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가 지저귀는 곳에서

10화

“사람들은 살아가며 수많은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만들곤 한단다.”

아자드는 제렌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창문 밖으로 황금색 햇살이 쏟아져 내려 방 안을 환히 비추고 있었지만, 제렌은 창을 등지고 있어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어 아자드는 좀 더 몸을 돌리려 했지만, 제렌은 양손으로 아이를 다시 무릎 위에 앉힌 뒤 빗으로 머리카락을 살살 빗어주었다. 

“왜요? 그건 전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그럼 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나요?”

호기심이 가득 담긴 어린 아이의 물음이었다. 아자드는 제렌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그의 어머니는 생각에 잠기면 고개를 슬 기울였다. 언제나 미소짓듯, 미소짓고 있지 않은 듯한 미묘한 표정은 그대로인채로. 그 탓에 다른 이들은 제렌에게 표정이 없는 사람이라 마음 속을 읽기 어렵다 했다. 그러나 아자드는 자신을 낳아준 이가 내면의 말을 고르고 고르고 있단 걸 알았다. 제렌은 그 누구보다 훌륭한 농부였다. 말의 씨앗을 고르고 어떤 방식으로 뿌려야 하는지 고심했다. 

“나쁜 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겠구나.”

“합리화를 하면 나쁜 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 않나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 걸요.”

아자드는 이번엔 제렌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 다시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제렌이 답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아서겠지.”

“그렇다고 타인을 상처 입혀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제렌은 자신의 무릎 위에 올라와 있는 아자드를 땅에 내려놓았다. 양발이 마루 위에 닿자 아자드는 무릎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제렌은 햇살을 등지고 있었다. 

“기억하렴, 아이야. 우리는 그래서 언제나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법을 노래해야 한단다.” 

*

아자드의 마음이 더없이 뒤숭숭했다. 황금실이 수놓인 푹신한 하얀 베개 위에 온몸을 늘어뜨리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황실에 들어가는 매트리스인만큼 그 값을 하여 침대는 그 위에 누운 이를 마치 구름 위에 누운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자드는 그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고민의 구렁텅이에 쑤욱하고 빠져드는 것 같았다. 

[뭘 그렇게 걱정하시는 건지! 그냥 마음 편히 가자니까요?]

그 옆을 뒹굴거리며 입 안에 벌꿀 사탕을 넣던 콜야가 한심하다는 듯 아자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너는 그리 편하게 말을 하니? 이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잖아, 너도]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집에 오라는 제안을 덥썩 물어버리시나요?]

맞는 말이었다. 콜야의 따끔한 한마디에 아자드는 다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정말 제정신이 아녔던게 틀림없어.]

아자드의 신세한탄에 콜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들여다보고 있던 조경 잡지에 시선을 두었다. 제 주인이 벌인 일이니 자신이 알 바는 아니라 3번은 말하고 난 뒤였다. 

만약 평소라면 케일런의 초대를 단번에 거절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아자드는 그 어느 눈에 띄어서도 안되는 위치이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이들은 곤란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의도치 않아도 정치적 함의를 담을 수 있었다. 주체가 담지 않아도 주체의 행위는 타인에 의해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이건 굉장히 불안하고 날카로운 문제였다. 이를테면, 아자드가 실수로 나이프 하나라도 왕을 향해 두었다면 그것은 반역의 의사를 내비치는 행위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 차관의 집에, 그것도 그의 아들의 초대를 받아서 간다? 이건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말해도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손가락을 들어 사람을 향해 놓았지만, 그건 그 사람을 가리킨 게 아니라 둘러대는 꼴이었다. 입에 빵 부스러가기 묻어 있지만 돼지가 빵을 먹었다 말하는 짓이었다.  

아자드가 연거푸 마른 세수를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정말 왜 그랬을까?]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요, 왕자님, 가고 싶으셨으니 가고 싶다 하신 게 아닐까요?]

다시 아자드가 허를 찔린 표정을 짓자 콜야가 한숨을 쉬고는 보고 있던 잡지를 덮었다. 

[전 왜 그렇게 왕자님이 고민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뿐이잖아요!]

[그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너도 알잖니? 난 살아생전 놀러간 집은 네 집밖에 없어!]

[들어보세요, 왕자님]

콜야가 답답한지 양손을 들어올렸다. 아자드가 자신에게 집중하자 콜야는 크게 숨을 내뱉고는 따박따박 말했다. 

[케일런은 미국의 누구 아들이죠?]

[국무부 차관]

[에크스탄과 미국 중 누가 더 강하죠?]

[…미국이지]

[그러면 혹시 이 나라에 안에서 국무부 차관의 아들을 건드릴 용감한 사람이 있을까요?] 

[…….]

콜야가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짐승의 아가리를 연상케 했다. 

