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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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평등한 이유는

KAMILL by 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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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많은 걸 포기하게 된다. 인종, 나이, 이름과 같은 단순함부터. 태어나고 자라는 환경마저 기실 정해져 있다. 바꿀 수 있는 건 한정되어있고, 다름은 탄압당한다. 집단은 힘이 되고. 세상은 가차가 없어 개개인은 꼼짝없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동경하고, 혐오하고, 혹은 두려워한다. 사회에서 멀어지면 도태는 한순간이다. 다름은 하나하나가 특별했지만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작자들은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다. 결국에 특별은 죄가 되어 선택을 강요당한다.

그렇다면, 도망치는 것도 죄인가.

말더듬이로 태어난 남자는 끝내 말을 잃었고 시각장애인인 남편을 둔 아내는 책을 점자로 해석하는 일을 했으나 수요가 적었다. 그들은 가난했고, 특별했고, 죄인이 되었다. 사회가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개는 말했다. 노력으로 못할 건 세상 아무것도 없다. 멋있는 말이다. 남자는 그 말에 습관적인 미소를 지으며 “네가 대단한 거지.” 한다. 그러면 아무개는 뺨을 푸들대며 좋아하는 기색을 숨긴다. 남자의 흑적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속이 느글느글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남자도 노력을 한다. 살아남기 위해. 창조주가 우리에게 평등하게 내린 재능인 노력을 끈덕지게 탐했다. 말 그대로다. 노력은 재능이다. 남자는 속으로 거북해하면서 겉으로는 추켜세울 줄 아는 제 입담에 경의를 표했다.

꼬인 속내를 바꿀 수 없다면, 더욱 큰 거짓으로 덮어버리는 것 또한 노력이다. 당신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피나는 노력으로, 누군가는 기름칠 덜 된 굴레를 용쓰며 굴려대고 있다. 관성과 같은 노력으로, 끊임없이, 줄곧.

삶은 노력이라며. 그렇다면 내 삶도 노력하면 나아지나?

가타부타할 것 없다. 남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므로.

·········.

남자 또한 사회가 규정한 틀려먹은 사람이다.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는 데 서툴다. 컴컴한 동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심연에 비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어긋난 시선을 커피잔에 입술을 대는 거로 무마한다. 겉멋만 든 부잣집 도련님의 뜬금없는 명언에 칭찬을 늘어놓으며 꼬리를 살랑댄다. 그는 칭찬에 약했고, 남자는 그걸 잘 알았다. 내가 원래 악마는 임대 안 해주는 거 알지? 너니까 받아주는 거야. 차별이 그득하게 묻은 발언에도 픽하니 웃으며 “알지.” 하면 아무개는 자신이 남자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늘어놓는다. 거기에 가볍게 고갤 끄덕이자 제법 경청하는 태가 났다. 너 첫인상 되게 별로였었는데. 무섭고, 양아치 같고. 툭툭 튀는 대화 주제에 놀라지도 않고 “내가 그렇지 뭐.” 한다. 첫인상 나쁜 거야 새삼스러울 것 없다. 생김새부터 친근함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옆으로 째져 성난 눈매를 최대한 누그러뜨리며 실없이 웃는 건 버릇이고 탈색모보다 눈에 띄는 옅은 머리카락은 날티가 났다. 묘하게 탁한 눈자위는 소름이 끼쳤단다. 구릿빛 피부로 모자라 머리 옆엔 뿔이 달려있다. 남자는 악마지만 인간과 섞여 살았다. 자그마치 백 년이 되는 시간을 이방인으로 살다 보니 문화 차이를 느낄 일은 점차 줄어만 갔다.

단지, 그간의 시간이 덧없이 좋게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단두대에 올라 머리가 썩둑 잘려나갈 뻔했을 때를 생각하면 목 뒤로 주욱 소름이 돋았다. 쥐 죽은 듯 수십 년을 숨어 살다 나오니 이종족 혼혈의 자유권을 보장하라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남자는 몇 년을 더 인기척 없는 시골에서 지냈다. 그의 본가는 더한 오지였기에 지내는 데에 불편함은 없었다.

남자는 그저 외로워졌고, 참을 수 없어 밖을 뛰쳐 나왔을 뿐이다. 때마침 세상이 번잡하고 그가 살 만한 환경을 겨우 갖추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그게 벌써 햇수로만 오십이 넘어간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이백을 넘겼다. 사방이 눈으로 틀어막힌 하얀 요새로부터 도망쳐 나왔을 때가 막 성년이었으니 인생의 반을 인간과 부대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익숙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남자는 가끔 그들 자신보다 더 인간을 잘 알았다. 그들이 무엇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어떤 면에서 추악해지는지도.

실상, 악마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고, 나고 자라는 환경이 다르고, 사고 체계도 그렇다. 하지만 남자 또한 다름을 인정받지 못해 쫓겨난 신세다. 지금 이곳 인간 도시에서도 다름을 낙인찍힌 별종들이 살고 있다. 모두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담벼락 밑에 널브러져 있던 취객은 여자친구와 사귀는 걸 부모에게 들켰다며 엉엉 울었다. 지나는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을 할 셈이었는지 남자가 누군지, 머리에 뿔이 달렸는지는 확인도 않고 눈물만 죽죽 흘려대던 여자. 아하. 전요. 가족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쳐서 제 발로 도망쳐 나왔어요. 가끔 보고 싶어요. 그래도 누나랑 동생은 종종 보는데, 아버지 얼굴 뵌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나요. 아마 여자는 다음 날 이 대화를 잊어버릴 것이다. 허-얼. 진짜? 속에다 술을 얼마나 퍼부어댔는지 눈매는 다 풀려 쌍까풀이 두 개나 졌고 초점은 흐리멍덩한 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 어어 바보 같은 소리만 낸다. 대박. 너도 고생이 많네. 자신보다 백 살하고도 팔십은 어린 인간이 반말을 찍찍하는데 거슬리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백지장에 마구 연필을 휘갈겨도 그녀의 머리는 착실하게 흑연 가루를 지워나갈 것이었다. 속내를 드러낸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그는 이 우연이 반가웠다. 막혔던 기도가 잠시 뻥 뚫린 양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서로의 불행으로 안위 삼는 건 악마나 인간이나 똑같았다. 무엇 때문에 종족이다 뭐다 하며 갈라서려 하는지. 내용물을 까보면 이렇게나 닮아있는데.

