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 뒤로 케일런과 아자드의 묘한 만남은 일주일이나 이어졌다. 점심 시간이 되면 둘은 교내 쓰레기장에 모였다. 구름 한점 없는 더운 날에는 무언가 썩는 내가 올라오고, 조금이라도 습기가 있어 눅눅한 날에는 어딘가 퀘퀘한 내가 올라오는 장소였다. 그러면 케일런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참고 있다는 걸 좀 알아라?’라고 툴툴댔다. 그의 투정이 끝나면 아자드의 귓구멍에 이어폰이 꽂혔다. 처음에는 어떻게 꽂는 지 몰라 이어폰 머리를 한참 만지작 거렸던 그였지만, 세번째 만날 때는 곧잘 익숙하게 만졌다. 마지막으로 준비가 됐다는 의미로 케일런과 눈을 마주치면, 음악이 재생됐다.
케일런이 들고 오는 음악들은 대부분 아자드에게 낯설었다. 그는 왕실에서 태어나 대중 음악보다는 고전 음악을 위주로 들었다. 오페라, 교향곡이 더 익숙한 에크스탄의 왕자는 고귀한 문제아를 통해 전자 음악이란 걸 알게 되었다.
“여기서 이… 소리는 무슨 악기야?”
“키보드 말하는 거야?”
“키보드? 컴퓨터의 키보드?”
아자드가 이해하지 못하자 케일런은 소리나게 웃었다.
“악기 이름이 키보드야. 피아노는 알지? 그거하고 비슷한 거 있어.”
“… 알려줘서 고마워.”
“뭐야, 이런 걸로 기분 상한 건 아니지?”
모르는 것 투성이인 아자드는 종종 케일런에게 놀림을 받았다. 케일런이 처음 아자드의 엉뚱한 질문에 웃었을 때, 왕자는 별 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 탓에 케일런은 자신의 음악 친구가 감정 기복이 크지 않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진 다음 질문에 소리 내어 웃을 때, 그는 미세하게 내려간 아자드의 입꼬리를 알아챘다. 그 이후로 케일런은 득달같이 아자드를 놀려댔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마우스라는 악기는 없다?”
“알려줘서 고맙다니까.”
아자드가 불만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속으로 그만 놀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케일런은 짓궂은 장난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점심 시간이 아니면 아자드는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점심 때 빼고는 아자드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기로 약속한 뒤로, 케일런은 종종 눈으로만 아자드의 뒤를 쫓았다. 등교부터 점심, 점심 이후부터 하교 때까지 그는 얼굴에 표정 한 번 짓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노란 눈을 똑바로 뜨고서 등허리를 꼿꼿이 편 채 걸어다녔다. 웃거나 울거나 한 적이 없이. 동급생 중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아 말하는 법도 적었다. 학교 안의 아자드는 마치 걸어다니는 마네킹 같았다.
“이 노래가 제일 좋았어.”
“이거? 오늘 들은 것 중에?”
“지금까지 들은 것 중에서.”
그렇게 말하며 아자드는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렇게 노래를 듣거나, 하교 때 콜야를 만날 때만 잠깐씩 감정을 비췄다. 다 합쳐 한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케일런은 미약한 아자드의 감정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자드를 Wifi의 목표로 생각하거나, 신기해서는 아니었다. 단순히 아는 사람의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을 자신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작은 자부심을 줬다.
“혹시 이 노래 가사 알아?”
아자드가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며 얘기했다. 노래를 듣는 동안 눈을 감고 있던 아자드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케일런은 혹시나 그를 빤히 바라보던 걸 들킬까 싶어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왜? 앨범에 가사집이 있긴 할걸.”
“가져다줄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아자드의 눈은 어느 구름 위를 걷고있는 것 같아보였다. 백일몽에 빠졌다 나오지 못하는 아이 같기도 하고,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에 케일런은 홀린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가사 다 알아듣지 않아? 그렇게 어려운 가사도 아닌데.”
케일런의 말에 아자드는 잠깐 입을 다물더니, 무언가 생각하듯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하고 케일런이 물어보려할 때, 아자드가 입을 열었다.
“눈으로도 보고 싶어서.”
“가사를?”
아자드가 대답대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샛노란 눈동자가 휘어지는 눈꼬리에 맞추어 둥그스름한 반달 형태가 되었다. 어딘가 동물의 눈 같다 느꼈었는데. 케일런은 무슨 동물인지 떠올리고 싶었다. 가물가물한 생각을 혀 끝으로 집어 올리려 여러번 시도하다, 실패했다. 그는 그 다음날 가사집을 가져다 주겠다 말했다.
