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역배우가 돌아왔다. 1화

사라진 아역배우가 돌아왔다 1화.

프롤로그.

 

 

눈을 뜬 소년.

익숙한 얼굴이, 소년의 시선에 가닿았다.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아들, 눈 떴어?”

“누굴 닮아 잘생긴 걸까.”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였다.

가증스러운 얼굴들.

소년은 보고 싶지 않았던 눈코입들을 피해 뒤에 있는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다면, 나는...’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

그의 남동생, 태웅의 얼굴이었다.

 

 

1화.

 

깜빡.

 

깜빡이며 거리에 줄지어 있는 가로등 밑 소년이 휘청이며 길을 걸었다.

오랫동안 길을 헤맸다.

방황.

가족들에게 버려져 본 게 처음인지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것.

머리 위 달보다 빛나는 가로등 불빛에 몰려든 날파리 같이, 태성은 어두운 거리에 가로등 밑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염없이 걸을 뿐.

그랬던 그가 선택한 곳은 보육원이었다.

 

“그래서 가출했다고?”

“...네.”

 

차마, 버려졌다고 말할 순 없었다.

일곱 살이던 태성이 버렸다고 말하면 경찰도 출동할 거고, 태성은 자신을 버렸던 가족의 곁으로 가거나 법정 싸움을 하게 될 테니까.

그들의 얼굴, 시선 전부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곱 살이 가출 팸에 들어갈 수도 없었기에.

어른을 설득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했고.

태성은 보육원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자주 때리고 그래서...”

“어쩜... 이렇게 귀여운 애를.”

 

거짓말이었다.

할아버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태성의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다.

노파의 손에 이끌려 처음 보는 공터에 가고, 홀로 남겨졌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뭐 할머니가 있는 집 때문에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아예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 후 가족이 자신을 찾지 않는 것만 보면 애초에 버려지는 건 예정되어있던 모양.

태성의 이러한 말에 보육원은 받아주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받아준 결정적인 계기는, 우는 척만 하려 했던 태성의 눈가에 진짜 눈물이 흘렀던 탓이겠지.

12월 25일.

보육원 수금의 날.

태성은 보육원 친구들과 처음 했던 단체활동이었다.

 

“매번 우리 노래를 불렀었는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작은 연극을 해볼까 해요.”

 

담당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태성이 배우로서의 첫 연기, 관객은 보육원 후원자.

연극 제목은 헨젤과 그레텔.

태성이 그레텔을 맡았다.

여동생을 맡게 된 이유는 여자처럼 예쁘게 생겨 먹은 얼굴 때문이리라.

또 그가 주연을 맡을 수 있던 이유.

누군가를 떠나 동생과 함께 숲을 떠도는 연기는, 태성만큼 잘하는 이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저 아이의 연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보는 우리가 조마조마하더라고요.”

“가엽서라... 애들 연긴데 몰입하게 되네요...”

 

후원자들의 반응 역시 괜찮았다.

태성의 연기 덕분인가?

보육원의 후원이 많이 들어왔고, 좋은 생필품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 보육원은 매년 크리스마스, 설, 추석 등 명절마다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연극의 주인공은 언제나 태성이었고, 다른 애들은 불만을 터뜨리진 않았다.

후원자들에게 보여주기식 행사를 좋아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으니, 태성이 대신 주인공을 해준다면 친구들은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싫어하진 않았다.

시간이 흘러.

강태성 열두 살.

처음 공개 오디션을 보러 갔던 날이었다.

 

“연기 보여주세요.”

 

박찬우 감독이 남자 아역배우를 전국적인 오디션을 통해 뽑는다고 선언하고 일주일이 지나 태성이 그 영화 오디션에 참가했다.

연기를 잘한다는 보육원의 응원에 등 떠밀려 나오게 된 오디션 무대.

태성은 크게 심호흡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네.”

“...”

 

침묵.

태성은 곧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연기해야 할 장면은, 격한 감정으로 부모님을 원망하는 장면이었기에 이러한 침묵은 NG로 볼 수 있다.

눈물을 쏟아내며 화내는 연기를 보여야 하는 그가 가만히 있자, 심사위원은 눈살을 찡긋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심사위원은 침묵한 태성에게 빠져들었다.

 

‘대사를 까먹은 게 아니야...’

 

태성은 연기하고 있는 거였다.

목소리가 아닌 표정으로, 격한 감정보단 주변의 분위기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 엄마, 아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많은 감정을 가슴 속 깊이 꾹꾹 누르며 간신히 꺼낸 한 마디.

