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 바깥쪽의

08

고양이

절간 스님 by 넵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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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두 사람이 답지 않게 육아에 대해 고뇌에 빠졌을 때 쯔음, 비슷하게도 답지 않은 고민에 빠진 이가 하나 있었다. 긴 털이 북실북실한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는 책상 위에 앉아 아래로 늘어뜨린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다. 도핀이 고양이를 피해 책상 한켠으로 물건을 치워 공간을 만들어두면 빈자리로 몸을 쭉 뻗어 가로막기 일쑤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서 자리를 잡으면 책상 위에서 폴짝 뛰어 내려와서 이번에는 무릎 위로 올라와 몸을 이리저리 틀어대며 문질러댔다. 그래서 도핀은 도통 시계를 고치는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고양이는 원래 이런 것인가? 도핀의 무릎 위에 자리 잡은 검은 고양이는 도핀의 손이 장난감이라도 되는 양 앞발로 이리저리 툭툭 건들며 가지고 놀고 있었다.

 

도핀이 여행을 마치고 뉴욕에서 제집으로 돌아올 때 지낼 곳이 마땅찮다는 샤뮤에드가 안타까워 제집에서 묵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남는 방 하나를 정리해 내어 주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이제 밀린 의뢰를 시작해야하는데 고양이로 변신한 샤뮤에드가 자꾸만 방해하는 터라 쉽사리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심심해서 그러는 걸까? 도핀은 털이 복슬거리는 고양이의 앞발을 만지작거렸다.

 

“응, 샤뮤에드. 나 일 해야 하는데...?”

“이웅.”

 

털 사이로 말랑거리는 육구가 만져졌다. 손으로 앞발을 잡아, 눌려보면 날카로운 발톱도 천천히 나타났다. 따끈한 털 짐승의 체온과 손안에 착 들어오는 자그마한 앞발이 귀여워서 도핀도 괜히 앞발을 잡아 드럼을 치듯 움직여보자. 파드닥 몸을 비틀어 고양이는 빠져나왔다. 놀아달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이 방법은 또 아니었나 보다. 바닥으로 뛰어나간 고양이는 몸을 부르르 털었다. 그리고는 종종 거실 베란다 쪽으로 가서는 창을 툭툭 두드린다. 마치 문을 열어달라는 듯이. 열어줘도 되는 걸까? 진짜 고양이가 아니니 괜찮겠지 싶어서, 도핀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베란다 창으로 향했다. 도핀은 고양이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의 언어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니까.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해.”

“애앵.”

 

도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창문에 반쯤 몸을 걸친 채로 뒤를 돌아보며 울음소리를 냈다. 알았다는 뜻이겠지? 대답을 한 거니까. 고양이는 산책을 시키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도핀은 조금 더 창문 앞에서 서서 문을 열어줄지 말지를 고민을 했을 것이다.

 

+ + +

 

덩치 큰 장모 종의 검은 고양이 모습을 한 그것은 금세 그 동네에서 대장 고양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그저 평범한 고양이에 지나지 않을 길고양이들에 있어서는 그것의 존재 자체로도 크나큰 위협을 느꼈으니 살기 위해서라면 알아서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샤뮤에드가 느끼는 감상은, 상당히 평화로운 동네였다는 점이다. 저나 도핀 이외의 인간이 아닌 것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뭐, 사소한 범죄야 있겠지만 그건 저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일이고. 다른 말로 하자면 이곳에서는 인간 하나를 잡아먹어도 쉽게 티가 나겠다는 것이었다. 관광을 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사냥을 위해서는 꽤 멀리까지 나가야 한다는 건가. 낮은 담벼락에 앉아 고양이는 입을 짭 하고 벌리며 하품을 했다. 비타에서 상당히 포식을 한 덕에 한동안 배고프진 않을 테니 차차 생각해보도록 할까?

 

한산한 것이 자신이 살던 동네와 비슷했다. 이 심심하기에 짝이 없는 곳에서 도핀은 무슨 재미로 지내는 것인지. 자신이 살던 동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샤뮤에드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 지루한 동네에서는 자신이 무슨 재미로 조용히 지냈었지? 아, 그래. 소꿉놀이를 했었지, 참. 그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날벌레가 고양이 귀 위에 내려앉자 귀가 빠르게 두어 번 파닥거렸다. 그렇지만 역시, 세상은 대개 제 발 아래에서 무너지지 않던가? 힘주면 흔적도 없이 뭉개져 버릴 이 날벌레처럼 말이다.

 

고양이가 날벌레를 잡기 위해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날벌레는 바람에 흔들리며 요리조리 고양이의 발짓을 피해 나갔다. 유유히 자신만의 궤도를 그리며 날아다니는 벌레가 이번에는 약 올리듯 콧잔등에 앉았다. 고양이는 꿍실꿍실 날벌레를 쫓았다.

 

+ + +

 

도핀은 깜빡 잠에 들었다. 어느새 시계가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작업이 끝난 뒤 샤뮤에드가 오면 문을 열어줄 생각이었는데 책상 위에 엎드려서 그대로 잠든 것이다. 부스스 눈을 떠 고개를 들어보면 바닥으로 무엇인가 떨어졌다. 담요? 누가 덮어 준거지? 눈을 끔벅거리다 보면 여전히 방문 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면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샤뮤에드가 보였다.

 

“일어났네, 더 안 자?”

 

그는 여전히 책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샤뮤에드에게는 따로 짐이 없었으니 저 책은 도핀, 제집 책장 어딘가에 꽂혀있던 책이겠지. 그 중에서 어떤 책을 고른 걸까.

 

“언제 왔어?”

“좀 됐어. 아, 근데 다음부터는 잘 거면 창문 좀 열어놔.”

 

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왔지. 도핀은 살살 샤뮤에드에게로 다가갔다. ‘담요는 네가 덮어 준거야?’ 같은 질문은 너무 뻔한 내용이라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아, 고양이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지. 집에 커다란 고양이가 들어왔다. 아주 제멋대로인 고양이가.

 

“해 지기 전에 들어오기로 했었잖아. 샤뮤에드.”

“내가 그랬어?”

“‘애앵’ 하고 대답도 했는걸?”

 

도핀은 고양이 소리를 따라 했다. 그제야, 그랬던가? 그는 기억을 되짚어보는 듯한다. 그러다 이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상관없잖아, 하고 웃어넘겼다. 기다려줘서 고맙다느니, 늦어서 미안하다느니 같은 인사말은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하는 일에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충고 아닌 충고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런 그의 옆에 도핀은 털썩 앉았다. 어떤 책을 보는지 그제야 보였다.

 

“왜 방에 안 들어갔어? 잠자리가 불편해?”

“음? 딱히? 어차피 잠도 안 자는걸?”

 

전에 말한 줄 알았는데. 안 했어. 응, 안 했구나. 따위의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샤뮤에드는 킥킥 웃었다. 책에 들어있는 삽화를 가리키며 조금 더 웃었다. 이거 꼭 너 닮았다. 풀밭에 덩그러니 있는 못생긴 여우 그림이었다. 이게 왜 자신을 닮았느냐고 도핀이 항의하면 기다릴 필요도 없는데 기다린다는 점에서 똑같다며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싶어져서. 도핀은 묘한 기분으로 샤뮤에드를 바라보았다.

 

“내 걱정을 하는 건 세상에서 쓸모없는 일 중에 하나란다, sweetie.”

 

도핀은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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