집으로 돌아간 케일런은 노래가 든 앨범을 뒤졌다. 언제나 CD만 덜렁 꺼내들고 간 탓에 CD 케이스들은 그의 방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케일런에게 CD는 노래를 들려주는 기능이 있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거울에 비슷한 지라, 잘 보관되어 있지 않았고 심지어 몇 CD는 케이스가 아닌 책상 위 노트에 방치되고 있었다. 집주인이 없는 텅 빈 케이스들을 일일히 열어보며 확인하던 케일런은 앓는 소리를 냈다.
“이게 어디 간 거야? 미치겠네.”
검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던 그의 눈에 한 케이스가 들어왔다. 파란 눈이 번뜩였다. CD를 집어든 케일런은 그 안에 끼어있는 가사집을 꺼냈다. 작은 종이 하나를 찾았단 기쁨에 소리를 내자 서재에서 부엌으로 향하던 로널드가 문틈 사이로 그를 보고 혀를 찼다.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아침이 밝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케일런은 부리나케 아자드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쓰레기장에 서 있는 사람은 아자드가 아니었다. 붉은 머리를 보자마자 케일런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있는 게 불만이에요?”
“아자드는 어디 가고?”
대놓고 케일런이 실망한 티를 내자 콜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도련님이 깜빡해서 말해달랬어요, 대신.”
“혹시나 말하는데, 오늘 못 나온다고 하면 나 화낼 거다. 내가 어제 이거 하나 찾는다고 몇시간이나 집 구석을 뒤진 줄 알아?”
찾기 시작한 지 30분만에 찾았지만 케일런은 일부러 생색냈다. 어쨌든 낡은 케이스들을 뒤지며 골머리를 앓은 건 사실이었고, 삼십분이 몇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콜야가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렇지만 내 잘못 아니야! 오늘은 도련님이 아버지를 뵙는 날인걸?”
“아버지? 여기 왕? 그 지도자?”
콜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케일런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아버지가 싫어한다며. 그런데 무슨 얼굴을 봐?”
“검사 같은 거랬어요. 매달 정규적으로 봐.”
“뭘 검사하는데?”
케일런의 질문에 콜야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야? 라고 케일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콜야가 그에게 팔짱을 끼며 거리를 훅 좁혀왔다. 당황한 케일런이 반응할 틈도 없이 콜야는 자기 몸을 밀어붙였다.
“야, 뭐야? 붙지마!”
“어쨌든 오늘은 나하고 놀아요~”
케일런이 콜야를 밀치려할수록 콜야는 더욱 강하게 케일런의 팔을 붙들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달라붙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케일런이 성을 내려던 때였다. 콜야가 학교 건물 쪽을 등지게 케일런을 이끄면서 자신의 오른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자연스레 케일런의 파란 눈동자가 손바닥을 향했다.
[반역의 의지]
케일런이 그대로 표정을 굳혔다. 콜야가 활짝 웃으며 케일런의 등 위를 오른손바닥으로 비볐다. 손바닥에 적힌 글씨가 금세 뭉개져 흐려졌다.
“표정! 표정 펴요~ 나하고 더 친하게 놀자!”
가끔씩 성큼 다가오는 무게감, 미국과 확연히 다른 나라에서 오는 위화감에 케일런은 익숙해지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아자드가 왕자라거나 지배층의 권력다툼 같은 얘기는 먼 나라의 뜬소리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웃지 않으면 안된단 걸 알 정도의 머리와 현실감은 있었다. 케일런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재밌네. 너네하고 있으면 겪는 일들은 다 처음이야. 나를 약속에 바람맞히는 것도 포함해서.”
콜야가 씨익 웃었다. 평소의 실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소녀는 마치 케일런이 마음에 들은 짐승처럼 미소지었다. 문득 케일런은 그동안 콜야가 자신을 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그녀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것도.
그 다음 날은 주말이라 학교가 쉬는 날이었다. 케일런은 집에서 시간을 죽이는 동안 가사집을 닳을 때까지 쳐다보았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노래를 듣기도 했다. 케일런이 좋아하는 음악은 이것보다 더 신나고 강렬하고 불 같은 류였다. 여전히 취향에서 벗어나는 음악이라 얼마 안 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집에서 할 것이라곤 뒷마당으로 나가 농구공이나 튀기는 것뿐이었다. 아자드가 농구를 잘할까? 케일런은 그것이 궁금했다. 일요일 저녁에는 가정부가 직접 만들어준 피자를 먹었다. 도미노같은 브랜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 두툼한 치즈대신 이탈리아식 얇은 피자였다. 아자드는 피자를 좋아할까? 케일런은 그것도 궁금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던 케일런은 1분마다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을 재고 시계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시계를 보면 1분 밖에 안 지나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주말이 정말 길고도 긴 시간이라 느꼈다.
