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 바깥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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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절간 스님 by 넵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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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당 회차는 1부의 마지막 입니다.

기실 도핀이 가족도 아닌 누군가의 결혼식에 방문하는 것은 실로 어색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 있어 친구란 사람들은 어느새인가 훌쩍 나이를 먹어버리는 형통에 어찌나 어색한지. 지금도, 도핀은 이곳에 있는 사람 대다수를 알지 못한다. 그저 신부의 아버지 되는 이에게 이렇게 젊은 친구가 있었느냐며 모두가 웃을 뿐이다. 나이는 이곳에서 도핀이 제일 많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서 말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살갑게 자신을 맞이해 주는 친구. ‘자네는 여전히 젊군!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야! 꼭 시간이 멈춘 거 같네.’ 그렇게 감탄하면서 끌어안는 그 모습에 도핀은 좋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펑펑 눈물을 쏟을 뻔했다. 내가 젊은 게 아니야, 너희가 너무 빨리 늙어버리는 거지. 그래, 인간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신부의 아버지를 만나러 온 수려한 외모의 젊은 친구에 대해 신부의 친구들은 호감과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사실 신부의 친구들뿐 아니라 결혼식 연회를 찾아온 사람들 대다수가 도핀을 마주하면 그랬다. 그러다 기회가 있다면 슬며시 그와 말문을 트기 시작한다. 키가 조금 작은 감이 있지만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는 옅은 웃음과 정돈된 우아한 몸짓이 꼭 어디서 잘 교육받은 부유층의 사람 같았으니까. 그 추측은 대다수 들어맞았다. 그는 700여 년을 살아온 뱀파이어였으니 교육이라 함은 지겹도록 받을 수 있고, 부라 함은 질리도록 축적할 수 있는 기간이지 않은가. 때문에 도핀은 이러한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나, 그것과는 별개로 익숙하다면 익숙한 일이었다. 그도 홀트 가문에 속한 뱀파이어 중 한 명으로서 적당히 살가운 사람의 가면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이윽고 그날 가장 아름다운 사람임이 명백한 신부가 단상으로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을 맞이하여 이제는 가족이 될 상대와 영원을 약속했다. 그들은 앞으로 서로의 의무와 책임과 행복을 다 할 것을 맹세한다.

‘영원’

 

도핀에게는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인간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죽음과 영원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영원이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했더니,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의 주인공들에게 박수를 쳐 주는 이곳에서 자신만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모르고. 도핀은 누군가의 행복 앞에서 초라함을 느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다니! 그는 저조해지던 제 기분을 갈무리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손뼉을 치며 행진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결혼식 당사자들을 축하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가 파도처럼 물결쳤다. 면사포 아래로 수줍게 가려진 신부의 행복한 미소가 보였다. 9월의 가을임에도 언제나 5월의 신부를 축하하기 위해서처럼 종이로 만든 꽃가루가 휘날린다. 그 순간만큼은 영락없는 계절의 여왕이 만들어 내는 행차 같았다. 신부가 다음 행복을 지목하기 위해 등 뒤로 포물선을 그리며 부케를 던진다. 신부는 행운을 가져가라는 의미에서 하객들에게 던져지는 꽃. 옛날에는 말이야. 저건 약초 다발이었어. 질병이나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서. 나도 모르는 더 옛날에는 곡식 다발이었대. 재미있지 않니? 신부는 듣지 못할 텐데도 도핀은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이곳 모두가 너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어.

 

Something old, something new

Something borrowed, something blue

And a silver sixpence in her shoe.

 

오래된 민담처럼 그 행복한 앞날을 기원하기 위해 준비 되어있는 모든 것. 그래, 어느 때 쫓겨나야 할 나쁜 것 중 하나인 뱀파이어도 이렇게 축하를 하고 있는데. 저들은 분명 필시 행복해지리라.

