 부루퉁한 얼굴을 지어내 미소를 가렸다. 용감하게 옆에 선 애인의 손을 잡아 쿵쿵거리는 심장을 감추고 마법석 특유의 빛을 내뿜는 교차통로 안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교차통로 안은 신기하게도 조용했다. 어두운지 밝은지 구분하기 힘든 동굴을 걷는 듯 했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사람이 거닐 수 있는 길을 만든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길 중간중간 둥둥 떠다니는 발광석이 어두침침한 이 외길을 겨우 밝혀주고 있었다.

맥스는 잉게르를 올려다봤고, 잉게르는 맥스를 내려다봤다.

-여기에 아무도 없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안전을 위해 탐색 마법이 단단하게 걸려있으니까~

-누가 뭐랬다고..

-..히히...

마법의회 본부지부 1번출구 교차출구에서 가면을 뒤집어쓴 수상한 덩치 둘이 튀어나왔다.

둘은 곧장 의회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온갖 마법으로 서로를 염탐하는 마법 의회에선 흔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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