월요일 아침, 학교에 나가자마자 점심시간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케일런은 첫교시를 빼고 학교 옆 잔디밭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 지나가던 선생에게 붙들려 강제로 교실로 돌려보내졌다. 점심시간 직전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쓰레기장에 달려간 그는 우두커니 서서 가사집 종이 귀퉁이를 만지작거렸다. 종이의 잉크가 벗겨져 새하얗게 닳아 있었다.
“저번에 말 못해서 미안해.”
아자드의 목소리에 케일런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를 오래 기다리게 한 사람은 미안한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케일런에게는 그의 웃음과 사과가 아닌,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너 얼굴 왜 그래?”
“영부인께서 심기가 불편하셨나봐. 음, 평소에는 안 이러셔. 국제학교에 내가 들어간 게 여간 신경 쓰인게 아닌 거지.”
아자드의 오른뺨은 빨갛게 부어올라있었다. 푸른기가 살짝씩 보이는 게, 멍이 들었다가 빠진 것 같았다. 아자드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의 말 어딘가에 약간의 비꼼이 들어가 있는 걸 케일런은 느낄 수 있었다.
“영부인?”
“아버지의 새 부인, 셀비 부인.”
새로운 이름에 케일런이 무언가 더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아자드가 그의 손에 들린 가사집을 낚아채간 탓에 그럴 수 없었다.
“이거야?”
“어.”
아자드는 가사집을 천천히 읽어내렸다. 단어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오른 검지 손가락으로 종이의 귀퉁이를 툭툭 건드렸다. 케일런은 오른손을 뒤로 숨긴 채, 아자드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박자에 맞추어 제 손가락도 까딱거렸다.
“이 노래를 찾아보고 싶었는데 혹시나 해서 참았어. 그런데 전혀 다른 책에서 이 노래 얘기가 나오더라.”
“무슨 책? 혹시나?”
“노래와 관련된 책을 찾았다가 걸리면 좀 골치 아프거든. 할 거 없어서 주말에 역사 칼럼을 읽었는데 뜬끔없이 이 노래가 나오더라. 아, 그러고보니 영국 칼럼이었는데 말이야.”
그 말에 케일런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저번 이후로 모든 밴드를 다 미국 밴드라 말한 업보가 오고 있었다.
“어차피 미국도 영국하고 같은 나라였으니 그게 그거지.”
“바다에 빠진 찻잎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여당의 아들이면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아자드가 키득키득대며 웃었다. 케일런은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 아자드의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훨씬 현명한 판단이었다.
따뜻한 기타 멜로디가 시작하면, 바로 익숙한 목소리가 노래를 부른다. 반복되는 멜로디가 새의 날개짓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목소리가 겹치면, 새가 잠깐 비틀거렸다, 다시 올라갔다. 기타도 강해졌다. 잠깐 기타가 멈추면, 그 때부터 새소리가 났다. 검은 지빠귀의 노래였다.
“이건 나를 위한 노래가 아니야.”
아자드가 그렇게 말했다. 케일런이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말을 덧붙였다.
“다른 곳에 있는 새들을 위한 노래니까.”
케일런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듣고 싶으면 듣는 거지, 그런 걸 따지고 있냐? 원래… 그러니까, 이런 노래는 자유만 느끼면 되는 거야.”
“그런 거야?”
케일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자드가 플레이어를 만졌다. 다시 노래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다른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자드는 가사집을 읽으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가사를 몰라서 가사집을 읽는 게 아니었다. 단어 하나 하나를 눈에 담고 싶어서 같았다. 노란 눈이 가사 너머의 검은 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새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려 케일런은 잠깐 숨을 참았다. 혹여나 그 노래에 자신의 숨소리가 섞일까봐.
검은 새를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는 황금과 닮아있었다. 케일런은 황금을 발견한 광부처럼 이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한 돌무더기에서 나온 노란 돌이 그의 가슴에 굴러와 박혔다. 케일런은 문득 깨달았다. 아자드의 눈은 새를 닮아 있었다. 짐승의 눈이 아니라, 그 눈 자체가 노란 새를 닮아있었다. 광산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노란 카나리아를 닮아 있었다.
케일런은 그 새에게 자유를 보여주고 싶다 생각했다. 어두운 광산이 아니라,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평생 여기서 살아온 아자드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는 충동적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 집에 올래?”
놀란 표정을 짓는 아자드에게 케일런이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냥, 그냥 미국에서는 뭐냐, 친하면 집에 자주 최대하거든?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CD 들고오는 것도 불편하고. 저번에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도 내가 들고오는 것만 들을 수 있으니까 별로잖아. 집에 가면 음반들이 더 있기도 하고. CD말고도 재밌는 거 많거든...”
횡설수설하던 케일런은 말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이상하게 말하고 있단 것을 깨달았다. 아자드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자 케일런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콜야도 불러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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