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章. 춘풍 도령 (10)
칼에 찔린 이가 바닥에서 퍼덕이다 숨을 거두는 참혹한 광경에 몇몇은 두려움에 숨을 잠시 멈추었다. 모임의 유일한 노 선생과 그나마 나이가 좀 많은 두어 명만이 긴장한 기색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어르신께서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신뢰입니다. 오늘 이곳에 나오신 분들은 본래 어르신과 뜻을 같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저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지자는 것뿐입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이 방을 나서는 것은 어르신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자, 누구부터 하시겠습니까.”
청영의 눈빛이 죽은 젊은 선비와 말을 섞었던 이에게 가서 닿자 그는 사시나무처럼 떨다 입을 뗐다.
“내가 먼저 하겠소.”
그의 말에 청영은 그의 앞에 빈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붓을 손에 쥔 선비는 종이 앞에 꿇어앉아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종이 위에 제 이름을 적었다. 열넷의 양반들의 이름이 종이 위에 적히자 청영은 두루마리를 챙겼다.
“오늘 이 결의문을 적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르신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럼 밤이 깊으니 살펴 가십시오. 청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시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냉혹함이 이훈의 것과 꼭 같아 마치 저들의 어르신이 눈앞에 있는 듯하였다.
“역시 피는 못 속이겠군.”
“그게 무슨 말씀이오?”
“아무것도 아니외다.”
노 선생은 헛기침을 큼큼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해주야.’
오랜만에 보는 그리운 얼굴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있었다. 그들은 지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스한 시선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지금껏 어디 계셨습니까. 숨 쉬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내가 살아서 다른 이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에 하루는 아비지옥이요, 하루는 규환지옥이었습니다.’
‘그래?’
얼굴들은 마침내 지성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한데 말이다. 해주야.’
‘예, 아버지.’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는 네 얼굴이 어찌 이리 밝으냐?’
‘아, 아버지…….’
‘왜 너만 살았느냐? 우린 죽었는데, 왜 너만 살았냔 말이야!’
그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불에 타 그을리며 줄줄 녹아내렸다. 입을 쩌억쩌억 벌리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이 외쳐댔다. 숨이 턱 막혀왔다. 그 목소리는 순식간에 천국 같던 풍경을 검고 붉게 물들였다. 처절한 살육의 현장, 불길이 치솟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날 소리와 비명. 그들은 이윽고 지성의 사지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들이 잡은 손목 발목이 타들어 가는 듯 아렸다.
‘너도 죽었어야지! 이렇게 살아 웃으면서, 우릴 조롱하는 게냐!’
‘아닙, 니다! 저는……!’
사지를 속박하던 손들은 이윽고 지성의 목을 옥죄어왔다. 짙고 찐득한 강물에 빠진 것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차갑고 뜨거웠다. 온 세상이 빙빙 돌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갈라졌다. 차라리 갈라진 땅속으로 몸을 던져버리고 싶었으나 손들은 마치 밧줄처럼 엮여 지성을 허공에 매달았다. 그의 몸이 덜렁덜렁 그네에 매달린 듯 흔들렸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살아있지? 무슨 자격으로 다 죽고 너만 살아남았느냔 말이다!’
지성은 제 목을 죄는 손 주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눈 떠! 두 눈 뜨고 똑바로 보란 말이야!’
그는 맹렬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겨우 눈을 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지성 본인이었다.
“도령, 도령!”
지성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숨을 크게 들이키며 눈을 떴다. 류였다.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지성은 입을 열었다.
“선배님이 왜…….”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고 목소리도 잔뜩 잠겨 있었다.
“미안하오. 화방에 들어와 한 번 늦잠 잔 적 없는 그대가 일어나지도 않고 불러도 대답도 없고, 방 안에선 이리 끙끙대는 소리만 들리니 걱정되어 말이지. 악몽이라도 꾸었소?”
그의 말에 지성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목을 죄던 그 느낌이 생생했다. 귓가에도 섬찟한 말들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제 목을 매만지던 그는 저를 향한 눈빛에 황급히 손을 내리곤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 하하! 글쎄 꿈에서 정 영감님이 나와선 호통을 치시지 뭡니까. 이유도 모르고 혼났습니다.”
“……. 지금은 좀 괜찮소?”
류가 물을 따라 건넸다.
“감사합니다. 좀 살 것 같네요.”
“하면 준비하고 나오게.”
“준비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령, 섭섭하이. 잊었는가? 꽃놀이 말일세, 꽃놀이!”
류가 볼멘소리를 하자 지성이 그제야 기억해내고는 손뼉을 짝 치곤 일어섰다. 오늘은 꽃놀이 날이었다. 말이 꽃놀이지 서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실력을 뽐내는 일종의 교류회 같은 것이었다. 해마다 스승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줄곧 남주에 있던 지성은 이런 교류회는 처음이었다.
“잊었을 리가 있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얼른 채비하겠습니다.”
“서두를 필요 없네. 약속된 시간까지는 적어도 한 시진은 넘게 남았으니.”