추악하고, 지저분하고, 더러운.

‘미워. 엄마가 미운데 미워할 수가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날 봐주면 좋겠어. 이렇게 태어난 걸 나더러 어쩌라고. 남자랑 키스하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단 말이야. 내 여친 진짜 좋은 애거든? 근데, 씨이···.’

사랑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 이렇게나 닮았는데도.

‘응. 미워하기가 참 힘들죠. 맞아. 그랬어. 나도 처음엔 인정받고 싶었어. 비록 잘 안됐지만. 그래도 쉽게 포기하지 마요.’

‘지는.’

‘아하하.’

이래서 남자는 인간이 싫지 않았다. 굳이 누굴 싫어하고.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똑같은 심장이 뛰고 똑같이 눈물 흘리는 이 어린 개체가, 세상 만물이. 그에겐 다름이 없었다. 사람 간의 관계는 늘 버겁고 두려웠다. 하필이면 생명줄 긴 종족으로 태어나 끝이 보이지 않는 생에서 홀로서기는 무섭기만 했다. 무리하게 자릴 만들어 꿰차도 공허함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가 진심이 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거짓인 마음과 거짓된 관계로 지금껏 꿀떡꿀떡 숨 쉬어가며, 아무도 모르면 거짓도 진실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뇌는 건 정지 없는 경주이자 소모전이다. 그 얄팍한 관계에서라도 가짜 애정을 느껴보겠다며 미움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넌덜머리 난다. 그래서 남자는 이름 모를 취객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반복하며 울던 그 여자가, 아주 조금은··· 부러웠다. 포기하지 마요. 그래도 당신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잖아. 나는, 난 아닌데. ――아. 짜증 난다. 진절머리가 나. 제일 추악한 게 누군데. 누가 누구한테 지저분을 논해?

‘진짜 성가시네.’

‘저요?’

‘말고요.’

‘허헉, 글쿠나-앙······.’

‘뭐야. 잠깐, 자는 거예요? ···진짜 자?’

와.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는데. 담도 좋지.


다음 날 남자의 집에서 눈뜬 여자는 고갤 백 번은 조아리다 떠났다. 밤 날 자기가 무슨 실수를 한 건 없냐고도 삼십 번을 물었다.

‘기억 안 나요?’

‘제, 제가 무슨 실수라도···.’

여자의 시선이 머리 위로 쏠렸다. 아. 뿔. 여자는 착실하게 그와의 지난밤을 잊어버렸지만, 새벽의 유대도 그렇게 끝이 났다.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안심하세요. 눈매를 풀릴 듯 어그러뜨리며 습관 된 웃음을 짓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지금 조냐?”

“네가 일장 연설을 하니까.”

“거, 미안하게 됐다.”

“농담. 어젯밤 잠을 좀 설쳐서 그래.”

남자는 목덜미를 슥슥 문지르며 돋아난 살결을 가라앉힌다. 제 집주인인 아무개가 늘어놓는 말에 가볍게 장단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개는 딱히 좋은 말 상대는 아니었지만, 집에서 죽은 듯 숨만 쉬던 시절보단 훨씬 나았다. 한 번 부대꼈던 살을 물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미지근함이 좋다. 이 정도 온기가 딱 부담스럽지 않고 버틸 만했다. 남자는 겁이 많고, 조심스럽고, 진심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넝마가 된 속내를 온전히 보일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남자를 처지게 했다. 밍밍하고 물비린내 나는 일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셈하는 것도 지쳤다.

“집 계약은 이걸로 오케이. 조만간 또 보자. 빼지 말고 나와라!”

“글쎄 내가 언제 뺀 적이 있나.”

“그렇지. 술자리에서 여자 빼돌린 적은 많지만?”

“내가 언제. 늘 끌려나갔지.”

“뺀 적은 없고.”

“그건 반박 못 하고······.”

“새끼. 능력도 좋아. 악마들은 좆도 크냐?”

“어엉? 설마, 다 그럴 리가.”

“뭐? 이야, 이거 착한 놈인 줄 알았는데 재수 없는 새끼였네.”

“큭큭.”

“먼저 간다. 약속 때 봐. 끝까지 자리 지키기다.”

설렁설렁 손 인사를 하자 아무개가 실실거리며 카페 문을 닫고 나갔다. 남자는 느릿하게 날숨 하며 테이블에 몸을 축 늘어뜨린다. 아아, 싫다. 술 마셔봤자 배만 부른데. 제 혀를 쯥쯥 빨며 일어서며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커피를 휘휘 저었다. 탁했던 색이 연해지고 자잘자잘한 얼음이 걸을 때마다 덜그럭덜그럭 소릴 낸다. 가게를 나서면 밖은 온통 인간 저 너머 거리에도 인간들투성이다. 남자가 있는 곳은 인간들의 도시고, 지나다니는 면면들이 자신과 다른 건 당연한 거였다.

“집에 증조모님 사진이 있던가···.”

큰일 났다. 남자는 문득,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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