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판 센루

슬램덩크 : 로판

센루 (2023~)

D-Esper by K.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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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는 남자애에게 장가간대요~”

“시집 가는 게 아니고? 하하하…”

어른 들의 수근댐을 훔쳐 들은 누이들은 정도를 모르고 막내를 놀려댔다. 철이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무례였으나 그런 이유로 사정을 보는 일이 없고, 놀림은 원색적이었다. 장난으로 넘기려던 어른 들이 오히려 거침 없는 농에 기함하여 마침내 일일이 뒤를 쫓으며 입단속해야 했다.

“하지만 가주가 남자애와 결혼하면 료난은 망하는 게 맞잖아요?”

“대공은 치사하게 작은 부인을 들일텐데, 아키라만 불쌍해!”

자리를 가리는 법도,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법도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오히려 정곡을 날카롭게 찔렀다. 타고난 위치와 교육덕에 세상 일을 일찍부터 깨우친 어린 가주는 악의 없는 악담에 상처입을만도 하였으나 의외로 무던히 웃음으로 흘려넘길 뿐 저가 닥친 상황에 크게 동요치 않았다. 어른들은 그가 필요 이상으로 영리한 탓에 이 말뿐인 혼사를 어린 지혜로 이해하고 있으려니 여겼으나 그 여유로움은 그들이 좋을대로 생각하는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안쪽으로 잘 감춰두게.”

“예.”

“그렇다 해서 상하게 둘 수는 없으니 제일 안쪽 수장고에 두지.”

“예.”

수장고는 어린 센도에게는 최적의 휴식처였다. 저택 곳곳을 장식한 예술품들은 분명 더 비할 것 없는 최고였으나. 최고라는 것은 아무래도 세간의 평가나 가격에 따라 가치를 줄세워지기 마련이다. 반면에 수장고에 보관된 것들이야말로 반짝임을 알아볼 줄 아는 이의 수집품이 모이는 곳이었다. 저택의 벽이 과시를 위한 재물들의 무대라면, 항시 조용하고 서늘한 수장고는 가문의 진짜 취향이 농축되어있는 향유병과도 같았다. 센도가 서재를 떠나있는 때는 대부분 이 수장고 이곳저곳을 탐험하거나, 한여름에도 냉기가 도는 돌바닥에 드러누워 짧게 낮잠을 자는 것이 일과였다.

“……”

드물게 수장고가 북적이는 것에 놀라 잠이 깬 센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몸집이 크지 않은 아이이니 몸을 웅크리는 것 만으로 사용인들의 눈에 띄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딱히 수장고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나서서 아는 척을 한 들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사용인들의 어투에서 지금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를 읽었으므로 굳이 몸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다.

고운 것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알던 이들은 이 저택을 떠난지 오래였고, 그러므로 수장고에 새로운 수집품이 들어온 것 역시 오랜만이다. 또한 새로운 수집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우왕좌왕 하는 모습 마저 센도에게는 낯설었다. 그 기억에 수집품들은 언제나 연도와 재료, 작가 등의 색인에 맞추어 구입 시기부터 보관 구역을 정해 놓은 뒤 정중하게 납품되었기 때문이다. 헌데 이 날 물건이 취급되는 분위기는 어린 센도 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모친이나 고모님 들이 수시로 수장고를 드나들던 때에는 아무리 작은 작품이라도 일꾼 한사람이 덜렁 들어 운반하는 일은 없었다. 더욱이 수장고에 새로 들어온 물건은 센도의 키보다도 크고 넓은, 척 보기에도 무게가 나가는 액자였다.

‘저걸 저렇게 취급한다고?’

센도는 잠자코 사용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어떤 작품인지 몰라도 후에 저가 직접 살펴 흠이라도 생겼다면 문제 삼아야겠다 마음먹었다. 먼지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얇은 비단 덮개를 간신히 걸친 액자는 수장고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무례하게도 아무런 고정장치도 없이 빈 벽 한 켠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놓였다. 저녁 식사 메뉴에 대해 떠들며 사용인 들이 수장고를 나서는 것을 보며 센도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떤 물건이길래 이런 취급을 하면서 굳이 여기에 보관하는 거지?

인기척이 사그라들자 센도는 무릎을 털며 일어서 벽에 기댄 그림 앞에 섰다. 모로 흘러내리려는 비단 천이 먼저 그 눈에 들었다. 이 근방에서라면 흔치 않은 직물이다. 언뜻 보기에는 결이 곱지 않아 값을 높게 칠 물건이 아니라 여길 수 있으나 센도는 이 비단 덮개가 양잠이 드문 북쪽의 사치품임을 알아보았다. 북쪽은 양잠하기에 기후가 따르지 않아 직물 자체의 결은 이곳의 것만큼 뛰어나지 않아도 대신 강도와 염색 기술이 탁월하다.

어린 아이가 물건의 가치에 밝은 것은 배움이 높고 그 타고난 눈썰미가 좋은 까닭이겠으나 또한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혜가 움틀 때부터 제 방 한 켠에 걸쳐있던 붉은 비단 숄은 지금 눈앞의 덮개와 그대로 닮았다. 가까이 보아야 분간할 수 있는 정교한 무늬와 사방을 두른 술의 짜임은 때때로 햇빛을 가려주거나 낮잠자는 저의 어깨를 덮어주던 것과 같은 원단을 쓴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닮았다.

