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 왕국의 공주는 아버지를 선

일처다부제 왕국의 공주-6

어른들은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한다-2

웹소설 by 도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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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왕의 방은 다행히도 찾기 쉬웠다. 며칠 전에 광대왕에게서 배우기도 했고,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높아 백 리 밖에서도 눈에 띌 듯한 탑이었다.

커다란 문은 안쪽에서 잠겨있었다.

"겨우 이런 걸로 나를 막을 수는 없지."

고향 집에서도 창고 안에 갇힐 때마다 머리핀 만으로 문을 따고 나오던 나다. 어찌나 실력이 좋은지, 나중에는 아예 팔을 움직일 수도 없는 작은 장난감 상자에 가둬지고는 했지.

"됐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 걸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커다란 문은 그 틈조차도 거대했기에, 덩치가 작은 나로서는 새끼손가락이 살짝 들어갈 정도였거든.

큰왕의 방은 수없이 많은 책들로 가득했다.

방을 가득 채운 책 냄새. 종이 냄새가 이토록 강렬할 수도 있음을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찾지?"

서재는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사다리 하나 없었다. 사다리 하나 놓을 자리에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넣지! 라고 외치듯이.

책들은 분명 무언가의 규칙에 따라 잘 정돈된 듯 하지만, 그 규칙을 알 리 없는 나에게는 그저 미로와 같았다.

"아, 정말... 젠장, 젠장, 젠장할..."

미로의 중심부에서는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도, 이것도..."

나는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들고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갔다. 탑의 바닥은 습기 하나 없이 매끈했기에 발소리를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용히 머리를 내밀자, 며칠 전에 보았던 커다란 남자가 책을 팔랑팔랑 넘기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이것도야..."

큰왕이다. 그는 지난 번 보았을 때보다 더 거대해 보였는데, 어쩌면 머리카락 때문일지도 몰랐다. 지난 번 보았을 때 남자의 머리는 마치 두피에 바른듯이 납작하고 반듯하게 넘긴 모양새였다. 그러나 지금은 머리 위로 구불구불, 마치 늙은 양처럼 솟아 있다.

방은 온갖 종이뭉치들로 둘러쌓여 있다. 내 앞에 놓여진 종이 뭉치도 그가 최근 꺼내 놓은 것으로 보였는데, 오랫동안 닫혀있던 책이 열렸을 때 특유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붙임쪽지를 보아하니 몇 년간의... 음, 몇 년간의... 기록이라고 쓰여져있다. 잘 모르는 단어네. 그렇지만 큰왕이 지금 뒤져보고 있는 거라면 내가 찾는 정보가 맞겠지.

나는 가장 위쪽에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파드득]

"앗!"

실수했다. 책인 줄 알고 들춰본 것이 제본 되지 않은 종이 뭉치였던 것이다. 커다란 종이의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누구냐."

커다란 목소리가 서고를 울린다. 나는 깜짝 놀라서 종이 뒤에 주저앉아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정적.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헛것을 들은 줄 알고 무시하기로 한 걸까?

"누구냐고 물었다."

"으악!"

두 번째 질문은 머리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우와, 앉은 자리에서 허리만 뻗었는데도 내가 있는 곳까지 시야가 닿는구나. 이름이 '큰왕'인 사람은 확실히 크네, 그런 쓰잘데기 없는 잡념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아이구나."

"죄송해요."

남자는 나를 잠시 째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화를 죽이는 중인 듯 하다. 안 그래도 거대한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풍선처럼 커지더니 푸후후우, 하고 날숨이 크게 터진다.

"무슨 일이지."

"제 아빠를 찾는 일로 바쁘시다 들어서..."

나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변명했다.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됐다, 일은 끝났어. 이제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것 관련, 그으, 음, 살펴볼 자료는 다 살펴봤는데 말이지, 그... 넷 중 누가 네 아빠일지 후보를 추릴 수가 없었어. 다들 부지런하기도 하지..."

그가 얼굴을 옅게 붉히며 우물거렸다. 뽀뽀라는 단어도 말하기 부끄러워하다니, 아주 순진한 어른인 듯 하다.

"내 거처는 어떻게 찾아왔지?"

"큰왕은 큰 왕이니까 큰 탑에 산다고, 광대왕이 말해줬어요."

"그 창부가..."

남자가 중얼거렸다.

방금 한 말은 취소. 아이 앞에서 못된 말을 쓰다니, 큰왕은 못된 어른인 듯 했다. 못된 어른은 인상을 찡그리고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내가 이렇게 큰 것도 그 놈 때문이야. 젠장할, 그 놈이 친 사고 시말서 만으로도 이 탑 세 층은 될 테니까."

"그거랑 아저씨가 큰 게 무슨 상관이에요?"

"서류가 많아질수록 책장이 높아지고, 책장이 높아지면 나는 더 커질 수밖에 없지 않나! 나는 사서니까!"

"예? 예."

이 곳의 어른들은 정말이지 종종 이상한 소리를 했다. 하긴, 어른이란 원래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하고는 하지.

