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역배우가 돌아왔다. 2화

 

태웅의 아침은 특별했다.

 

“우리 아들, 오늘도 예쁘네. 잘생겼어!”

“애가 싫어하잖아.”

“아빠도 참,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놔줘.”

 

그렇게 아들에게 투정 부리면서 자신을 안아주고 있는 어머니.

또 그런 어머니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아버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하루지만, 아침마다 점호 후 대청소하는 보육원의 아침을 겪었던 그에는 참으로 특별한 낮이 아닐 수 없었다.

 

“웅아, 유치원 가야지.”

“...유치원?”

 

한동안 아팠던 그가 유치원에는 가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병원에서 몸 상태가 괜찮아지고 있으며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태웅의 일상은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는 모양.

원래라면, 동생도 죽어야 하지만.

신께서 이 상황을 너무 가엽게 여기고 기회를 주신 것처럼 보였다.

그 기회는 태성에게 주는 것이 아닌, 어머니에게 주는 것이리라.

이 부분은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 앞에서 동시에 죽는 형제의 불효를 지켜볼 수 없던 것임을 기억하자.

태웅은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 아장아장 걸으며 서랍 앞에 섰다.

 

“우리 웅이 옷 갈아입게? 빨리 유치원에 가고 싶구나?”

“네에.”

 

그런 자신을 흐뭇하게 바라본 아버지는 말없이 출근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눈인사를 보낸 뒤 태웅의 옷을 갈아입히셨다.

태웅은 최대한 신이 난 척 어머니를 따라 버스를 타고 등원했다.

어머니의 걱정을 최대한 덜어내 드리기 위함이리라.

그가 유치원 앞에 도착하자. 정문 앞에서 서 있던 선생님이 빠르게 달려오셨다.

 

“어머, 태웅아! 오랜만이다. 선생님 기억해?”

 

고운 피부에 카랑한 목소리.

보육원의 선생님도 예쁘셨지만, 앞으로 자신을 돌봐주실 유치원 선생님도 고우셨다.

처음 그가 보육원에 있었을 때, 첫사랑이 그 선생님이셨고.

그녀와 비슷한 유치원 선생님을 보고 비슷한 감정이 드는 건 당연했다.

물론, 선생님을 첫사랑으로 두는 남자애는 흔하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너무도 어리기만 하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열두 살이나 다섯 살이나.’

 

태성이나 태웅이나 쌍둥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상형도 같을 줄이야.

태웅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유치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도 돼?”

“같이 놀자!”

 

순식간에 애들에게 둘러싸였다.

태웅은 그래도, 태성과는 다르게 친구도 많이 사귀었었던 것 같다.

그는 블록 쌓기, 숨바꼭질, 무궁화꽃이 피웠습니다 등 수많은 게임을 했고.

12살의 지능을 가진 그는, 5살 유치원 애들을 전부 이길 수 있었다.

절대 봐주거나 그러진 않았다.

게임에서 이길 때마다 초코파이를 줬던 보육원에서 자란 태성에게 있어서 승부는 냉혹한 거였으니까.

 

“너무 잘해...”

“이번에는 소꿉놀이하자!”

 

한 여자애가 소리쳤다.

그러자 놀다 지친 애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번쩍 손을 들었다.

 

“나는 엄마!”

“나는 아빠 할래!”

“그럼 나는 선생님!”

“강아지가 좋아!”

“나, 애기!”

“왕자, 왕자 할래!”

“아니야, 파워레인저가 가장 강해!”

 

확실히 어린 애들의 소꿉놀이 세계관은 어딘가 이상했다.

보육원에서는 소꿉놀이를 해본 적이 없는 그는 멀뚱멀뚱 그들을 바라만 보았다.

그때, ‘이가현.’이라는 글자의 명찰을 달고 있는 소녀가 태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분명 소녀는 엄마라고 처음 손을 들었었다.

 

“너는 내 남자 친구 해!”

 

그렇게 태웅은 남편도, 아기도 있는 한 엄마의 남자친구 역할을 하게 되었다.

 

* * *

 

타다다다다닥!

 

가현이가 어느 남자의 손목을 끌고 선생님 앞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니?”

