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판 시장에 대한 전망

이미 해줄만큼 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안 읽는 건지 아니면 이해가 잘 안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썼는데도 꾸준히 질문이 들어와서 다시 쓴다. 미리 경고 해두는데, 오늘은 글 내용이 상당히 날카롭다.

로판 시장의 전망은 극도로 어둡다. 이러다 망해서 장르가 아예 쭈그러들지 않나 싶을 정도로 어둡다. 그럼 왜 어려울까.

먼저, 경제 상황 자체가 좋지 않다. 한국 금리는 미국 금리 따라 가기 마련인데 이미 금리는 역전되어있다. 한국보다 미국이 금리가 더 쎄니 한국에 박아뒀던 외국인들의 자산이 미국 시장으로 돌아갈 거 아닌가. 시장에 있는 자본 자체가 줄어들면 유동성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더 쉽게 말하면 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나 채권을 팔고 나가버리니 굴릴 수 있는 돈의 규모 자체가 줄어드니까 기업들은 더욱 투자를 안 하고 노동자를 쥐어짜기 마련이고 당연히 이 과정에서 환율도 급등할 테니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드는 생활비는 훨씬 많이 들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석유가 나오나, 가스가 나오나, 아니면 전세계가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에 추가적 제재방안을 고안하고 있는데 친환경 발전으로 가고 있길 한가? 제조업은 죄 수입해서 가공해 파는 형태고 기후가 극단적이라 냉난방 없이는 살기도 힘들다. 거기에 식량 자체수급율도 싱가폴 다음으로 낮아서 수입해서 먹는 식량들 가격이 죄다 올라가니 밥 한 끼 사먹기 힘든 사람은 정말로 굶어서 죽는 일도 발생한다. 아니면 추워서 죽거나, 더워서 죽거나, 과로나 영양부실로 건강이 악화되어 죽거나 한다.

이렇게 경기 침체가 뻔히 예상될때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문화예술에 들이던 돈부터 줄인다. 그럼 당연히 웹컨텐츠도 타격을 받는다. 내가 이 얘기를 그동안 했고 트위터에서도 했다. 암흑기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금 현업인 분들은 이미 체감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체적인 웹소설 판매량이 대충 6월부터 슬금슬금 떨어지기 시작했을 거라 예상한다. 그것도 장르와 상관 없이, 전반적으로.

시장의 매출 규모 자체가 줄어드는데 이렇게 되면 주식시장에서 흔하게 보는 일이 웹소설 시장 내에서도 발생할 거다. 시장 자체에 돈이 많이 들어올 때는 경쟁력이 없어도 어느 정도 연명이 가능했던 좀비와 같은 기업들이 죄 죽어나가면서 실업문제가 증가하고 경쟁력이 있는 곳만 살아남아서 초토화된 이후의 시장을 독식하는 일이 말이다. 

웹소설로 치환해서 말하면 기존의 네임드 작가들은 매출 타격이 있어도 심각하지 않지만 신인작가는 그 어떤 성적에 대한 보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전엔 일단 사서 찍먹해보던 독자층이 결제를 줄이고 훨씬 더 까다롭게 고른단 소리다. 작가들에게 프로모션을 꾸준히 살펴보길 권하는데 원래도 기존 스테디셀러를 파는 프로모션은 있었지만 신작과 스테디셀러의 프로모션 비율이 점점 스테디셀러 쪽으로 치우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게다가 웹컨텐츠 산업의 특성도 더해진다. 꽤 저렴한 가격으로(번역가들에게 언제 제대로 돈을 쳐줬던가, 아니면 다른 사업들처럼 생산할 때 물적 자산이 많이 필요로 하던가, 아니면 작가에게서 수수료를 조금 떼고 있는가) 해외시장 진출을 충분히 노릴 수 있단 소리다. 국내 시장은 침체되고 환율은 미쳐 날뛰는데 외환을 벌 가능성이 있다? 왜 해외진출을 안 하겠는가? 사업비용도 여타 산업에 비해서는 저렴하기 짝이 없는데. 그럼 이 과정에서 또 기성 네임드 작가만 이득을 본다. 히트칠 수 있을지 어떤 보증도 없는 소설을 미쳤다고 푸쉬하겠는가? 국내 성적이 좋았던 소설들 안에서 이게 해외시장에서도 먹히겠다 싶은 걸 골라서 푸쉬하지. 왜 그동안은 작가들이 그렇게 요구해도 귀찮다고 내던져두더니 요즘 들어 카카페니 네이버가 해외 불법번역본들을 조져야겠다고 나서겠는가. 진출하고 싶으니까 그러지. 이 시그널은 몇 달 전부터 이미 있었다. 마침 팬데믹 덕분에 국가 이미지도 좋아졌으니 문화산업의 진출도 수월해졌겠다, 이 생각 못 할 정도로 바보던가. 

