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 왕국의 공주는 아버지를 선

일처다부제 왕국의 공주-4

첫날-3

웹소설 by 도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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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겁주지 마."

"저 남자가 무슨 소리를 했지?"

"그..."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남자는 말을 끊었다.

"나와 얘기할 때는 얼굴을 보고 또박또박 얘기하도록."

"죄송합니다."

네 키가 몇인데 얼굴을 보고 얘기해, 같은 볼멘 소리는 간신히 속으로만 삼켰다.

그러나 불편해하는 속마음이 무심코 내 표정에 드러난 듯 했다. 남자는 아차하는 얼굴을 하더니 검을 거두고 몸을 숙였다. 그는 한 쪽 무릎을 꿇고 내 앞에 쭈그려 앉았는데, 그제서야 간신히 얼굴과 내 시선의 평행이 맞았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본 얼굴은 꽤나 거칠었다. 나이가 들며 생기는 거칢과는 조금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햇빛과 짠물에 잔뜩 절여진 짐승의 가죽같다.

눈꼬리는 매섭게 솟아올라 있고 눈썹은 유난히 짙어서 인상이 강렬했다. 싸움꾼의 얼굴이 이런 것일까, 상당히 사납게 생겼다.

그러나 사내의 눈동자 속에는 뭐랄까, 당혹감이 깃들어 있었다.

"검을 뽑아서..."

남자는 잠시 멈춰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을 고쳤다.

"푹푹이를 뽑아서 미안하다."

"아, 네..."

"'미아내! 푹푹이는 위험하지 않아용!'"

그는 인형 소꿉놀이를 하듯 왼손으로 검을 곧게 들고 가성으로 말했다. 가성이라고 해봤자 여전히 아주 굵은 목소리였지만.

"아, 네..."

"검보다 '푹푹이'가 더 잔인한 표현같은데."

"시끄럽다 광대! 어린애는 이런 걸 좋아해!"

내가 열 살 때는 저런 걸 좋아했던가? 별로 그랬을 것 같지는 않지만, 굳이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반박하지 않았다.

천둥왕은 '푹푹이는 집에 가서 쿨쿨 할게요!'같은 소리를 하며 솜씨 좋게 무기를 검집에 돌려두었다.

"갑자기 남의 방에 쳐들어와서 뭘 하는 거야?"

"뻔하지. 아이, 이 남자가 사탕발림 같은 소리 하지 않았나?"

"안했어! 꿀 탄 우유 만들어줬거든? 그치?"

"네 방에는 냉장고도 없- 됐다. 아이, 이 남자가 자기 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던가?"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하게 설득한 건 아니야."

"설득하는 건 상관 없어. 하지만 그 전에 설명해줄 게 있지 않나?"

천둥왕은 어색하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야, 음...아빠를 바로 고르면... 음..."

그는 주저하듯이 천천히 말을 이었는데,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고르듯이 문장을 만들어갔다.

" 죽는다."

완성된 문장은 그렇게 섬세하지 않았지만.

"내가 말했지. 넌 말을 할 때 좀 더 서두랑 마무리를 넣어야 한다고."

"죽어요?"

"응. 죽는다."

나는 광대왕을 휙 쳐다보았다. 그는 방금 전까지 아빠를 고르는 게 소풍 날 옆자리 짝꿍을 고르는 일인 양 즐겁게 이야기 해줬었는데.

그는 슬쩍 눈길을 피했다.

"이걸 어떻게 어린 아이가 알아듣게 설명하지..."

천둥왕은 내 어깨에 턱하니 손을 올리고 살짝 쥐었다.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손아귀 힘이 상당할 것임을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 때 광대왕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추야자 좋아하니?"

"네..."

"아주 좋아한다."

"너한텐 안 물어봤어. 자아, 높은 나무 꼭대기에 커어다랗고 예쁜 대추야자가 하나 열렸어요."

그는 손으로 자신이 커다란 나무인 양 시늉하며 동화구연 하듯 말했다.

"그런데 여기 사다리가..."

광대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장을 고쳤다.

"여기 귀여운 아기 기린이 찾아왔어요. 앗, 기린의 목에 얻어 타면 나무의 꼭대기까지 닿을 것 같아! 대추야자를 먹고 싶은 아이들은 신이 났어요."

"네에..."

"그런데 기린이 아이들 중 한 명을 가리키면서 '나는 이 꼬마애를 목에 태워줄 거야!' 하고 크게 외치면 어떻게 될까요?"

"꼬마가 기쁘겠군!"

"너한테 안 물어봤다고. 그래, 이 꼬마는 기쁘겠지. 그런데 나머지 꼬마들은 더 이상 야자를 못 먹게 되겠지? 선택된 꼬마가 홀라당 먹어버릴 테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열매를 쥐고 먹는 시늉을 하는데, 그 꼴이 아주 실감났다. 괜히 나까지 '그렇네, 그럼 안되지!' 하고 어린애처럼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그럼 기린한테 선택 받지 못한 꼬마들은 어떻게 할까?"

"기린을 밀어 떨어뜨린다! 시체를 밟고 올라선다!"

"그러니까 네가 대답하지 말라고... 뭐, 됐어."

광대는 자꾸만 이야기에 끼어드는 천둥왕을 타박했다. 그러나 '사실 잔인한 표현은 상대방이 대신 말해주기를 기대하고 펼친 연극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옅게 들었다.

