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쫓겨난 성녀는 개종하기로 했습니다 16화

돌아온 성녀 02

*본 작품은 어한오 팀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작품은 포스타입, 글리프에서 동시 연재 중에 있습니다.


돌아온 성녀 02


루블, 보쓰, 히즈

***

“이게 정말······ 나라고?”

아마데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거울에는 눈매가 위로 올라가고, 약간 밝은 갈색 머리의 여자가 보였다.

“제 능력입니다. 골격까지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니고 아주 약간만 수정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못하겠지요.”

그의 말대로 골격까지 바뀐 건 아닌 듯하지만 한 눈에 봤을 때 아마데아라고 알아보지는 절대 못 할 것 같았다.

“서두르시죠.”

아마데아는 놀란 맘을 접어두고 헬레니온의 안내에 따랐다. 

그가 준비한 마차는 상인이 쓰는 평범한 짐마차였다.

‘그래. 내가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리 없지. 내가 전장에서 마주친 이들은 전부 전투에 도움이 되는 능력자들 뿐이었을 테니까.’

짐마차에는 헬레니온의 부하가 몇 타고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의 수장이 직접 안내해온 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그 시선을 받는 아마데아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레이스의 수업 대로라면 아녹스의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 능력이 있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아마데아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확 들어 올렸다. 그 바람에 빤히 관찰 중이던 부하들이 흠칫 놀라며 시선을 저 멀리 던졌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딴청을 하건 말건 아마데아는 방금 떠올린 생각에 집중했다.

‘가만. 마차라고? 길이 있다는 뜻인가? 아녹스가 아우레티카와 이어지는 육로가 있다?’

역시 아녹스는 아우레티카와 상당히 근거리에 위치함이 틀림없었다. 아마데아는 그제야 제게 호기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저들은 정확한 위치를 알겠지.’

그렇다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짐마차에 올라탔다. 헬레니온인가 했더니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의 머리가 하얗게 센 여성이었다.

아마데아는 얼굴을 쓱 보고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해 관심을 껐다.

그러나 그 여성은 아마데아의 옆자리에 앉아 작게 속삭였다. 언뜻 들으면 혼잣말로 보일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주변을 제대로 관찰하고 경계하십시오. 지금 주위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확실히 파악하십시오.”

바로 옆자리였던 아마데아는 그 혼잣말을 들었다. 당황한 아마데아는 옆의 그 여자를 다시 관찰했다. 분명 아는 얼굴은 아닌데 익숙함이 느껴졌다.

방금 그 혼잣말은 오직 아마데아에게만 들린 듯 다른 이들은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데아는 여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그레이스?”

여자는 작게 끄덕였다.

역시. 제게 이렇게 가르치는 어조를 쓸만한 사람이 이곳에 둘이나 있을 리 없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몸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참는 게 좋습니다. 놀라시는 걸 누가 봐도 알겠더군요.”

또 잔소리. 약간은 뾰로통해질 뻔했으나 그레이스의 조언대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의식하며 표정을 조절했다.

“나를 숨겨두는 게 아니었나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나도 괜찮은 거에요?”

그간 외출도 전혀 못 하게 했으니 자신의 처지를 얼추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그레이스는 헬레니온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레이스. 난 디아나를 상인조에 넣을 겁니다.」

그레이스는 순순히 명령에 복종했다. 그가 의도한 바를 이해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현명하십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겠지요. 헌데······.」

헬레니온은 대답을 머뭇거리는 그레이스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아트레우스를 데려가신다고 하셨지요.」

「그게 문제가 됩니까?」

「그의 증오는 몹시 강합니다. 여차하면 사고를 일으킬 지 모릅니다.」

이번엔 헬레니온이 대답을 망설였다. 보기 드문 모습이건만 어째서 저 성녀만 관련되면 저러는지. 그레이스는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꼈으나 이내 털어냈다.

자신의 일생일대의 역작이자 아들 같은 주인께선 결국 최선의 결정을 내리시리라 믿고 있다.

「일단 이번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같이 가니까요.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그레이스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그레이스는 아마데아의 물음에 답했다.

“대놓고 소수를 호위하는 것보다 여럿 사이에 껴두는 것이 숨기기에는 낫습니다.”

“그럼 이 짐마차 밖에 헬레니온이 호위하고 있는 건가요?”

“아마 헬레니온 님은 안 계실 겁니다.”

아마 이 사실을 알면 아마데아가 충격받겠지. 하지만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모르고 있는 쪽이 더 이상할 것이다.

“헬레니온 님은 아우레티카의 귀족이십니다.”

아마데아는 그대로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굳어버렸다. 소리를 안 지른 게 그녀 또한 인내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나도 무기 줘.”

용병으로 위장하는 조에게 무기를 분배하던 존스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뭐야, 아트레우스? 너도 가는 거냐? 분명 작전 명단엔 없었는데?”

“어제 바뀌었어. 난 창으로 줘.”

존스는 창을 던져주며 더 질문을 퍼부으려 했으나 일이 밀려들었다. 하는 수 없이 무기 분배에 집중했다.

“존스, 내 건 필요 없어. 늘 쓰던 거 쓸 거니까 명단에서 빼줘.”

“안 그래도 넌 그럴 거 같아서 처음부터 명단에서······. 록시!”

존스는 환하게 웃으며 돌아보았다. 저 대신 아트레우스를 상대해 줄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반갑게 인사했다.

“······잠깐. 록시는 원래 용병조 아니었잖아. 원래 호위조였다고. 분명 어제 명단······.”

불현듯 명단이 바뀐 이유가 그가 어제 보스를 설득해 따라가겠다고 했던 일 때문임을 깨달았다. 

‘근데 하필 배정된 곳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했다.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보스가 하는 말이니까.”

늘 쓰는 가죽장갑을 손에 끼며 록시가 대답했다. 그를 째려보는 눈에는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살기가 읽히는 듯해 아트레우스도 잠시 주춤했다. 그 모습에 록시는 피식 웃으며 장갑 위에 너클을 고정했다.

절단 무기는 아니라 맞는다고 바로 죽진 않겠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다. 너클에 맞아 생긴 상처는 며칠이고 아리고는 했다.

“3조! 3조 빨리 대기해! 곧 출발한다!”

다행히도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빠져나갈 구실이 생겼다. 아트레우스는 슬그머니 빠져나가 자기 조에 섰다.

“보자. 제이든에 한스, 아트레우스에······. 아, 그래. 록시!”

아무래도 편히 가긴 그른 모양이다. 불행히도 록시는 같은 조 명단에 속해있었다.

“뭐야. 네가 같은 조였나.”

불량한 태도로 다가오는 록시를 보며 아트레우스는 조용히 물러날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록시는 ‘어라. 얘가 웬일이래?’라는 표정으로 더 접근해왔다.

“관둬라. 오늘은 조용히 갈 거니까.”

“뭐? 애초에 먼저 시비 걸은 건 너였잖아!”

록시는 으르렁거리며 반문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옆에선 또 시작이라며 소리죽여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시비가 아니라 충고겠지. 난 누구랑 다르게 교양이 넘쳐서 남의 말을 오해하거나 하진 않아서 말이야.”

“너······ 말 다 했냐.”

분위기가 슬슬 험악해지자 동료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잠행이니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했다. 분하지만 그 말에 틀린 점이 없어 록시는 이만 북북 갈았다.

그 표정을 힐끗 보며 아트레우스는 몰래 입꼬리를 당겼다. 가소로워 하는 것도 같고, 언뜻 귀여워 하는 것도 같은 얼굴이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