그가 나가고 지성은 이불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불도 약간 눅눅한 것이 땀까지 흘린 모양이었다. 그 일이 있었던 이후, 몇 달간 밤마다 자신을 괴롭히던 꿈이었다. 윤지성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후로도 악몽을 꿀 때가 있어 성연이 밤새 곁을 지켜주기도 하고, 가끔 지훈이 수면에 좋은 향을 피워줄 때도 있었다. 몇 년 동안은 단 한 번도 그 꿈을 꾼 적이 없었다. 한데 이제 와서 다시 꿈을 꾸는 이유가 뭘까. 생각할수록 자꾸만 어둠이 기어 나와 자신을 그 꿈속으로 데려갈 것만 같았다. 그는 제 두 뺨을 찰싹 때리고는, 꽃놀이 가야지, 꽃놀이–하고 중얼거렸다.
송영산, 매화나무 숲.
이 숲은 이전에 한성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운 임금이 인공적으로 만든 숲이었다. 약 천여 년 전의 일인지라, 이 숲이 그때 그 나무인지 어쨌는지는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누각이 있는 자리의 나무가 오래 살긴 하였는지 꽃그늘이 드리우는 것이 장관이었다. 꽃놀이의 장소인 송정루松情樓 위로 하나 둘 서생들이 모였다. 꽃 향 물씬 풍겨오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이곳은 꽃놀이 장소로 삼기에 그야말로 제격이었다. 그들은 저 나름대로 꽤 외양에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자네, 오늘 어찌 이리 힘을 줬는가?”
“모르는가? 오늘 최 선생 대신에 무려 윤 도령과 류 공자가 이곳에 나온다고!”
“그래서 다들 이리 꾸몄군. 두 미인에게 비교당하고 싶지 않아서?”
“물론 나야 그렇지만, 풍운 선생께 연줄을 대보려는 이들도 있네. 금상께서 동궁 시절부터 성심에 담아두시던 것이 바로 풍운 선생의 그림이 아니던가. 두 사람은 선생의 제자이니 잘 보이고 싶은 게지. 게다가 류 공자가 누구인가? 영상 댁 차남일세. 친분을 쌓아 나쁠 것은 없다 생각한 것이겠지.”
“그래, 자네는 그런 흑심이 없고?”
“자네도 참, 농은.”
저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 일순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아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 두리번거리자 주위에서 조용히 일러주었다.
“윤 도령과 류 공자가 왔네.”
“같은 사내가 보기에도 참 멋있어.”
“이곳에 온 다른 선비들도 나름 멋을 부린다고 부린 것인데, 그 노력을 다 무색하게 만드는군.”
그 말이 옳았다. 학과같이 흰 소매에 몸체 부분이 검푸른 철릭을 입은 지성과 맑은 옥색에 도홧빛 화려한 자수가 놓인 도포를 걸친 류의 모습은 가히 신선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둘을 모두가 곱게 보아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기생오라비가 따로 없군.”
“저 얼굴을 보니 그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겠군그래.”
“무슨 소문 말인가?”
“홍화정의 음란 서생 말일세.”
두 사람이 매화나무 사이에서 누각 위로 올라오자 선비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해도 꽃놀이에 참여해주어 고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과 좋은 인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류의 인사가 끝나자 그의 하인들이 누각 위로 올라와 갖가지 좋은 술과 주전부리를 날랐다. 모두가 최상품에 속하는 귀한 것들이었다. 글을 쓰는 서생들이라 대놓고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은근히 입가에 미소들을 띠는 것이 다들 기분이 좋은 눈치였다.
“저런 것들은 또 언제 준비하신 겁니까?”
“좋은 날 좋은 술이 빠질 수야 없지.”
꽃놀이가 시작되고 서생들은 저마다 서화 실력을 뽐냈다. 초반에 눈을 빛내며 다른 이들의 시문 솜씨와 글씨, 그림들을 감상하던 지성은, 그러나 어쩐지 조금 시들해진 표정으로 꿀떡을 조금 집어먹곤 우물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한성에서 예를 아는 사람들이 모였다 하여 기대하였건만 생각만큼 뛰어난 실력자는 보이지 않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 의중을 알아챈 것인지 류가 속삭였다.
“재미없는가 보오.”
“아닙니다. 충분히 즐겁습니다.”
“이해하오. 사실 여기 나온 이들은 다 연줄이나 한번 대보려고 나온 이들이라 제대로 된 예인들은 많지 않다네.”
“하면 스승님께선 어찌 이런…….”
“글쎄. 예전에 스승님이 벗들과 함께 이렇게 꽃놀이를 즐겼다 하네. 지금은 그분들과 만날 수 없어 이렇게나마 그들을 추억하시는 것일 터이고, 또 하나는… 숨겨진 보배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함이지.”
