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가 지저귀는 곳에서

8화

기나긴 케일런의 고통이 끝나는 날은 로널드의 비서가 생후 10개월 된 하나 뿐인 자기 아들을 보러 미국에 갔다가 귀국한 수요일이었다. 줄곧 딱딱한 얼굴이었던 비서가 생글생글 웃으며 케일런에게 10권 정도 되는 잡지를 건넸다. 

“아들은 잘 있나?”

“잘 있다마다요. 우는 아들 달랜다고 애 먹은 것만 빼면 만족스러운 휴가였습니다.”

“당분간 더 바빠질테니 잘 즐기고 왔네.”

“네. 그리고 일전에 얘기하신 야당 쪽 에너지 관련 보고입니다. 이번 셰일 가스 건으로 석유정제회사들과 로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상한 내용이군. 서재로 자리를 옮기지.”

뒤에서 로널드와 비서가 무슨 말을 하든 케일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는 자신의 손에 조경 잡지가 있다는 게 중요했다. 책 표지에는 머리가 새하얗게 샌 노인이 활짝 웃는 얼굴로 자기 머리만큼 자란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다. ‘새로운 식물은 새로운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잡지에 써진 캐치프레이즈가 마치 케일런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잡지를 건네받은 다음 날, 케일런은 교문을 들어가자마자 콜야를 찾아갔다. 

“자, 말했던 잡지.”

“와! 케일 최고! 정말 가져다줬네?”

잡지를 품에 끌어안은 콜야가 활짝 웃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다른 학생들이 보면 안된다며 학교 중 제일 구석진 쓰레기장으로 자리를 옮겨 주변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도 책 하나만으로 충분히 기쁜 건지 콜야는 연달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좋아!’, ‘우와, 굉장해!’

“이제 너도 말해.”

“그래야지. 그래야 거래가 맞지요.”

케일런이 고개를 까딱이며 빨리 말하라 재촉하자 콜야가 펼치고 있던 책을 탁 소리나게 접었다. 

“도련님은 음악을 엄~청 좋아해.”

“음악?”

좀 더 알아듣게 설명하라는 투로 케일런이 반문하자 콜야가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쳤다.

“도련님의 어머니이신 제렌님은 오페라를 배웠어. 오페라말고도 음악이면 전부 다 잘하셨고. 우리나라에서 노래 잘하시기로는 5명 안에 들으셨을 거야. 예전에 연회가 있으면 전부 제렌님이 노래를 하실 정도였으니까. 도련님도 제렌님에게 음악을 배웠어.”

“그럼 아자드도 노래 할줄 알아?” 

케일런은 머릿속으로 아자드의 목소리를 떠올려봤다. 낯설은 외국어도 정확하게 발성한다는 건 느꼈지만, 그의 목소리가 특별히 듣기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케일런의 물음에 콜야가 양 팔을 쭈욱 벌렸다가 그러모으며 말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제렌님이 안 계시는 지금은 도련님이 이 나라에서 최고로 노래를 잘 부르실걸?”

“안 계신다고?”

“응. 제렌님은 돌아가신지 꽤 오래 됐어. 몸이 태어나실 때부터 약하셨거든…….”

콜야가 말 끝을 흐렸다.

“그 이유로 도련님은 음악을 무척 좋아해. 정말 정말 좋아해. 하지만 음악을 못 들으신지는 오래 됐어.”

“왜?”

“어떤 음악이든 들을 수 있는 기계는 전부 도련님 궁에서 금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하기 어려운 맥락에 케일런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콜야가 영어 실력이 부족해 이상하게 말한 건가 싶었다. 그러자 콜야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자기 귀를 한 번 가리키고, 노래하는 시늉을 했다. 그 다음엔 양 팔을 교차시켜 엑스자를 만들었다. 케일런은 자신이 들은 문장이 올바르다는 걸 알았다. 

“뭐든 안돼! 도련님 궁에서는.”

“음악을 못 듣는다고? 무슨 이유로? 걔네 아버지가 금지시킨 거야?”

“폐하께서 금지시켰어. 이유는 아무도 몰라. 도련님도 모르셔. 예전에 폐하께 기계를 부탁드렸지만 거절당했어.”

“그거 참 이상한 이야기인데.”

케일런은 팔짱을 낀 채 곰곰히 생각했다. 아자드의 어머니라하면, 이 나라의 왕비일 텐데 왕비가 죽었다고 아들이 음악 듣는 걸 금지한다? 앞 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럼 다른 곳도 다 음악은 금지야? 아닌 것 같던데.”

“전~혀. 도련님 궁만 금지!”

