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돕의 히트가 껄끄럽다
트리거 워닝은 필요하다
어그로 가득한 제목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곁다리고, 본론은 트리거 워닝에 대한 내용이다. 일단 해당 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다.
이보라 작가의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이하 당이돕)>를 런칭하며 카카페에서 꽤 푸쉬했고, 푸쉬한 만큼 성적도 좋았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사실들이 껄끄럽다. 분명 잘 쓴 소설이었음에도 십 몇 화 정도를 보는 게 한계일 정도로 불편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소설이 자살과 너무 깊게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당이돕>은 주인공이 자살 시도를 할 때마다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몸이 뒤바뀌면서 상대를 이해한다는 관계성에 집중한 시놉시스를 채택했고, 이런 발상 자체가 대단히 흥미롭거나 기발하지도 않긴 하지만 주인공의 반복되는 자살 시도로 진행되는 시놉시스는 자살 미화로 읽힐 소지가 상당히 높다. 이걸 두고 어떤 사람은 '이게 왜 자살 미화야?' 싶겠지만, <당이돕>은 자살 심리를 너무 충실히 구현해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겪는 심리상태가 거울처럼 반영되어있단 뜻이다.
현대 자살학의 대가 에드윈 슈나이드먼의 연구를 읽어봤다면 이 부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슈나이드먼은 거의 모든 사례에서 자살은 고통으로 인해 일어났으며, 그 고통은 심리적 고통에 속함을 지적했는데 여기서 더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가 정의한 치명성(lethality)이다. 이 치명성은 자살경향성의 동의어이자, 죽음을 고통의 해결책이라고 보는 발상과 관련된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보이는, 심리적 동요 = 고통이 느껴지니 자신의 죽음을 통해 끝내겠다는, 죽음이 고통의 해결책이라고 보는 발상 말이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소설이 불편했다. 심리만 묘사했다면 고증 잘 했다고 하고 넘어가겠지만 어쨌든 주인공이 자살 시도를 반복하는 시놉시스이고, 결국은 주인공의 상황과 입장과 고통을 남주인공이 전적으로 '이해'하고 주인공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으로 주인공의 무력하기 짝이 없는 자기파괴에서 '구원'해줄 게 너무 뻔히 보여서 더 읽을 수가 없었다.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은 모두 자신이 자살로 내몰리고 있다고 느낀다. 자살만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자살 시도를 반복하고 반복하다 어느 날 성공하는 거다. 하지만 자살에 내재된 이상한 역설 또한 존재하는데, 바로 자살하려는 사람들 중 90% 정도가 단서를 남긴다는 점이다. 슈나이드먼은 이것이 "어쩌면 고통을 멈추려는 욕구와 더불어 간섭받고 구조되고 싶은 소원 사이에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양가감정의 일부일 수 있다"고 했다. 이 소설의 이런 부분들이 자살 충동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지점이며 그렇기 때문에 치명성이 높은 이들에게 자살 시도에 대한 미화로 읽힐 소지가 상당히 높다.
때문에 날 제일 불편하게 만든 지점은 이 소설에 어떠한 주의문도 없다는 점이다. <당의돕>의 히트 자체는 딱히 내겐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대중이 크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듯 하지만 어느 계층이든 연령대든 자살은 이미 사회문제다. 한국은 예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높기로 악명 높은데다가, 전부터 글로벌 팬데믹 시대가 되고부터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이 피크를 찍고 있음을 지적해왔는데(진지하게 받아들여라. 현장에서는 '조용한 학살'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시놉시스가 먹힌다는 건 그만큼 여성들에게 우울증이 일상적이고 자살 충동에 대한 공감대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자아내서 더욱 껄끄러워지기도 하고 말이다.
주의문, 달리 말하면 트리거 워닝이 향유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아니다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난 도움이 된다고 보는 입장임을 일단 밝혀두고 마저 이야기를 이어나가겠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100% 통제할 수 없다. 때문에 어느 예기치 못한 순간에 어떠한 폭력이나 사건이 그저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회는 이러한 폭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피해자'라며 안쓰러이 여겨야 할 대상임을 피력하지만 동시에 피해자라는 말에 붙은 비극성을 포르노로 소모한다.
그래서 트리거 워닝이 필요하다. 아직 회복 중인 생존자에게 트리거 워닝은 알러지 경고문 같은 거다. 운이 좋아서 상태가 좋다면 재수 없게 왜 포르노로 써먹냐고 짜증내고 넘어갈 수 있지만 운이 나빠서 심리적으로 취약할 때 노출되면 '아, 남들한텐 내가 겪은 일은 낭만으로 밖에 안 보이는구나'라는 절망을 안겨준다. 그들에게 그런 심리적 고통을 가할 여지를 줄 이유가 하나라도 있는가?