실체가 어찌 되었든 상당히 설득력 있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천둥왕의 표현은 좀 과격했어. 그렇지만... 사실이야. 나도 네가 바로 아버지를 공표하기를 원치는 않아. 그런 걸 유도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

"선택의 위중성을 깨닫기 전에 첫 도장을 찍어두려는 계획은 있었겠지만."

"아니라고."

"아이야, 여기서 남을 함부로 믿으면 안된다."

"그러는 너는!"

광대는 천둥왕의 어깨를 잡고 휙 돌려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도록 했다.

"네가 여기 이렇게 찾아온 이유도 빤하지. 너야말로 애한테 점수 따려고 내 방까지 찾아와서 깽판 치는 거잖아?"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그는 한 쪽 눈썹을 들어올리고 팔짱을 꼈다. 옷의 팔뚝 부분 천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어깨에 새겨진 흉터들의 윤곽이 어렴풋이 비쳐보였다.

"아이란 부부간 사랑의 결실! 나는 이 아이가 정말 나와 부인 사이의 자식이 맞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만약 아니라면 딱히 내가 부친이 될 이유는 없어."

"광대 아저씨랑 그 얘기 하고 있었어요."

나는 천둥왕의 얼굴이 정면으로 마주보이도록 침대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중간쯤부터 깨달았다. 이 남자, 아마도 귀가 거의 안 들린다.

"아저씨는 엄마 정말로 좋아한다면서요. 정말이에요?"

"당연하지!"

뿌듯한 표정. 진심어린 흐뭇함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그 옆에서 침대에 턱을 괴고 있는 광대왕의 질린듯한 얼굴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부인의 남편들은 대부분 속국 출신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 정략혼이지 사실상 두들겨맞고 끌려온 입장에서 부인을 좋아하기는 어려울만 해."

광대왕은 아예 침대에 철퍽 누워서 눈알을 굴렸다. 아마 이 연설을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닌 듯 하다.

"하지만 그건 내 고향에서는 평범하고 적법한 구혼 절차!"

허리에 손을 얹고, 천둥왕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구혼자는 강함을 증명하고, 굴복한 자는 상대의 뜻을 따른다! 매우 자연적이고 합리적인 혼인 양식이야. 다른 왕들이 왜 불평하는지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못하겠다. 강한 사람과 결혼하는 건 생물로서 당연히 바라는 바가 아닌가?"

"딱히 불평한 적은 없어," 광대왕이 변호하듯이 꿍얼거렸다. 천둥왕은 늘 그렇듯이 무시하고 제 할 말을 했다.

"그 강한 배우자의 피가 섞인 아이를 갖는 것이 내 꿈이다! 후계와 권력, 그 따위 알 바가 아니야. 그러니 이 몸을 아버지로 선택하라고 강요할 이유가 없어, 나는."

그는 무릎을 조금 더 구부려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가 과연 그 아이일까, 나는 그게 알고 싶을 뿐이다."

무릎을 굽혔지만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는 덩치다. 그는 유난히 홍채가 작았는데, 밑에서 보면 눈의 흰자가 희번득해서 묘한 광기가 느껴졌다.

자기가 소거법으로 가장 상식인이라고 말한 광대왕의 발언이 조금씩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알았어. 감동적이네."

광대왕은 박수 치는 시늉을 하며 시선을 끊었다.

"빨리 말 못한 건 미안. 네가 마음만 놓으면 바로 말할 참이었어. 정말이야."

"가장 먼저 말했어야 했다."

"일단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어. 어제도 그래, 다른 아저씨들이 소리치고 무서웠지? 의자에 누워서 자는 척 했었잖아."

나는 작게 움찔했다. 알고 있었구나.

어른들의 입으로 들으니 확실하게 실감 되기 시작했다. 여기는 아마 위험해.

왕들은 하나같이 내게 잘 대해준다. 내 편이 되고 싶으니까.

그러나 '내 편'이 정해지는 순간 나머지는 분명 적이 된다.

천둥왕은 끙차,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할 말은 그것 뿐이다. 앞으로 복도에서 뛰지 말도록."

"저... 저기...!"

나는 그의 허리춤에 달린 검집 끈을 잡고 천둥왕을 잡아세웠다. '푹푹이'가 끈에서 달랑거렸다.

"아저씨, 검 잘 쓰시나봐요."

"아저씨는 아니지만 검은 잘 쓴다."

"그럼... 그럼 있지요,"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한테 검을 가르쳐주세요."

"검을?"

"제가 친딸인지 알고싶다면서요. 그, 아저씨가 잘 하는 거 저도 한 번 해보면... 아저씨 딸이거나 딸이 아니라는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아저씨가 아니지만 확실히 괜찮은 제안이군, 우리 일족은 전부 타고난 전사들이니."

나는 고개를 작고 빠르게 끄덕였다.

'사실 칼싸움 따위 별로 관심은 없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배워두어서 나쁠 것 없을 거야.'

"저기 근데... 그냥 어른 남자들은 다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지? ...광대왕도 아저씨라고 부르지?"

'아까 그 기린 이야기에 이상한 부분도 있고 말이지...'

"내가 더 어린데... 저기, 앙크바야르, 얘가 너도 아저씨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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