오늘도 케일런은 등교할 때 지나는 식료품점에서 크게 튼 음악을 들었다. 미국 팝송과는 완벽히 동 떨어진 음악이었다. 디자인 감각이라고는 30년 전에 멸망한 듯한 앨범 커버가 그려진 포스터가 담벼락에 종종 붙어있기도 했다. 옛날에 붙여진 채 떼어지지 않은 건가 싶어 보면, 앨범 출시일이 당장 삼주 전이었다. 에크스탄의 전통 의상을 입은 가수는 한껏 음악에 심취한 표정으로 그림 속에서 박제되어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 때문에 아자드가 음악 듣는 걸 좋아하지만 못 듣는다 이거지? 내가 그걸 빌미로 접근하면 된다는 말이고.”

“그거예요! 정답!”

“고작 그걸로 걔가 나를 피하지 않을 거라고?”

케일런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옆에서 누군가 지켜보면 징하다고 말할 정도로 케일런이 들이댔지만 단 한번도 답하지 않은 아자드였다. 어떻게든 반응을 이끌어내려 ‘야, 너 머리 위에 벌레 올라갔다!’, ‘지금 콜야가 너 부르던데?’, ‘옥상에서 누가 떨어진 거 들었어?’ 등 별짓을 다했다. 그러나 아자드는 그저 돌덩이처럼 입을 꾹 닫았다. 이틀 째에는 케일런이 있는 곳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케일런은 자신이 투명망토를 쓰고 다녀 아자드가 그를 눈치채지 못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한 번 말해봐! 효과 없으면 내가 다 환불해줄게요.”

“네가 어떻게 환불을 해?”

“아이, 속고만 살았어? 믿어, 믿어! 날 믿어!”

콜야가 시장에서 흥정하는 노인네를 흉내내며 손짓했다. 에크스탄에서는 거래의 신뢰감을 높이는 흥정 방식일지 몰라도, 일평생 시장보다는 월마트와 훨씬 가까운 케일런에게는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한층 더 의심스러운 눈빛만 보내는 그의 태도에 콜야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됐다. 내가 알아서 하는 게 낫지. 주기로 한 건 줬으니까 앞으로 찾아와서 괴롭히지 마라.”

“어어, 케일 어디가요? 어디가?”

억울한 목소리로 ‘진짜인데에에에…….’라고 칭얼거리는 콜야를 뒤로하고 케일런은 자기 교실로 돌아갔다. 

그 날 밤, 귀가한 로널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들을 쳐다봤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그러고 있는 거냐?”

엉망이 된 거실 한복판에서 케일런은 미국에서 가져온 짐들을 죄다 풀어 헤치고 있었다. 바닥 위에 깔아놓은 러그에 흙 묻은 운동화가 나뒹굴고 그 옆에는 NBA 기념품 티셔츠 3벌이 둘둘 뭉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타조처럼 커다란 종이 캐리어에 거의 상체를 파묻은 케일런이 성질을 냈다.

“제 CD 플레이어 못 보셨어요? 분명히 들고 왔었는데.”

“내가 알 턱이 있나. 아침까지 전부 정리해둬라. 내일 점심에 청소부가 오기로 했다.”

“젠장.”

미국의 평범한 십대처럼, 케일런도 평소에는 아이팟을 들고 다녔다. 애지중지하며 포켓에 언제나 꽂아넣고 다녔지만 작년 여름 쯤 복도에서 주먹다짐을 하다 캐비닛 모서리에 부딪혀 고장나버렸다. 중고라도 살까 고민하다 곧 새로운 아이팟 신세대가 나올 거란 이야기가 있어 새로 사지 않고 버텼다. 그러다 프롬 파티 사건 이후로 로널드가 신용카드를 빼앗아간 뒤로 케일런은 음악 없이 사는 청소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2012년에 팝송이 없다니, 끔찍한 인생이었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리한나의 신곡을 들으려 마트에 계속 들를 정도였다.

집 안에서 굴러다니던 먼지 쌓인 CD 기계를 찾은 건 케일런에게 큰 행운이였다. 학교를 나가지 않는 동안 (실제로는 못 나간 거지만 케일런은 자신이 나가지 않는 거라 믿었다.) 그는 다운타운 쪽 작은 CD가게를 들락날락거렸다. 카드가 없는 탓에 특별히 많이 사지는 않았지만, 하도 근처를 서성거리니 불쌍한 가출 청소년으로 생각한 것인지 인심 좋은 CD 가게 주인은 그에게 종종 남는 음반을 공짜로 건네줬다. 

“여기 있다!” 

