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타입

K님 리퀘

1차 자캐 프로게이머 AU

그 자식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 아주 강하게,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물론 손이야 존나 아프겠지. 그래도 내 속은 진짜 개 씹 존나 후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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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는 조금 빠르게 연락이 왔다. 걔한테 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으면서 당연히 연락이 올 거라고 오만한 예상을 한 나나, 정말로 연락을 보낸 그 새끼나 참 웃겼다. 정말 은퇴하시나요. 문자의 말투마저 뻔했다. 문장 뒤에 온점을 꼬박꼬박 붙이는 고지식한 놈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그랬다. 화면을 잠깐 들여다보고 있는데, 뒤이어 다음 문자가 연이어 도착했다. 저는 P에요. R팀 미드. 알아, 이 새끼야.

남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나도 예상이 갈 정도로 걔는 뻔한 행동만 했다. 그러니까, 다음 수가 훤히 읽혔다. 나보다 세 살 어린 고삐리가 내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는데, 그 사실 때문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인게임에서도 좀 이래 줬더라면 내가... 침대에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가 다시 누워서 답장을 했다. 걔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내 답장은 ‘읽씹‘이었다. 핸드폰의 전원을 끄자, 방이 다시 빛 한 점 없이 어두워졌다. 이젠 진짜 끝이다. 이 판도, 팀원들도, 지긋지긋한 연습과 스크림도, 병신같은 L갤럼(ㅗ)들도, 그리고 겸사겸사 P도.

 

그래, 인정한다. 나는 P에 배알이 꼴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렇지만 하나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다. 나는 ’P‘란 인물에 열이 받은 것이 아니다. 내가 뭐가 잘났다고 얼굴도 애새끼 같고, 허여멀건 애를 질투하겠는가. 숫기도 없어서 음침해 보이기까지 하는 애를. 난 P가 서 있는 위치를 질투한 거다. 그 자리에 홍길동이 있든, 김철수가 있든, 나는 똑같이 꼴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 씨발, 지금의 나는 퇴물이고, 걔가 서 있는 그 자리는 원래 내 자리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다면 그 자식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다. 나만 마주치면 살짝 빨개지는 얼굴에, 색을 덧입히듯이 보라색 멍이라도 얹어주고 싶었다. 그럼, 예전에 내가 깨 먹은 모니터 화면처럼 그 자식도 산산조각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그걸 원했다. 퇴물인 새끼한테, 항상 당신을 존경했다고, 당신과 같은 리그를 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언제부터 쌓여 왔는지도 모를 오래된 감정이 꽉 담아진 탓에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하는 걔의 입이 사라져 버리길 바랐다. 나를 대하는 녀석의 태도에서 동경이 번들거려 묻어 나올 때마다 나는 혐오스러워서 몸서리쳤다. 내가 더 이상 최고가 아니란 걸 스스로 인정하는 데 정말 오래 걸렸는데. 자세히 말해보자면 5개의 마우스가 부서지고, 한 개의 모니터 화면이 박살 나고, 내 연습실 책상에 오목한 홈이 파이고, 팀원들과 무수하게 싸우고, 감독님을 몇 번이나 뒷목 잡게 하면서 인정한 사실이었는데. 그런데 걔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은 여전히 최고여서, 나를 겨우겨우 깎아서 인정한 그 사실을 다시 포기하고 싶어졌다. 이게 내가 P를 싫어하는 이유다. 납득했는가? 납득 못 했으면 뭐, 어쩌라고.

물론 난 실제로 걔 얼굴에 강펀치를 박아줄 수가 없다. 키 차이 덕에 주먹이 닿을지도 미지수였고, 나도 다른 팀 선수를 팼다가 L갤 념글을 하루 종일 달구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나랑 같은 리그를 뛸 수 있어 행복하댔지. 어림도 없지, 난 은퇴했다. 그게 내가 걔한테 날리는 강펀치였다. 물론 내가 걔만을 위해서 은퇴했다는 개소리가 아니다. 이건 정말 심사숙고해서, 나를 위해 내린 결정이다. 그렇지만 이 판의 생리대로 3년도 못 가 퇴물이 된 그 새끼가, 나랑 똑같이 걔의 자리를 대체해 버린 후배를 보며 열 받아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꽤 좋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좆같은 세상은 내 맘대로 돌아가지를 않았다. 나는 이 판도, 팀원들도, 지긋지긋한 연습과 스크림도, 병신같은 L갤럼(ㅗ)들도, 그리고 P와도 끝을 맺지 못했다. 3년 뒤에 P의 눈앞에는 걔의 자리를 대체해 버린 후배 대신에, R팀의 코치인 내가 있었다. 그리고 걔는 여전히 최고였고, 여전히 P의 눈 안의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었다. 참 신기하고 소름 돋는 새끼.

그래도 딱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 자식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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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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