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 왕국의 공주는 아버지를 선

일처다부제 왕국의 공주-7

어른들은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한다-2

웹소설 by 도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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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 마법시계인가요?"

"방금 저것도 마법시계라니까."

"그래요, 이건 무슨 마법이 있는데요?"

아이를 바보 취급하는 어른들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선물이란 즐거운 법이었다.

물론 나는 자그마치 열 두살, 마법을 믿을 나이는 아니다. 그래도 조금 쯤은 가슴이 두근거려도 괜찮지 않을까.

최근 며칠은 상상도 못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손목을 내려다보지 않아도 시계를 볼 수 있어."

"소리가 나는 건가요?"

"아니, 볼 수 있다고."

그는 조금 짜증난 듯이 말했다. 감정이 상당히 불안정한 남자로군. 방으로 돌아가면 큰왕에 대판 평가를 두 단계 낮춰버려야지, 생각했다.

"일하면서 쓰기에 좋지. 서재 안에 있을 때만 쓰는 거니까 햇빛도 닿지 않았어. 새거나 다름 없다."

"손목을 내려다봐도 안 보이는데요. 시계에 바늘이 없어요."

"보려고 하면 보인다."

"네에..."

방 꼬라지는 이 아저씨가 나을지 모르지만, 말재간은 역시 광대왕이 낫군.

큰왕은 시계의 기계장치 부분을 풀어서 자신이 챙기고 손목 끈 부분만 내게 건네 주었다.

겉을 불로 지져서 무언가의 문양을 새긴 예쁜 가죽 공예품인데, 시계 부분을 떼어두자 평범하게 예쁜 가죽끈으로만 보인다.

그렇지만 내 손목에는 도저히 맞지 않겠는데.

"시계는 내가 챙기마, 목걸이로 바꿔서 써야하니까..."

"제 선물이라면서요?"

"'마법'은 끈 부분에 있으니 걱정 말거라. 네 몸집에 맞는 작은 시계를 새로 만들어주마."

"음, 뭐... 아직 시계 읽을 줄 모르니까 괜찮아요. 애초에 손목시계 끈보다는 허리가방을 만드는데 맞겠는데요, 제 몸집에는."

나는길이 조절용 매듭을 풀어 시계끈의 길이를 최대한 늘린 후 수첩과 펜이 들어있는 주머니에 튼튼히 묶었다. 조금 길이가 모자란 듯 하지만, 중간에 주머니가 끼어있으니 허리춤에 딱 맞는다.

주머니를 만지다보니 주머니 속 수첩의 내용이 신경쓰였다. 그러고보니 이거 왕한테 들키면 좀 곤란한 거 아니야? 뒤늦게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각 왕을 평가하거나, 이 아저씨랑은 이 정도로 친한 것 같다거나, 제멋대로 써놨었지. 혹시 모르니 아주 단단히 여며두자.

큰왕에 대해서는 뭐라고 써놨더라?

"어라."

순간 시야에 위화감이 들었다. 정확히 어디서 위화감이 드는 것인지 알아채는 데에는 이상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눈 앞에 알록달록한 단어들이 둥실둥실 떠올랐는데도.

[큰왕. 친밀도 (0/100). 신뢰도 (10/100).]

분명 내가 수첩에 적어두었던 글자들이다. 내가 쓴 꾸불꾸불한 낙서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글씨체지만.

"왜 그러지?"

"...저를 약간은 믿나요?"

"뭐?"

"아니요, 그냥... 뭐지. 왠지 시야가 달라진 느낌인데. 아저씨가 절 믿는지 같은 게 눈앞에 보이는 느낌이에요."

"원래 어른이 되다 보면 그런 게 대충 느껴지기 마련이지. 자만하지 말도록."

머리를 기울였다가 눈을 깜빡였다가 했지만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진달까, 시야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 '본다'는 감각은 느껴졌다. 아주 낯설고도 새로운 감각이었다.

이게 1차 성징이라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너 몇 살이지?"

"열 두- 어, 이만큼이요," 나는 열 손가락을 쭉 뻗어보였다.

"흥, 나는 너보다 훨씬 옛날에 열 살을 해봤지. 심지어 열 한 살도, 열 두 살도 해봤어. 1차 성징을 네가 더 잘 알겠니, 내가 더 잘 알겠니?"

커다란 남자는 진심으로 우쭐한 표정이었다. 지금 딸뻘 어린애랑 나이로 경쟁하는 건가?

"그럼 이만 돌아가거라. 선물 잘 챙기고... 다음부터는 절대 멋대로 들어와서는 안된다."

"저기, 정리하는 걸 도와드리지 않아도 될까요?"

방에서 쫓겨날 것을 감지한 나는 긴박한 심정으로 말했다.

"건드리지 마."

"네..."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신경질이 가득한 대답이었다. 큰왕은 누군가 자기 물건 건드리는 것을 심히 싫어하는 듯 보였다.

잡동사니가 어마어마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각 맞춰 정리된 방을 보아하니 대충 알만 하다.

"광대왕이랑 엄청 사이 안 좋을 것 같다..."

그는 나 혼자 중얼거린 혼잣말에 반응했다.

"...너는 좋은가? 광대가."

"많이는 아니고... 조금이요."

큰왕은 내 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정신연령이 비슷하니..."

그는 안경의 미간 받침을 만지작거리며 꿍얼거렸다.

조금 기분 나쁜 발언이었다. 분명 우리가 잘 어울려 놀기는 하지만, 내 정신연령이 광대왕보다 조금 더 높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그 녀석이 또 뭐라 하더냐?"

"이것저것... 말이 많잖아요, 그 아저씨."

"딸이 되어 달라고 말하더니?"

"음, 네."