‘아니, 같은 비단이야.’

센도는 장담했다. 그의 방 벽장에 보관되어있는 숄은 세월에 빛이 조금 바랬으나 기억 속 선명한 붉은 빛은 눈앞의 덮개 바로 그것이다. 그제야 그는 모친의 장례 이후 부친이 예의 숄을 찾아 함께 폐기하려던 일을 떠올려 눈썹을 들어올렸다.

폐기할 뻔 했던 비단 숄과 버려지듯 수장고에 방치된 액자의 덮개.

두 원단이 꼭 닮았다는 것이 우연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슨 그림이길래?’

센도는 홀린듯 비단 덮개로 손을 뻗었다. 나이에 비해 거친 손가락이 덮개에 닿자 간신히 걸려있던 덮개가 흘러내렸다. 센도가 놀라 저도 모르게 덮개를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움켜 잡았다. 손 안을 가득 채운 것은 기억 속의 숄의 매끄러운 감촉 그대로여서 뽀얀 뺨이 절로 발그레해졌다.

“……”

숄로부터 시선을 든 센도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보존처리가 된 지 얼마 안 된 커다란 액자에 담긴 것은 초상화였다. 창밖으로 시린 겨울 풍경이 선연한 가운데 최대한 안락하게 꾸며진 실내에 실제의 크기와 거의 같게 그려진 어린 아이가 제법 의젓하게 서 센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랑또랑하게 뜬 눈은 커다랗고 윤기나는 머리털 만큼이나 새카맣다. 말랑해 보이는 흰 뺨은 추위보다는 난방 덕에 약간 상기되어 광대 부근이 발갛다. 그도 그럴 것이 굽이 있는 장화를 신고도 센도의 가슴팍 정도 될 법한 작은 아이는 보통의 예복 위에 목화 솜을 누비고 털가죽이 달린 방한복과 의례용 망토까지 꼭꼭 끼워 입었다. 맞을 리 없는 가죽 장갑을 낀 작은 손은 테이블에 올려진 온갖 귀한 먹거리와 자랑스러운 금장식을 마다하고 늘어져 잠든 새끼고양이의 등을 쓸고 있었다. 아마도 저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아이가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얌전히 서있으려면 원하는 것 하나는 내어주어야 했을 테니 위엄없이 다리를 늘어뜨린 고양이가 그 역할이었을 것이다.

‘여자 아이 같이 예쁘네.’

까만 눈동자 위로도 눈에 띄게 그려진 긴 속눈썹을 빤히 들여다보며 센도는 생각했다. 그도 고운 얼굴이라는 칭찬을 아쉽지 않게 듣고 자랐으나 초상화 속 아이의 외모는 결이 달랐다. 머리칼과 피부의 대비나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고귀한 옷차림 없이 어디에 두어도 돌아볼만큼 예뻤다. 누이들이나 파티에서 만나고는 했던 이웃의 아가씨들도 모두 곱게 치장하여 인형같은 얼굴이었으나 어린아이면서도 이리 시선을 끄는 특출난 외모는 본 일이 없다.

한참을 아이의 얼굴에 홀려있던 센도는 일부러 눈을 깜빡이고는 시선을 돌려 그림 전체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림은 그야말로 제대로 공을 들인 것이었다. 빠른 보존처리를 위해 물감을 억지로 말린 흔적이 없다. 발색이 하나하나 선명한 것을 보아 캔버스부터 물감, 보존제까지 무엇 하나 최상품을 쓰지 않은 것이 없다. 물감을 완전히 말린 시간과 안전하게 이동하는 데에 걸린 기간을 고려하면 그림은 적어도 2년 에서 1년 반 전 그려진 셈이었다. 센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그림 속의 아이를 보았다. 그렇게 오래 전에 그려진 초상화라면 아이는 지금쯤 훨씬 성장했을 것이 분명하다. 키와 얼굴의 생김새만으로 유추한 아이의 나이는 저와 한 살이나 차이가 날까 싶다.

‘설마.’

그제야 아이의 허리띠에 둘린 붉은 비단띠에 센도의 시선이 닿았다. 그가 지니고 있던 숄과 지금 제 손에 들린 덮개, 그리고 아이의 허리에 둘린 띠가 모두 같은 원단으로 만들어 진 것이 실물로 보지 않아도 확실하다. 그리고 부친이 숄과 이 그림을 센도에게서 떼어내려던 이유 또한 알만 하다.

“너구나.”

크게 뜨였던 센도의 눈이 부드럽게 휘며 웃었다. 한 살 터울의 쇼호쿠 차기 대공.

센도의 정혼자.

“카에데.”


센루 100분 전력 ‘롱디’ 때 그린거 야금야금 망상한 내용이예요.

더 그리거나 쓸지는 모르겠지만 다 보셨을 거 일단 모아놓기라도…

모태약혼으로 전서구 만으로 롱디 연애하는 북부대공과 남부제독…

엽서 그렸던 거

이것도 전력 100분 때 ‘결혼’ 주제로 ㅎㅎㅎ

정리 하고 보니 많지도 않네요. 행복하게 산다고 합니다.

다시 그려볼까 했는데 원본 소실… 드랍…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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