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성녀들

6화. 성녀, 입학 (4)

1차 GL 자캐 CP 리엔세라 : 연재

“코니엘, 부탁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성녀님의 입학을 황가의 권한으로 막을 수는 없는 건가요?”

“...”

레니발렌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간절해 보였다. 코니엘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았기에 그저 조용히 침묵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켜봐 온 그였기에 그녀는 잘 알았다. 소년이 소녀의 애정을 갈구한다는 것을. 그러나.

“미안해요. 그 일에 대해서는 저도 어찌할 수가 없네요.”

“……”

“그리고 설령 가능하다 해도, 제 지위를 이용해 권력 남용을 바라는 것 아닌가요?”

“아… 죄송합니다. 황녀님.”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공자의 마음, 다 이해해요.”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졌다.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연약한 듯 희미한 빛줄기 하나 뿐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치 가까운 거리에서, 하나는 의자에 앉은 채. 나머지 하나는 앉은 이의 시선을 배려해 그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였다. 코니엘은 제 앞에 무릎 꿇은 소년의 양손을 가져다 꼭 쥐었다.

“렌 공자. 누나의 환심을 사고 싶은 거라면, 다른 방법을 쓰는 게 어떨까요?”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다 써 보았지만 누나는 제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죠. 누나의 관심은 성녀 하나뿐이니까.”

“제게 부탁하는 것 말구요. 다른 존재가 있잖아요.”

“네…?”

코니엘이 묘한 눈빛으로 레니발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라히안 오라버님께 편지를 쓰세요.”

*

성녀의 입학 당일. 단출하지만 위엄있게 치러진 환영식 속에서, 세라엘은 이 정도면 나름 만족스러운 수준이라며 학교의 위상을 속으로 평가했다. 하나 딱 한 가지,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게 뭐야! 황손녀, 네가 왜…!”

“안녕하세요, 성녀님. 오늘부터 제가 성녀님과 방을 같이 쓰게 될 룸메이트랍니다.”

무조건 2인실 아니면 3인실을 배정받아야 하는데 존귀하신 성녀님과 같이 방을 쓸만한 이가 황족 외에는 없다는 학교 측의 배려였다. 물론, 세라엘이 오기 전까지 코니엘이 2인실을 혼자 썼다는 사실을 세라엘은 아직 몰랐다. 세라엘은 조금 짜증스러운 기색을 담아 중얼거렸다.

“리엔시에랑 같은 방이 아니었다니...”

“어머. 리엔시에 양은 베레니체 영애와 건너편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고 있답니다.”

“베레니체?”

“리엔시에의 친구예요. 물론 저도 리엔시에의 친구, 라고 할 수 있죠.”

코니엘이 뽐내듯 콧대를 높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세라엘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제 짐을 2층 침대의 위 칸으로 던졌다.

“그래, 친구하던가. 좋겠네. 2층은 내가 쓴다.”

“네. 그러세요. 그럼 첫날이고 하니, 제가 교내를 소개해드려도 될까요?”

“끄응… 뭔가 계속 황손녀한테 끌려다니는 느낌인데...”

“후후. 착각이에요. 자, 그럼 리엔시에가 있는 기숙사 건물부터 소개해 드릴게요.”

“…!”

리엔시에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세라엘의 얼굴에 급 화색이 돌았다. 그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에 코니엘이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천한 사생아 출신 성녀라느니, 고귀하고 드높으신 성녀님이라느니. 제가 보기에 세라엘은 그저 놀리기 좋은 그 나이대의 평범한 소녀였다.

“─황손녀! 빨리 와.”

“제 이름은 코니엘이에요. 코니엘이라고 불러주세요.”

길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앞서 나가는 세라엘을 뒤따라가며 코니엘은 생각했다.

‘미안해요, 성녀님. 하지만 나도 리엔시에를 좋아하는걸. 당신과는 조금 다른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나도 리엔시에와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어요.’

코니엘이 레니발렌을 이용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하나였다. 제 오라비를 움직여, 리엔시에의 약혼 관계를 복구시키는 것.

‘그럼 우리는 가족이 되어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금빛 황손녀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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