"그래서, 될 건가?"

질문하는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눈빛은 서슬퍼렇다. 물론 나도 멍청한 대답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요."

"잘 생각했어."

커다란 왕은 자세를 고쳐 앉고 미간 사이를 문질렀다.

"...그럼... 나는 어떤가?"

"저한테 방금 뇌물 준거에요?"

"그럴리가."

막간의 농담이었는데, 큰왕은 정색을 했다.

"뇌물 같은 건 필요도 없어. 나는 객관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니까. 증명할 수 있어."

"그걸 어떻게 증명해요?"

"좋은 질문이야."

시계가 최소 세 개는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처럼, 남자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괜히 물어봤나.

"나는 네 왕 중에 가장 훌륭한 가문 출신이다. 자본도 탄탄하고 뒷배도 안정적이지. 필요하다면 관련 서류와 비교 도표를 보여줄 수 있어. 표를 읽을 줄은 아나? 건강도 흠잡을 곳 없고 지지자도 가장 많아."

그것은 전혀 자랑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단지 사실을 명시하는 평서문이었다.

"그게 좋은 아버지인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무슨 상관?"

남자가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허, 당연하잖아! 나라면 네가 자라날 때까지 최고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성인식 때 까지의 생존 보장은 당연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훌륭하고 강력한 어른이 되도록 확실하게 교육시켜주겠다. 계약서라도 미리 써줄까?"

"아뇨, 딱히."

"넌 그 보답으로 별로 할 것도 없어. 가끔 우리 집안 사업을 조금 봐주는 정도면 돼. 그 정도는 별 거 아니지. 다른 왕들의 본가는 하나같이 밑 빠진 독이거든."

"제가 보답을 해야 해요?"

"당연하지. 아버지는 아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하고 가르치며, 다 큰 아이는 노인이 된 부모를 부양함으로서 은혜에 보답한다, 그게 부모-자식 관계의 이데아! 그런 점에서 나는 가장 저위험-고수익 선택지라고 보장하마. 그야말로 최고의 아버지가 아닌가?"

큰왕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마음 속 그의 '아버지 점수'는 계속해서 하락세를 타는 중이었다. 주식이었다면 빨간불이다.

그제서야 큰왕도 내가 기분 나빠하는 걸 눈치챈 듯 했다.

"오, 기분 나쁘니? 진실을 직접적으로 말하면 불쾌해 하는 사람이 있지. 그러나 이 구조야말로 인류를 그 어떤 동물보다 안정적인 장수종으로 만든 체계야. 부끄러워할 것 없다."

"그럼... 그치만... 난 성인이 될 때까지 몇 년 안 남았는데요. 몇 년 돌봐준 은혜를 당신이 늙어 죽을 때까지 갚으라고요?"

남자는 바보 같은 소리라는 듯 눈썹을 구부렸다. 어찌 보면 새침하기까지 한 표정이었다.

"너도 아이를 하나 만들어서 똑같은 걸 시키면 되잖아. 인류는 그렇게 발달해왔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에 나도 자연스럽게 납득해버렸다. 여기 어른들은 그렇게 살고 있구나.

늙은 광대왕을 부양하며 사는건 싫은데. 하루종일 청소만 해야 할 거야. 천둥왕도 그래, 벌써 가는귀가 먹었는데 여기서 몸이 더 나빠지면... 그런 점에서 확실히 큰왕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방도 깨끗하고 치매도 안 거릴 것 같아.

"뭐, 바로 공표하는 건 너도 곤란하겠지. 조언 하나 하자면... 부인이 올 때 까지 괜히 파벌을 만들지 않게 조심하거라. 거리감을 유지하는 거야."

"그럴게요."

"그게 어려우면 그냥 내 딸이 되면 되는 거고."

이 남자, 이제 보니까 광대왕보다 말이 더 많다. 최소한 광대의 말은 재미라도 있는데.

"잘 생각하도록. 내가 분명 천둥이나 광대보다는 나을걸."

"누구보다?"

깜짝이야.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광대왕이 서있었다.

"왜 이렇게 다들 남의 방에 막 쳐들어오는 거에요?"

"너, 천둥네 수업에 간다며? 걔는 너 만난 적 없다 하더라고. 어디서 길을 잃은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계속 찾아다녔어."

광대왕은 웃으며 말했지만, 꽤나 걱정스럽게 나를 찾아다닌 듯 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두꺼운 피부 화장이 지워져 본래의 피부색이 드러나 보였다. 그의 맨 피부에는 좁쌀 같은 주근깨 자국이 있었다.

광대왕은 답지 않게 성큼성큼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아챘다.

"돌아가자."

"죄송해요, 거짓말 해서."

"죄송할 건 없어."

"그래, 죄송할 것 없다. 죄송할 건 남의 방에 멋대로 들어온 광대 뿐이지."

큰왕이 정색하고 말했다.

"내 아이에게서 손 때라. 굳이 데려갈 거라면 최소한 정중하게 모시고 나가."

"'내 아이?'"

"...방금 그건 실언이었음을 인정한다. 아무튼 당장 내 방에서 사라지도록. 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어왔지?"

"안 찾아오게 생겼냐? 네가 전과가 있는데."

"지라-"

큰왕은 잠시 멈칫하고 내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굉장히 비이성적인 행동거지를 하고 있구나."

광대는 '걩쟁희 베예셩젹엔 행덩거제럴 헤게 앴게네-' 라며 대꾸했다. 굉장한 논쟁 실력이었다.

두 어른은 계속해서 말싸움을 이어나갔다. 방 꼬라지를 볼 때부터 가늠하긴 했지만, 이 둘은 정말로 사이가 안 좋은 듯 했다.

"애 앞에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나도 모르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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