숨겨진 보배들? 지성이 고개를 갸웃하자 류가 반상 밑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의 검지가 제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한 사람 하나를 가리켰다. 눈에 띌 듯 말 듯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들지 않고 조용히 차만 마시고 있어 지성도 이상하다 생각하던 사내였다. 햇빛을 많이 보지 않은 듯 말간 얼굴에 몸피는 마른 편이었고, 다만 눈매가 날카로워 예민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청송관靑松館 태학사太學士 댁 장자인 황기백일세. 서얼이란 신분만 아니었담 지금쯤 조정에 발을 들였을지도 모를 수재 중의 수재이지. 저 친구는 시문 솜씨가 아주 기가 막힌다네. 관심 없는 것처럼 굴고 있지만 실은 다 보고 듣고 있을 걸세. 원래 그런 녀석이거든.”
“하면 저분은 누굽니까?”
지성이 가리킨 쪽에 있던 사내는 눈이 마주치자 씩 웃어 보였다.
“서건율 말인가? 자네 사람 보는 눈이 있군. 꾸준히 학자를 배출해온 가문의 자제일세. 선왕께서 저 녀석 부친의 능력을 귀하게 여기고 사부師傅 자리를 주려 궁에 여러 번 불렀는데 번번이 거절하니 대신 그 가문에 현판을 하사하셨더랬지. 지금은 청송관의 고문 선생이시고. 저 녀석 역시 태학사의 자제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네.”
그렇군요. 지성이 류와 건율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김새는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다. 그는 눈꼬리가 올라간 여우 같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익숙한가 했더니 아무래도 류와 분위기가 닮아있어 그런 모양이었다. 저런 능글맞은 사람이 또 있었다니. 그때 가까운 자리에서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모두가 들으란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분의 기품이 천상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으니 매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한데 이제 보니 윤 도령이 홍화정의 음란 서생이니 하는 말은 헛소문인가 봅니다. 저리 숫기가 없고 소심한 사내가 기방에 들락날락한다니. 그렇지 않습니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말투를 보아 명명백백한 모욕의 말이라. 주변의 몇몇이 동의한다는 듯이 저들끼리 웅성거렸다. 지성은 고개를 들어 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과하게 화려한 자수와 사치스러운 옷감. 고개를 저으며 그 무례한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려던 지성의 얼굴이 굳었다. 계속 미소를 띠던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김성열!’
지성이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김성열. 십 년이 지났건만 그 얼굴은 똑똑히 알아보았다. 감히 거둬준 은혜도 모르고 아버지를 배신한 자! 순식간에 눈앞에 그날의 일이 스쳐 지나간다.
십여 년 전 국경지대의 한 성의 성주였던 홍명학의 집 곳간에 도둑이 숨어들었던 일이 있었다. 그 도둑은 본래 양반임에도 행실이 좋지 못해 어린 나이에 집안에서 내쫓기고 길거리 생활을 전전하던 소년이었다. 모두가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명학은 울며 애원하는 어린 소년을 외면할 수 없어 거두어주었다.
삼 년 후, 한성에서 역모죄를 명분으로 군사를 보냈다는 말을 뒤늦게 들었을 때, 성의 부장들이 모여 마을 사람들을 어디로 대피시키고, 누가 가장 마지막에 남을지 같은 내용을 정할 때도 소년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막 지휘명령을 내리려 하는 명학이 피를 토했다. 누군가 찻잔에 독을 탔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밖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내부에 첩자가 있었다. 명학은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모두 성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했다. 성 곳곳에 치솟는 불길, 사람들의 비명.
명학은 소년과 함께 말을 달려 집으로 와 제 가족들을 도망가라고 길을 터주려 했다. 그리고 해주는 보았다. 아버지인 명학에게 들이밀던, 붉게 타오르는 화마 앞에서도 성성하게 푸른빛을 내던 칼날, 바닥을 붉게 물들이던 피, 그 피를 밟고 서서 그 아버지의 딸인 자신을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던 것이 바로 삼 년 전 아버지가 거두어준 그 소년, 김성열이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당장 품에서 칼을 빼 들어 저 뻔뻔스러운 눈알을 파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무례하군.”
“그래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주변의 분위기가 김성열의 말에 호응하는 쪽과 체통을 지키려는 쪽으로 나뉘는 듯하여지자 류가 지성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손에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주먹 끝이 창백했다. 조금 현기증이 이는 듯도 했다.
“괜찮은가? 안색이 좋지 않네.”
속삭이는 류는 그저 지성이 성열의 무례함 때문에 속으로 분노하고 있으리라고만 생각하였다. 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지성은 괜찮노라 말하고는 간신히 숨을 골랐다.
‘지금 당장 저놈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순 없지.’
10년. 자그마치 10년이다. 뼈를 갈아내고 창자를 끊어내는 심정으로 버텨온 10년을 고작 저런 조무래기 하나 상대하겠다고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었다. 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티 나지 않게 닦아내곤 웃으며 손뼉을 짝 쳤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이렇게 앉아 이야기만 하다 가기엔 조금 아쉽지 않습니까? 마침 류 선배가 좋은 술도 가져왔으니 말 잇기 놀이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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