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룸메이트 (1)
가람과 혜림이 만난 건 작년 초 우연히 같은 방을 쓰게 된 때였다. 재수 후 점수 맞춰 온 과의 전공이 맞지 않았던 가람은 대학 1학년을 죽 쑨 뒤 돌발적으로 휴학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고 휴학한 사이 집이 외가인 제주도로 이사를 갔고 다행히 거리 점수 덕분인지 기적적으로 기숙사에 합격했다. 그때 만난 게 혜림이었다.
혜림은 대학교 3학년이자 기숙사 생활도 고등학교 때부터 6년 째 계속 해와 룸메이트라면 이젠 이골이 날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잘 맞았던 친구와 같은 대학을 와서 같이 기숙사를 썼다가 결국 손절하고, 2학년 때는 죽을 듯이 공부해서 1인실을 썼었지만 3학년이 되면서 1인실을 가기엔 성적이 모자랐다. 다시 돌아온 2인실 생활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새로운 방에 짐을 풀고 혜림은 누워 폰을 하기 시작했다. 탄탄한 침대가 익숙하게도 불편했다.
'이번 룸메는 어떨려나...?'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성생활을 자유롭게 하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룸메는 집에 안 들어오는 룸메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혜림은 1인실 시절 택배로 하나둘 사모은 성인용품들을 잘 숨겼는지 생각하며 새 룸메이트에 대한 정보들을 되새겨보았다.
이가람, 2학년, 의류학과.
'2학년이면 이제 21살인가? 나랑 두 살 차이나네.'
띡. 띡띡. 띡.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캐리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엇 신발이 있네. 계세요?"
불쑥 들어오는 안부 인사에 혜림은 순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네?"
그리고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마치 손님이라도 들어오는 것처럼 현관 쪽으로 나가보았다.
"안녕하세요. 304호 입실한 이가람입니다."
"아... 네."
"스물 세 살이고요."
"아. 네."
혜림은 눈 앞의 룸메이트를 바라보았다. 잘 부탁드려요-하고 인사한 가람은 캐리어를 끌고 옷장이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순간의 시간이 느리게 느껴졌다. 가람은 얼 빠진 혜림을 눈치채지 못한 듯 순순히 혜림을 지나쳤다.
'이상형이다.'
본인보다 작은 키에 넉넉한 신체 곡선, 적당히 살집있고 짧은 울프컷 스타일에 콧대와 귓볼이 부드러워보이는. 그리고 귀를 간질이는 명랑하고 맑은 목소리. 심지어 나이도 동갑인 가람은 혜림의 마음의 문을 열고 가뿐히 안착했다.
"이쪽 침대랑 책상 쓰면 되나요?"
"아, 네."
"근데 이름을 못 들은 것 같은데."
이미 기숙사 정보에 나와있었지만 재차 묻는 가람이었다.
"아, 변혜림이요."
그리고 더 들을 게 있다는 듯 가람이 혜림을 쳐다봤다.
"아. 스물 세 살이고.... 생명공학과."
"오.... 멋지다."
어색한 대화가 끝나고 침묵이 감돌았다.
"그, 편하게 있으시면 돼요."
"... 네."
다시 혜림은 침대에 누웠다. 이번에는 벽 쪽으로 돌아누운 자세였다. 룸메이트가 이상형이라니. 말도 안되는 상황에 휩싸인 혜림은 혼란스러워하는 몸을 감추려 이불로 덮었다. 이러다 말겠지? 쟤도 결국 룸메인데 싸우겠지. 아니 게다가 이쪽인지도 모르는 상태이고... 복잡한 생각에 주의하지 못한 혜림에게 가람이 말했다.
"근데 우리 동갑인데 말 놔도 돼요?"
"네? 아, 어."
가람은 쓰레기통 비우기나 머리카락 치우기 같은 잡일을 나서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룸메였다. 그마저도 혜림이 일러주면 군말 없이 바로 하는 편이었어서 편하다고 해야할까. 혜림이 외박하는 데에 이유도 물어보지 않았고 오히려 가람이 밤샘과제로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는 때가 흔했다.
덕분에 혜림의 성생활은 1인실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 종종 자위도 하고, 주말이면 외박해서 클럽을 가거나 원나잇을 하거나 했다. 이 좁은 레즈 판에서 이상형과 안정적으로 연애하기란 애초에 포기한 혜림은 익명의 누군가와 몸을 섞는 게 차라리 편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 가람이 계속 남아있었다. 그 날도 번개 오프로 만나 친해진 지인에게 하소연을 하는 중이었다.
"아, 근데 걔는 여자 좋아하는 지도 모르잖아~ 헝헝."
"너 나한테는 개정색해놓고 걔 얘기 나올 때만 웃는 거 알아?"
"언니 근데 진짜 오바지 않아? 어떻게 그렇게 딱 룸메가 되냐고. 아 진짜 대가리 깨야돼."
"지랄한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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