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문장 쓰기
웹 장르에 오용된 단어와 번역체에 대한 짧은 글
야살스럽다, 여상하다, 단말마, 욕지기... 정말 '그 뜻'이 맞는 걸까?
웹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가 나름대로 단어의 의미와 문장 쓰기에 대해서 고찰해보았다.
나는 웬만큼 유명하다고 언급되는 작품은 다 들여다본다.
사실 누가 추천하지 않아도 조금씩 열어보고는 한다. 그러다보면 가끔 이상하게 사용된 단어나 표현들을 마주하는 일이 생긴다. 대체 이런 말들은 왜 이렇게 잘못 쓰이는 걸까?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가 생겨서 잘못 사용되는 맥락과 실제 의미를 적어보기로 했다. 적다보니 나를 튕겨져 나오게 만든 맞춤법 얘기가 빠질 수 없다는 생각에 내용을 덧붙였다.
- 모든 단어 뜻의 출처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1. 야살스럽다.
: 「형용사」 보기에 얄망궂고 되바라진 데가 있다.
-> 얄망궂다 : 「형용사」 성질이나 태도가 괴상하고 까다로워 얄미운 데가 있다.
-> 되바라지다 : 사람됨이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지 아니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다. / 어린 나이에 어수룩한 데가 없고 얄밉도록 지나치게 똑똑하다.
<잘못된 예>
그가 눈을 야살스레 휘었다.
대체 야살스럽다는 말은 어쩌다가 야시꾸리하다는 의미로 변형된 걸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저런 식으로 써본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팬픽을 쓰면서 내 아이돌의 눈을 야살스럽게 휘어버리고 말았다.
본의아니게 내 아이돌의 눈웃음을 괴상하고 얄미운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분명히 살랑살랑한 느낌으로 쓰려고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 다시는 야살스럽다는 표현을 사람에게 붙이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사람에게 야살스럽다는 말을 쓸 일이 별로 없는 것 같기는 하다.
2. 여상하다.
: 「형용사」 평소와 다름이 없다.
<잘못된 예>
그 여상한 미소를 볼 때면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런 문장을 보면 여상하다는 말이 '평소와 다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단박에 알 수 있다. 아무렇지 않다기에는 뭔가가 상당히 느껴진다.
어쩐지 보들보들하고 사람 마음을 간지럽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감각. 색소 옅은 미인이(대체로 속눈썹도 길다.) 여름날 돌연 나타나서 '여상하게' 웃으며 말을 거는 장면이라든지. 현세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인물들이 저런 미소를 짓는다.
만약 주인공과 상대 인물이 잘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 표현이 충분히 사용될 수 있을 거다. 혹은 자신이 자주 하던 행동을 반복한다면 이 말이 자연스럽게 적용되겠지만, 역시 주인공과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은 인물이 여상하게 웃는 건 어색하다.
3. 단말마
: ‘임종’(臨終)을 달리 이르는 말. / 『불교』 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
<잘못된 예>
(대충 야한 내용) B는 단말마의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야한 내용)
멀쩡하게 뜨거운 한때를 보내던 사람을 아예 골로 보내버리는 문장이다.
짧은 비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는 하던데, 인물을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B : 헉헉 자기야 잠깐만
A가 B를 끌어안았다. B가 단말마를 내질렀다.
A : 왜 말이 없어
B : …….
A : …자기야???
이런 상황을 연출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참고로 단말마를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 용법에 맞다.
4. 영애/영식
: 「명사」 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 ≒ 규애, 애옥, 영교, 영녀, 영랑, 영양, 영원, 옥녀.
: 「명사」 윗사람의 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 ≒ 영랑, 영윤, 영자, 옥윤, 윤군, 윤옥, 윤우, 윤형.
<잘못된 예>
"엘레강스 영애 입장하십니다!"
영애, 영식 호칭이 어느 순간부터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원래 '지칭어'로만 쓰임이 유효하다. 실제로 우리가 "홍씨 집안의 홍길동 아드님!"이라고 직접 '따님', '아드님' 소리를 듣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영애와 영식의 대체어는 많지만 두 단어가 쓰이는 분야의 작품은 즉 어감이 중요한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에 '느낌이 맞는' 말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도련님, 아가씨, 혹은 '엘레강스 씨'라고 부르는 것 외에 어떤 호칭이 '귀족스러운' 언어일지 고민하게 된다.
5. 만연하다.
: 「동사」 【…에】 (비유적으로) 전염병이나 나쁜 현상이 널리 퍼지다. 식물의 줄기가 널리 뻗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잘못된 예>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 거리에 벚꽃이 만연했다.