결혼식이 끝나면 이제는 하객들의 친목 교류를 위한 연회가 시작된다. 도핀의 친구는 그가 어색하지 않도록 자신의 오랜 제자라며 다른 이들에게 도핀을 소개해 주었다. 아마도 모르는 사람들 틈에 있어야 할 도핀을 위한 배려였겠지. 그와의 일화가 크게 달라질 부분도 없이 자랑처럼 늘어놓아 지지만,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중년의 남성과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어린 남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니 도핀은 짧은 웃음이 나왔다. 그가 왜 웃고 있는지 알만한 자는 이곳에서 도핀의 친구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도 도핀이 왜 웃는지 짐작했는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이제는 눈가에 실금처럼 남고 입가에 깊게 패는 주름이 보였다. 아,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곳에서 도핀만이 영원토록 젊을 것이다.

 

+ + +

 

때때로의 이야기다. 흉측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랑은 사랑스러운 아내가 보여주는 끝없는 헌신을 통해 마침내 끔찍한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모습이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영원히.’로 끝맺게 되는. 그런 때때로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막의 짐승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였기에, 흔하디 흔한 동화와 같은 결말은 추호도 맞이할 수 없었다. 하여, 비록 그들이 지금은 인간 탈을 쓰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그저 흉내 낼 뿐이다. 그렇게 태어났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그것을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이가 나타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에게도 사랑으로 비칠까?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정말 사랑일까?

세상을 불태울 것처럼 내려앉은 사막의 노을만큼 붉게 일렁이며 타오르는 머리카락. 사막에서는 보기 드문 푸르른 녹음을 닮은 눈동자. 터질 듯 숨차 오르며 호흡하는 숨결. 사박사박 모래 밟는 소리를 내며 거니는 걸음걸이. 언제 흩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얽혀오는 가느다란 손가락.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없이 이어질 그 모든 것. 그래도 너는 그게 사랑이라고 했지. 내가 있는 그 무덤에서 네가 홀로 나를 찾아왔듯, 네가 홀로 떠나 숨은 마을에서 내가 너를 찾아냈듯. 네가 내게 그걸 사랑이라고 가르쳤잖아. 그럼 내게는 그게 사랑이야. 치욕스러울 만큼 너를 사랑했어. 어리석은 나는 기어코 내 이름과 함께 불타버린 너를 증오하며 끊임없이 너를 사랑했음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래. 이렇게 아물지 않을 커다란 상처를 입힐 때야, 너의 사랑이 완성된다. 나의 사랑은 오롯이 너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니 사랑을 해서 잃어버린 것이라면, 사랑을 할 때 다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 또한 어리석은 믿음과 기대와 혹은. 불완전해져 버린 짐승은 한없이 존재로 추락하여….

네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한눈에 너를 알아볼 텐데. 다시 태어난 너를 취해 기필코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을 텐데. 아,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나도 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존재란 그 한 번으로 끝인가 보구나. 그에게는 결코 제 실수를 주워 담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름을 영영 유실한 짐승은, 인간의 감정을 배워버린 영물은 두 번 다시 태초의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스스로 인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때에는 이미 존재해 있었다. 이윽고 그것은 변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쩌면 그 인간 계집은 짐승으로 하여금 영원히 자신을 사랑하도록 이름을 가지고 영영 닿지 못할 곳으로 달아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가 흔들릴 때 마다, 자신이 변화하고 있음을 눈치챌 때 마다 끊임없이 그 계집아이를 떠올리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수치스러워하고 그 이를 증오할 때 마다 결국에는 영물 자신이 사랑을 했음을 떠올리도록.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을 그 사랑을 되뇌도록. 죽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 영물에게 생을 유실하는 모든 순간 속에서 그렇게 증오로 하여금 자신이 벌인 실수를 영원히 사랑의 탓이라 기억하도록. 영물은 결국 그 영악한 인간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진리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때문에 샤뮤에드는 사랑을 속삭이며 축하받는 인간들의 결혼식이 제법 눈에 거슬렸다.

