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판타지 속 로맨스 서사와 페미니즘(4)
로맨스 속 고착된 여성 이미지의 기원, 신여성
로맨스를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보면 이 질문으로 시작하는 게 합당하다. 여성은 남성을 기본적으로 사랑하는가? 오늘날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갈릴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긍정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부정할 것이다. 하지만 로맨스는 그 과거에서부터 존재한 맥락상 이 질문을 전적으로 긍정한다.
2, 3편을 통해 소설에서 여성 작가가 나타난 배경과 대중문화가 구축되어진 배경, 그리고 장르와 장르적 이미지, 여성 캐릭터에게 고착되어있는 이미지에 대한 역사와 경제적 배경이 어떻게 구축된 건지 설명했으니 이를 배경지식으로 이해했다고 상정하고 좀 더 로맨스와 여성 이미지 심화버전으로 넘어가겠다.
기사도 문학 안에서 여성이 남성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대체로 '곤경에 빠졌을 때 도와준 구원자'라서다. 여성에게 권리도 뭣도 없다보니 누군가 구원해주지 않으면 여성의 곤경은 언제나 저항할 수 없는 재해에 가까웠던 점도 있지만 자부심을 느끼는데 있어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들이 감사를 표할 때만큼 명확해보이는 때도 없다. 이 구원자적 남성에 대한 이미지는 당연하지만 성별과 무관하게 현대까지 이어진다. 그리 느끼는 게 당연한 감정이니 느낄 필요가 없단 건 아닌데 그래서 더 이 기사도 문학 속 귀부인의 존재는 트로피였단 얘기다. 그리고 이 기사와 귀부인의 이미지는 쭈욱 이어지게 된다. 그러다 19세기 들어 여성작가들이 두각을 드러내며 로맨스 안에서 바리에이션이 약간 더 늘었다.
1813년 할리퀸 로맨스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오만과 편견'이 처음으로 부잣집 도련님과 평범한 서민이지만 아름다운 여성이 연애하는 상을 그려낸다. 엘리자베스 베넷의 외모가 예쁘긴 하지만 당시 사회상에 있어 결혼을 결정할 때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나름 혁신적이었던 면이 있었다.
일전에 기독교에서 결혼을 신 앞에서 하는 맹세라고 봐서 정부와 사생아에 대한 권력을 안 주는 예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서양이라고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 아니었던 건 또 아니다. 굳이 따지면 여성 한 명에 한 번 밖에 안 되는 가문간 결합 찬스라고 보는 게 맞다. 정 결혼하게 된 여성이 맘에 안 들면 미쳤다고 해서 어디로 보내거나 은근슬쩍 죽이는 일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다. 이혼하기 위해 종교도 만들었는데 뭔들 못하랴. 종교의 권위가 강하면 종교 눈치 본다고 함부로 못 하는 거고 종교의 권위가 낮아지면 은근슬쩍 하는 거다. 그렇게 '오만과 편견' 이후로 기사와 귀부인으로 대표되던 구도가 부자와 예쁜 여자로 서서히 변해간다.
1847년에 나온 '워더링 하이츠'에서는 격정적이고 파멸적인 사랑에 대한 묘사가 선명하다. 여성주인공은 그야말로 결핍 투성이고 모든 난리의 원인제공자도 여성주인공의 언행 때문이며 남성주인공도 넹글 돌아있는 면이 분명한데... 어떤 의미에선 지금도 흔한 집착과 광기 어드메의 원조긴 하다.
같은 년도에 나온 '제인 에어'에서는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주인공 상이 나온다. 그리고 미남이 아닌 남자와 결혼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는데... 크레올 인종차별 때문에 오늘날엔 중요도가 낮아졌다. 또 종교의 신실함이나 출신을 통해 가지는 전형적인 우월심리가 너무 선명하다보니 좀 더 보수적이었을 그 시대의 독자층이 좋아했을 면도 있다.
괜히 3대 로맨스 소설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서 이렇게 지금의 로맨스 소설에서도 이 소설들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시대 배경을 생각하면 이때는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성이 사랑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게 혁신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나면 권리 자체가 없으니 결혼이 생계고 연금이며 사회적으로 살해당하지 않을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도 그런 현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이런 현실 위에서 여성이 사랑을 따르는 게 당시엔 혁신 맞다.
