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이변 (1)
1차 HL 자캐 CP 주현여루
“채주현, 이거 받아.”
“이름으로 불러.”
“아, 알았어. 주현아. 됐지?”
“응.”
소년이 소녀에게서 손수건을 건네받았다. 연보랏빛의 손수건은 주현의 소유물로 얼마 전 여루가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 무릎에 났던 상처를 덮어준 물건이었다.
주현은 당연하다는 태도로 거리낌 없이 피가 흐르는 상처에 제 손수건을 갖다 댔었다. 세탁해서 돌려주긴 했지만 찝찝할 게 분명한데도, 그는 손수건을 받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었더랬다.
요즘들어 음악실의 그 일 이후, 묘하게 주현과 붙어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자신이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다. 주현은 학교 안에서라면 늘 여루의 곁을 자처하며 따라다녔다. 여루는 미묘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현을 올려다봤다.
“왜?”
“아니, 그냥... 됐다. 어젯밤에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좀 쌀쌀하네.”
“응, 좀 시원하네. ...그런데 체육복이네?”
주현이 품이 조금 큰 체육복 상의 밖으로 비져나온 블라우스 자락을 슬쩍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체육복 입고 등교하면 선도부 애들한테 걸릴텐데.”
“어차피 다시 들어가서 갈아입을 건데 뭘.”
“그게 아니라, 네가 불편한 상황에 처할까 봐. 괜히 벌점 받으면 좀 그렇잖아.”
“이 정도로는 벌점 안 받아~ 걱정도 참. 빨리 들어가기나 하자.”
교문 앞에서 작게 실랑이하는 둘은 친한 친구 사이로 보였다. 소연이는 집이 멀어서 하교는 같이할 수 있어도 등교는 같이하지 못한다. 그게 둘이 지금 같이 등교하고 있는 이유다.
여루는 주현의 팔을 밉지 않게 툭 치고는 먼저 정문으로 들어갔다. 주현이 작게 한숨을 쉬고 소녀를 따라 학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하아.”
수업 시간에 졸다가 복도로 쫓겨났다. 여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괜히 서서 발장난을 쳤다. 흘끗 본 교실 안에는 슬그머니 웃으며 제 쪽을 보는 주현이 있었다.
괜히 욱한 마음에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저도 수업 중에 자는 게 일상이면서. 아, 쟤는 연습생이라 선생님도 봐주지. 참, 잘났다. 그렇게 괜히 신발장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심술을 부리고 있을 때였다.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옆 반이었다. 서하늘이 있는 1학년 9반. 맨 끝 교실.
복도 정면 쪽으로 난 창문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키가 훌쩍 큰 남학생이었다. 못 보던 얼굴이었다. 아, 다른 반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한가?
훤칠하니 잘생긴 애였다. 채주현보다도 키가 큰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주현과 그를 비교해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애가 서하늘이랑 같은 반... 아니 저렇게 잘생긴 애가 우리 학교에 채주현 말고도 또 있었어?
여루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남학생의 얼굴을 구경했다. 그러다 눈이 맞았다. ...말없이 서로를 보다 여루가 머쓱해져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자 남학생도 얼떨결에 마주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쟤도 수업 시간에 졸아서 나와 있는 건가?
그건 그렇고 심심하네. 다리도 슬슬 아프고. 여루는 교실 안 선생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다가 슬쩍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남학생에게로 다가갔다.
“안녕.”
“...안녕.”
소녀는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근소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너도 수업 시간에 졸아서 나온 거야?”
“...아니. 나는...”
드르륵─
“지윤아, 이제 들어... 뭐야, 권여루. 너 옆 반 아니었어? 왜 복도에 나와있어.”
“윽. 쌤...”
수학 선생님이었다. 여루는 옆 반 아이들의 시선이 제게 쏠릴 새라 종종 걸음으로 다시 8반 앞으로 가 모른 척 섰다. 그러자 수학이 한숨을 쉬고 또 졸았느니 뭐니 하면서 잔소리를 해대는 게 아닌가.
여루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괜히 새침하게 아까 그 남학생을 흘겼다. 저렇게 잘생겼는데 제가 여태까지 몰랐고 소문 하나 안 났던 이유가 있었다. 전학생이었나.
슬쩍 본 옆 반 교실의 칠판에는 크게 권지윤이라고 이름이 써져있었다. 나랑 같은 권씨네. 세상 참 좁다.
“...!”
권지윤이란 녀석이 저를 보더니 슬쩍 웃었다. 그러더니 수학을 따라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쟤... 쟤 지금 비웃은 거야? 여루는 어처구니가 없어 교실에서 허한 표정으로 남학생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봤다.
그가 들어가자마자 9반에서 여자애들의 환호성과 남자애들의 웅성임이 들려왔다. 그래, 상판이 잘나긴 했더라. 하늘이한테 나중에 어땠냐고 물어봐야지.
소녀는 저 혼자 고개를 주억이고는 다시 제 교실 앞을 서성였다. 그러다 반에 있는 담임과 눈이 마주쳤다. 권여루! 똑바로 안 서 있냐. 히익! 소녀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라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귀신같이 날 보고 있었잖아?!
──재미있는 아이였다. 지윤은 우연히 마주친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저를 보더니 너도 수업 시간에 졸아서 밖에 있냐고 묻던 소녀. 갈색 중단발에 밝은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애였다.
그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로 제게 인사해왔다. 안녕, 이라고.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햇살을 받아 노란빛으로 부서져 내리던 머리칼과 마치 진한 황금빛을 녹여놓은 듯한 눈동자. 사람의 눈동자가 금색이라니, 제가 분명 잘못 본 거겠지만 햇빛에 비춰진 눈동자의 색이 그리 보였었다. 미인이었다.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첫 자취를 시작하고 새로운 학교로 전학 왔는데, 왠지 느낌이 좋았다.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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