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성녀들

6화. 성녀, 입학 (3)

1차 GL 자캐 CP 리엔세라 : 연재

황립 발데마인 마법 학교. 아주 먼 엣날, 대마법사 투르지엔이 인간들을 위해 세운 마법 학교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 교육 기관이다. 초대 교장 투르지엔에 대한 소문은 굉장히 무성한데, 학교 이름에 황립이 붙었으니 투르지엔은 황가의 사람일 것이라는 주장.

또 하나는 그의 정체가 사실 드래곤인데 마법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인간을 가여히 여겨 학교를 세웠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뭇사람들은 두 주장 모두가 사실이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한다. 황가의 비밀은 기득권자들만이 알 수 있는 권리였기에.

라흐벤시아 건국 이전, 신성 제국 비에르온보다 더 먼 옛날. 암흑시대 전에는 고대 황금기라 불리는 시절이 있었다. 인간과 이종족이 어우러져 함께 살던 아주 오래된 시대. 고대 시네토 제국의 황가는 드래곤의 피를 이은 이들이었다. 천룡 라훼의 자손들이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이 있었다. 투르지엔은 시네토 제국의 황자였다.

이종족 혼혈이었기에 그 수명 또한 길었고, 그는 시네토 제국이 멸망하게 된 어떤 사건에서 살아남아 라흐벤시아 시대에 이르러서야 학교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감추어진 비밀이었다. 하나 지금의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초대 교장의 동상이 세워진 광장. 발데마인의 교문을 지나 정면을 향해 걸어가면 바로 보이는 원형 광장은 언제나 그렇듯 학생들의 쉼터이자 정보의 교환장이었다.

“벨, 학생들이 정말 들떠있는 것 같아요. 역시 역대 최초로 있는 성녀님의 입학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렇다기보다는… 다들 성녀님의 출신과 외모에 관심이 많은 것 같네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벨님의 입학 때보다 더 소란스러운 것 같네요.”

“그런가요? 리엔시에는 어때요?”

“저는 그냥, 빨리 성녀님께서 학교에 들어오셨으면 좋겠어요. 그 외엔 아무 생각도 없어요.”

오히려 연모하는 대상이 입학한 당사자인 리엔시에는 매우 담담해 보였다. 그 의외의 모습에 베레니체는 잠시 침묵하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보니 레니발렌 공자께서 찾던데.”

“……”

“...리엔시에, 너 말고요. 코니엘님이요.”

“앗, 정말요?”

레니발렌과 코니엘은 어렸을 때의 교류 이후로 줄곧 친분을 유지해온 이른바 소꿉친구라고 하는 관계였다. 연인이라기보다는 누가 봐도 서로에게 연애 감정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이좋은 이성간 친구 사이. 렌 또한 누나의 뒤를 이어 한발 늦게 발데마인에 입학한 차였다.

“렌 공자가 먼저 저를 찾다니… 드문 일은 아니지만 무슨 일일지 궁금하네요. 그럼 저는 공자께 가볼게요. 벨과 리엔시에는 먼저 식당에 가 있어요. 금방 뒤따라갈게요.”

“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되어요. 리엔시에, 우리는 이만 식사하러 가요.”

“...네.”

리엔시에의 꾹 다문 입에서 조금 분해하는 감정이 느껴졌지만 베레니체는 싹 무시하고 리엔시에에게 팔짱을 끼며 그녀를 재촉했다. 리엔시에와 베레니체는 교내 식당이 있는 별관으로 향했고 코니엘은 렌이 있을 오래된 서고로 향했다.

*

레니발렌이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들은 소식은, 얼마 있지 않아 발데마인에 마흔아홉 번째 성녀님께서 입학하신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에 잠겼고, 심장 또한 세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갈구했던 혈연의 애정. 누나의 사랑이 향하던 대상이 제 구역을 침범하려 하고 있었다.

성녀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하나 다른 이들처럼 마냥 들뜨거나 신기하지만은 않았다. 사실 확인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니엘을 찾았다. 직접 나서서 확인 사살을 당하려는 마음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혹시. 그녀라면. 뭔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렌 공자!”

“아, 코니엘...”

습관적으로 코니엘님, 이라 부를 뻔하다 그녀의 오랜 요청대로 격식을 차리지 않은 이름만을 입에 담았다. 그 모습에 코니엘이 방긋 웃으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렌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서고 안에 있는 작은 탁자 쪽으로 안내했다. 탁자와 세트로 놓인 의자의 방석을 털어 정리하고는 의자를 빼주어 코니엘을 앉힌다. 배려하는 사람도, 배려받는 당사자도 당연하다는 듯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

“오늘도 서고에 있네요. 무언가 찾는 책이라도 있나요?”

“그건 아니고… 사람이 적은 곳이라 여기가 편해서요.”

“음.”

“저, 코니엘. 성녀님께서 입학하신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던데.”

“맞아요! 저도 방금까지 그 소식을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답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졸지에 황손녀님께서 친구분들과 보내는 시간을 빼앗은 게 되어버린 소년은 당황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저도 오늘은 공자의 얼굴을 뵈지 못해서, 안 그래도 따로 찾아가려고 했거든요.”

서고에 작게 난 창문 틈으로 오후의 햇살이 둘의 머리 위를 내리쬔다. 평온하고 따스한 감각에 레니발렌은 잠시 눈을 감으며 심호흡했다. 코니엘은 리엔시에의 친구였다. 물론 레니발렌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무례할 수도 있는 부탁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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