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이는 다소 곤란하고도 철학적인 질문이다. 이런 말을 수련에게 물어본다면 돌아올 대답은 물론, '아니오'겠지만. 그녀는 흔해빠진 운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가 인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다소 모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신은 인연을 믿는가? 수련이 생각하기에 인연은 존재한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잡고 싶지 않아도 지독하게 붙들리는 관계 또한 있다. 좋든 나쁘든 인연은 항상 함께한다고 수련은 그렇게 믿어왔다.

그녀가 살해해온 사람들도 물론 그녀와 독한 인연의 실로 얽혀 있었을 것이다. 수련은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요!"

다소 경박한 외침, 수련의 말버릇이었다. 상대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며 수련이 그렇게 말했다.

"뭐 먹어?"

"저녁입니다."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메뉴 말이야."

수철은 방금 데운 듯한 냉동 핫도그 위에 일회용 케첩을 뿌리고 있었다. 가지런하게 뜯어 놓은 포장지를 보아하니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간 녀석인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수련 역시 그런 핫도그를 꽤나 좋아했다. 그녀는 수철의 옆으로 바싹 다가앉아 핫도그를 가리켰다.

"한 입만."

수철은 대답 대신 핫도그를 크게 깨물었다. 두 입만에 빵도, 소세지도 몽땅 사라지고야 말았다. 수련은 허무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턱과 볼이 우물우물 움직이고 있었다. 뜨거울 만도 하건만 움찔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런 모습이 신기해서였을까, 사람 같지 않아서였을까, 수련의 시선이 수철에게 고정되었다. 눈을 가릴락말락한 앞머리, 오른쪽과는 색이 묘하게 다른 왼눈, 그보다 훨씬 쨍한 원색의 티셔츠와 뒤로 길게 늘어뜨린 꽁지머리.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그의 스타일은 '요즘 유행'은 아니었다. 귀에서 덜렁거리는 작은 귀걸이를 바라보다 수련이 대뜸 물었다.

"해봐도 돼?"

아마 지인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말은 아닐 것이다.

"뭘 말입니까?"

"귀걸이, 귀 뚫어서 매단 건 아닌 것 같은데, 그치?"

수련 역시 피어싱을 하고 있지 않았다. 피해자가 저항하며 몸을 '뚫은' 부위를 잡아당기면 조금 곤란했다.

"완전 신기하잖아."

빼기도 쉬울 거고, 그녀가 작게 덧붙였다.

"안 됩니다."

수철은 언제나 그랬듯 참 단호했다. 헐, 수련의 얼굴이 그렇게 말하듯 움직였다.

"뭐만 하면 안 된대! 한 번만 줘봐!"

"안 됩니다, 비싼 거라 망가지면 곤란해서."

김샜다. 수련은 편의점 의자에서 몸을 뒤로 젖혔다. 등받이가 없었기에 뒤로 넘어가면 조금 곤란했지만, 그럴 수련은 아니었다.

"쳇, 그런 거냐고."

"예, 그런 겁니다."

딱딱한 대답. 그라는 사람을 깊이 알기는 참 어려웠다. 수련이 대뜸 물었다.

"넌 운명을 믿어?"

다소 곤란하고도 철학적인 질문에 수철이 고개를 돌렸다. 대답할 틈조차 주지 않고 수련은 말을 이어갔다.

"난 운명이라는 말이 싫어. 끝장날 운명, 실패할 운명. 그런 건 내가 정한 게 아니잖아. 하지만 인연이라는 말은 좀 믿는 것도 같고."

"무슨 차이입니까?"

이걸 이해하지 못하다니. 수련이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수철은 간혹가다 답답한 면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실은 그녀가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해를 바라면 안 되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설명이 필요했다.

"예컨데 너와 내가 만난 게 인연이라고 치자."

수련은 눈짓으로 수철을 가리켰다.

"그럼 그걸 통해서 서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우리들이 정해나가는 거야. 하지만 운명이 존재한다면 만남뿐만 아니라 과정과 결말도 다 정해져 있다는 소리가 돼. 기분 나쁘지 않아?"

"만날 인연이라는 말이나 만날 운명이었다는 말이나 비슷하지 않습니까."

수련이 그 말을 격하게 부정했다.

"뭘 들었냐? 운명이라는 녀석은 우리의 생각까지 정해놓잖아. 만날 운명, 그걸 통해 불행해질 운명, 결국 파멸로 끝날 운명. 이렇게 단정짓는 말보다 무언가의 틈새에만 관여하는 인연이라는 단어가 더 예뻐."

수철은 여전히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됐다 뭐. 귀걸이도 한 번 못 껴보게 하고."

"헌데 귀걸이와 운명이 무슨 상관입니까?"

"원래 사람은 할 말이 떨어지면 아무 말이나 하는 동물이야."

수련이 맥주캔의 고리를 거칠게 뒤로 젖혔다.

"그리고 솔직히 너를 좀 알아보고 싶었으니까. 너라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사는지."

맥주가 차가웠다. 목구멍으로 넘기기 직전에 수련은 보랏빛 시선을 슬그머니 그에게 흘려보았다.

"어떤 신념으로 이곳에 있는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러한 만남은 그날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다른 날에도 수철은 편의점 테이블에서 핫도그를 먹고 있었다. 그날의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며칠을 걸러 또 어느 날에도. 그리고 그날에서 사흘가량 지난 새로운 날에 늘 그랬듯 편의점을 방문한 수련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수철의 귀걸이를 보았다. 느슨해져서 빠진 걸까, 아니면 어떠한 사유로 빼놓았던 걸까. 원인이 뭐던간에 결과는 남아 있었다. 뒤따를 행동도 당연했다.

수련은 손을 뻗어 한쪽 이어폰을 뺐다. 수철의 귀걸이를 귀에 걸었다. 왼쪽 귀에서 흘러나오는 둔탁한 팝송 위에 흑백의 음성이 얹어졌다. 수철에게 지시하는 음성이었다. 그들이 몇 년째 추적하고 있는 전문 살인청부업자, 그 더러운 여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경계할 것을, 그리고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하하."

수련의 얼굴에 미소와 무표정 사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팝송은 여전히 흥겨웠다.

'...So predictable......'

그녀는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 흔히들 말하는 고수 사이의 유대랄까. 당할 자 없던 인생에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만들어주는 상대라면 싫어할 이유가 없다. 결말이 자신의 승리로 정해져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이. 당연하게 이기는 내기는 짜릿한 법이다.

I can see the way you look at me Waiting to attack

You are on your worst behaviour I want it just like that

이 사랑스러운 악연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를 흥얼대며 윤수련은 방아쇠를 당긴다.

I can't let you go

You're so good at being bad you know


I can see the way you look at me Waiting to attack

/ 네가 날 바라보는 눈을 보면 알아, 공격을 기다리고 있잖아

You are on your worst behaviour I want it just like that

/ 넌 할 수 있는 최대한 거지 같은 행동을 하고, 난 그걸 원해

My baby's bad you know

My baby my my My baby's bad you know

/ 자기는 참 나빠, 너도 알지?

So predictable

You're an animal

/ 너무 뻔해, 넌 짐승이야

I can't let you go

You're so good at being bad you know

/ 하지만 널 보내줄 수 없어

넌 타고난 나쁜 놈이야, 너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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