솔직한 심정으로, 샤뮤에드는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 말하는 영원한 맹세가 참으로 꼴같잖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백 년이라 함은 그에게 있어서 낮잠만 자도 지나가 버리는 시간 아니던가. 그런 고작 찰나와 다름없는 때를 두고 영원을 운운하다니. 손 안에 무엇인가 쥐어본 적이 없었다. 만물은 제 발 아래에서 무너졌고 손아귀의 힘조차 버티지를 못하여 바스라진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에 의문을 품을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이치였기 때문이라. 짐승은, 영물은 그 대답에 납득했다. 그는 영원히 홀로 고독하겠지. 다만 그것이 이치였기 때문에 그는 고독조차 인지할 수 없음이 옳았다.

 

저기 봐. 도핀이 저렇게 재미없는 표정을 짓고 있잖아. 형식적이고 예의 바르고 모범적인 태도 말이야. 정말이지, 재미없어. 도핀을 데리고 돌아가야지. 모두가 즐거운 척 행복한 웃음을 흉내 내는 모습에 구역질이 났다. 사실은 그래. 그렇게까지 너희들은 행복하지 않잖아? 그런데도 왜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행복한 날을 연기하고 있는 거야? 샤뮤에드는 그저 이 모든 것이 잘 짜 맞추어진 연극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행복을 모사한다. 구역질이 났다. 저걸 다 망쳐버릴까? 그게 더 재미있겠다. 신부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두근거리고 있을 심장을 끄집어내자. 분명 그렇게 하면 피가 방금 전 꽃비처럼 흩날리겠지. 함께 거니는 신랑의 머리를 으깨어 신부의 손에 들려주자. 빨갛게 핀 부케가 완성되리라. 그렇게 된다면 이곳에 참석한 하객들은 지금보다 날카로운 소리를 목청껏 내질러 줄 것이다. 그리고 멍청하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껏 비웃어 주면 되겠지. 그러면 이 불쾌한 기분이 조금은 가실 것이다. 늘 그랬듯이. 샤뮤에드는 그것이 꽤 괜찮은 생각이라 여겼다. 그 생각을 실행하기 위해 찬찬히 손을 풀면 조금 낯선 뼈마디가 우두둑 제자리를 찾는 소리를 냈다. 급하게 입은 몸이라서 그런지 영 아직 익숙하지 않군.

그렇게 샴페인이 든 잔을 들고서 어색하지 않게 걸음을 옮기고 있으면, 답싹 누군가 제 팔을 붙들어 잡는 것이 아닌가. 그 탓에 팔이 흔들려 샴페인이 잔 안에서 찰랑거리다가 바닥에 조금 쏟아진다. 이건 또 무슨 짓이람. 그는 감히 제 걸음을 멈추게 한 자가 누군지 불쾌한 낯으로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시선에 들어온 것은 깜짝 놀라 푸르른 눈을 크게 뜨고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핀이었다. 그러고는 소매를 붙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주위의 사람들이 대화를 엿듣지 못하도록 입 근처를 가리며 조용히 묻는 게 아닌가.

“샤, 샤뮤? 왜 네가 여기에 있어?”

샤뮤에드는 둥글게 뜬 눈을 끔뻑였다. 도핀은 얼른 주위를 휙휙 두리번거리더니 급하게 그의 손을 잡고서 연회장을 빠져나온다. 모여 있는 사람들로 인해 한껏 달아올라 있던 실내와는 달리 바깥은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연회장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도핀은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샤뮤에드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이 모습은 뭐야? 어떻게 온 거야?”

“… 청첩장이 있어야지 들여보내 준다고 하길래,”

“하길래?”

“여기 들어오는 녀석한테서 빼앗았어.”

지금쯤 원래 이 모습의 주인은 화장실 어딘가에서 나체의 상태로 변기 뚜껑 위에 나자빠져 있겠지.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킨 것은 어차피 이번 한 번만 쓰면 되니까 굳이 옷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었다. 이 또한 홀트 가에서 걸어놓은 제약 덕이라면 덕이겠지. 샤뮤에드는 이제 적당히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샤뮤에드의 모습은 도핀이 익히 자주 보았던 짧게 자른 검은색 머리카락의 조금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늘씬한 남성이 아니라, 반짝이는 백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차분한 낯의 잘빠진 남성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공통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사람임에도 도핀은 어떻게 그를 알아보고는 이렇게 확신하여 데리고 나올 수 있었을까. 샤뮤에드는 정말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드물게 놀란 상태였다.

