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내리는 저택

3화. 이변 (3)

1차 HL 자캐 CP 주현여루

권여루에게 사랑이란 곧 제 부모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실패한 사랑. 그런데도 그저 같이 살아가는. 아버지의 일방적인 사랑을 실패한 것이라 치부하던 여루는 사랑을 주는 것을 점점 꺼리게 되었다. 그녀는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사랑이라는 게 내게도 오긴 할까? 나도 그처럼 실패한 사랑을 겪는 것은 아닐까. 자식은 결국 부모를 따라간다잖아. 나도 엄마, 아빠처럼 살게 될 텐데. 그런 사랑은 하고 싶지 않아. 그러므로 첫사랑이란 단어는 제게서 가장 먼 단어가 되었다. 그랬을 텐데...

─어느 초여름날 등굣길이었다. 슬슬 더워지는 날씨에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같이 등교하기로 하던 서하늘은 늦잠을 자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결국 혼자 학교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정말... 더워 죽겠네. 하필 오늘 같은 날 짜증 부릴 애들도 옆에 없고...’

소연이도 소연이지만, 서하늘이 있었다면 괜히 한 번 흘겨보면서 짜증 낼 텐데. 그럼 짜게 식은 눈으로 날 쳐다보면서 한숨을 쉬겠지. 그런 소소한 일상─일어나지 않은─을 상상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짤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잠깐잠깐, 비켜! 위험해!”

“...?!”

쿠당탕─

자전거가 옆으로 넘어지고 타고 있던 사람이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여루는 재빨리 뒤로 피한 덕에 다치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던 상황이었다. 여루는 운전자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쓰러져 혼자 돌아가고 있는 자전거 바퀴를 가리키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저기요. 조심 좀 하지 그래요? 다칠 뻔했잖아요. ...아.”

“그, 미안. 괜찮아?”

상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다가와 어정쩡한 자세로 여루를 아래위로 살피기 시작했다. 여루는 그런 모습에 재차 한숨을 폭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리가 있니? 권지윤 씨.”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이는 어제 그 전학생이었다.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얼굴에 철판 깔고 대판 화냈을 텐데,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어디 갔지? 치마 주머니에 대충 꾸겨 넣어뒀던 손수건이 없어졌다. 채주현한테 빌린 거라 나중에 돌려줘야 하는데...

사실 지난번에 돌려준 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남자애치고 고상한 취향을 가진 채주현을 속으로 괜히 헐씹으며 허둥지둥 몸을 수색했다. 주머니에서 찾을 수 없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상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거 찾아?”

“아... 아, 어.”

뻘쭘한 표정으로 그제야 지윤의 얼굴을 제대로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훤칠하니 이목구비 뚜렷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에는 흙먼지가 묻은 손수건 한 장이 들려있었다.

“...더러워졌네. 내가 세탁해서 돌려줄게.”

“아, 아니. 됐어. 괜찮아. 그냥 줘.”

허겁지겁 손수건을 낚아채듯 받아서 들고는 흘끗흘끗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시선을 눈치챈 지윤이 싱긋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등교할래? 혹시 모르니 보건실에도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데려다줄게.”

“음...”

솔직히 좀 고민이 됐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는 걸 보면 채주현이 또 한 소리 할 텐데. 안 그래도 하늘이랑 같이 다니는 걸 언짢게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근데 지가 뭘 어쩌겠어? 내가 언제까지 자기랑 붙어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게도 자유가 있었다. 여러 사람과 평범하게 어울릴 자유가.

“좋아. 그럼 저 자전거는…”

“자전거는 끌고 가지 뭐. 뒤에 태우고 가도 되긴 하지만... 그럼 위험하니까.”

쓰러진 자전거 쪽으로 다가가 훌쩍 일으켜 세우고는 다시 제게로 다가온다. 체격이 좋아서 그런지 큰 자전거를 쉽게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여루는 곧 제 옆에 선 남학생을 슬쩍 올려다보고는 원래 관심 없었지만 물어봐준다, 라는 느낌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지윤아. 너 맨날 이 시간에 등교하니?”

“으응. 나 자취하거든. 그러다 보니까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어서… 너는 왜 일찍 학교에 가는 거야?”

“나? 나는 사람들 많은 게 싫어서 그냥 일찍 나오는 거야.”

자취하는구나... 여루는 고개를 끄덕이곤 괜히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왜 자취하는데? 그건… 아, 됐어. 곤란한 질문이면 대답 안 해도 됨. ─그건 아닌데… 괜히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자 어느새 교문 앞이었다. 여루의 얼굴에는 어느새 자연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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