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standard cherisher 2
-그 애 있잖아.. 그 부잣집 애..
-아, 나도 알아. 그 털 긴 집안 애?
-응! 그 애~! 그 녀석 말이야.. 마법을 공부한대~!
-그러니까 내 말이~! 아니. 코볼트가 무슨 마법이야 마법은~!
-숫자나 하나 더 배울 것 이지.. 그 녀석 놀이터에 나와서 노는 꼴을 한번도 못 봤어!
-그 집안이 그렇지 뭐~.. 애를 밖에서 햇빛도 보게 하고 좀 뛰어다니게 해야 하는데... 코볼트가 마법이나 배우고 말이야..
-그러니까 애가 그렇게 뚱뚱하지.. 걘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도 아주 못났어~
지워짐는 아주 총명한 아이였다.
어지간한 강아지보다는 똑똑했고, 어지간한 인간보다 똑똑했다.
적은 노력으로도 금방 원리를 깨우치고 이해하는데 월등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똑똑하다는 자부심은 그를 더욱 지식에 빠지게 만들었다.
집안은 풍족했다.
친구들과 만나지 않고 공부만 하는 모습은 그의 어머니를 기뻐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머니는 유서 깊은 귀족 집안의 유전자를 모조리 물려받은 외관의 딸이 자랑스러웠다.
큼직한 손과 발. 새하얗고 밝은 털에, 짙고 확연한 갈색 무늬. 덩치도 힘도 세고, 머리도 똑똑하다.
조금 뚱뚱했지만-괜찮았다! 어릴땐 조금 통통한 편이 건강해 보이고 좋으니까. 자라면서 근육을 키우면 자연스레 살이 빠질 것 이다.
어떤 말을 듣던 간에,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물론 소문에 대해서도 익히 듣고 있었다.
마법이라니! 지워짐의 어머니는 아이의 교육을 직접 통제 하고 있었다.
아이가 꼭 봐야 할 책들과, 보면 좋을 책들. 그리고 봐선 안될 책들과, 봐도 안 봐도 상관없는 책 정도는 직접 검수하고 있었다.
마법 책 같은 것은 아이의 손에는, 저택 안에는, 아이의 발길이 닿는 곳 에는 모조리! 치워버렸다. 없애버렸다.
마법이라니! 코볼트가 손을 대선 안 될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일정량 이상의 초콜릿과, 양파. 그리고 마법이었다.
마법에 욕심을 부린 코볼트는 대체로 끝이 좋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 에게 사악한 마법사의 수하라고 몰려 화형에 처해지거나, 간악한 술수에 홀려서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떤 코볼트들은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기억에서도 잊혀졌다는 소문까지도 있다.
마을사람들은 그저 순혈가문의 가장 똑똑한 아이를 시기해서 그런 소문을 퍼뜨린 것 이겠지. 원래 유능한 자에겐 늘 못난 버러지 같은 자들의 악담이 따라 다니는 법이다. 그저 이 악담이 아이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만 조심하면 될 일이다.
마법은 코볼트가 가져선 안된다. 그건 엘프들이나 고블린. 요정이나 인간들만 쓰는 것 이다.
우리같은 코볼트는 수많은 귀족가문들과 거래하는 상인이 되거나, 왕의 호위기사가 되면 되는 것이다.
코볼트라는 종족의 최고의 영광이란 그런 것 아닌가. 가장 빛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까이서 지키는 것. 내 딸은 우리들에게 허락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것 이다.
지워짐는 방에서 온 몸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채, 이불을 덮고 작은 램프를 껴안은채로 책을 읽는다.
어머니의 눈을 피해 다락방 구석 벽을 뜯고 발견한 낡고 낡은 책.
평생 접해 본 적 없는 다양하고 끔찍하고 역겨운. 그러나 눈을 뗄 수 없는 지식들로 가득했다. 그 책은 지워짐의 눈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오늘 시도해볼 마법을 하나 골라서, 주문을 모조리 외운 다음. 조용히 집을 나가면 준비완료다.
이해하고 깨닫는 순간 깨달은 자의 세상을 모조리 바꿔버리는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마법에 홀린 것 이라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아이였다. 지워짐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무서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총명한 아이였다.
오늘 자기에 대해 수근거린 이웃을 알고있다.
지워짐의 유모는 온 마을을 귀신같이 꿰고 있었고, 지워짐를 아주 사랑하는 자다. 지워짐는 유모의 기억 만큼은 마지막 까지 남겨 두었다.
집중하자. 귀족 집안이 살만큼 큰 마을에서 흐르는 사람들의 기류는 나에게 더욱 큰 마력을 빌려준다.
한 사람의 삶에서,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사람과 관련된 기억을 지우는 정도는 간단하게 해낼 수 있다.
지워짐는 천재였고
시간은 많았다
온 마을을 돌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기 자신 한 명을 지워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잖아도. 교류가 워낙 없었던 코볼트니까.
사계절 내내 따뜻한 어느 코볼트마을.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게, 저마다 삶을 살아간다.
마을 어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곳에 어느 순혈 귀족 가문이 살고 있었다.
이 귀족들의 성에 대해 수많는 소문이 돌고 있었는데, 다들 제법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귀신이 나온다느니, 숨겨진 딸이 있다느니... 특히 딸과 관련된 소문이 특이했다.
이 귀족 집안은 느즈막히 낳은 아들 뿐이고, 대를 이을 수 있는 딸은 없었다.
그리하여 전국을 돌다시피 하며 후계자를 찾고 있었다. 그러니, 숨겨둔 딸이 있다면 진작 찾아내서 차기 가주 자리에 앉혔을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들을 둔 어머니의 고민이 깊어져 간다.
어느 귀족 저택의 다락방 한 구석에 있는, 이상하리 만치 덩치가 큰 코볼트.
아무도 본 적 없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얼굴의 아이를 우리는 알고 있다.
잉게르는 몇 년 째, 이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
낮에는 가면으로 모습을 숨겨 마을을 돌아다니며 온갖 조사를 하고, 밤에는 아무도 모르게 집으로 기어 들어와 잠을 청한다.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마법으로 기억을 지워버리면 그만 이다.
어느새 실내에서. 즉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을 만큼 능숙한 마법사가 되어있었다.
이제 잉게르는 마지막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원히 깨지지 않도록 크고 정교하고 단단한 마법을 만들고 있었다.
온갖 변수를 생각해서 다양하게 연구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만큼이나 잉게르는, 시선으로의 자유가 필요했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이 마을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이다.
개운한 기분으로 잉게르는 마을을 떠났다.
가면을 쓰고,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고, 꼬리도 마법으로 숨겼다. 정말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
드디어 해방이다. 드디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잉게르는 똑똑한 사람 이었기에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지어줬던 이름을 지우고, 새 이름을 가졌다.
이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전 이름은 잊혀졌다.
마지막으로 그 이름을 알고 있던 잉게르도, 스스로의 기억에서 자신의 예전 이름을 지워버렸다.
과거의 이름 지워짐을 지우고, 잉게르 라고. 제 이름을 한번 불러보고는,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잉게르는, 맥스 라는 코볼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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