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章. 춘풍 도령 (18)
*
높은 하늘에 조각조각, 한가로이 떠가는 구름. 여유롭게 불어오는 바람과 한들거리는 갈대숲. 그 사이에 몸을 숨긴 어린 해주가 무에 그리 즐거운지 제 입을 막고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었다. 멀리서 갈대를 헤치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다야, 너 어디 있어?”
바다. 해주가 소년에게 알려준 이름이었다. 제 이름을 묻는 소년에게 해주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바다야. 바다라고 불러. 앳된 소년의 목소리에 해주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다 서도 겨우 갈대숲의 절반 정도 오는 키였기에,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주가 뾰로통해져선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하는 거야? 나는 여기 있는데.”
소년은 입이 댓 발 나온 해주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걱정했잖아. 널 잃어버린 줄 알았어.”
“네가 못 찾아놓구.”
소년은 해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음엔 꼭 금방 찾을게. 맹세해.”
해주의 눈동자가 해를 담은 바닷물처럼 반짝거렸다. 노을은 갈대숲에 닿아 부서지며 온 세상을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소년은 해주의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꼭 잡았다. 두 사람은 해사하게 웃었다.
*
새벽 해가 희붐하게 밝아오는 시각. 즐거운 꿈인지 악몽인지 조금씩 신음하던 지성은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파루의 쇠북이 친지 반 시진이 겨우 지난 무렵이었다. 이렇게 일찍 도대체 어떤 부지런한 인사가 화방에 납시셨는지, 지성은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옷을 입고 찬물에 세수했다.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켠 그는 두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은근하게 올려 미소를 짓고는 화방 문을 열었다.
“어서오십시……,”
“윤 도령이다!”
“윤 도령!”
“안녕하십니까, 선비님!”
이 뜨거운 성화는 다 뭐란 말인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지성은 아직 자신이 잠이 덜 깬 것인가 싶어 수 초간 눈을 깜빡거렸다. 구름처럼 화방 앞에 줄을 서서 모여있는 이들은 어림잡아 스무 명은 되어 보였다. 그야말로 문전성시. 지성은 어안이 벙벙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화방을 찾은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최 선생을 뵈러 왔네.”
“최 선생이라면, 저희 스승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분이 한성에 들어오셨다 하여 안부나 여쭙고자 이리 찾아왔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말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안부를 묻겠다고 온 것도 이상한데 손에 들린 나전 함은 다 뭐란 말인가. 어떤 이는 아예 짐 한 보따리를 꾸려 온 모양이었다. 얼마 전, 조정 일에 관심도 없던 임금이 최명선의 서화에 대해 언급하자 어떻게든 연줄을 대고 작품을 받아보려고 찾아든 작자들임이 분명했다. 지성은 헛웃음이 나왔으나 차마 대놓고 비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가까스로 입가에 띤 미소를 유지한 채 제 스승님을 부르러 가려던 때였다.
“뭐냐?”
하필 이 시점에 아군이라 불러야 할지 애매한 려운의 등장에 지성의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어찌 되었든 그들도 화방의 손님들이 아니던가. 게다가 말단 한직의 선비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고관대작 집의 종들도 간간이 눈에 보이니, 무례하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승님이 화방에 계신 것이 려운도 신경이 쓰이긴 했던 모양인지 나름대로 깔끔한 양반다운 행색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승님이 한성에 들어오신 것이 이렇게 빨리 소문이 날 줄은 몰랐습니다. 전부 스승님을 뵈러 오신 분들입니다.”
“이 시간에?”
려운이 눈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자 화방의 객들이 흠칫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한 서생이 그를 향해 말했다.
“혹시, 어제 홍화정 앞에서 윤 도령과 같이 계시던 분이 아니십니까?”
서생의 말에 사람들이 저들끼리 웅성거렸다.
“윤 도령이 데리고 간 소문의 그 선비가 이분이란 말인가?”
“그럼 전당포에서 두 기생을 구한 것도 이분이시겠군!”