출판사들도 투자를 꺼리게 된다. 종이책을 찍어내지 않는 출판사는 그나마 지금의 원자재 가격 상승 지옥에서 빗겨나가고 있긴 하지만 출판사들에게 해외시장 진출은 전적으로 플랫폼의 픽에 좌우될 텐데 플랫폼 눈치를 보지 뭣하러 시장에 대한 장기적 안목을 갖추나. 어쨌든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서 작가의 노동강도나 퀄리티의 문제는 알 바 아니고, 유치하고 말초적이어도 팔면 그만이라고 달달 볶아대기 바쁘겠지.

그리고 작가들이 늘 하는 소리는 돈이 중요하단 말 아닌가. 물론 돈은 중요하다. 살아가는데 필수적이고 판매량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 방향성이 제 살 잘라먹기라는 생각은 못하고 시장논리에 충실하겠다며 열화에 열화를 반복한다. 그래도 되긴 하는데 그러다 장르채로 아예 망해도 누구도 구제해줄 이유가 없다는 건 잘 알고 하는 거라 믿겠다.

내가 보는 전망은 이런데 작가들은 시장논리에 충실하겠다며 변명을 반복한다. 딴주머니를 차고 있어야 작가가 자유롭게 소설을 밀고 나간다, 이 시장의 주요 고객층은 40~60대다, 로판은 유치한 맛이고 그거 싫다는 건 작가로서 마인드가 덜 된 거다, 10~30대는 돈이 안 된다, 페미니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러는데... 이런 변명들이 내게는 무슨 말로 들리는 줄 아는가? 너희도 충분히 트렌드 세터가 될 수 있다고 했더니 트렌드 팔로워로 꾸역꾸역 살고 싶다는 소리로 들린다.

나 또한 40~60대가 이 시장의 큰손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근데 이 말인 즉, 대여점 시절부터 장르소설을 읽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주요 고객층이란 소리고 신규 고객의 유입이 있긴 있단 뜻이기도 하다. 문화예술말고도 대부분의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주요 고객층은 2030여성들이고 마게팅에서 제일 공들이는 계층도 바로 2030 여성이다. 왜냐. 2030여성들이 유행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핫해지면 거의 모든 계층에서 한번씩은 같이 소비하게 된다. 심지어 자발적으로 영업까지 뛰어준다. 마케터들이 제일 눈에 불을 켜고 '너희들은 이걸 사야해! 어떻게 이걸 안 살 수 있어! 유행을 모르네!'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으레 다른 엔터 산업에서 그러하듯 젊은 여성층에서 오는 구매력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단 생각은 안 드는가?