하지만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의 말을 빌려 지적하자면 여성작가들의 로맨스가 가부장적 기준을 전복한 건 사실이나 동시에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용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소설들에서 여성은 사회적 신분을 가진, 우아한 귀부인에서 벗어난 근대 개인으로써 여성의 모습을 제시하긴 하지만 동시에 당시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진정한 여성상(True Womanhood)'에서 대단히 벗어나지는 또 않는다.
진정한 여성상말고도 가정적 이상형(Domestic Ideal)이라고도 불렀는데, 바바라 웰터가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판매된 잡지나 소설, 요리책 등을 분석해 당시 사회적으로 요구받은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수집해 붙인 명명이다.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새로 요구되었던 여성의 모습은 신실하며 순결하고 복종적이며 허약하고 가정에 종속되어 아내의 역할을 다하는, 지독하게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모습이었다. '제인 에어'의 제인이 여기에 유난히 잘 들어맞는 만큼 같은 시기에 나왔던 '워더링 하이츠'보다 더 많이 팔리긴 했다.
이 여성상은 이후로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초기 페미니즘이 발달해가는 과정 중 19세기 말부터 신여성(New woman)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신여성 하면 미국 영향을 세게 받은 덕에 1920년대의 플래퍼 패션의 여성들을 떠올리지만 원래는 19세기 말부터 나타난 교육을 받은 페미니스트 여성, 직업을 가진 독립적인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건 아일랜드 작가 사라 그랜드지만 대중화 시킨 건 영국계 미국인 작가인 헨리 제임스다. 그가 연재한 소설 데이지 밀러의 주인공이 바로 신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신여성의 정의 자체는 개인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삶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한 여성들을 총칭하는데... 동시에 명확한 계급성을 가진다. 사회의 특권층에 속한 여성들을 위한 고등 교육과 그런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 노동자(예를 들자면 1853년부터 시작돼 3년간 이어진 크림 전쟁에서 활약한 나이팅게일 같은 여성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초기 페미니즘이 말하던 여성의 권리는 백인 중산층 여성만이 가질 수 있다는 한계가 이리도 선명하다. 그래도 신여성들은 시대상에 비해서는 독립적이며 나름의 자율성을 발휘했다. 현실의 신여성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써 적극적으로 노동을 하고 문학, 연극 같은 예술 분야와 가정에서도 활동 영역을 가졌다. 장르소설에서도 이 신여성상이 나오는데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그렇다.
여성참정권 운동으로 여성에게도 대학에 다닐 권리를 쟁취하는데 성공하고 그렇게 신여성은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전문지식에 더 가까워졌다. 모든 사람이 돈이 많거나 교육받고 싶어하진 않기 때문에 그들 중 일부가 대학으로 진학해 변호사, 의사, 언론인, 교수 같은 지금도 존경 받을만 하다 치는 직업을 쟁취한다. 이렇듯 신여성들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집단이기에 이 시대 신여성들의 이미지는 두 가지 이미지로 남는다. 하나가 서프러제트고 다른 하나가 바로 깁슨 걸이다.
서프러제트가 얼마나 남성들의 히스테리가 가득한 방식으로 그려졌는지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거고, 그럼 깁슨 걸은 뭐냐. 신여성들의 모습 중 남성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아름다운 부분만 따서 그린, 펜화가 찰스 다나 깁슨의 그림에 당시에 유행했던 여성들의 패션 스타일이 반영된 여성 이미지가 바로 '깁슨 걸'이다. 주로 몽환적이되 세련된 미모와 아르누보 스타일의 S자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물론 코르셋을 꼭꼭 조여 착용했다)과 풍성하고 긴 머리를 높게 올려묶은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대체로 관능적인 몸을 했으나 허약한 숙녀의 느낌이 강해서 당시에 금방 인기를 얻은 이미지였다.
깁슨 걸 이미지에 남성들이 부여한 설정은 이렇다. 아름답고 가녀린 몸매를 가졌으며, 대학에 다니고 좋은 배우자를 얻기 위해 경쟁하지만 여성참정권 운동에 결코 참여하지 않는 신여성이다. 설명만으로 이게 얼마나 불가능한 헛소리인지 알만하지 않는가. 소위 말하는 개념녀에서 별 반 다를 게 없다. 하여간 발전이 없다, 발전이.