[물론 …검은 짐승은 물어버릴 수도 있죠. 하지만 말예요, 짐승의 주인은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걸 아시잖아요? 주인은 그 짐승만큼 용감하지도 않고 머리가 없지도 않은 걸요!]

검은 짐승, 이 나라 수장이자 지도자의 오른팔인 말리크 국방부 장관을 일컫는 말이었다. 언제나 검은 가죽 장갑과 잔뜩 기름을 먹여 번지르르한 검은 말채찍을 들고다니는 그를 모두 두려워했다. 아슬란에 대해 맹목적일 정도로 충성심을 보이는 그는 자신의 주인의 명이라면 폭탄이 떨어지는 격전지 한 가운데에도 맨몸으로 뛰어들고 남을 이였다. 

하지만 아슬란은 그럴 정도로 제 말을 낭비할 사람도 아니였고, 말리크 장관은 자신이 섬기는 자가 명하지 않으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간다하면 솔직히 왕자님이 스스로를 걱정하셔야죠. 짐승이 어떤 건수를 잡아 왕자님을 물어뜯을 줄 알고요? 그렇지만 왕자님을 물려고 하면 국무부 차관의 아들도 같이 흠을 잡아야 하니 생각만큼 쉽지 않죠.]

[난 가끔 콜야가 이렇게나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그럼 자랑스러운 저의 말을 들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콜야는 침대에 걸터 앉은 채 다리를 바깥으로 쭉 뻗고 앞뒤로 휘저었다. 한번 다리고 교차될 때마다, 침대 위가 출렁거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 아자드는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여섯번 흔들고 콜야가 멈추면 안 간다 해야지. 하나, 둘, 셋… 그러나 점점 쏟아지는 졸음에 숫자를 계속해서 놓쳤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

학교가 끝나고 아자드와 케일런은 같이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는 비서와 차를 보고 케일런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꽤 놀랐었다. 아자드가 교실에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가는 사이, 케일런은 앞좌석 문을 열고 비서에게 물었다.

“뭐에요, 이거? 갑자기 아저씨가 왜 여기 있어요?”

“차관님이 부탁하셨다. 그리고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애 딸린 남자가 아저씨지, 그럼 뭐라고. 그래서 왜 부탁한건데요?”

비서는 골이 아픈 듯 미간을 짚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런은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인터넷 선 연결해놨다고, 앞으로도 얌전히만 있으면 선 빼거나 하지는 않을테니 제발 얌전히 있어달라 말 전해달라 하셨다.”

“네, 네. 왕 납셨네요.”

케일런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불만스러운듯 툴툴거렸다. 그러나 은근히 올라가는 입꼬리는 숨길 수 없었는지 실실 웃고 있자 마침 돌아온 아자드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웃어?”

“어, 네가 얌전히 우리 집으로 와서.”

“무슨 소리야? 이해를 못 하겠는데…….”

“빨간 머리 시끄러운 놈 안 달고 와서 좋다고.”

그 말에 아자드가 눈을 위아래로 한번 굴렸다. 

“그,”

“안돼.”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고 안된다고 해?”

“콜야도 나중에 집에 데리고 가면 안되냐고 물어볼 거잖아.”

“……아닌데.”

“정말?”

“…처음에는 불러도 된다고 했으면서.”

“마음이 바뀌었어. 이런 건 집주인 마음대로인 거라고.”

그 말에 이번에는 아자드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절대로 안돼, 죽어도 안돼. 알겠지? 걔 엄청 시끄럽단 말이야. 우리 집에 한 번 오면 아주 그냥 난장판을 만들어 놓을걸……. 계속되는 케일런의 말에 아자드는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차에 올라탔다. 

케일런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케일런과 아자드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케일런이 들려준 음악과 밴드에 대한 이야기였다. 운전을 하며 오아시스와 비틀즈에 대해 어머니가 영국인인 비서가 한마디 던지려고 했지만 케일런이 그의 이야기를 늙은 꼰대 취급해 비서는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곧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릴 때, 비서가 케일런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밝은 왕자님인걸. 얘기로만 들었을 때는 꽤나 무뚝뚝하고 언제나 무표정인 성격이라고 하던데.”

그 말에 케일런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 말았다. 이건 나하고만 있어서 보여주는 표정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 사실도 비서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둘이 집에 도착해 문을 열 때쯤, 이미 해는 반쯤 지고 있었다. 땅거미 질 무렵보다는 살짝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자 노란색과 주황색이 반절 섞이다만 색의 빛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케일런의 집은 아무도 없어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매일마다 가정부가 케일런이 학교에 있을 무렵에 집을 청소하고 돌아가기에 잘 정돈된 집 안이었다. 현관으로 아자드가 한 발자국 내딛자 바깥에서 들어오는 하얀 먼지가 햇살 안에서 부유했다. 