거기에 더 있다. 더 젊은 세대가 소비자층으로 유입되지 않으면 기업들도 그럼 기존 고객들에게 충실해져야하니 다른 방향을 모색한다. 좀 더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 편의성이 좋도록 집중하는데... 실버 산업 자체는 뭐 전망이 나쁘지 않다지만 문화예술에서 고연령대를 고려하는 모습을 나는 살면서 트로트 유행 딱 한 번 밖에 본 적 없다. 웹소설도 그쪽으로 발을 떼겠다면? 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플랫폼들은 TTS 프로그램 지원이나 폰트 크기 지원도 제대로 안 한다. 거 참 퍽이나 프렌들리하다.

작가가 나는 당장의 생계가 중요하니 40~60대를 타게팅 해서 쓰겠다면 뭐 그거야 작가 맘이다.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근데 그 행동에서 장기 전망이 전혀 없다는 건 부정하지 마라. 플랫폼은 고연령대를 대상으로 영업을 할 생각이 있다고 판단하기라도 했나? 영어덜트 픽션도 젊은 애들을 대상으로 하던 걸 어른들도 같이 념념 먹게 된 건데 처음부터 4060을 타게팅으로 쓴다고 갖은 보수성을 꾹꾹 눌러담아놓고선 매대 가득 채워놓으면 젊은 애들이 소비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젊은 계층이 다 나가떨어지면 실버 산업으로 가는 거지 뭐 별 수 있겠는가. 뭘 어떻게 해서 나가 떨어진 소비자층을 다시 불러올 건가? 세상에 즐길거리가 차고 넘치는데다가 그 즐길거리들은 젊은 취향을 맞추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런데도, 굳이 소설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백날 이벤트 캐시 뿌려봐라. 로판 내에서 젊은 층이 볼 게 없으면 그나마 있는 다른 장르로 도로 다 빠지지. 그럼에도 하겠다면야 뭐, 잘 해봐라. 안 말린다. 

이미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층을 위한 장르 대표로 로맨스가 있고 정작 그 로맨스도 상당히 젊어졌는데 로판은 장르 정체성이 대체 무엇인가? 왜 독자들이 굳이 로판 섹션에 들어와서 신작을 훑어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기떡승떡전떡떡떡? 유년의 상처가 없는 척 해주는 자위? 덜 역겨운 하이틴 로맨스? 현실 도피? 그럼 지금은 로맨스의 하위 장르화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왜 젊은 층이 상당히 빠져나갔는가?

이렇게까지 그놈의 시장논리 프렌들리한 판단 아래 이쪽이 더 도움이 된다고 짚어줬는데도 모르겠다면, 그냥 모르고 싶은 거다. 알아서 해라.

다른 방향으로 나가길 권하는 건 이렇듯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위에서 말한 장기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진심으로 작가들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은 대한민국에서 내내 저급한 문화로 취급받아왔다. 어떻게 보면 가장 날것의 사회와 대중이 그대로 반영되어있는데 그 어떠한 가치 없는 양 홀대 받는 모습이 내내 꼴보기 싫었고, 그런 주제에 상업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는 '쫌 쓰레긴데 어쨌든 잘 팔리는 쓰레기임ㅎ'하는 논조가 기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 빡치게 만드는 상황인데 여성들이 장르를 주도하니 싫다고 빼애애액 디비져서 기어코 로판이 탄생했고 여성은 무조건 로맨스를 좋아한다며 러브라인을 꼭 넣으라고 하는 것도 속되게 말해서 꼴받는데 분명 존중 받아야 할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는 상업성이라는 미명하에 후려쳐져 없어도 되는 양 폄하 당하는 것도 지겨워 죽겠다. 여성들이 쓴 소설이 폄하 당한 역사는 <82년생 김지영>이 보여줬듯 현재 진행형인데 장르에선 어떻던가. 로맨스는 저질 포르노 취급이고 로판은 대가리 꽃밭 취급이다. 분명히 여기도 반짝이는 작가와 소설들이 있는데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장르소설에 정말 아무 가치가 없는가? 전업 장르소설 작가는 상업성에 충실해야하니 그 어떤 고찰도 필요 없는가? 장르소설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소설이다. 상업성이란 건 그런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장르소설에 대중의 사랑을 받을 만한 최소한의 고찰을 넣으라는 소리가 상업성을 내버리라는 소리로 들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변화가 두려워서 싫다는 건가, 아니면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없어서 안 하겠다는 건가? 여성향을 쓰는 작가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냔 말이다. 애초에 그럴 능력이 없어보였으면 해보란 소리도 안 했다. 