심사위원들은 태성의 부모님이 된 것인 양 침을 꼴깍 삼킨다.

 

“...네? 뭐라고요?”

 

부모님이 무책임한 대사를 뱉고 태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다시 심호흡했다.

 

“...”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제발. 엄마, 아빠... 저를 이해해주세요.

 

“왜...그런 말을 하세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아신다고요? 그럼 묻고 싶네요! 무슨 말을 할 것 같나요?”

부모님이 대충 아이의 감정을 대변하듯 말한다.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저는 엄마에게 사과를 바라지도 않고! 아빠가 머리를 박고 무릎을 꿇거나 그런 것도 원하지 않아요! 난 단지... 단지...!”

 

‘제대로 된 아들이 되고 싶은 거라고요.’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

 

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그의 말은, 탑처럼 쌓여만 갔고.

그 말은 바벨론의 탑처럼 여기저기, 여러 언어로 흩어져갔다.

몸짓, 손짓, 눈빛, 호흡.

이러한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던 태성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님을 보았다.

 

‘그래서...버림받은 거였나.’

 

이해하지 못하니까.

아들의 마음을, 생각을.

이해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남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저,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키우고 있었을 뿐.

보육원에 맡겨진 태성이 피도 섞이지 않은 선생님들과 잘 지내는 것으로 증명하지 않았던가.

피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타인을 얼마나 생각하냐이고, 가족은 본인만 생각해 자식을 버렸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그러겠지.

 

“찾지 말아 주세요.”

 

시발.

 

“...발.”

 

입모양으로 한 욕.

애드립이었다.

보육원 형들이 하는 걸 보고 배웠다.

그의 연기가 끝이 났지만, 태성은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무대에 스포트라이트는 계속되었고.

심사위원들 또한 태성을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연기가 끝났다는 걸 알고 있지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듯 심사위원들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을 내야겠지.

자신의 연기를.

그리고.

 

‘지금의 삶을.’

 

신이 그렇게 정해놓은 거다.

태성은 오늘 오디션 합격 발표가 나오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

억울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신에게 버려지든, 가족에게 버려지든 똑같았으니까.

그냥, 마지막 연기는 좀 재미있었다.

생에 첫 오디션, 좋아하는 박찬우 감독 작품에 합격까지 했으니까.

미련은 없다.

열두 살의 미련은, 사탕만 줘도 순간적으로 풀리기 마련.

 

종로 사거리 횡단보도 위.

희고 검은 줄무늬 보도가 태성을 감쌌다.

바코드 같던 그 줄무늬 위에 짙은 붉은색 빛이 퍼져나갔다.

마치, 꽃이 피어난 것 같았다.

 

도로에 짙은 꽃이 폈고, 태성은 눈을 감았다.

 

* * *

 

쿵. 쿵. 쿵.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누르는 것 같다.

 

“으으...”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맥박은?”

“정상입니다.”

“...빨리 부모님 데리고 와!”

 

‘의식? 맥박? 부모님? 다 무슨 소리지?’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태웅아!”

“이제는 괜찮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남녀.

그는 남녀를 본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네, 멀쩡합니다.”

“다행이다...”

“봐요, 여보. 우리 아들 눈 떴어.”

“이 잘생긴 얼굴... 못 보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그들은 살아난 태성을 향해 칭찬을 뱉어냈다.

지금 칭찬하지 않으면 또 언제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 부모님들은 칭찬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자신을 버린 부모님의 칭찬을 들어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살아났다는 말에, 태성은 속으로 ‘그대로 죽어버렸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왜 살아난 걸까.

그나저나 태웅은 누구야?

태성의 이러한 궁금증은, 보기도 싫은 눈코입들을 피해 거울로 시선을 옮기자 해결되었다.

낯선 얼굴.

확실한 태성의 얼굴은 아니었다.

 

‘이 몸은 설마...’

 

같은 부모.

다른 얼굴.

비슷한 이름.

태성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나 설마... 내 동생의 몸에 들어온 거야?’

 

이 사실을 눈치챈 태성은 눈만 크게 끔뻑였다.

 

* * *

 

일반 병실에 며칠 입원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정보를 알아냈다.

지금 태웅은 여섯 살이다.

태성이 남동생의 몸에 들어갔을 땐, 이미 태웅은 죽을 위기였다고 한다.

어째, 같은 날짜에 형제 둘이 죽으려고 하다니.

이것도 하나의 우연이라고 한다면 우연이겠지.

여기까지는 뭐, 정말로 간단한 정보들이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지.’

