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 해부 - 대처와 레이건, 신자유주의 (6)
80년대가 왜 그 꼬라지가 됐는지 얘기하기 전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가볍게는 있어야 이해가 갈 테니까 살짝 짚고 가자. 왜냐고? 신자유주의가 기존의 성별분업체계를 기반으로 한 가족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다루면 참 좋은 학문이 경제학이긴 하지만 도무지 재미있게 배울 수가 없는 학문이기 때문에 상당히 타협해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정도로만 다루겠다.
경제학에도 당연하지만 계보가 있다. 아담 스미스로 시작해 신고전학파, 케인즈학파, 자유경제학, 사회주의, 이것저것 나뉘는데 아주 심플하게 나누라면 마르크스와 레닌이 좌파고 그 외 우리가 이름 한 번쯤 들어본 양반들은 대체로 우파다.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르도, 존 스튜어트 밀, 케인즈, 하이에크 모두. 나만 해도 주로 케인즈 학파 이론을 말하는 이유도 엄청나게 보수적인 한국 사람들에게 그나마 타협안으로 가능한 게 케인즈라서 그렇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초기 자본주의 시장은... 솔직히 좀 광기였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자유방임 기조가 기본이었던 만큼 이미 19세기 말부터 유럽은 대불황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32년 독일과 프랑스의 생산이 각각 25%, 15% 감소되는 등의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독일은 나치즘, 이탈리아는 파시즘이 설쳤고 스페인과 프랑스는 인민 전선이라고 반 파시즘 공동 전선이 생기기도 했다. 뭐, 스페인은 이후 내전 상태로 접어들게 되긴 하지만 아무튼. 예전에도 얘기해줬지만 미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카네기, 록펠러, 모건 등 독점기업가 얘기 해줬잖은가. 즉 규제가 없다보니 결국 자본을 많이 가진 놈이 시장을 장악하는 등의 문제를 이미 20세기 초부터 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학파는 이걸 독점자본주의라고 부르는데, 칼 마르크스는 자유경쟁은 필연적으로 독점을 낳는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독점자본주의 이론을 공식화한 건 레닌이지만.
빈부 격차도 벌어지고 불황이 이어지니 마르크스 같은 좌파도 등장하고 사회주의에 이어 공산주의가 흥하고 사람들이 이렇겐 못 살겠다고 파업에 시위를 하니 '아이고 이러단 다 망하겠다!' 싶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복지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더 정확히는 복지를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파리 코뮌이라고, 최초의 노동자 정부를 만들어내버린 전적도 있지 않던가. 물론 기득권층이 군대를 끌고 와서 2개월 만에 학살해버리기는 했지만... 기득권층이 적당히 비기득권층을 챙겨주지 않았다간 권력이고 나발이고 없다는 걸 몸소 배웠다 보니 유럽에선 사회주의 영향이 한동안 강했고, 자연히 이 때문에 복지가 빠방한 쪽으로 갔는데 미국은 공산주의 히스테리를 보여댔던 만큼 아니었다.
이전에도 얘기해줬지만 미국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야 이전까지 만연했던 정부의 자유방임 기조가 버려졌다. 루즈벨트는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뉴딜로 정부 개입을 확고히 하면서 금융 활동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정책을 처음 시작했다.
그렇게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한 10년 정도 케인즈주의(케인스주의도 맞다. 하지만 보통 케인즈 학파 사람을 케인지언이라고 부르니까 케인즈주의라 하겠다.)가 대세가 되어 1960년대 중반까지 서구는 전례없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는데... 다만 1970년대 들어 노동 생산성 증가가 정체하면서 케인즈주의가 제시하는 경제 활성화 정책이 실패하니 당연히 그 권력은 대척점에 서서 '정부만이 합리적이니 정부를 부정하진 않겠지만 평소엔 시장을 자유방임해야 경쟁력을 갖춘다, 작고 강력한 정부!'라고 외치는 신자유주의로 넘어갔는데, 문제는 이 부분이다.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작고 강력한 정부'의 전제부터가 사실... 그렇다. 정부만이 합리적이라니, 정부가 왜 합리적이어야 하는가? 합리적이란 말의 정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가 어떻게 합리적이란 말인가?