“이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유도 모를 뜨거운 반응에 려운이 인상을 구기자 한 심부름꾼이 그를 향해 말했다.
“어제 두 분께서 기생을 구했다는 소식이 이미 한성 바닥에 쫙 퍼졌습니다. 다들 그러던걸요. 화방의 윤 도령과 이름 모를 선비는 이 시대의 영웅이요, 호걸이라 말이지요.”
그의 말을 들은 려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관심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에게는 끔찍한 일이리라. 오죽하면 의뢰를 받아도 이름은 류의 앞으로 남기는 그가 아니던가. 지성이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자 려운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성은 그런 려운을 흘끔 보곤 웃음기를 가라앉히고 화방을 찾은 이들을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스승님께서도 아마 기침하셨을 테니, 우선 화방을 둘러보며 기다리십시오.”
려운은 웃음을 참는 듯 입술을 앙다물며 스승의 방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지성을 보고는 한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이래서 성가신 일은 딱 질색이라고.”
명선이 자신에게 온 손님들에게 선물은 받지 않을 테니 모두 돌아가라 일렀으나, 두 시진 가량 지난 지금도 여전히 화방은 인산인해였다. 의뢰를 받으면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최소 몇 시진은 걸리기 마련이었다. 그 때문에 의뢰인들은 기한을 정해두고 약속일에 찾으러 오거나 심부름꾼이 직접 작품을 가지러 오갔기 때문에 이리 북적거릴 일이 없었다. 게다가 명선은 화방을 열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대리인을 고용하였다가 다시 제자인 류와 지성에게 맡기고는 훌쩍 떠나버렸으니, 이곳이 명선의 화방임을 아는 이도 없었던 터였다. 그러니 그를 찾는 손님이 없던 것 또한 당연지사. 명선이 태송에 돌아와 이 화방으로 왔다는 소식을 누가 알렸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성은 당장에 이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 제 머릿속에 드는 의문까지는 해결할 틈도 내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윤 도령 좀 봐. 어쩜, 사람이 저리 완벽할까?”
“학식, 재능, 얼굴, 뭐 하나 빠지질 않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여인들을 구해내다니”
…, 지금 화방에 있는 손님들은 화방의 윤 도령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의뢰가 없는 객들을 돌려보내려 하니 손바닥만 한 종이에 글씨 한 점이라도 받겠다는 명분으로 늘어선 줄이 한 시진 째 끊이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려운이 화방 장부 정리를 자처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지성과 류가 교대로 글씨를 쓰고 열심히 먹을 갈았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지성이 돈 버는 것을 즐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어찌나 붓을 놀려댔던지 팔이 저린 듯 어깨를 주무르는 지성의 모습에 류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휴식을 선언했다. 애초에 작품 자체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재촉하거나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화방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내가 삼 년만 젊었더라면 윤 도령에게 시집을 갔을 텐데. 어쩌다 그 못난 서생의 입바른 말에 홀랑 넘어갔을까. 내 팔자야!”
“형님도 참. 무슨 남편을 남처럼 불러요? 그리고, 형님이 시집가겠다고 하면, 윤 도령이 받아나 준대요?”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막말로, 내 서방이랑 윤 도령이랑 둘이 나란히 둬 봐. 누구랑 혼인하고 싶은가.”
그건 그렇죠. 의뢰인들의 대화에 지성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다 류와 눈이 마주치곤 민망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화방의 모든 손님이 지성을 고운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전당포 주인이 어찌 나올 줄 알고 고작 기생들을 구한답시고 쳐들어간단 말인가? 평소에 얼마나 기방에 들락날락하였으면. 정분이 난 것이지. 평소엔 고상한 척, 붓이나 놀리는 서생인 척하더니 결국 음심淫心은 숨길 수 없는 게야. 오죽하면 홍화정의 음란 서생이란 별칭을 얻었겠는가? 참으로 대단하네. 낮에는 붓을 잡고 밤에는 그 손으로 여인의 허리를 붙들고!
“자네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어찌 사람의 뜻을 그리 곡해하는가?”