 

태웅은 다섯 살 다운 발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서 작은 방을 나왔다.

어머니 품에 잠들었던 태웅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오자, 어머니가 잠에서 깬다.

 

“웅아, 화장실?”

“...네.”

 

거짓말이었다.

화장실이 아니다.

집을 나올 생각이었다.

이 집에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거짓말이지?”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말에, 태웅은 멈칫거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태웅은 몸을 돌려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나가려고?”

“...엄마.”

“안 돼. 지금 이 시간에 나가면 위험해.”

 

타다다다닥.

 

어머니가 서둘러 몸을 일으켜 자신을 향해 걸어왔다.

 

“그...”

“아들. 더 이상 잃어버리기 싫어...”

 

꼬옥.

 

태웅은 어머니 품에 안겼다.

어머니는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

 

‘...엄마.’

 

동생의 몸으로 며칠 살다 보니 많은 정보를 알았다.

태성은 동생 태웅의 몸으로 눈을 떴다는 것.

둘은 같은 날짜에 죽을 뻔했다는 것.

생일은 12월 25일이라는 것.

그리고.

가족은 태성을 버린 게 아닌 잃어버렸다는 것.

 

“오늘은 같이 자자. 응?”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가 태성을 데리고 처음 보는 공터에 데리고 갔다.

공터에서 태성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는 할머닌 집으로 돌아왔다.

미아가 된 태성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방황했고 자신이 너무 멀리 가버린 탓에, 경찰은 태성을 찾지 못한 것.

태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모님은 1년이 지나자, 찾는 것을 포기했다.

슬픔에 잠겼던 어머니는 간신히 태웅이를 낳은 뒤, 아들에게 집착하는 정신적인 병에 걸렸다.

그런 어머니 앞에서 태웅은 죽을 뻔했다.

 

“엄마... 미안해요.”

 

지금까지 자신을 버린 가족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나서는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멍청하게 오해했고, 그저 가족을 원망하는 것으로 자기합리화했다.

비참한 삶은 전부 가족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온갖 욕짓거리를 했다.

아빠 욕. 엄마 욕. 할머니 욕.

세상 욕. 그리고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욕을 내뱉는다.

 

‘병신은 나였어.’

 

보육원 형들이 알려준 욕을 자신에게 실컷 내뱉은 뒤 어머니를 힐끗 보았다.

 

“엄마...”

 

태웅이 말끝을 흐리자, 어머니는 자신의 입 모양에 시선을 집중했다.

 

“...태성이 형도 이해할 거예요.”

“태성... 태성이? 어떻게 그 이름을...”

 

어머니는 자신에게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쯤은, 태웅의 기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자고 있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태성에 관해 이야기했었고.

태웅은 자는 척 부모님의 말을 엿들었다.

이는 자신이 가족을 원망했던 시간에 대한 속죄다.

 

‘연기하자.’

 

태성이를.

어머니 앞에서 태성이를 보여주자.

잘 있었다고, 잘 보냈다고, 보육원에서 열심히 살았다고.

원망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했다고.

사실, 그리웠고 보고 싶었기에 더 많이 증오했었다고.

 

“나는 단지...”

 

‘제대로 된 아들이 되고 싶었던 것 뿐인데.’

 

태웅은 고개를 조금 숙였고, 감정을 조금씩 끌어 올렸다.

정적이 흐른다.

어머니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본다.

태웅이 작게 심호흡하자 주변 분위기가 바뀌었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태성은, 태웅이 되어, 태성을 연기한다.

이제 태성을 놓아주는 거야.

태웅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잘 있어.”

 

깜빡.

 

마침, 낡은 집에 조명이 깜빡였다.

현우는 조명 밑에서 방황한다.

한참을 방황했을까.

 

‘찾았어.’

 

자신이 있어야 할 집을.

가족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엄마.”

 

어머니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잘 보였던 어미니의 얼굴이 어두컴컴하게 보인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것이 태성의 시선이었으니까.

태성은 언제나 어머니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버려졌다고 생각하자마자, 자신도 가족을 버렸다.

그러니.

볼 수가 없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태성과는 작별이다.

 

“엄마!”

 

태웅은 실루엣으로 가득했던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연기했을 때와는 다르게, 또렷하게 보이는 어머니의 표정.

울고 계셨다.

눈물을 많이 흘려서 바닥이 축축해진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자 깨달았다.

 

태성은 죽어야 한다고.

 

“저 어디에도 안 가요! 같이 자요!”

 

오늘부터 그는, 태웅으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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