“들어가. 현관 안 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다이닝룸하고 부엌이고, 거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거실이야.”

케일런의 말에 아자드는 쭉 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실내등은 전부 꺼져 있었지만 블라인드 틈새 사이로 빛들이 스며들어오고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다이닝룸과 부엌을 지나 거실로 향하자 짙은 녹색 1인용 소파, 테이블, 그리고 높은 책장들이 보였다. 

“책이 엄청 많네?”

“다 아버지 책이야. 한 달이상 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챙기는 책들하고 서점에서 쓸어오는 책들이 모여 있어서 그래. 서재 쪽에 더 많이 있어.”

“다 비행기로 가지고 오는 거야?”

“비서가 정기적으로 본가를 오가면서 가져다 줘.”

아자드는 케일런의 말을 들으며 책장 속 책 제목을 읽어내렸다. 

“조경잡지도 있네? 조경 쪽에도 관심 있으셔?”

“어어. 몰라? 노친네 취미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나중에 콜야에게 무언가 더 부탁할 때 쓸 용도로 미리 쟁여둔 조경잡지였다. 케일런은 완벽범죄를 위해 모르쇠 화제를 돌렸다. 

“이 문이 내 방이야. 아버지가 일 나가시긴 했는데, 본인 서재에 들어가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셔서 내 방에서 놀다 가면 돼.”

그 말을 하며 케일런이 자신의 방 문고리를 잡았다. 순간, 여러 생각이 케일런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내가 그러고보니 아침에 방 청소를 했나? 숨겨야하는 물건이 있지는 않았나? 내가 침대 위에 뭘 올려놨었지? 맥심? 아닌데, 그건 일주일 전에 질려서 캐리어에 대충 집어넣었는데. 

“왜 그래?”

“어, 아냐. 문이 뻑뻑해서. 그, 뭐냐. 쿠키 먹을래? 부엌에 있을 거니까 먹고 싶으면 가져와도 되거든.”

“아냐, 괜찮아.”

“정말? 우유도 있는데.”

“괜찮다니까?”

“아, 야, 잠,”

잠깐이라도 몰래 방청소를 하려 케일런이 둘러댔지만 아자드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케일런 대신 문고리를 잡고 훅, 문을 열었다. 케일런은 자기도 모르게 볼 안을 꽉 깨물었다. ‘환기라도 아침에 시킬 걸, 냄새나는 거 같은데.’

“그… 미국에서도 이런 말 실례일지 모르겠는데.”

“어어, 뭐가?”

“창문을 아침에 열면 공기가 잘 통하거든…….”

케일런은 문지방에 머리를 찧고 싶었다. 차마 그러지 못한 그는 빠르게 말했다. 

“야, 가서 쿠키하고 우유하고 물하고 뭐냐, 아무거나 들고 와. 내가 5분이면 방 정리하거든.”

“5분으로 안 될거 같은데.”

“하…….”

쪽팔린 나머지 케일런이 고개를 푹 숙이자 아자드가 손사레를 쳤다. 

“괜찮아, 농담이야. 신경 안 써도 돼. 내 방은 니냐가 언제나 청소해주지만 너는 아니니까 그럴 수 있지.”

“그만 말하고 부엌이나 가라고…….”

아자드가 냉장고에서 쿠키와 우유, 파이를 찾는 동안 케일런은 재빠르게 창문을 열고, 커튼을 젖히고, 바닥에 널부러진 양말과 바지를 침대 밑으로 밀어넣었다. 휴지통 안에 있는 뭉친 휴지들은 전부 옆에 있는 닉슨의 서재 휴지통에 쏟아붓고, 굴러다니는 나머지 잡동사니들도 닉슨의 서재에 던져버렸다. 얼떨결에 간식거리를 스스로 챙기게 된 손님이 방으로 다시 돌아올 쯤에는 방 상태는 한결 나아보였다. 

케일런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팔짱 낀 채 문가에 기대있자 아자드가 우유컵을 내밀었다. 

“정말 5분이면 되네?”

“내가 말했지. 나는 거짓말 안 하거든.”

로널드 닉슨이 옆에서 봤으면 당장 인터넷 선을 끊어버릴 모습이었지만 옆 서재의 폭탄 맞은 상태를 모르는 아자드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침대 위에 앉으면 돼. 여기는 신발 벗고 올라가야 하나?”

“으음. 실내화를 따로 쓰기는 해.” 

“편한대로 해, 그럼.”

케일런이 신발을 신은 채 침대에 올라가자 아자드는 머뭇거리다, 신발을 벗고 침대에 올라갔다. 그의 맨발이 보였다. 

“너 발에 점이 있었네.”

“아, 응. 어머니도 같은 위치에 있었대.”

“흐음.”

케일런이 빤히 자신의 맨발을 바라보자 아자드는 기분이 머쓱해져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다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저 책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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