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

시선 적시

카밀 2P

KAMILL by 카밀
7
0
0

 

 

 

 

골목길에 연기가 자욱하다. 보고 있기만 해도 목구멍이 꽉꽉 막혀 드는 구진 공간에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온다. 구름과자로 뻑뻑 장난을 치더니 벽에 기댄 누군가에게 담배 바람을 후- 날리는 게 보였다. --&%₩%# 너무 멀어 소리가 뭉개져 들렸다. 몇 발자국 다가서자 실루엣이 훨 선명해진다. 바지 호주머니에 양손 모두를 쑤셔 넣은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다. 기다란 머리칼이 콧잔등까지 늘어져 옆모습만으론 눈을 확인할 수 없었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보일 거 같은데.

조심조심 걸음을 떼자 투욱, 툭, 무언가를 튕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 빠진 공을 딱딱한 바닥에 내던지는 듯한 소리. 툭툭. 남자와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가 커져 갔다. 벽에 어깨를 기대어 선 남자가 신발 뒤꿈치로 바닥을 튕구고 있었다. 지금 거리에서 보니 제법 키가 크다. 낮은 굽의 신발인 걸 제하고도 그는 무리 사이에서 우뚝 솟아있었다.

“안 해.”

“야 쫌-!”

고약한 냄새가 지척이다. 좁다란 골목은 연기와 담뱃재로 한가득 찼다. 발에 온통 꽁초가 차일 정도로 쩐내가 난다. 하지만 느물거리는 목소리는 연기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 듯 기침 한 번을 않았다. 높아지는 언성에 허스키하게 비음을 흘리더니 됐다고, 하며 딱 잘라 거절한다.

흡연 권유를 받던 중인가 보다. 반대편 벽에 기대선 남자가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새로 꺼내 팔랑팔랑 흔들어도 무심하기만 하다. 고정된 시선이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투로 묵묵했다. 담배를 입술에 툭, 가져다 대며 들이밀어도 한쪽 입꼬리가 매끄럽게 호선을 그릴 뿐. 굳건히 닫힌 입술은 열리지 않는다.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어 한껏 불량스러운 태도다. 턱 끝을 슬쩍 위로 까딱인 그가 치워, 입맛 떨어져, 따라와 줬잖아? 한다. 뒷말을 높여 보드라운 어조인데 묘하게 까탈스러운 느낌을 흘렸다. 여유를 잰 듯한 목소리가 고저에 따라 두드러진다.

“또 뭐가 문제냐고.”

“혼자 깨끗한 척이지. 비흡연자도 아니면서.”

“안 끌려.”

“우리가 이렇게 맛있게 빨고 있는데?”

“그니까. 너희 입에서 구정내 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심한 말을 했다. 친구인 듯한 두 사람은 익숙하다는 양 킥킥거렸다. 그러곤 질리지 않고 후- 남자의 얼굴에 연기를 뭉갠다. 하. 짧게 혀를 찬 남자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오른다. 이번엔 그의 두 눈동자가 아주 잘 보였다. 짙은 머리카락 사이 가려졌던 눈이 어둠 속 심해 생물처럼 빛난다. 켜켜이 층을 쌓아 올린 거 같은 파란. 물결을 꾹꾹 눌러 담은 듯이 깊은 수륜 주위의 컴컴한 눈자위가 빛을 온통 잡아먹는다. 분명 위로 솟은 눈꼬리인데 시선을 내리깔아서인지 끝이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얼굴이다.

눈을 보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웃음을 흘리는지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확인과 동시에 의문만 깊어졌다. 깊디깊은 파란에 퐁당 빠져 허우적허우적 물살을 가르는 기분. 산소가 모자란 폐가 심장을 콩콩, 격렬하게 뛰게 했다. 바다 밑에 생긴 골짜기를 마주하는 듯하다. 알맹이가 텅텅 비어있는지, 꽉 찼는지조차. 격랑에 부딪쳐 심해곡 바깥으로 속절없이 쓸려가기만 했다.

“먼저 간다.”

“배신자 새끼.”

“벌써 간다고?”

“그래.”

이어지는 말소리 중에 유독 두드러지는 음성이 나른했다. 남자는 신경질 한 번 안 내고 뒤로 휙휙 손바닥을 내저으며 많이 기다려줬잖아, 다리 아파, 하고 골목을 벗어난다. 건물 그림자에 삼켜졌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다. 빛 삼킨 눈자위가 새카맣게 물들어 세로로 찢긴 동공이 먹혀든다.

와. 역안. 처음 봐.

멍하게 쳐다보다가 후딱 건물 뒤로 숨어든다. 골목 밖으로 머리만 내뺀 친구(추정)가 “우리만 두고 즐기러 가는 거 아니지! 너 이 새끼, 저번에 그 여자냐!” 하며 고함친다.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어슬렁어슬렁 긴 폭으로 걸을 뿐이다. 빨라! 걸음은 느릿한데 보폭이 넓어선지 속도가 퍽 빠르다. 휘적휘적 다리를 교차해 걷는 남자를 약간의 간격을 두고 쫓으며 헉헉거렸다.

“아아.”

불현듯 그가 멈춰 섰다. 우뚝- 소리가 날 거 같이, 기다란 다리가 일자로 바닥에 꽂혀 든다. 짤랑, 하고 재킷 고리에 부딪힌 목걸이가 금속음을 냈다.

“진짜 거슬리네.”

웅얼거리는 목소리. 낮게 가라앉은 것이 조곤조곤했지만 기분 나쁘다는 감상을 일부러 알려주듯 뿌렸다. 팔목에 주렁주렁 팔찌를 달은 손이 신경질스럽게 뒷머리를 쓸어올린다. 그 손길에 보이지 않던 점이 짙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났다가 뒤덮였다.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청흑색 가닥이 남자의 꼬인 속처럼 꼬불거린다.

“······.”

짧은 정적.

발치를 뚫어지게 보던 남자가 픽 웃음을 흘렸다.

남자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세팅된 머리카락을 배배 검지에 꼬아내며 심드렁히 말한다. 많이도 길었네. 아까의 예민한 태도는 일절 없다. 감정이 폭삭 주저앉아버린 것처럼 삭막해진 낯이 습관인지 머리카락을 반복적으로 건드린다. 코너를 굽이굽이 전전하며 막힘없이 걷는다. 조금씩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곧게 걷던 남자가 쏙, 하니 골목길로 모습을 감췄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다. 펄쩍 뛰며 그를 쫓아 들어갔다.

어? 근데 여기 길이 있던가.

“얼굴 보기 힘드네.”

아.

“꼬리가 길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나 봐?”

심해를 닮은 눈동자가 사르르, 간드러지게 눈웃음쳤다.

이제야 알았다. 저게 그의 화난 표정이라는 걸.

“해가 질 때쯤이면 그림자가 길어지거든.”

그가 보고 웃었던 건 발치에 드리운 내 그림자였다.

“많이 기다려줬잖아.”

꼬리가 밟힌 줄도 모르고···-.

“다리 아프게.”

―――뚝.

 

 

카테고리
#오리지널
페어
#그 외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