엄연히 신자유주의가 국가의 개입과 복지를 긍정하긴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누가 뭐래도 금융화, 규제 완화, 세계화라는 세 개의 축 위에 세워졌다. 금융 피라미드에는 거대한 취약성이 있는데,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던 당시엔 국내/국제적 수준에서 부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적 심급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기존의 규제를 대거 완화해버리면 당연히 유용 자금이 커다란 쪽이, 즉 자본금이 많은 기득권층에게 유리하다. 하지만 규제는 긍정하고 있으니 전적으로 정부의 판단에 따라 좌우될 문제 아닌가. 이 말인 즉, 금융 관리직에게 권력이 생긴단 소리다. 그리고 사실 이미 우리는 이 신자유주의식 규제완화의 후폭풍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잘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 기조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자본가와 금융 관리직 사이의 동맹이 이루어지게 됐다. 이런 금융 관리직들의 보수는 얼마나 신자유주의적이냐, 즉 자본의 편을 들면 들수록 많이 받는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경우를 <Socio-Economic Review> 10권에서 다뤘으니 참고하자. 이제 왜 한국에서 기재부 카르텔이란 말이 생겼는지 이해 갈 것이다. 미국에서도 경제부문의 정부 자문가와 관료였던 양반들은 금융회사나 학계에서 한 자리 해먹지 않던가. 전후가 반대가 되기도 한데, 아무튼 한국에서도 이명박 때 규제완화하던 기재부의 어떤 양반이 신용카드회사들 관리하는 여신금융협회에 간다던지, 아아주 비슷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금융가에 권력이 집중되었고, 이런 신자유주의 웨이브에 한껏 올라탄 대표가 영국, 미국이지만 아시아에선 일본과 한국이다. 금융이 지나치게 거대화 되면 취약점이 가격당했을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걸 우리는 이미 리먼 쇼크로 봤다. 이 리먼 쇼크 때문에 충격받은 경제학자들이(그 이전까지는 공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지연되어서 각 금융시장에 퍼지거나 어디는 아예 영향을 받지 않기도 했다.) 대체 도덕은 어디로 팔아먹었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 같은 기관을 만들었는데, 최상위 1%, 상위 10%가 전체 부의 몇 %를 차지하는지를 계산해서 매년 밝히고 있다.
언급은 잘 안 되지만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매년 발행하는 세계불평등보고서의 다른 비교군은 하위 50%인데, 왜 하위 50%가 얼마나 전체 부에서 남은 찌꺼기를 들고 가는지 얘기하는 이유는 이 하위 50%가 경제위기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를 10분위로 나누는데, 10에 가까울수록 상위층이고 1에 가까울수록 하위층이니 자신의 소득분위가 1~5분위라면 지금 경기침체의 영향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게다.
이전에, 교과서적인 다이아몬드형 소득 분포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 모양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다. 각설탕을 상상해봐라. 이 정사각형 모양의 각설탕의 꼭짓점이 액체에 닿으면 거기에서부터 무너질 게다. 액체는 경제위기고 각설탕은 국민들의 총집합이다. 가장 먼저 경제위기가 닿는 1분위의 사람들이 무너지면, 1분위의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설탕에 액체가 닿는 순간 순식간에 스며들듯 5분위까지 영향이 미친다. 각설탕이 그러하듯 이 사회에서 떨어져나가고, 인식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남아있는 6~10분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있다. 사라진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쪽도 젖을 수밖에 없다. 각설탕이 잔 안에 떨어지면 다 녹아서 잔 밑바닥에 흔적만이 남는 것처럼 같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데,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적극적으로 모르는 척 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기존의 성별분업체제 가정을 무너트렸냐고? 돈이다, 돈.