자초지종(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을 들은 도핀은 그 사람이 깨어나기 전에 여기서 벗어나는 편이 좋겠다며 고개를 숙인 채 걱정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먼저 돌아간다고 말해두는 편이 좋겠다며 결론을 내린 도핀은 어느새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샤뮤에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샤뮤. 친구한테 이만 가보겠다고 인사하고 올게.”

“…나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

샤뮤에드는 저를 두고 홀로 가버릴 것 같은 도핀을 붙잡기 위해, 가만히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붙잡고 계속 자신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다. 손 안에 가득 들어차는 피부의 촉감이 말랑했다. 조금 훈훈한 감이 있는 것을 보면 고작 샴페인을 마시고서 취기가 오른 걸지도 몰랐다. 조명 아래에 보이는 도핀의 눈동자는 반짝거린다. 도핀을 꾸며주던 사용인들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네. 얼굴에서 아주 빛이 나네. 앞머리는 살짝 내리는 편이 더 보기 좋았고, 파란색이 잘 어울릴지도 몰랐다. 그는 빤히 제 손안에 가득 들어찬 도핀을 바라보았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나라는 걸 바로 알았을까.

엄지 끝으로 부드럽고 도톰한 입술을 문질렀다. 그는 충동적으로 고개를 숙여 가볍게 입술을 겹친다.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널 찾는 게 어렵지 않은데, 너도 그런 거야? 머리카락 한 올, 시선 한 번, 숨결 하나하나. 그 모든 것으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짐승의 머릿속에는 어느 날 어느 때 어느 순간. 어떤 계집아이가 했던 말이 머물렀다. 그게 바로 사랑이야. 그렇다면 이건 사랑이겠구나.

“나를 찾아냈어? 하하, 그랬구나! 네가 나를 알아본 거야.”

“세상에, 샤뮤에드!”

겹쳐 문 입술을 떼어낸 짐승은 이마를 마주대고 한껏 기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비록 도핀이 놀라 소리쳤지만, 짐승은 개의치 않았다. 조금 멀리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 몸 주인이 발견되었나보다. 곧 소란스러워지겠군. 그렇게 된다면 작별인사의 시간을 가지게 내버려두기 보다는, 빠져나가는 쪽이 보다 낫겠지. 짐승은 그저 언제 불쾌했냐는 듯 즐거운 목소리로 춤을 추듯 도핀을 안아 들뿐이다. 아, 그렇구나.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모든 것이 명료해지는 기분이었다. 고작 샴페인 따위로는 취하지도 않을 텐데 샤뮤에드는 기분이 좋아졌다.

샤뮤에드는 훌쩍 가로등 위 까지 뛰어올랐다.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곳까지 솟아올라 건물 벽을 밟고서 한 번 더 뛰어오른다. 도핀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꽉 끌어안으면 이유 모를 포만감이 배를 채운다. 그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제금 도시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올 지경이다. 겁을 먹고 샤뮤에드의 품을 파고들었던 도핀도 발아래에서 펼쳐지는 경치에 감탄한다. 마치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비행에 가까운 이동이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지. 양손만을 잡고 휙 하니 몸을 돌린다. 꼭 공중에서 춤을 추는 모양새다. 도핀이 때때로 비명을 지르기도 했으나, 샤뮤에드가 자신을 절대 추락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자 머리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소년 같은 맑은 웃음을 터뜨린다. 샤뮤에드는 저 웃음 소리가 더 듣고 싶어졌다.

“사랑해.”

이 또한 어떤 충동이었으리라. 별무리처럼 펼쳐진 야경 위에서 사랑에 황홀하게 취한 샤뮤에드가 입을 열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어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을, 그렇게 빌린 모습으로,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어쩌면 영원의 맹세를 닮은 말을 흉내 낸다.

“사랑해, 도핀.”

 

남은 것은 추락뿐임에도, 이 순간만큼은 영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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