결국, 참다못한 류가 입을 열고 나서야 지성을 향한 무례한 언사들은 멈추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아직도 멀었냐?”
화방 구석, 잠잠하던 문이 갑자기 열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려운이었다. 그는 미간에 짜증스러운 기색을 잔뜩 담고는 화방에 잔뜩 들어찬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그 사납고 매서운 눈초리에 화방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는 신을 신고 나와 지성과 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지성이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냐? 그 눈빛은.”
“도와주려고 나오신 거 아닙니까?”
려운이 눈으로 내가? 하는 표정을 짓자 지성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 모습에 려운의 입매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화방 식구들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부드러운 미소였다. 려운이 “그 선비”임을 알아차린 이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선비……, 맞지?”
“서릿발 같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이 화방에는 전부 아름다운 사내들만 있구나.”
“아, 저 깊은 눈빛, 날카로운 턱선! 베일 것만 같아.”
“언니도 참, 주책이야. 남사스럽게.”
화방 안의 의뢰인들은 려운의 기세에 차마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고 속삭였다. 그들의 반응에 지성과 려운은 영문도 모르고 맹렬한 눈빛들을 받아내고 있었다. 세 사람 가운데 오직 류만이 이 낌새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저으며, 두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을 속으로 삼켰다. 한성 사람들의 마음속에 세 번째 미인이 들어차게 되는 순간이었다.
며칠 후.
전당포 주인에게 판결이 내려졌다. 잡혀 들어간 이후 내내 ‘자신은 억울하다,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하던 그였다. 소문으로는 어젯밤 옥사에서 누군가를 만난 후에 곧장 자신이 한 일이라며 죄를 실토하였다고 했다. 다만 납치를 한 대상이 천민이고 배를 곯게 하지 않은 점, 감금한 이후에 그들을 때리거나 겁간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중한 벌은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속전속결이었다. 아무도 전당포 주인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풀려난 후, 가족들과 함께 새벽에 한성주를 떠났다는 말만 들려올 뿐이었다. 지성이 묶어두었던 두 복면남도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 풀려난 후론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이상했다. 기생들이 몇 번이고 포청 문을 두드렸을 땐 눈 하나 깜박 안 하더니 잡아갈 때는 대단한 중죄인인 양 잡아가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렇게 급하게 전당포 주인을 끌고 간 후로는 전당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며칠을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던 그는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죄를 실토하고 그날 새벽에 한성을 빠져나갔다. 전당포는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인수했다고 하였다.
“분명 뭔가 있어. 뭔가…….”
“뭐가 있어요?”
생각에 잠겨있던 지성이 갑자기 제 목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펄쩍 뛰며 뒤로 돌았다.
“서, 서 공자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입니다. 꽃놀이 이후로는 처음 뵙지요?”
“예, 예……. 그날 이후론 처음……, 한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예상치 못한 방문에 지성이 두 눈을 깜빡거리며 말을 더듬자 건율은 생긋 웃었다. 꽃놀이 날에는 이 웃음이 류와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와는 다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게, 궁금해서 말이에요.”
건율은 단숨에 지성에게 다가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도령에 대해서.”
귓가를 간질이는 느낌이 영 불쾌하여 고개를 돌리자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에 건율의 얼굴이 있었다. 지성이 당황해서 몸을 뒤로 빼려는데 화방 문 앞에서 누군가 소리를 쳤다.
“서건율!”
사자후가 따로 없었다. 만약에 도사였다면 화방이 전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몰랐다. 다행인지 커다란 목소리의 주인은 류였다. 그는 씩씩거리며 지성과 건율 사이에 들어와 두 사람 사이를 벌려놓고는 건율을 향해 따져 물었다.
“너, 너 말이야! 순진한 사람 놀려먹으니 좋아?”
“무슨 말씀이신지? 이 기술은 전부 네가 알려준 것인데.”
“내, 내가 언제 그런!”
“벌써 잊어버렸어? 우리의 화끈한 첫 만 남.”