정말로 능력이 없어서 못 한다고? 그럼 애쓸 필요 없다. 독자 또한 자신의 니즈를 충족시킬 다른 작가와 다른 장르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하다못해 판타지도 여성들 코인 만져보더니 나름의 미소지니를 추스리려고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마당에 정작 로판에서는 안 하겠다고 하겠다면 떠나기 마련이다. 이미 상당히 떠났고. 페미니즘 덕에 좀 무던히 읽을만 하던 소설들 뒤로 백래시의 영향을 듬뿍 담은 소설들이 이어졌지 않던가. 그런데 페미니즘을 담으려던 시도가 실패했다고? 시도는 성공적이었는데 후속처리가 실패한 거다. 

그리고 4060이라고 페미니즘 없이 포르노만 좋아할 거란 예측도 상당히 글렀다. X세대가 당장 40대고, 포르노는 그냥 포르노 목적으로 소비되는 거지 왜 나이 든 여성이라고 자신의 직업이나 성취에 대한 갈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주변에 워킹맘 없나? 그분들이 자신의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 하는지 못 봤나? 가정주부인 분들을 위로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시도가 아닌가? 연령대가 높은 층을 타게팅하겠다고 치기에는 정녕 그들을 위한 스토리도 아니지 않은가.

여성이 향유하기 때문에 철학과 변화가 없어도 괜찮은 하부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이라고 철학을 이해 못하는 거 아니다. 여성이라고 변화를 마냥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이라고 사적 가치가 있는 글을 못 쓰지 않는다. 여성이라고, 대체 왜 여성의 감정과 성취를 하찮게 취급하는가.

지금 같이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언제나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도태 당하는 건 이 피라미드의 제일 밑에 있는 작가다. 작가가 무슨 자격증도 아니고 데뷔한다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업계도 아닌데 데뷔에만 목을 매고 상품성에 집중하겠다며 질적 열화를 계속 하겠다고? 대여점 시절 테크트리 생각난다고 몇 년째 얘기하고 있고, 이미 상당히 위험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본다. 

냉정히 말해, 나는 로판 장르가 박살나버려도 피해입는 사람이 아니다. 독자도 그렇게 심각한 피해를 보지 않는다. 즐길거리가 하나 줄어든 것에 불과하니. 이 선택은 순전히 작가의 몫이고, 감당도 작가의 몫이다. 그저 잘 생각하고 선택한 길이길 바란다.

사족 1. 쓰다보니 그라데이션으로 분노가 올라와서 꽤 거칠다. 순전히 호의와 애정에 기반해서 아무 대가도 없이 하나 하나 분석해서 떠먹여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반복되다 보니 쓰는데도 좀 지쳐서 그렇다. 아마 이번이 대가 없는 글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는데, 당분간 방향성을 좀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

사족 2. 이건 좀 상관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어서 덧붙이는데... A.I.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가 들어가면서 대체될 수 있는 직업군 중 하나가 소설가다. 에이 설마~ 싶겠지만 지금처럼 열화를 잔뜩 한 고정된 시놉시스를 A.I.가 왜 못 찍어낼 것 같은가. 충분히 데이터만 때려넣으면 얼마든지 된다. 시 쓰는 A.I.도 있는데 기술 발전과 데이터 누적이 된다면야, 못 할 거 없다. 지금 당장은 무리더라도 언제고 질적상승이 반드시 필요해질 때도 오긴 올 거다. 얼마나 미래에 올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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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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