 

선생님은 차분하게 묻자, 가현이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남자친구예요!”

“그, 그래?”

 

요즘 애들은 미디어가 발달 되어서 그런지 빠르구나 생각했던 선생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녀의 웃음을 본 가현은 이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내 남자친구 직업은요! 배우예요!”

 

* * *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유치원 앞, 자동차 한 대가 멈췄다.

차에서 태웅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내렸다.

태웅은 선생님의 손을 꼬옥 잡은 채, 부모님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한 자동차가 보이자마자 그쪽으로 다가갔다.

 

“엄마!”

 

그는 어머니를 보자 큰 목소리로 불렀다.

물론, 감동적인 재회처럼 막 달려가거나 그러진 않았다.

선생님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어머니를 부른 것.

어머니는 본인보다 선생님이 더 좋은 건가 싶은 서운한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났지만, 정작 이름도 불리지 않는 아버지는 이제 익숙해졌는지 자연스럽게 웃어 보였다.

 

“오늘은 뭐 먹을까?”

“치킨이요!”

“치킨 좋지.”

“태웅 엄마는 괜찮지?”

“그저께 먹었는데...”

 

그저께 먹은 치킨이 생각난 어머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고, 그녀의 눈에 치킨을 먹고 싶다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자 포기한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

 

“네. 먹어요.”

“바로 주문할게.”

“그래요, 아, 선생님. 오늘 웅이 별일 없었죠?”

“아, 네. 오히려 친구들과 잘 뛰어놀고 그랬어요. 게임은 어찌나 잘하던지, 친구들이 태웅이만 게임 이긴다면서 우는 애들도 있을 정도라니까요.”

“게임 잘하고 안 봐주는 건 지 아빠를 닮았나 봐요.”

 

곁눈질로 치킨 주문을 하는 아버지를 힐끗 본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른 건 없었나요?”

“다른 건... 아! 오늘 소꿉놀이를 했었어요.”

 

선생님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소꿉놀이요?”
“네. 그 소꿉놀이에서, 태웅이가 가현이 남자 친구 역할을 했는데요.”

“어머, 남자 친구요?”

“네.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태웅이가 남자 친구 역할을 했을 때, 직업이 뭐였는지 아세요?”

“...뭔가요?”

“배우요, 배우. 남자 친구는 다른 애들이 골라준 역할이었는데, 배우만큼은 자기가 직접 고른 거더라고요.”

“아아, 배우요.”

 

어머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이가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는 좋은 일이지만, 어머니는 태웅이 태성을 연기한 것만 같은 그날의 저녁을 잊지 못한 것 같았다.

연기는 잘하는 게 맞지만, 저녁에 보여주었던 태웅의 모습은 조금 무섭게 느껴졌던 어머니였다.

아들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다니.

 

‘나도 참...’

 

그런 자신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는지, 어머니는 허하고 헛웃음을 흘린 뒤 태웅의 머리를 과하게 쓰다듬었다.

 

“좋네요.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나중에 유명해지면 얼굴 보기도 힘드니까, 미리 싸인이라도 받아볼까요?”

“선생님은 제가 따로 싸인드릴게요.”

 

또박또박 말하는 태웅.

그 모습에 어머니도 선생님도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언젠가 배우가 되고 싶다.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고.

반드시 대배우가 되어서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태웅은 얌전히 아버지의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보육원에서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던 그 ‘치킨’이라는 것을 먹어보는 날이다.

 

* * *

 

한 번 느낀 짜릿한 감정은 잊지 못한다고 했던가.

태웅에게 있어서 연기란 그러했다.

잊지 못하는 기억.

그저 남들보다 버려진 연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시작한 보육원의 헨젤과 그레텔 연기를 시작으로.

많은 무대에 섰고.

또 박찬우 감독의 공개 오디션에서 당당하게 합격점을 받았었다.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 연기를 좋아하고 빠져들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닌, 평생토록 하고 싶은 직업이었다.

아, 그리고 그가 연기처럼 빠져든 게 하나 더 있다.

이는 흡사 하나의 종교에 빠져서 못 나오는 신도를 보듯.

태웅 또한 그러했다.

 

‘치느님.’

 

보육원에서는 왜 이 맛있는 치킨을 직접 튀겨서 주었는가.