그러니 사전에 자신이 노출되어도 괜찮을지 미리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트리거 워닝은 필요하다. 특히나 로판과 BL 쪽을 체크하다보면 우울증이나 무력감, 자살충동이 빈번하게 나오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데이트 강간 약물이나 데이트 성폭력, 인신매매, 납치, 감금, 위계에 의한 성폭력 등 현실의 범죄를 그대로 따와서 포르노로 사용하는 경우들도 확인할 수 있는데... BL 쪽은 그나마 최소한의 주의문을 사용하고 있고 19금 제대로 박고 있으니 별 말 않겠는데 로판에서도 좀 주의문을 사용했으면 싶다. 특히나 약물을 이용한 범죄는 증거 확보가 어려워서 생존자들이 더 고통받고 있는데 최소한 그들이 피해갈 수 있게 하자는 게 그리 대단한 요구는 아니지 않은가.
물론 어떤 이들은 트리거 워닝을 싫어할 거다. 트리거 워닝의 기본 목적이 '구매하지 않고 피해 가기 위함'이다 보니 판매에 도움 안 된다는 이유로 싫어할 수도 있을 법하다. 트리거 워닝을 쓰지 않고도 생존자들의 심리를 자극하지 않게 하는 방법도 물론 있긴 하다. 포르노로 안 써먹으면 된다. 아주 쉽지 않은가. 그들에게 발생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발생한 이상 반드시 제재되어야 하며, 그들의 미래가 붕괴되지 않을 거라고 선명하게 보여준다면 된다.
인생은 긴데 평생을 '피해자'로 살아가는 건 당사자에겐 정말로 기분 더러워지는 음험한 기대다. 생존자들은 기본적으로, 가해자들에게 법적 제재가 가해져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 당해 어느 날 갑자기 맞닥트릴 일이 없길 원한다. 그들은 정의가 집행되길 바란다. 그런 그들이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앞으로의 일생을 잡아먹을 비극으로 탈환시켜 타인의 눈요깃감으로 쓰이는 걸 어떻게 좋아하겠는가. 이 사회는 지독히도 미온적이지 않던가.
이런 식으로 로맨스 코드를 거친 미화를 하는 거야 빈번한 일이라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타인의 불행을 포르노로 쓰지 말라고 해봤자 강제할 방법도 없거니와 안 들을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주의문은 더 필요하다. 현실에서 용인될 수 없는 요소가 있으니 가상으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일종의 암묵적 동의를 주의문을 통해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 쓸 거면 19금 똑바로 달고 쓰고 이거 좀 오독이나 미화의 여지가 있어보인다 싶으면 주의문 하나라도 붙이길 바란다.
사족 1.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은 실행에 앞서 공통적인 행동적 징후들을 보인다. 자신이 평소 소중히 여기던 물건들을 주변인들에게 선물하거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을 보호하는 걸 포기하고 위험하거나 무모한 행동을 일삼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그런 상태일 때 이들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건 오히려 악화하기 쉬우니 가급적 감정적 반응을 하지 말고 자살 하려는 거냐고 되물어보는 걸로 자살시도를 잠시 유예시킬 수 있다. 그런 다음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에 전화해보길 권한다. 주변인의 입장에선 당황하지 않는 걸로 최선을 다 한 거다.
사족 2. 성범죄가 발생하고 나서 증거를 당사자가 수집하는 건 혼자하기엔 심하게 벅찬 일이다. 패닉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범죄현장에서 빠져나와 몸을 씻고 싶어하는 건 본능적인 반응이지만 동시에 증거를 오염시키기에 이를 범죄자들이 이용하기도 한다. 가해자가 먼저 현장을 완전히 떠났다면 그 자리에서 해바라기 센터에 전화하는 걸 권한다.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자를 대상으로 365일 24시간 상담지원, 의료지원, 법률/수사지원, 심리치료지원 등을 지원해준다. 흔히 씻으면 안 된다, 사건 당시 입고 있던 옷을 보관해야한다 까지는 알아도 옷을 하나씩 분류해서 증거로 쓴다던가 비닐봉투에 넣으면 증거가 오염되니까 종이봉투에 넣어야 한다던가 하는 부분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바로 전화해서 지원 받는 게 제일 낫다.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면 도망쳐나오는 게 급선무다. 씻지만 않는다면 증거는 남아있기 마련이니 근처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해바라기 센터에 연락하자. 요즘 약물들은 몸에서 배출되는 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범죄 직후 약물 때문에 구토감을 느끼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을 수 있는데 변기 물을 내려 하수구로 다 흘려버리지만 않도록 주의하면 된다. 시간이 이미 상당히 흘렀으면 분해되어 증거 효력이 없을 수 있지만 억지로 참아도 좋을 게 없는 게, 이 약물들은 인체 시스템에 강한 충격을 주기 때문에 배출하려는 건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니 억지로 참아서 몸에 더 오래 잔류시키면 후유증이 심해질 수도 있다. 주변인들을 위해서라도 해바라기 센터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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