규제는 사라지고 고용은 불안정하고 국유시설들이 민영화되고 복지가 사라지면 개인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입이라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성 혁명 이후 여성들은 취직하기 시작했다. 시장은 이걸 사랑했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낮았으니 경영자 입장에선 코스트가 줄지 않는가. 여성이라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80년대는 여성들의 소비와 노동을 이용한 면이 있다. 노동을 시작한 여성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으니 시장이 그쪽으로 갈 것 아닌가. 70년대 여성의 권리를 외치며 여성들의 노조 참여율이 유래 없이 높아지면서 재밌는 현상이 같이 나타났는데, 페미니즘이 흥할 때는 패션과 뷰티 산업이 침체기를 맞는다. 하지만 80년대 백래시가 강해지며 커리어우먼이 어떻게 보여야하는지 고민하던 여성들이 다시 지갑을 열었고, 그런 여성들의 돈을 빨아먹으면서 여성의 이미지를 토막내 팔아제끼는 걸로 시장에 돈이 돌긴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할 것 아닌가? 하지만 막 사회 진입에 여성이 참가하기 시작해도 누군가는 동참하지 못하는 법이다. 전업주부가 더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환경 때문에 배우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진짜 해도 괜찮을지 겁나서 상황을 주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하우스와이프와 커리어우먼으로 크게 갈릴 수밖에 없다.
커리어우먼이든 하우스와이프든 실질적 문제는 똑같았다. 가계에 들어오는 돈이 적어서 가정을 지키기가 너무 벅찬데, 복지가 사라지니 애들 키우기는 더 힘들어진다. 일을 하러 나가자니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고, 아이를 돌보자니 돈이 모자르다. 버티자니 이게 얼마나 이어질지도 모르겠고 이미 70년대부터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당시 커리어우먼들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나도 일하는데 남성은 집 안에서 충분히 가사와 양육을 돕지 않는다. 내 아이는 나의 어머니에게 맡겨야 하고, 피로에 쩌든 몸을 하고 와서 가사를 하는데 뭐가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는 내용을 상당수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대처와 레이건은 이걸 모르지 않았다. 기존의 성별분업체제가 흔들릴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은 누구보다 가족주의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데 진심이었다. 대처는 자신이 보수적 여성인 걸 누구보다 이미지로 잘 이용해 먹었지만 레이건은 이보다 한 술 더 뜬다. 미디어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 미디어를 잘 이용해 먹었달까. 레이건은 집에 머무른 여성과 집 밖으로 나온 여성으로 갈라 vs 놀이를 하면서 여성이 여성을 적대하게 만들도록 부추겼고, 완전 잘 먹혔다. 한국에서도 '전업주부 vs 워킹맘' 구도를 써먹은 전적이 있고. 여적여라고 옹알옹알하는 그거다, 그거.
레이건의 '하우스와이프 vs 커리어우먼' 구도에서 멍청한 선택을 한 건 사회진출을 한 커리어우먼들이다. 남편이 정말로 능력이 있다면 집안에서 쉬면서 여유를 누리는 전업주부로 살 수 있는 걸로, 굿올드데이즈 감성을 자알 써먹었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대결구도가 어떻게 영향을 줬냐고? 어... 세월이 좀 지나서 잘 나가는 백인 남성의 트로피가 '집 안에서 언제나 날 위해 웃어주는 하우스와이프'에서 '자기 일 하러 다니는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 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슬슬 힘드니 간단히 말해 레이건 덕에 오히려 전업주부들이 하고 있는 가사 노동의 가치가 완벽하게 폄하되었다.
없앤 복지가 한 둘이 아니라 다 짚긴 그렇고 영국에서 대처가 우유 급식을 없앤 부분으로 잠깐 예를 들겠는데, 엄마아빠가 일하지만 가정형편이 썩 좋지 않은 집안의 아이에게 무상급식으로 주던 밥이 정치인 때문에 사라졌다고 쳐보자. 과한 비유 아니야? 싶겠지만 저들에게 우유는 마시는 빵과 비슷한 느낌이다. 우유가 사라지는 걸 보며 어떤 아이의 보호자는 아이의 밥이 사라짐에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아, 내가 돈이 없으면 내 아이도 밥을 못 먹겠구나 하고. 집 안에서 챙겨줄 게 없으면 굶어야 하니 돈을 버는 일이 중요도가 훨씬 높아질 것 아닌가. 복지가 없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괜히 대처가 죽었을 때 영국인들이 딩동! 마녀가 죽었다! 를 불러제낀 게 아니다.
오늘은 이쯤 하고, 다음 글에서는 백래시가 만들어낸 커리어우먼의 이미지에 대해 다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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