분명 식물의 줄기가 뻗는다는 뜻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말은 '우리 사회에는 자본주의가 만연하다.'는 문장처럼 부정적인 뉘앙스에 적합하다.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사회나 풍경처럼 거대한 단위가 아니기 때문에 '만연한' 것보다는 작은 표현을 써주는 것이 어울린다. 벚꽃도 얼핏 어울리기는 하지만 '만개하다', '만발하다'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굳이 만연했다고 써줄 필요가 없다.
웃음이 만연하려면 그 근처의 모든 사람이 비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야 성립하는 걸까… 하고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6. 욕지기
: 「명사」 토할 듯 메스꺼운 느낌. ≒ 구역, 역기, 토기, 토역, 토역증.
<잘못된 예>
나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아마 욕설을 내뱉었다는 의미로 쓰고 싶었겠지. 하지만 저렇게 쓰면 대뜸 토하는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애초에 욕지기는 구토 그 자체가 아니라 '구역질이 난다', '메스껍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내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는 하다. 단말마도 그렇고 욕지기도 그렇고, 갑작스럽게 죽거나 구역질하느라 인물들이 고생이 많다.
7. 들어내다, 드러내다.
- 들어내다 : 「동사」 【…에서 …을】 물건을 들어서 밖으로 옮기다. / 사람을 있는 자리에서 쫓아내다.
- 드러내다 : 「동사」 【…을】 가려 있거나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다. /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보이거나 밝히다.
<잘못된 예>
- D의 피부를 들어냈다.
- 모든 진실이 들어났다.
피부를 들어냈다가는 큰일난다. 원래 붙어 있는 걸 뜯어낸다는 표현이 아니기는 하지만, 수술을 설명하는 맥락에 적합하게 쓰인다. (예 : 어디어디를 들어내고 무슨 수술을 진행할 거예요.)
어쨌든 피부를 들어내는 순간 작품에 붙어 있는 19금 딱지의 의미가 성인물에서 고어물로 돌변하게 되는 수가 있다.
진실이 들어난다는 말은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으니 생략한다.
8. 나른하다, 나붓하다.
- 나른하다 : 「형용사」 【…이】 맥이 풀리거나 몸이 고단하여 기운이 없다. / 힘이 없이 보드랍다.
- 나붓하다 : 「형용사」 조금 나부죽하다.
-> 나부죽하다 : 「형용사」 작은 것이 좀 넓고 평평한 듯하다.
<잘못된 예>
- 고양이처럼 나른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다.
- E가 나붓한 얼굴을 했다.
지쳐서 몸이 나른하다는 표현을 쓸 수는 있지만 나른함은 분위기가 아니다. 햇살 아래에서 늘어질 때와 같이 느긋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 것 같지만 따져보면 단어 오용이라는 점.
나붓한 얼굴도 마찬가지. '여상하다'는 말과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물의 얼굴이 작고 평평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표현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9. 받아들이다.
: 「동사」 다른 문화, 문물을 받아서 자기 것으로 되게 하다. / 다른 사람의 요구, 성의, 말 따위를 들어주다.
<잘못된 예>
"그 조건, 받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받아들이다'의 의미는 아주 많다. 그중에서 많이 사용되는 의미로 붙어두었다.
조건을 받아들이다, 사람을 받아들이다, 선물을 받아들이다. '받다', '자신의 것이 되게 하다'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만약 '받아 드리다'로 쓰고 싶다면 선심을 쓰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
"제발 한 번만 제 선물을 받아주세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번쯤은 받아 드리지요."
어떤 것을 받아내거나 감당하는 상황에서 '받아드리다'로 쓰면 완전히 틀린 표현이 된다. '들어내다', '드러내다' 와 비슷한 패턴으로 적용된 오류가 아닌가 싶다.
10. 둘러쌓다, 둘러싸이다.
- 둘러쌓다 : 「동사」 【…을 …에】【 …을 …으로】 둘레를 빙 둘러서 쌓다.
- 둘러싸다 : 「동사」 【…을】 둘러서 감싸다. / 둥글게 에워싸다. / 어떤 것을 행동이나 관심의 중심으로 삼다.
- 둘러싸이다 : 「동사」 【…에/에게】【 …으로】 둘리어 감싸지다. / 둥글게 에워싸이다. ‘둘러싸다’의 피동사.
<잘못된 예>
-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였다.
- 나는 아기를 포대기로 둘러쌓았다.
둘러쌓는 건 말 그대로 '쌓는' 거다. 성벽, 벽돌, 건물은 '도시를 둘러쌓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장은 '둘러싸이는' 것이 맞다. 하다못해 나무도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고 표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기는 포대기로 둘러싸는 것이다.
11. 그것, 이것, 저것.
이 표현은 띄어쓰기의 문제다.
어느 순간부터 '그 것', '이 것', '저 것'으로 띄어쓰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 변형 문제로 '그 날', '이 날'으로 띄어쓴다. 이 말들은 합성어이기 때문에 그것, 이것, 저것, 그날, 이날로 붙여 쓰는 것이 맞다.