이렇게 배달을 시켜 먹으면 여러 가지 종류와 맛, 황금색 올리브나 치즈 튀김 등 환상적인 맛을 진작 알 수 있었을 텐데.

 

‘아... 아멘. 오늘도 일할 양식을... 닭다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웅은 처음 먹어본 치킨의 기억을 잊지 못했다.

너무도 맛있었다.

처음 한 입을 먹자마자 눈물을 흘렸을 정도니까.

효도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는, 어머니가 먹어야 할 치킨까지 전부 다 먹어 치웠고.

결국, 다른 음식을 또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이 먹으면 살찐다? 예쁜 얼굴 다 없어진다? 배우 하고 싶다며.”
“애가 맛있게 먹겠다는데 왜 그래?”

 

아버지가 어머니를 질책했다.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일하는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아들이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쓴소리를 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 다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들은.

열두 살이 되도록 치킨을 처음 먹어본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을 거다.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그는, 유치원에서 졸업 연극을 한다고 말하는 동안 내내 치킨을 외쳤었다.

몇 년 그렇게 먹다 보니, 슬슬 질렸던 태웅은 더 이상 외치지 않았다.

가끔 꿈에 치킨이 나올 때면, 그때마다 치킨을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곧 유치원 졸업인데, 어떡해.”

“뭘 어떡해, 초등학교 다니면 되지.”

“누가 그걸 걱정한대요? 애 졸업 연극이 걱정되는 거죠. 졸업 연극!”

“그냥 재롱잔치 아니야? 뭐 귀여운 우리 아들 모습만 좀 보고 오면 되죠.”

“그게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늘도 태웅에 관해서 말을 이었다.

유치원 졸업 준비가 한창인 태웅은 7살을 맞이했다.

곧 8살이다.

그 전에, 유치원에서 애들에게 춤이나 노래를 알려주어서 재롱을 떨어야 하는데.

이번 졸업은 특별하게 연극을 보여주자는 안건이 나왔다.

이유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우선, 태웅이 연기를 잘한다는 소문이 애들 사이에 쭉 펴졌다.

그러자 유치원 내에 연기 열풍이 돌았다.

단순히 토끼처럼 깡충거리는 연기.

거북이가 느리고 걸어서 토끼를 이기는 연기.

뭐 이런 수준의 연기들 뿐이지만 애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연기한다는 행위가 유행했다.

소꿉놀이처럼, 자신이 되고 싶은 무언가가 되어 연기한다는 것에 아이들이 재미를 느꼈고.

이 사실을 잘 알던 선생님은 이에 연극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연극은 독백이다.

 

‘자신이 되고 싶은 직업을 작성하고, 부모님 앞에서 혼자 독백으로 자신의 꿈을 널리 설명하는 연기였지.’

 

사실 자신의 꿈을 작은 행동과 목소리 톤으로 부모님에게 설명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춤과 노래로 하루만 즐겁게 보내고 잊힐 졸업보다는, 아이들이 재밌어하고, 본인들의 꿈과 진심을 전하는 이러한 연극이 더 낫다고 선생님들은 판단한 것.

 

“웅아, 너는 어떻게 할지 정했어?”

“네.”

“뭔데? 배우?”

 

아이들의 꿈이라는 건 순식간에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묻는 어머니의 말에, 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배우가 된 모습을 보여드릴 거예요.”

 

배우.

하지만, 그냥 남우주연상 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꿈이 아니었다.

그가 부모님에게 독백으로 보여주고 싶은 배우의 이미지는 따로 있었다.

 

‘태성이 아닌, 태웅으로서의 배우.’

 

태성은 지웠다.

태웅으로서의 배우의 마음가짐을 보여드릴 거다.

그의 이러한 마음가짐은 멀지 않은 시기에 표출할 수 있었다.

 

1월 20일.

 

‘한빛 유치원 졸업!’

 

소소하게 걸린 현수막.

유치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공간에 아이들과 부모님, 선생님이 서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태웅의 졸업 연극이 있겠습니다!”

 

모두의 박수갈채 속.

태웅은 그들의 앞에서 연극을 시작하려 한다.

 

“저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그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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