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역배우가 돌아왔다. 3화

아이들은 춤과 노래를.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재롱을 카메라에 담는다.

매년 똑같은 유치원의 풍경.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던 유치원 졸업식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첫 시작은 어린아이들의 소꿉놀이.

태웅이라는 남자아이가 연기를 시작하고서 유치원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모두가 각자 되고 싶은 인물로 변하며 연기를 하기 시작한 것.

물론, 그저 태웅의 연기에 빠져서 지켜보기만 하는 애들도 많았다.

‘좋아, 연극을 하는 거야.’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대본을 쓰는 것은 오래 걸리고.

간신히 대본을 완성한 다음 억지로 대사를 외우게 하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했다.

모두가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에게 각자 되고 싶은 꿈을 연기하자고 말했다.

부모님에게 보여주자고!

공주가 됐든, 용이 됐든, 자기 자신을 보여주자고!

그렇게 아이들에게 설명하자, 유치원의 분위기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모두가 되고 싶은 것들을 찾기 시작했고, 본인들의 꿈을 부모님에게 보여줄 생각에 신이 난 것이다.

이 모든 분위기와 흐름을 만든 장본인인 태웅이었다.

“정말 신기한 아이야.”

매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느덧 졸업식 날.

‘한빛 유치원 졸업식’

졸업식이 시작되고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 앞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저는 토끼예요! 엘리스에게 길을 안내하죠!”

“저는 대통령이에요. 오늘 저를 뽑아 주신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 유투버 민영입니다!”

모두가 함박웃음을 보이고 있을 그 순간.

“저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태웅이 나타났다.

소풍 와서 장기 자랑을 하는 듯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그 아이의 낮은 목소리로 흩어지고 말았다.

모든 동급생과 부모님임 태웅의 눈에 시선을 집중했다.

“왜냐고요?”

태웅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요. 아빠가 저를 보고 웃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다 자라지 않는 이빨로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라곤 믿기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이 무대를 감상했다.

“대배우가 되고 싶어요. 부모님에게 아들 훌륭하게 컸다고 알려주려고요! 꼭 상을 타면 이 영광을 부모님에게 돌릴 거예요!”

아이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 아빠. 저 건강하고 잘 지내요. 가끔 팬들에게 시달리고 감독님이 혼을 내지만, 괜찮아요. 아, 그리고 어제 스캔들 기사난 거 있잖아요? 그거 저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어린아이에서, 청소년, 연기자가 되고 성공한 청년.

태웅은 각각 시대에 따라서 목소리 톤을 다르게 하여 연기했다.

그리고.

“남우주연상, 또 타게 됐네요. 아빠 엄마, 제가 행복하게 해드리겠다고 말씀해드렸는데... 그 약속 제대로 지켜졌을까요?”

자신이 연기했던 어린아이 시절 했던 말을 되짚어보고 상기한다.

어린아이가 다 큰 어른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연기를 한다니.

다른 부모님들도 놀란 눈치였지만, 태웅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잖아요. 그저께.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죠, 모든 생명은 다 그렇게 떠나가는데. 저는...!”

태웅이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연기에 너무 빠져든 것일까.

아니면 슬픈 무언가가 아이의 마음을 울린 것일까.

평범한 유치원 교사였던 그녀에게는 알 수 없었다.

하나 확실한 건.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으니까요.”

지금은 태웅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 * *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마지막 말은 태성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아직 그는 자기 자신을 다 내놓지 못했다.

할머니의 실수, 태성의 이동, 경찰 수사의 난항.

이 모든 게 태성을 만들었다.

버려졌을 때의 분노가 오해라고 하더라도, 쉽게 해소가 될 분노가 아니었다.

그저, 이제야 용서를 할 뿐.

할머니에 대한 용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너무 늦게 깨달은 거다.

덜컹.

고속 방지턱을 밟은 자동차가 덜컹거리자, 뒷자석에 앉은 태웅의 몸이 붕하고 떴다.

“웅아 괜찮아?”

“여보, 좀 천천히 달려요!”

“아니, 천천히 달리면 치킨집이 닫잖아요. 지금 가야 한다니까.”

“그래도 애가 지금 몸이 10미터나 붕 하고 떴는데!”

“뭐가 10미터야! 한 1센티 정도만 떴다 내려앉았구만.”

부부싸움이라고 해야 할지, 사이가 좋은 친구의 다툼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둘은 지금 태웅을 두고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태웅은 부모님의 이러한 모습이 익숙한 듯 다시 안절밸트를 풀었다가 맸다.

“웅아, 이제 좀 괜찮아졌어?”

엄마가 조수석에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그녀의 말에 태웅은 홱하고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연기할 때 사람들 앞에서 울었던 게 조금 창피했기 때문.

유치원 졸업식은 잘 마무리되었다.

친구들이 연락처도 많이 남겨줬고 또 놀자며 울고불고하는 애들도 많았다.

보육원에 있던 당시 다른 부모에게 선택받아 떠나는 아이들이 간혹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겠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유치원에서 같은 초등학교로 올라가는 애들은 끝까지 연락하고 지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연기에 너무 몰입하면 울 수도 있지 뭘 그래. 사내 녀석이!”

“...그런 거 아닌데.”

아버지의 언급에 태웅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아들의 표정을 본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강하게 쳤다.

“아니,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 안 울었대잖아요!”

“그럼 운 걸 울었다고 하지. 안 물었다고 그래?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알려주는 게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해요. 안 그래요?”

찰싹!

어머니에게 한 대 더 맞으신 아버지.