얼굴은 예쁘고 몸매는 죽이고 구애한다고 돈 크게 쓰지 않아도 될만큼 독립적인 성격이지만 결혼을 통해 가정에 종속되어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든 역할을 다 하는 여자에 대한 염원이 이때부터 문화적 이미지가 된 셈이다. 깁슨 걸은 남성 화가의 시선과 표현을 빌려 신여성들의 욕망을 훼손한 덕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여기저기 뿌려진다.
여기서 중요한 게... 깁슨은 미국인이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에서 영향력을 따지면 영국보다는 미국이 더 강하다. 이 이미지가 미국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쫓아보자.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미국에서 신문과 잡지에 실린 깁슨 걸의 이미지는 어마어마하게 팔렸다. 이 시절은 잡지의 영향력이 강했는데 잡지는 물론 상품에 그려지기도 했다. 즉 남녀 모두에게 먹히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이 깁슨 걸의 이미지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여성들의 노동이 흔해지며 몰락했지만 이런 식으로 여성의 물화된 이미지는 세계대전을 통해 곧장 '핀업 걸'로 넘어간다.
1차 대전의 참호전 양상에 대해 얘기했던 이유가 이 때문인데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군의 사기를 유지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 당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던 우드로 윌슨은 남성 징집에 도움되는 시각적 자극을 만들기 위해 Division of Pictorial Publicity라고 해서 일종의 그림홍보부를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핀업 선전(Pin-Up Propaganda)를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 시기의 핀업 프로파간다 중에서 대표할 수 있는 건 하워드 챈들러 크리스티(Howard Chandler Christy)가 그린 해군 모집 포스터다. 처음 시작은 비교적 2차 세계대전 때보다는 얌전한 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성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게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되자, 2차 세계대전으로 가면 아주 그냥 미쳐날뛴다. 이 부분은 조금 뒤에 얘기하자.
1차 세계대전이 1918년에 종식되고 1920년대 플래퍼가 등장한다. 플래퍼들의 등장은 어떤 의미로는 예정되어있었다. 남성이 전쟁에 나간 상태에서 자유를 맛본 여성들이 전쟁 끝났으니 됐다고 자유를 포기할 리도 없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재즈를 듣고 담배 피고 술 마시고 자동차를 몰고 여성들이 요구받던 사회적, 성적 규범을 무시하는 여성들이 나타났다. 플래퍼란 이름 자체가 1920년에 나왔던 무성 영화 플래퍼(the flapper)에서 따왔는데, 이 플래퍼들이 어디에서 기원했냐를 따지면 또 깁슨 걸이다. 남성들은 깁슨 걸을 보며 '아냐 그래도 서프러제트는 아닐 거야'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는데 여성들은 깁슨 걸을 보며 집 밖에서 일하며 자신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던 '신여성'을 롤모델 삼은 거다.
당시 시대 배경을 앞선 글들에서 설명했으니 알겠지만 '여자는 집에서 다시 애나 봐'란 백래시가 강해지던 때에 플래퍼가 받아들여질 리도 없었다. 플래퍼의 행동이 당시 사회 기준으로 헤프단 딱지가 붙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페미니즘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성의 성을 아예 부정하던 세상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 선택의지, 사회적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을 실천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플래퍼가 전통적인 가정을 없애버릴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지만... 플래퍼가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플래퍼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여성참정권을 얻어내기 위해 싸웠던 서프러제트들도 플래퍼를 어리석다고 여겼고 어떤 면에서는 승리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싸워 얻어낸 권리가 플래퍼들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고까지 여겼다.
결국 플래퍼는 그렇게 결혼할 만한 여자 타입이 아니라는 딱지가 붙었고, 30년대 대공황 안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토목사업이기에 경제난 속에서 만들어진 일자리는 전적으로 남성들의 몫으로만 떨어졌다. 또 여성들이 정치에 전면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니 법적으로도 백래시가 발생해서 1932년 미 의회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노리고 '한 가족 내에 두 명이 공직에 고용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시켜버린다. 1935년에야 이 법이 무효화되는데 그동안 해고된 1603명 중 3분의 2가 여성이었다. 당시 남녀의 임금 격차는 30~50% 정도 났는데 노조조차 여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에서 꺼지길 바라는 건 마찬가지라 여성노동조합연맹은 미국노동총동맹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 했다. 그렇게 플래퍼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한국의 1920년대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인 한국에서도 신여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한국의 신여성은 사회상을 돌아보면 한계가 너무 선명했다. 서구의 영향을 받아 중국과 일본에 생겨났던 신여성이 10년 정도 뒤에 한국으로 들어온 건데 한국의 신여성들은 1910년대에 형성되기 시작해 1920년대에 사회에 진출해 신여성론을 전개시켰다. 하지만 한국의 신여성들은 여성운동가와 큰 차이점이 있어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먼저 플래퍼와 비슷하게 철학이 부족한 채로 변화만을 쫓다보니 당시 사람들에겐 신여성들의 행동이 특권층의 난잡한 사생활으로 비춰졌다.