케일런이 캐리어 밑바닥에 깔려있던 CD 플레이어를 꺼내들었다. 에크스탄에 온 뒤로 정신이 없어 생각도 나지 않던 플레이어였지만 막상 보니 반가웠다. 콜야의 말이 아니었다면 앞으로 한 달은 더 미처 풀지 못한 짐들 사이에 섞여 썩어갈 운명이었다. 

케일런은 셔츠 아랫단으로 CD 플레이어의 뚜껑 위를 문질렀다. ‘SONY'라 음각된 로고가 번들거렸다. 케일런은 이어폰을 연결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으로 넣고 빼지 않은 CD가 뭔지 가물가물했다. 30초 정도 음악을 들은 그는,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이 정도라면 아자드를 넘어오게 할 만하다 자신했다.

*

아자드는 학교 건물 앞에서 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서 있던 탓에 다리가 아파서 건물 기둥에 등을 댔다가, 화들짝 놀라며 멀어졌다. 번들거리는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둥은 기댈 때마다 차가워 기대기 힘들었다. 그러다 5분쯤 지나면 다시 다리가 아파와 기둥에 몸을 기댔다. 뼈까지 시려오는 냉기를 견딜 수 있을만큼 견디다가, 대리석에서 떨어져 그 앞 주위를 빙빙 걸어 도는 걸 여섯 번쯤 반복했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지?’

콜야가 늦게 나올 때마다 아자드는 불안했다. 아직 자신을 치우겠다고 마음 먹은 왕실 사람들은 없지만,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렸다. 그들은 주인을 위해 노력하는 사냥개가 으레 그러하듯, 눈 앞에 보이는 사냥감을 물어 뜯고는 했다. 아자드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일들이 반복됐다. 두려움에 겁 먹은 주변인들은 아자드와 그의 어머니를 두고 멀리 도망갔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주방장이 야밤에 달아나 은식기 하나 없이 텅 빈 식당을 보는 것은 그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제렌이 죽고, 아자드가 혼자 남았을 무렵에는 그 곁에 니냐와 에사드만 남았다. 힘 없는 어린 왕자가 최소한 살 수 있는 조건이라 판단한 건지, 니냐와 에사드에게 비슷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노골적인 차별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아자드가 나이를 먹어갈 수록 간접적인 차별은 더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렇기에 아자드는 콜야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언제 날카로운 칼 끝이 그를 향할지 몰랐다. 

‘차라리 다른 나라 학생들과 친분이 생겨서 타국의 눈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운이 좋게 타국과 인연이 만들어져 콜야가 에크스탄을 떠나는 것이 최고였다. 콜야는 그저 정원사의 어린 딸이고 정치적뒷배가 없으니 만약 해외로 나가 공부할 기회가 생겨 나가는 것을 왕실 사람들이 직접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아자드를 정신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콜야는 아자드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생각을 도통 안했다. 

‘그나마 요즘은 케일런하고 친해지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최근 둘이 붙어다니는 걸 보면 제법 친해진 모양이었다. 궁으로 돌아가서도 콜야는 조잘대며 케일런에 대해 얘기했다. ‘성격이 그렇게 좋지는 않나봐요. 매번 화내지 뭐예요?’ 콜야의 입을 통해 듣는 케일런은 아자드가 생각하는 케일런과 사뭇 달랐다. 좀 더 성격이 급하고, 욱하며 말도 거칠었다. 콜야는 그런 그가 한참 어리숙하다 말했지만, 아자드가 생각하기에는 그저 워낙 둘이 비슷해 투닥거리는 것 같았다. 매일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면 아자드는 머릿속으로 케일런을 그렸다. 언제나 그 파란 눈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야.”

“…….”

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자드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생각하고 있던 것과 똑같은 파란 눈이 앞에 있었다. 생각에 빠져있던 터라 케일런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줄 눈치채지 못했다. 아자드는 놀라지 않은 체하며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그가 답하지 않고 있자 케일런이 무언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고 있던 탓에 곁눈질로 아자드는 그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보기 어려웠다. 순간, 아자드의 귀에 무언가 꽂혔다. 

“뭐야?”

“가만히 있어봐.”

아자드가 당황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귀에 꽂힌 것을 만지려 들었다. 귀까지 올라간 아자드의 손을 케일런이 빠르게 잡아채고는, 가만히 있으라는 듯 고개짓을 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인지 몰라 아자드는 그대로 바짝 굳어 있었다. 케일런이 손에 든 동그란 검은 기계의 버튼을 하나 딸각, 하고 눌렀다.

“… 노래야?”