건율의 말에 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류를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능청스러움은 언제나 류를 당해낼 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건율은 그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신선의 느낌이었다.
“첫 만남이 어땠기에 선배님이 저리 쩔쩔매십니까?”
“글쎄, 만나자마자 마치 오래전 헤어진 옛 정인처럼 와락 안더군요.”
“오해할 만한 언사는 그만두게! 그건 술버릇이라고. 내 이미 자네에게 몇번이고 사과를 했는데도!”
“됐네, 됐어. 나는 전부 이해해.”
그 애틋한 감정, 청춘이로다. 그의 말에 류는 잔에 물을 한가득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성은 그런 류를 보며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고 건율을 바라보았다.
“류는 신경 쓰지 마시고, 말씀해보세요. 제게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그날 일이 궁금해서 왔어요.”
“그날이요? 혹시 전당포의 일을 물으시는 겁니까?”
지성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데 때마침 려운이 화방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이 자식, 왜 여기 있냐?”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려운의 말에도 건율은 웃음을 잃지 않고 받아쳤다.
“려운. 내가 뭐 못 올 곳 왔어? 그리고 오늘 내 용건은 류도 아니고 너도 아니야. 윤 도령을 만나러 온 것이니 제발 신경 좀 꺼주지?”
“그럼 류 네가 나가든지.”
“나는 왜?”
자신의 쪽으로 튄 불똥에 류가 황당하여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 좁은 화방에 보기 싫은 얼굴이 셋인데 그중에 두 명은 용건이 있어 보이니 한량 같은 류 네가 나가야 하지 않겠냐?”
“싫어! 내가 왜 나가! 보기 싫은 사람이 나가든지 하게! 나도 의뢰가 있네.”
이 유치하고 찬란한 싸움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온 지성은 조용히 차를 우려 건율에게 건넸다. 은은한 차향이 퍼지자 두 사람도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말해보세요. 그날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이상한 점투성이였죠. 갑자기 관군들이 들이닥친 것도 그렇고, 전당포 주인의 태도도 그렇고.”
“다른 점은?”
“몇 가지 더 있긴 한데…….”
지성이 말끝을 흐리자 건율이 눈을 빛냈다.
“애심을 말하려는 것이냐?”
“려운도 눈치채셨습니까? 맞습니다. 애심 낭자가 조금 이상하긴 했습니다.”
“아, 거기에 려운도 있었다 했지?”
“예. 보통 손목을 묶어두면 어떻게든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설기 낭자에 비하면 애심 낭자의 손목은 너무 깨끗했습니다. 밧줄도 유독 여러 번 썼던 듯해져 있었고요. 물론 저도 피해자인 애심 낭자를 의심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데 이런 것을 왜 물으시는 겁니까?”
“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라, 궁금한 것이 생기면 꼭 알아내고 싶거든요.”
“그렇군요. 필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중에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진심이 담긴 말에 건율이 지성의 손을 붙잡았다. 려운은 저놈, 또 시작이군, 하며 혀를 찼고, 류는 말문이 막혀 “너, 너!” 하는 말만 반복했다.
“고맙습니다, 윤 도령. 지금껏 소설을 쓴다고 하면 다들 반응이 시큰둥하였는데, 그리 말해주니 힘이 나네요.”
건율의 감격 어린 목소리에 지성이 미소로 화답하자 류는 얼른 건율의 손을 붙잡아 지성에게서 떼어놓았다. 그리고는 제 행동이 조금 부끄러웠는지 팔짱을 꼈다 풀었다 하더니 차를 들이마셨다.
“그거 뜨거운 차……,”
“앗뜨뜨!”
……, 인데……. 지성은 결국 어린아이처럼 혀를 내미는 류의 얼굴에 웃음을 터뜨렸다. 화방 문 앞, 웃음소리에 거리를 지나던 행인 하나가 멈추어 섰다. 네 사람의 미모를 멍하니 감상하던 행인은 려운과 눈이 마주치고는 도망치듯 화방을 지나쳐갔다. 이 행인의 눈과 입이 ‘한성사철’의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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