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 왕국의 공주는 아버지를 선

일처다부제 왕국의 공주-5

어른들은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한다-1

웹소설 by 도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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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다시!"

간신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면 가슴을 밀려서 다시 넘어진다. 다시, 하는 외침을 듣고 일어나면 이번에는 어깨를 밀려서 넘어진다.

"다시!"

다행히 발 밑에 겹겹이 깔린 푹신푹신한 융단 덕분에 아무리 넘어져도 엉덩이가 아프지는 않았다.

"다시!"

검술을 가르쳐달라고 물어보자마자 천둥왕은 나를 궁둥이 성의 안뜰로 데려왔다. '그럼 당장 시작할까!'라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시간 넘게 낙법만 연습하고 있었다.

"다시!"

정말 멋 없고 재미도 없는 수업이다. 쭐래쭐래 따라왔던 광대왕은 어떻게든 옆에서 농담을 끼워 넣고 시시덕거리려 애썼지만, 결국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반 시간 만에 자기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배신자...

"좋아, 휴식! 그 감각을 잊지 말고."

드디어 지루하디 지루한 반복 교육이 끝났다. 검술이라는게 이렇게 지루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몰랐는걸. 이게 검술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새삼스럽지만 여기는 왕이라는 인간들이 할 일도 참 없구나 싶어졌다.

"나는 비 오는 날이 아니면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대신 비가 내리면 엄청나게 바빠지지."

깜짝이야, 마음을 읽힌 줄 알았다.

바닥에 엎어져 쉬고 있는 내게 천둥왕은 물 한 잔을 가져다 내밀었다.

"오늘 같은 날이니까 이렇게 일일이 봐주는 거다. 우기에는 신경 써주지 못해."

"비가 오면 무슨 일을 하는데요?"

"번개를 베거나 자르거나 하지."

그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긴, 어른들은 원래 이상하고 별 의미 없는 일을 하는데 일생의 대부분을 바치고는 하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게는 이미 다른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광대왕의 방에서 나누었던 기린과 대추야자 이야기라던가.

'야자열매를 독차지할 선택받은 아이가 나오면, 기린은 어떻게 될까, 하는 광대왕의 질문에 천둥왕은 "밀어서 떨어뜨려 죽인다"라고 답했다.'

그래, 그랬지. 그렇지만 뭔가가 어색했다.

'나무 밑에 서있는 기린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왜 '떨어뜨려 죽인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야?'

물론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 어른들은 다들 좀 이상하니까, 이상한 소리를 좀 하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아니면 내가 신경증에 걸린 걸지도 몰라.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첫 날부터 뭉근하게 끓던 불안감이 그 순간 푸쉬쉭 끓어올라 뚜껑 너머로 김을 뿜는 느낌이었다.

'...나 같은 아이가 또 있었던 거 아닐까, 내가 오기 전에.'

의심이 뜨거운 증기가 되어 코 안쪽을 메케하게 채웠다.

나는 천둥왕을 바라보았다.

등을 돌린 남자는 '푹푹이'성대모사를 연습하고 있는 듯 했다. "오늘 잘햇...! 오늘, 큼, 호늘... 오늘 너무너무 잘 해써효...!", 하는 가성을 내고 있고, 손에 든 칼을 인형 움직이듯이 통통 튀기고 있다.

푹푹이 목소리 연습을 할 거면 내가 없는 곳에서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애초에 인형 연기를 한답시고 칼을 그렇게 흔들면 안되잖아. 위험하게.

같은 생각을 하며 천둥왕의 뒷통수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다 쉬어쪄- 크흠. 다 쉬었나? 그럼 이제 마무리 체조만 하고 귀환하도록."

"네."

헷갈렸구나. 천둥왕은 '푹푹이' 말투의 가성으로 말하려다가 급히 목을 가다듬었다.

나쁜 어른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가 이 남자의 딸일 가능성이 있어서 친절한 것 뿐일까? 내가 다른 왕의 자식으로 판명된 후에도 이런 태도일까?

아버지 후보가 네 명인데 한 명은 살인자, 한 명은 자기 자식의 살인을 막지 못한 사람이라니.

'둘 다 고르기 싫어.'

그나마 후자가 전자보다 낫나, 싶다가도, 아니지, 후자가 더 나쁜 선택지 같은데, 싶기도 했다.

'넷 중 둘이 꽝이라니 너무한 확률이네.'

나는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은 감사했어요."

"내일 비가 안 온다면 또 와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재능이 아주 없지는 않아. ...푹푹이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더군."

천둥왕은 칼의 밑동부분을 쥐고 인형처럼 흔들며 엄청나게 쇳소리나는 가성으로 말했다.

"너무너무 잘 했어용!"

"아, 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

그 이후로 사흘 정도가 지났다.

별 일은 없었다. 날은 계속 맑았고, 밥은 조금 싱거웠으며, 가끔 광대왕이 놀러 왔고, 가끔은 광대왕에게 놀러갔다. 낙법과 더불어 달리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세 왕의 이름을 적어두었던 종이에도 약간의 갱신이 있었다. 제멋대로 '아버지 점수'랍시고 이것저것 평가해둔 차트를 붙인 것인데, 얼굴을 보는 것은 천둥과 광대 뿐이었으므로 큰 쓸모는 없었다.