한국의 여성운동가들은 이 시기 일제강점기다 보니 대중계몽과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화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또 사회주의이론과 관련된 체계적인 여성해방 사상을 전개했던 점 때문에 신여성론자들이 누리지 못했던 사회적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의 신여성은 사회로부터 고립당해 도태되었고, 그들의 말로 또한 씁쓸한 흔적으로 남았다. 당시엔 사생활 침해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생활은 신문을 통해 가십으로 다뤄지긴 하나 이들과 관련된 남성들에겐 비판이 전혀 없었다. 지금 사회 또한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여성에게만 훨씬 가혹한 비난과 위협이 존재한다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세상 인식이란 게 정말 느리게 변한다는 걸 깊이 새겨두자.
자, 이제 신여성에서 유래한 깁슨 걸에 이어 핀업 걸, 더 정확히는 핀업 프로파간다로 넘어가보자.
2차 세계대전 또한 대중의 멘탈을 갈갈이 찢어놨다. 참호전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번엔 공습을 통한 폭격이었고 대량의 학살도 자주 있었다. 특히 이때 나온 '전략 폭격'이란 개념이 민간인과 군인의 구분을 없애며 현대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데... 전략 폭격이 무엇이냐, 전략상 중요한 군사 시설과 산업, 정치, 교통의 중추 지역을 표적으로 하는 항공폭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즉 항공기를 이용한 폭격의 타겟이 군사 목표나 시설만이 아니라 민간 시설을 포함한, 아예 도시 전체에 가해진다는 얘기다. 전쟁이 터지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시체도 못 남기고 죽는 일이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즐길 수가 없다. 윤리관이 팍삭 맛가있는 범죄자나 예비 범죄자가 아니고서야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데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죽여야만 했던 상황이라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2차 대전 당시 전투병들을 면접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투에 참여한 병사 중 불과 15~20%만이 적을 향해 총을 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2차 대전까지 내내 이어져왔다. 그러다 한국 전쟁 때 50%, 베트남 전쟁 때는 90%까지 그 수치를 올리는데 성공하는데... 이에 비례해서 PTSD를 호소하는 병사의 수가 폭증한다. 미군에서 이렇게 수치를 올리기 위해 게임이론을 연구했다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고 말이다.
어쨌든, 2차 세계대전이 터지니 남성들은 징집되었고 여성들은 다시 노동을 장려받았다. 이때 핀업 프로파간다는 남녀에게 다른 이미지를 제시한다.
남성들을 향해 제시한 핀업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바로 '핀업 걸'이다. 부드럽게 컬이 들어간 머리카락, 장미빛 뺨, 흠 하나 없이 아름다운 얼굴, 코르셋 없이도 S자가 유지되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큰 가슴-잘록한 허리-탱글한 엉덩이를 가진 몸매의 여성이 성적으로 노출되는 모습을 우연히 잡아낸 것처럼 묘사된 이 핀업 걸 이미지는 순식간에 미 전역의 광고, 달력, 잡지 표지에 등장하게 된다.
당시의 남성들은 그 가상의 여성 이미지를 보며 '자신이 지켜야할 대상'이라고 상상하며 욕망했고 그렇게 미국은 전선인 유럽에 자신들의 물건을 팔아치우며 야금야금 문화산업을 야금야금 잡아먹었고 있었다. 핀업 걸 유행은 제2차 세계 대전 내내 계속해서 높아지기만 한다. 그리고 핀업 걸 이미지는 그 인기에 비례해 점점 더 노골적으로 야해진다. 징집 포스터와 전쟁 채권 구매를 홍보하기 위한 달력, 노즈 아트라고 비행기에다 그리는 그림까지 헐벗은 여성들의 이미지가 일상적으로 넘쳐나게 된다. 이 핀업 걸 이미지에 기반되어있는 심리는 근본적으로 기사와 귀부인 구도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지켜줄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자신의 남성다움을 증명해 얻을 트로피로 보게 하는 남성을 위한 이미지는 이렇게 완성된다.