특정한 대상을 지칭할 때는 '저 사람', '이 장소', '그 시간'으로 띄어서 쓰지만 그런 게 아닌 경우는 붙여써줘야 한다.
번외로 '있다'의 앞은 띄는 것이 좋다.
붙여서 써도 허용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대체로 띄는 것이 맞거나 '띄어도 붙여도 상관 없는' 경우이기 때문에 헷갈린다면 띄어주는 쪽이 편하다. (예외 - '재미있다'는 붙여서 써야 한다.)
- 풍선이 매달려있었다. (x)
- 풍선이 매달려 있었다. (o)
12. 번역체에 대한 고민
수많은 번역체와 외국어 문법이 들어와서 한글 문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 몇 가지가 떠올라서 언급해본다. 여기에 나온 번역체만 지워도 문장의 가독성이 훨씬 좋아진다. 이거 돈 받고 과외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거니까 읽으면 이득보는 거다.
+ 이걸 절대 써서는 안 된다는 맥락이 아니라, 바꾸었을 시에 문장이 좋아진다는 의미이니 가볍게 읽고 넘어가면 좋겠다.
(1) 그, 그녀
왜 하필 여자를 가리킬 때만 '그녀'라고 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남자를 가리킬 때면 '그남'이라고 해야 되지요. 남녀 없이 '그'로 쓰면 됩니다.
우리말 연구소를 만들고 국어 교사와 아동문학가로서 교육 활동을 하셨던 이오덕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녀'는 영어-일본어에서 온 직역 표현이다. 서구에서 들어온 'She'가 시작이다. 일본에서 카레(彼)에 여자 녀(女)자를 붙여서 카노죠(彼女)라는 말을 만들었고, 그게 일제 강점기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원래 한국어에는 '그녀'가 없다. 그 예로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인 <무정>(이광수, 1918)의 본문을 보면 '그녀'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무정>을 읽은 사람들이 독후감에 '그녀' 표현을 쓰고 있는 걸 보니 묘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는 해도 <무정> 정독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모든 문장을 쓸 때는 '~적(的)', '및', '등', '에 있어서', '에의', '에 의한', '않을 수 없다', '요구된다'를 배제하는 것이 좋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이야말로 총체적인 번역체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음에도/~임에도', '불구하고'가 함께 쓰여 있기 때문이다. 대체어로는 '그래도', '그런데도', '하지만', '그렇지만'이 있다.
(3) ~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대과거만큼 끔찍한 게 없다. 이것과 관련된 얘기를 하라고 한다면 수 시간을 떠들 수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었었'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이건 절대 용납이 안 된다. 앞뒤에 '과거를 서술하고 있다'는 맥락을 만들기만 한다면 대과거는 싹 걷어내고 쓸 수 있다.
맥락이고 뭐고, 과거 얘기를 하는데 '그때 당신이 저를 도와주셨었잖아요.'따위로 쓸 필요는 전혀 없다.
"그때 당신이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랬었지'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랬지'면 충분하다.
사실 이건 소설뿐만 아니라 웹툰이라든지 많은 매체에서 발견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중에서도 소설 분야는 문장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더욱 눈에 띄는 거라고 생각한다.
서브 컬쳐라든지 오타쿠 문화, 웹 장르에서 중요한 것이 '정확하거나 미학적인 문장'이 아닌 건 안다. 하지만 많은 작품을 접할 수록 문제나 오류가 많이 보여서 글을 적게 되었다.
분명히 오용된 단어를 나열하면서 시작했는데 끝으로 갈 수록 번역체를 교정하는 글이 되어버려서 제목을 바꿨다. (원래는 <웹 장르/소설에서 오용되는 단어의 사례>였다.)
이왕 쓰는 김에 문제 표현이라든지 예시문에 대해서 상세하게 적어보고 싶었는데, 한 가지 주제만 가지고 얘기해도 2시간 수업이 가능할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생략하기로 했다.
번역체는 어렵다고 해도, 단어의 오용이나 맞춤법 오류에 대한 건 현대 문물의 힘을 빌리거나(맞춤법 검사기) 공부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특히 되, 돼, 던, 든을 틀리면 앞뒤 볼 것도 없이 하차하게 되는데...
이 하차가 나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정말로 거북해서 봐주기 어려운 거다. 상업 작품을 연재하는 작가라면 최소한 저 정도 맞춤법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타이핑을 열심히 했더니 또 손목이 아프다. 원고를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글을 쓰는 사람이거나 좋은 글을 찾는 독자겠지. 무엇보다도 건강이 최고니까 건강을 먼저 챙기셨으면 한다. 특히 저처럼 작은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다가는 손목이 골로 가니까 꼭 스컬프트 키보드를 미리미리 장만하시기를 바란다.
건강 엔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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