눈물이 찔끔 나온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다무셨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때린 게 속이 안 찼는지, 말을 이어나갔다.

“독립적으로 키우는 건 좋은데, 굳이 기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잖아요. 그쵸?”

“......뭘 그렇게까지.”

아버지는 중얼거리시기만 하고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으셨다.

이런 가족의 품에서 자랐던 거구나.

나는.

정말 행복한 집에서 태어났던 거야.

물론 보육원이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형누나들, 친구들, 선생님들까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잘 살았고 잘해주셨으니까.

‘은혜를 갚을 사람이 더 있었네.’

부모님. 유치원 선생님.

그리고 보육원 사람들.

태성이 죽고 벌써 2년이 넘었다.

자신의 장례식도 나름 소소하게치뤄졌을 거고, 부모님도 그 소식을 들었을 거다.

그리고 그때는 태웅도 언제 죽을지도 몰랐던 상황이었다.

서로 바쁘고 정신도 없는 와중에.

시간은 흐르고 흘러, 열두 살이었던 태성이 태웅의 몸으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한성 초등학교.’

축 입학!

큼지막한 축 입학은, 태성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 * *

보육원생들은 꿈도 못 꿨을 학교 동아리 활동.

태웅은 학교 입학하자마자 동아리부터 찾았다.

원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우선이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이상하게 그는 예전부터 친구 사귈 노력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됐었다.

“야야, 우리 게임할래? 어제 게임기 샀거든!”

“무슨 소리야! 오늘 우리랑 스티커 사진 찍기로 했거든? 그치?”

태웅은 약속한 적도 없는 약속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괜찮은 외모에 일찍 철이 들어 애늙은이 같은 말투가 친구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좋았다.

태성 때도 그랬고, 태웅 때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중 한명.

나를 매섭게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이가현, 소꿉친구 때 주로 엄마를 주로 했던 아이였다.

그만큼 예뻤고, 발성도 좋아 말을 또박또박 잘했었다.

그리고 태웅은 그녀의 남자 친구 역할을 하곤 했다.

‘계속 쳐다보는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그녀는 인기가 많았고, 말을 거는 애들도 태웅 못지않게 많았다.

한데, 가현은 태웅에게 애들이 오면 왜인지 날 선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뭐 사춘기인가 보지.’

태웅은 어린애들이 화를 내면 대부분 이유는 사춘기여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호르몬 분비가 제멋대로인 시기.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사춘기에 빠지고, 정글과 같았던 질풍과 노도만 있는 보육원에서 살아남았던 태성의 생각은 그러했다.

또 싸움 많이 하고 한 성깔 했던 그가 동생인 태웅의 몸에 들어왔다고 해서 성격이 죽을 리 없었다.

“재수 없어.”

성격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이런 소리도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

태웅은 벌떡 일어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보육원에서 형들과 사이좋게 지낸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지.’

라는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난 태웅의 표정은, 무심코 시비를 건 남자아이를 울리기엔 충분했다.

“...흐윽...끄윽...”

눈물콧물 범벅이 된 아이.

태웅은 그제야 심각한 얼굴 표정을 풀었다.

‘내가 동생뻘인 애들에게 뭐 하는 건지.’

동급생도 아니고 나이도 한참 어린 애들에게 너무 심한 것 같아 표정을 푼 뒤 바로 싱긋 웃어 보였다.

“여기.”

태웅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이의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었다.

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겠지?

만약 태성인 채로 태웅이 옆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생각한 그는 아이의 눈물콧물 범벅이 된 손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차피 쓰지 못할 손수건 아니던가.

태웅은 먼저 어린아이에게 신경 썼다.

“괜찮아?”

“...으응. 미안해, 심한 말 해서.”

“아니야. 너도 같이 놀래? 이번에 내 친구가 게임기 샀다고 하는데. 괜찮지!”

일부러 마지막 말을 더 크게 해서 뒤에 있는 친구도 다 들리게 말했다.

그러자 뒤에 있는 친구가 얼떨결에 “응!”이라고 대답했다.

태웅이 울었던 아이 앞에 있자, 이번에 뒤에 있던 애들이 몰려왔다.

어느새 그의 주변에는 애들로 가득했다.

혼자 있는 친구 없이, 모두가 즐거운 그런 학급.

물론, 어느 곳에서나 예외는 있고 태웅 역시 만능이 아니었기에.

화목하기만 한 학급은 만들지 못했다.

싸우기도 하고, 가끔 서툰 정치질 끝에 감정적으로 상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태웅이 있던 반은 점점 성장해갔다.

그래, 한 치 앞도 모르는 학교생활이니까 재미있는 거겠지.

그렇게 한 달 후.

태웅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 연극부가 없다고요?”

분명... 여기에 연극부가 있다고 해서 부모님에게 조르고 설득해서 온 학교이건만.

연극부가 올해 폐부를 한 것.

“그래. 올해 사라졌단다.”

“...”

한참 질풍과 노도가 몸과 뇌를 정신없이 지배할 시기.

태웅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아니, 이미 찔끔 나왔는데 순식간에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서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연극부가 없어... 어떡해...’

태웅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해요?

방법이 없을까요?

대충 이러한 눈빛을 하고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보자, 선생님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고 싶니?”

“네!”

고개를 강하게 흔드는 태웅.

“그럼... 네가 부장이 돼서 직접 창설하면 어떻겠니? 부원 다섯만 모아서 말이야.”

‘...!’

선생님의 말씀에 태웅은 눈이 반짝거렸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