"광대... ...너, 광대왕과 벌써 친해졌나? 아니, 친해졌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하... 아니야, 방치한 내 잘못이다."

커다란 왕은 들고 있던 책을 탁 소리나게 닫고 원래 있었을 자리에 살포시 넣어두었다.

"시계를 세 개나 찼네요," 나는 무심결에 말했다.

"뭐?"

손을 쭉 뻗으며 드러난 큰왕의 손목에는 시계가 세 개나 나란히 달려있었다.

"시계를 아주 좋아하시나 봐요."

"시계를- 아니야, 시계는-"

간신히 화를 가라앉혔던 남자는 대체 뭐에 자극 받은 건지 다시금 흥분하기 시작했다.

"시계란 말이야, 원래 세 개 이상 차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어째서요?"

"어째서냐고!"

화난 듯한 말투였지만 뭔가 기뻐 보였다. 이 주제에 대해 사람들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을 퍽 좋아하는 듯 했다.

"생각해봐. 시계 하나를 찬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지? 예를 들어- 자, 네가 시계 하나를 찼는데, 시계침이 세 시 삼십 분을 가르킨다고 해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이 세 시 삼십 분이라는 의미겠지요."

"아니야! 그건 모르는 일이야. 시계란 놈은 웬만한 인간들보다는 믿을 만 하지만 그것도 고작이거든. 그 시계가 정말 고장 나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지?"

"그런가요."

별로 흥미 없는 주제였다. 그러나 내가 몰래 숨어들어서 정리된 종이를 망쳐두었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모양이기에 그냥 떠들게 두었다.

"그러면 어떡하느냐? 시계를 하나 더 들고 다니는 거야. 두 시계가 동시에 고장 나는 일은 드무니까, 두 시계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면 최소 둘 중 하나는 고장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어때, 완벽한 계획이지?"

"그렇네요."

"틀렸어! 시계를 두 개 들고 다니면 둘 중 한 시계가 고장 났는가 여부는 알 수 있지만, 그래서 둘 중 어느 녀석이 맞고 어느 녀석이 틀린지는 알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시계는 최소 세 개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거야."

"으음..."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것도 틀릴 확률이 높지 않나요?"

그는 아무런 말 없이 눈썹 한 쪽을 들어 보였다.

"손목시계를 세 개 들고 다닌다고 해도 결국 손목은 두 개잖아요. 결국 최소 두 개의 시계는 같은 손목에 차게 될 거에요."

"...틀리지 않은 관찰이군."

"그러면... 같은 손목에 차고 다니는 두 시계는 동시에 고장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똑같이 흔들리고 똑같은 곳에 부딪힐 테니까요."

큰왕은 여전히 한 쪽 눈썹을 찌푸린 채로 묵묵히 들었다.

"-손목시계가 어긋나는 이유는 보통 흔들림 때문이거든요. 즉 세 시계 중 두 개가 비슷한 시점에 고장 나기 쉽다는 말이 되지요. 그렇게 되면 세 개 중 두 개가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고 해서 꼭 그것들이 옳다고 보기는... 어려워질 것... 같아요."

한창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무서워서, 조금 위축됐다.

"너는 아무래도 내 자손인 것 같군."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어도 천둥의 여식은 아니야, 그건 확실해."

다행히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닌 듯 했다.

"음, 좋아, 옳아... 그렇다면 시계 하나는 목에다 거는 게 어떨까. 그래, 그게 낫겠어."

"그냥 다른 사람한테 시계를 보여 달라고 하면 안되나요?"

"다른 사람의 시계라고!" 큰왕은 천둥왕보다도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거야말로 가장 못 믿을 놈이야. 특히 내 주변 것들은."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왼 손에 걸어두었던 두 시계 중 하나를 풀었다. 그러고는 내게 내밀었는데, 손목시계라기에는 너무 크고 두꺼워서 내게는 팔뚝에 차야 할 정도였다.

"선물이다. 난 이제 필요 없으니..."

"조금 큰데요."

"어린 애들은 금방 크니까."

이 정도로 클 일은 아마 없을 걸요, 라는 말을 꿀꺽 삼키고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작게 읊조렸다.

"이건 아주 좋은 시계야. 마법 시계거든."

"아, 네."

어린애라고 아주 되는대로 뱉는구나.

"무슨 마법이 있는데요? 여기 버튼을 누르면 시간이 멈추나요?"

"아니, 총알이 나와."

"총이잖아."

어린애한테 팔아먹을 마법의 범주를 좀 넘어선 것 같은데.

"시간을 멈춘다니, 그 정도의 고위 마법을 내가 턱턱 줄 것 같아?"

"애초에 마법이 아니잖아요."

"마법이야."

"마력탄 같은게 나오나요?"

"그건 뭐야? 총알이 나온다니까. 여기 이쪽 면에서."

"마법 아니잖아요, 역시."

"까다롭기는... 좋아, 그럼 이걸 주마."

그는 툴툴거리며 "마법" 시계를 도로 가져가고, 반대쪽 손목에 있던 손목시계를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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