[광대왕, 친함 점수 20점. 믿을만함 점수 5점.]

[천둥왕, 친함 점수 15점? 믿을만함 점수 6점.]

[큰왕, 친함 점수 0점. 믿을만함 점수 점.]

[ ]

역시 종이 위에 정리를 해 두면 마음이 안정된다. 뭔가 나한테도 어느 정도는 통제권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거든.

참고로 각 점수의 만 점은 100점이었다.

"이런 거 아니면 할 일도 없고..."

정말이지 성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천둥왕과의 수업 외에는 가끔 글을 읽거나 조랑말을 타거나 하는 정도였다. 사람이 필요할 때에는 어디에선가 일꾼들이 나타났지만, 커다란 건물은 거의 대부분 텅 비어있었다.

'성이라는 거, 원래 이런 느낌인가?'

성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 알 도리가 없다.

"분명 네 명이 있다고 했었는데."

광대왕, 천둥왕, 커다란 왕, 외 한 명.

큰 왕은 첫 날을 제외하면 다시 본 적이 없었고, 남은 한 명은 아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 바위왕은 원래 밖에 잘 안 나오거든. 나도 얼굴 본 지 좀 됐어. 큰왕은... 뭐, 걔도 방에서 잘 안 나오기는 하지만 보통 이 정도는 아니야. 그냥 요즘 좀 바빠서."

내 칭얼거림을 듣던 광대왕은 말했다.

참고로 그의 방 안은 이제 돼지 우리 꼴이 되어있었다. 딱히 쓰레기가 있거나 벌레가 나올법한 풍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선반 위, 의자 밑, 책상 위, 책상 아래, 쓰레기통 안, 쓰레기통 위, 쓰레기통 밑, 쓰레기통과 쓰레기통 사이-그의 방에는 쓰레기통이 아주 많았다-, 기타 등등을 그득그득 채워 더 이상 바닥이나 가구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사흘만에 어떻게 이 꼴이 되는 것인지 의아함을 표하자, 그는 "지금 이것도 많이 깨끗한 거야. 너 초대하려고 대청소를 했었으니까. 그 상태까지 청소하는데 엿새 정도 걸렸었다고," 라고 답했다.

"많이 바쁜가요?"

"우리 넷 중에는 제일 바쁘지, 아무래도. 특히 요즘은 더 해. 기록을 샅샅이 뒤져보고 있거든."

"기록?"

"응, 저번에 봤지? 큰 왕의 탑. 거기는 커다란 서고야. 여기서 일어나는 웬만한 일들은 거의 다 기록되어 있다고."

광대왕은 '여기서'라는 대목에서 팔을 크게 휘저으며 말했다. '여기'가 이 성 안을 말하는지, 나라를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세계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는 아주 크게 팔을 휘저었다.

"사적인 기록도 다 있으니까... 거기서 네 아빠가 누구인지 힌트를 찾고 있을 거야."

"그런 걸 알 수 있는 기록이 있어요?"

"그렇지. 네가 태어나기 아홉 달 전에 누구랑-"

광대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세 치 혀 달변가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누구랑... 석류를 심었는지 찾아보고 있어."

"석류를요."

"으응. 사랑하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석류를 심으면, 아홉 달 뒤에 나무에서 아이가 열리거든."

나는 와아, 그렇구나, 하는 순진한 소리를 하며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그는 나를 열 살인 줄 아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정말이지 멍청한 소리다. 하지만 열두 살이나 먹은 나는 아이가 어디서 오는지 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홉 달 전에 누가 엄마랑 뽀뽀를 했는지 확인하는 거구나.'

남자와 여자가 뽀뽀를 하면 아홉 달 뒤 여자의 배꼽에서 아이가 나온다. 그 정도는 나도 알지. 게다가 두 남녀가 나무를 심어서 아이가 생긴다면 내가 이 나라 밖의 외지에서 자라난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나를 속이기에는 너무나 어설픈 거짓말이었다.

다만 결점이 하나 있었다.

'10년 전에 엄마와 뽀뽀한 사람은 내 아빠가 아닐텐데.'

병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대충대충인 어머니 덕분에, 그리고 내 홍역 덕분에, 사람들은 나를 열살배기로 알고 있다. 그러니 분명 찾고 있다는 기록도 십 년 전 것일 테지.

그러나 내 실제 나이는 열두 살. 십 년 전 기록을 찾아봤자 소용이 없을 터였다.

"큰왕은 자기 방에 한 번 틀어박히면 안 나와. 남이 자기 방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하고..."

"큰왕의 방..."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벌써 가? 간식 시간까지는 있지 그래."

"죄송해요, 오늘 천둥 아저씨랑 수업 약속을 했는데 깜빡해서."

나는 방으로 서둘러 돌아가 방에서 펜과 종이를 챙긴 후 큰 탑으로 향했다.

내 진짜 아빠의 기록을 찾을 기회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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