미술사 교수인 마리아 엘레나 부젝(Maria Elena Buszek)의 말을 빌려 핀업 걸이 현대 여성의 아이콘으로 스스로를 구성할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여성을 성적대상화한 점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의미를 요만큼도 부여할 수 없다. 르네상스 명화도 마찬가지인데, 인간의 신체에 대한 찬사라고 얘기는 하지만 여성의 벗은 몸에 던지고 있는 관음적 시선을 모르는 여성은 이 세상에 없다. 같은 시대의 여성 화가가 그리는 그림을 나란히 두기만 해도 얼마나 관음적인지 명백히 드러나니까 변명은 넣어둬라.
반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핀업 프로파간다의 대표 이미지는 리벳공 로지다. J. 하워드 밀러가 제작한 전쟁 제작 조정 위원회 '위 캔 두 잇(We Can Do It!)' 포스터가 대표적이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도발하듯 한쪽 눈썹을 올리고 단단한 눈빛으로 쏘아보는데 소매를 걷어올리는 자세가 팔 근육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그 포스터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테다. 더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1943년 5월 29일 호 표지로 사용된 리벳공 로지는 심지어 이보다 더 세련됐다. 노먼 퍼시벌 록웰이 제작한 이 표지 그림이 묘사하는 리벳공 로지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리벳기를 다리 위에 올려놓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큰 덩치에 전혀 마르지 않았고, 근육으로 팔이 단단해 보이며 여전히 웃지 않는다.
리벳공 로지를 잘 살펴보면 당시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여성 이미지와의 차이가 명확히 구분된다. 리벳공 로지는 장미빛 뺨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컬한 머리카락도, 섹스 어필도 없다. 그냥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여성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만큼이나 경험은 강력하다.
전시협력의 일환으로 여성의 취업을 장려했지만 늘상 그래왔듯 전쟁이 끝나면 국가는 다시 여성들의 역할을 아내 아니면 엄마로만 만든다. 하지만 리벳공 로지는 이미 현실에 존재했고 리벳공 로지는 공장에 남지 못했지만 가정이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졌다. 여성의 직업으로 그나마 허락된 서비스업 쪽으로 말이다.
리벳공 로지는 정말 중요한 이미지다. 레일라 J. 러프(Leila J. Rupp)의 말대로 사상 최초로 여성 노동자의 공적인 이미지로 부각되었다. 이 위 캔 두 잇 포스터의 리벳공 로지 이미지는 80년대 재발견되며 그때도 몹시 중요하게 조명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있어 더 중요한 리벳공 로지의 이미지는 더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쪽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이후로 핀업 걸로부터 유래한 섹슈얼리티의 망령에 너무도 오래 시달렸으니 말이다.
다음 글에서는 핀업 걸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하우스 와이프 이미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다. 어려운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꽤 긴 시리즈로 쓰고 있는데 꾸준히 따라오는 분들께 감사의 말을 남기며 이만 줄이고 충분히 쉬다 오겠다.
사족 1. 이렇듯 참여하지 않는 정치는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플래퍼가 그 좋은 예이기에 무리해서라도 썼다. 대한민국의 여성참정권은 여성운동가들이 흘렸던 피의 대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긴 하지만 그래도 참여와 그에 따른 대가를 받아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는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사족 2. 분노의 대상은 명확해야 한다. 발언 뒤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선해해주고 있는 이유는 여성의 경우 분노 자체를 표출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압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확한 분노가 타당성을 갖추게 한다. 분노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면 <게임 판타지와 여성향>이나 <설정 표절도 표절이다>에 달린 댓글들을 보는 걸 추천한다.
사족 3. 인셀 대신 2번남을 사용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 커뮤니티를 안 하다보니 어느 정도로 퍼진 건지 감이 안 오긴 하는데 '망한 인성으로 인한 비자발적 도태남'을 가리키는 한국말로는 너무 적합하지 않은가. 2번남들이 좋아하는 후보가 대통령 되면 지금껏 해온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는 건 물론 입에 담는 것조차 불가능해지는 세상이 될 건 또 뻔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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