아자드가 물었지만 케일런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 뚜껑 위 달린 투명한 유리판을 통해 안에 돌아가고 있는 것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자드도 따라 기계 속을 보았다. 동그랗고 납작한 판이 빠르게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귓가에서 흐르는 노래는 아자드가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다. 철썩거리는 파도와 새소리가 들리다, 멜로디가 잔잔히 깔렸다. 낮지 않은 남자 보컬이 들리기 시작하면 파도 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줄을 튕기는 기타 소리만이 들렸다. ‘얼마나 많은 특별한 사람들이 변해갈까? …’ 

아자드는 아직은 어색한 외국어 노래를 알아들으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후렴구는 그가 모르는 단어 투성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라 단어가 들리지 않았다. 드문드문 들리는 단어는 알 수 있었지만 단어들이 조합된 문장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난해한 색들이 뒤섞인 것 같았다. 

“어때?”

케일런이 물었다. 

“…….”

“괜찮지?”

어느새 음악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거칠게 폭발하듯 기타 소리는 커져갔고 색들은 더 얼룩덜룩하게 뒤덮여 갔다. 달려가는 듯한 기타는 혼자서 화려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코러스가 기타를 더 화려하게 칠해갔다. 수십, 수만 개의 색이 섞여갔다. 마치 샴페인이 별빛 아래에서 터지는 것 같았다. 

아자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터져가던 노래는 점차 조용해져갔다. ‘우리는 점점 높아져 가… 우리는 점점 높아져 가…….’ 올바르게 이해한 건지 모를 문장을 아자드는 속으로 계속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케일런이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냈다.

“…….”

“좀 지난 노래긴 한데, 난 아직 좋아하거든. 락 좋아하면 무조건 들어야 해.”

케일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아자드는 잠깐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한 번 더 들을래?”

또 다시 아자드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속에서 수없이 갈팡질팡하던 그는 결국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런이 다시 그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줬다. 아까보다 헐렁하게 들어가자, 아자드가 다시 잘 꽂으려 이어폰을 만지작거렸다. 청취자가 준비가 된 걸 확인한 DJ는 다시 음악을 틀었다. 

“이거 무슨 내용이야?”

“어…….”

아자드의 물음에 케일런이 말을 길게 늘렸다.

“잘 모르겠는데.”

“영어 아니야?”

“영어가 맞긴 한데, 자기들도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고 했었을걸?”

“그럴 수가 있어?”

“약 좀 하고 만들면 대부분 그래.”

케일런의 말에 아자드는 황당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음악이 약을 한 채로 써졌다고? 음악이라 하면 고상한 취향을 가리키는 에크스탄에서 태어난 아자드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선 당연한 일인건지 케일런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미국 음악은 원래 이렇게 다 좋아?”

“어, 응. 물론이지.”

“굉장하다…….”

영국 밴드가 만든 브릿팝이었지만 케일런은 냉큼 음악의 출신을 세탁해버렸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게 뭐람. 케일런은 CD 가게 아저씨의 말을 떠올렸다. ‘좋은 음악에는 국경이 없는 법이지.’ 그 말이 음악의 출신을 지우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케일런은 자기 좋을대로 해석했다. 국경이 없는 법이니 내가 가지고 왔으면 미국 음악인 거지.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아자드는 그저 곧이 곧대로 그의 말을 믿을 뿐이었다. 

다시 음악이 폭발했다가, 사그라들었다. CD가 두번째로 멈추고 나자 케일런이 물었다. 

“가져온 CD 많으니까 듣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아니다, 뭐가 있는 지 모를테니까 내일 내가 들고오면 들어라.”

“내일?”

“그럼 안 들을 거야?”

케일런의 물음에 아자드가 우물쭈물하다 고개를 저었다. 

“점심시간 때마다 들려줄게. 잔디밭으로 나와.”

“그건 안돼.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내가 양보했다. 저 건물 뒷편으로 나와. 쓰레기 버리는 곳이라 지나가는 애들 없어.”

케일런이 이전에 콜야와 대화했던 장소를 가리켰다. 아자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을 기약하며 떠나는 케일런의 등을 보고나서야 그는 자신이 너무 쉽게 넘어갔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폭풍같이 초신성이 지나간 뒤였다. 

“왕자님! 많이 기다리셨어요? 잠깐 일이 있어가지고오.”

“어, 으응.”

“어휴, 늦었다, 늦었어! 니냐가 기다리겠어요! 빨리가요!”

케일런이 가자마자 귀신같이 아자드 앞에 콜야가 나타났다. 성큼 성큼 걸어가는 콜야에게 팔을 붙잡힌 채 이끌려가는 바람에 아자드는 수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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